마지막 학생예비군이었다. 다음 날 같이 훈련을 받는 친구와 밤새 술을 마시고, 일찌감치 학교 잔디밭에 가서 널부러져 있다가 버스가 오자마자 올라탔다. 눈을 좀 붙이려는 찰나 버스는 훈련장에 도착했다. 아, 제발 오늘도 무사히. 오늘은 무사히. 지난 두 번의 예비군 훈련들을 떠올려보았다. 항상 뭔가 문제가 있었다. 첫 예비군 훈련 날에 훈련장에 원스타가 떴다. 간부들은 아주 기합이 빡 들어가 예비군을 무참히 굴려댔다. 예비군은 빡침을 참으며 지시에 따랐다. 어느 기합이 바짝 든 소위께서 대열에서 자꾸 벗어나는 예비군에게 쌍욕을 시전하자, 예비군 무리는 더 이상 빡침을 참지 않고 상황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다음 해의 훈련에서는 쉬는 시간에 예비군에게 환경정리를 시켰다. 모두들 쌍욕으로 프리스타일 대결을 펼치며 쓰레기를 주웠고, 누군가 집에서 인터넷에 찔렀다. 내 바로 다음 차수부터는 그런 게 없어졌다. 딱 내 차수까지만 저 짓을 했다.
평생 세 번 받는 학생 예비군 훈련 두 번에서 짜증나는 일을 두 번 겪는다는 건 역시 짜증나는 일이다. 세 번째는 무사하겠지. 하지만 시작부터 불길했다. 내 앞에 두 놈이 문제였다. 물론 예비군은 모두 껄렁껄렁하다. 하지만 앞의 두 놈은 특별했다. 예비군 훈련을 온 건지, 대국민 오디션 전국 중딩 일진대회에 참여한 건지 모를 놈들이었다. 그들은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 히드라리스크처럼 침을 뱉고, 모든 어절에 욕을 섞었으며, 목소리는 컸다. 그들은 능히 산을 뽑고 세상을 덮을 기개로 허세와 병신력을 펼쳐댔다.
에이 뭐, 예비군복 입으면 다 저렇지. 훈련만 무사히 넘어가자.
라고 넘어가려고 생각했지만 나는 도대체 저 놈들이 무슨 과의 누구인지 궁금해서, 그들의 대화에 등장하는 교수의 이름을 외워두었다. 남자가 많은 기계과의 예비군 훈련은 며칠에 걸쳐 나눠한다지만, 남자가 부족한 인문사회예체능계는 그런 거 없이 온갖 전공을 모아 하루 훈련 인원을 만든다. 익숙한 교수 이름이 없는 걸로 보아 사회대는 아닌 것 같았다. 어느 과 누구시려나.
입소식 예행연습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모두와 반드시 시비를 걸겠다는 결의로 입소식 예행연습부터 깽판을 치기 시작했다. 조교에게 시비를 걸던 그들은 수습하러 온 동대장에게도 시비를 걸었다. 그들은 쉴새없이 반말과 욕과 침을 뱉었다. 보다 못한 옆 사람이 그들을 제지했다. 야, 아버지뻘 되는 사람한테 뭐 하는 짓이냐. 그들은 옳다구나 하고 싸움의 대열을 정비했다. 더 많은 조교들과 동대장들이 달려왔고, 나는 마지막 예비군 훈련도 남근같이 끝나겠구나 하는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손발을 잡힌 채 그들은 입씨름을 시작했다. 너 몇 살이야. 뭐하는 새끼야. 어머님이 누구니. 그러다 히드라 한 마리가 일갈했다.
나 서양화과 03학번 홍땡땡이다 개X끼야. 넌 몇학번이냐?
침묵이 돌았다. 내 기억에 대가 다니던 대학에 서양화과는 없다. 그들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붙잡고 있는 그들의 상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 학교에 서양화과가 있었나? 아니, 애초에 미대가 없는데 서양화과가 있을 리가. 근데 그러면 이 새끼들은 뭐야. 야, 너 학교 어디야. 그들과 싸우던 투사가 물었다. 다른 히드라가 대답했다. '너는 X발 니가 다니는 학교 이름도 모르냐? A대학교다'
어제 학교 이름을 바꾼게 아니라면 내가 다니던 학교의 이름은 B였다. 싸움을 말리던 조교가 말했다. 선배님, A대학교 입소식은 저 쪽 운동장입니다. 히드라는 표정이 구겨졌다. 그들은 굉장히 무안한 표정으로 아 씨X 아 X발 하면서 수많은 시선 속에서 저쪽 운동장으로 사라졌다. 나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침에 이런 꼴이 났는데 설마 점심 저녁에 뭔 일이 나겠냐. 다행히도 점심때나 저녁때나 예비군들은 사고를 치는 대신 두 히드라리스크를 까는 데 집중했다. 걱정과 달리 마지막 예비군 훈련은 안전하게 끝났다. 예비군도 끝났으니 술이나 마시자, 하고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정신을 잃도록 마신 특전사 출신 친구를 내 고시원에 재웠다. 그는 내 침대에 있는 힘껏 그날 마시고 먹은 모든 것을 토해놨다. 침대를 치우며 예비군 훈련 같은 건 빨리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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