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한 표정의 토끼가 맹수에게 사냥당합니다. 자연의 법칙이죠. 그러나 이는 이미 옛날 이야기입니다. 동물의 세계에 먹이와 포식자의 관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를 설명하는 연극의 주인공 주디 홉스는 당차게 자기 꿈을 밝힙니다. 저는 최초의 토끼 경관이 될 거에요! 모든 동물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하지만 토끼가 경관을 하는 건 아직 전례가 없습니다. 모두가 비웃었지만 주디 홉스는 결국 경찰관 뱃지를 가슴에 붙이고 맙니다. 뿐만 아니라 시장의 인정을 받은 고로 주디는 대도시인 주토피아로 배속됩니다. 뭐든지 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상경했지만 현실은 주디 홉스에게 썩 친절하지 않습니다. 중요임무에서 밀려나 주차 단속이나 하고, 어떤 날라리 여우에게는 실컷 비아냥만 듣습니다. 쫑긋 서 있던 주디 홉스의 귀는 처질 수 밖에 없습니다.
<주토피아>는 아주 잘 만든 영화입니다. 칭찬을 하려면 그 장점을 보다 정확히 짚어야겠죠. <주토피아>는 동물들이 타고난 특성을 극복하고, 그 특성을 전부로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에 지지 않으려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는 차별과 편견에 관한 이 주제를 명확하게 그리지만 이 주제가 적용되는 대상을 국한시키지 않습니다. 그 어떤 현실의 차별과 편견에도 적용할 수 있는 거죠. <주토피아>의 "선천성"은 인종차별을 먼저 떠올리게 만듭니다. 선천적 조건으로 차별하고 차별당하는 현실 속에서 가장 와닿는 이슈죠. 이는 LGBT 문제에도 적용됩니다. 체격, 외모, 여러 선천적 특성들 때문에 사회에서 온전히 대우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와닿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주토피아>가 그리는 차별은 젠더평등의 양상을 띄고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여러 증거를 보여주지요. 토끼라는 동물이 상징하는 성별, 영화 속 주인공들의 성별, 긴머리 여성을 연상시키는 주디 홉스의 늘어지는 귀, 다소 폭력적으로 보이는 남성성의 세계로 진입하는 여성, 토끼들은 감정적이라는 닉 와일드의 대사나 마지막 장면에서 운전실력에 관한 농담들은 <주토피아>가 젠더의 문제 역시도 깊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을 암시합니다. 심지어 꼭 선천성에 관한 이야기만도 아닙니다. 닉 와일드가 이제 막 주토피아로 옮긴 주디 홉스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이 영화는 이민자에 관한 이야기로도 충분히 치환할 수 있습니다. 가볍게 생각하면 전학 간 아이들이 낯선 환경에 적응해가는 이야기로도 받아들일 수 있겠죠.
<주토피아>가 훌륭한 다른 이유는 귀엽고 명랑한 이야기 속에서도 현실을 날카롭게 짚어낸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 영화가 차별을 그려내는 구조를 보죠. 영화 초반 주디의 꿈을 방해하는 기디온이나 편견에 그대로 고착된 부모님이 있습니다. 노력과 재치로 극복해야 하는 뚜렷한 퀘스트들이 이야기에서 제시된 셈이죠. 주디는 남들이 뭐래건 꿈을 향해 달립니다. 그리고 마침내 경찰 대학 수석 졸업이라는 성취를 이뤄내지요. 애니메이션으로서 일반적인 이야기진행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이 단선적인 공식을 10분만에 부숴버립니다. 주인공이 노력했고 인정받았지만, 그걸로는 더 이상 뭘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의 차별이 이어집니다. 보고 서장은 자신을 소외시키고 닉 와일드는 도와주려던 자신을 등쳐먹습니다. 노력과 이상으로는 해결이 안되는 현실의 벽에 주인공은 부딪힙니다. <주토피아>는 꿈과 희망을 순진하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가 어딘지 모르게 느와르의 냄새를 풍기는 것도 아마 그런 연유일 것입니다. (초반 컨셉북은 훨씬 더 어두운 이야기였다고 하더군요) 모든 것이 멋져보이지만 주인공의 무대는 사실 그런 곳이 아니라는 게 초반에 드러납니다. 기디온처럼 대놓고 토끼라고 무시하지 않지만, 클로하우저나 보고 서장의 일상적이고 은밀한 차별에 주디는 부딪히지지요. 그리고 사건을 추적할 수록 주인공 일행은 더 짙은 그림자를 발견해 나갑니다. 동물의 본성에 대한 경고를 듣고, 거기에는 거짓된 평화를 도모하려는 배후 세력과 맞닥트리게 되지요. 이는 단순히 악당의 부도덕한 소행이 아닙니다. 드러나는 진실은 훨씬 더 현실적이고 미묘합니다. 이처럼 <주토피아>는 차별과 편견의 주제를 선악의 문제로 고정시키지 않습니다. 차별과 편견은 구조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입니다. 표면적인 선의 가치관을 좇지만, 그 가치관이 현실에서는 더 교묘하게 차별의 도구로 작용합니다. 벨웨더나 주디 홉스가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주토피아의 시민들이 이를 통해 평등을 믿고 있는 것처럼요.
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영화가 신파로 흐르기도 쉽습니다. 온 세상이 자신을 푸대접하는 이야기라면 영화는 주인공을 향한 동정표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기 마련이죠. <주토피아>가 또 다른 장점은 관객들에게 감정적 지지를 얻어 쉬운 길을 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영화는 주디 홉스를 약자의 처지로 내몰고 위로를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딱 한번, 주디는 시멘트 묻은 발로 귀가한 장면에서 풀이 죽어있지만 영화는 이마저도 금새 옆집 이웃의 투닥거리는 유머로 넘기며 다음날 바로 사건의 단초를 던져 씩씩하게 이야기를 끌고 나가죠. 주디 홉스는 당당하고 의연합니다. 자기를 향한 차별에도 시무룩해하지 않습니다. 처음 들어가는 경찰서에서도 조금 놀랄 뿐 자기 자리를 찾아 앉으며 더 좋은 세상을 만들자고 인사하고, 주차 딱지나 떼게 생겼지만 자기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자기 일에 임합니다. 주디는 쉽게 울컥하지도 않습니다. 차별적인 말에는 곤란해하며 잘못을 지적하고, 권위자의 으름장이나 다른 이의 비아냥에도 기가 죽지 않습니다. 주디는 동정에 호소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가련하고 딱한 아이니 행복하게 해줘야 하지 않겠어? 하고 연민에 기대지 않아요. (오히려 닉 와일드가 그와 같은 포지션을 차지하죠) 우리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감동받는 이유는 약자가 약자의 티를 내지 않고 꿋꿋하게 싸워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이 영화는 귀여움을 자극하기 딱 좋은 동물인 토끼를 주인공으로 활용하면서도 주디에게 단 한번도 애교나 살랑거리는 태도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당당한 여성상을 그려내는 이야기로 더 읽히기 좋은 것이구요.
영화는 중반 이후 다른 식으로 차별을 끌고 나갑니다. 실종사건은 해결되었고 내재된 폭력성을 확인했지만 이를 계기로 초식동물 쪽에서 포식자들을 두려워하고 차별하죠. <주토피아>가 훌륭한 가장 큰 이유는 이처럼 선악의 이분법을 탈피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에서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는 늘 선과 악으로 대치하고 승자가 결국 주제를 표방합니다. 옳고 그름은 승패의 방정식 아래에서 설득력을 얻게 마련이고 보는 이는 승리의 쾌감에서 윤리적 규칙을 습득하죠. <주토피아>는 주디 홉스의 실언과 그 때문에 번지는 새로운 유형의 차별을 보여주면서 차별과 편견에서는 그 누구도 옳고 그름을 자신할 수 없다고 전합니다. 차별은 역사적, 유전적인 강자와 약자 사이의 구도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편견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고 그것이 또 다른 메이져리티를 만들며 마이너리티에 대한 억압이 된다고 말하지요. 영화는 가해자에게 일방적으로 경고하는 대신 보는 모두에게 성찰의 메시지를 던집니다. 그것은 어느 한 쪽이 나빠서, 그리고 그 한 쪽을 고쳐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종 전체의 문제이며 실질적으로 경계해야 할 것은 "편견"이라는 사고방식 그 자체입니다.
그렇기에 영화는 비로서 주디 홉스의 눈물을 보이며 호소합니다. "나쁜 사람이 되지 맙시다" 라는 위협적 경고가 아닌 "깨닫고 사과하도록 하자" 라는 긍정적 변화를 촉구하지요. <주토피아>는 이상을 이뤄가는 그 방법론에서도 성찰의 무게가 담겨있습니다. 악을 미워하는 것보다, 선을 쫓도록, 그리고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도록 불안한 느낌표 대신 따뜻한 물음표를 던지며 우리 모두가 더 나은 존재가 되기를 바랍니다. 차별과 편견의 세계에서 승자와 패자를 만들고 한 쪽을 도태시키는 대신 모두를 끌어안고 화해하는 이야기로 영화는 거듭납니다.
엔딩 장면에서 주디 홉스는 이 영화의 주제를 부정합니다. "유토피아(주토피아)는 사실 없다" 는 식으로요. 이는 낙담한 것도 절망한 것도 아닙니다. 희망은 흐릿한 이상의 세계를 약속하는 게 아니라, 고쳐나갈 현실을 인지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많은 것을 남깁니다. 달콤한 해피엔딩으로 모두의 행복을 보지 않아도 저리도 굳건한 토끼 경관의 용기와 의지를 보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거기에다 이제 영리하고 속정 깊은 여우까지 옆에 있으니 못 할 게 무어겠어요.
@ 주디와 닉의 커플링 설정이 그리 자연스러워보이진 않습니다.
@ 제가 본 영화 리스트에서 제일 많이 본 영화가 될 줄 알았는데, <시빌 워>를 네번 봤으니 타이기록에 머물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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