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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9/02/25 16:40:30 |
Name |
한니발 |
File #1 |
Giukhagogyesipnigga.jpg (255.2 KB), Download : 30 |
Subject |
하늘의 왕. |
0.
분명히 그랬었다…….
그것은 분명 그 시절 가장 빛났던 네 사람을 위한 이름이었다.
1.
얼마 전 전태규가 코치로 전향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한빛 이전의 시절을 날았던 또 한 명의 선수가 손을 놓았다.
그 전에는 박용욱이었나.
그 전에는 조용호,
또 그 전에는 이창훈이었나.
김정민, 변길섭, 최인규, 박경락, 변은종, 박성준, 이창훈, 심소명, 이병민, 김동수, 최수범, 김동진, 조용성, 김원기….
비단 선수들뿐일까.
감독들과 코치들, 또 기자들과 스태프들. 그리고 선수들 이야기로 웃고 떠들며 날을 지새우곤 했던 스갤의 오랜 고정닉들.
문득 돌아보니, 참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다.
이젠 힘들겠지, 이제는 힘들겠지 하면서 어느덧 길고 긴 레이스가 되었다.
자신이 달릴 수 있을 만큼 하나같이 있는 힘껏 달렸겠지, 모두들.
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고맙습니다-.
있는 힘껏 손을 잡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2.
E-SPORTS는 이제 진짜배기 프로 스포츠로 더욱 빠른 걸음을 내딛고 있는 모양이다.
더욱 커졌고, 더욱 부유해졌다. 우리는 더 이상 매 끼니를 라면으로 때우는 팀이나, 좁아터진 PC방에서 연습을 하는 선수들을 보지 않아도 된다. 선수들은 오로지 게임에만 집중할 수 있다. 하루에 수십 게임씩, 그럼으로써 게임들의 수준도 옛날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높아졌다.
이것이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흘린 땀과 눈물의 보상일까.
새로운 오늘은 어제를 빠르게 지워나간다.
3대 토스의 자리는 육룡이 메우고, 오리온의 자리는 T1이 메운다.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듯, 초승달이 지고 보름달이 차오르듯. 하나 둘 사람들이 자리를 비울 때마다, 그만큼의 사람들이 다시 자리를 메운다.
그렇게 반복되다 보면 언젠가는 E-SPORTS가 축구, 야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당당한 메이저가 될 지도 모른다.
문득 멈춰서 생각한다.
고달픈 시절은 이제 다 지나갔구나.
모든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이 판에서, 몇 년이 더 지나면 과연 몇 사람이나 그 시절을 기억할까.
아니, 어쩌면 이미 지금도.
나는 과연 얼마나 그 나날들을 기억하고 있을까.
되새겨본다.
뻘뻘 땀을 흘리며 말을 더듬는 해설자 주훈이 승리의 함성과 함께 날리던 어퍼컷을.
처음으로 장내를 쩌렁쩌렁 울렸던 김동수 콜을.
서지훈의 「엄마, 사랑해요.」를.
케스파컵 첫 우승 후 고개를 숙이고 눈시울을 붉히던 김가을 감독을.
4U에서 T1, P.O.S에서 HERO, KOR에서 스파키즈, SOUL에서 STX로, 차례차례 스폰서를 얻어가던 비스폰 팀들을.
…………
………
……
KOR의 첫 우승을 만든 차재욱의 마지막 한 걸음.
조용호의 염원하던 KTF 첫 우승.
잠시나마 부활의 꿈을 날개쳤던 박경락.
내리치는 장대비, 모두의 예상을 뒤엎은 외인구단 한빛스타즈의 쿠데타.
단 한 번도 높이 올라가본 적 없던 팀원의 은퇴식, 사람들을 울리고 웃겼던 대니얼 리의 서툰 춤.
부활한 전설, 오영종과 조정웅의 말없는 포옹.
……차례차례 한없이 떠올라 끝이 없다.
주리고 지쳐서, 정말로 고달파서.
그래서, 더욱 그 어느 때보다 모두 함께 목이 쉬도록 울고 숨이 차도록 웃었던 -
아아.
우리들은 그런 시절을 살아냈었다.
3.
……초등학생 때의 일이다.
밤늦게 홀로 집을 지키다 문득 만화를 보려고 투니버스를 돌렸었더랬다. 그런데 만화 대신에 난생 처음 보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게「스타크래프트」라는 컴퓨터 게임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 처음으로 리그를 본격적으로 보게 된 것은 한빛배부터였다. 그 때도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집에 변변한 컴퓨터도 없었고, 스타는 해본 적도 없었다.
그렇지만 부모님이 아실까 이따금씩 방문을 흘끗흘끗 쳐다보았던 일, 시원한 마린의 총성,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젊고 잘생긴 청년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 코카콜라배의 붉고 답답해보였던 결승 유니폼과,「폭풍 속에 사라진 드랍쉽」이라는 응원문구, 발할라, 차, 정글스토리, 라그나로크. 마지막까지 당당하게 맞섰던 두 사람의 모습도 아득하다.
- 어느새, 나는 어느새 누군가의 팬이 되어있었다. 작년에 이루지 못했던 염원에 도전했던 임요환. 전승의 기세, 우승을 의심치 않았지만 한 명의 은빛 신성(新星)이 포비든존에서 벼락을 흩뿌리며 그를 다시 한 번 가로막았다.
- 황제의 자리를 내놓으라는「윤빠」들, 이윤열의 게임은 재미가 없다는 「임빠」들. 온게임넷 홈페이지 게시판에서는 투닥거리는 매일을 보냈다.
아마도 그때부터였다. 나도 그 사람들과 함께 걷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은.
스타리그, 이 새로운 세계를 주욱 바라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로부터 수년, 매일 매일을 조심스레 포개어 가슴 깊은 곳에 소중하게 놓아두었다.
4.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더니 10년이 지나가버렸다.
고달팠던 시간들, 그러나 너무나 소중했던 시간들은 마치 꿈결처럼 아득하다.
어쩌면 정말로 꿈일지도 모른다.
다시는 결코 꿀 수 없을, 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던 달콤한 꿈.
5.
……프로토스의 전설은 대를 이어 살아남는다.
구구(久久)의 3대에서, 구(久)의 3대, 그리고 신(新)의 3대로.
그러나 전설에 도전하는 자의 이름은 단 하나.
그 이름은 오래토록 변치 않아
모두가 그의 시간이 멈췄다고 여겼다.
몇 번이고 짓밟히고, 몇 번이나 무릎 꿇고, 몇 번이나 패주했음에도. 언젠가 찾아올 단 한 순간을 그는 믿어왔다.
……오로지 공격뿐인 그의 방식은 말할 것도 없이 무모하다. 막히기 시작하는 순간, 바람은 차츰 잦아들 수밖에 없다. 그 바람은 후일을 기약하는 법이 없다.
그의 폭풍은 다름 아니라 내일을 담보로 몰아친다.
그럼에도 그는 그 모습 그대로 항상 시대의 주인들만을 상대해왔다.
우승을 목전에 두고 쓴 잔은 항상 그의 몫이었다.
……소년은 그대로도 충분히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 때까지의 상식을 벗어난 압도적 물량. 모든 것을 제압해버리는, 압도적 강함.
그런데도 소년은 다른 길을 택하고자 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게임을 하고 싶어서,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는 항상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몇 번고 리그 유일의 프로토스로서 그는 싸웠다. 프로토스의 재앙이었던 최연성과 조용호를 연달아 뛰어 넘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는 더욱 큰 벽을 만나서 마지막에 넘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또다시 진창을 디디고 일어섰다.
현실은 항상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럼으로써 그들은 나에게 속삭인다. 네가 우리와 살아냈던 시간들은 결코 꿈이 아니었노라고.
우리가 함께 웃었던 시간들도, 우리가 함께 울었던 시간들도 진짜였노라고.
너는 함께 잘 걸어와 주었다고,
그렇게 속삭이며 내 목을 메이게 만들었다.
6.
10년이 지났다.
내가 소중히 숨겨놓았던 기억의 반가운 얼굴들은 거진 모습을 감추었다. 이제 그들 네 사람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들 네 사람이 낡은 기억 전부를 짊어지고 있다.
네 명의 고집쟁이들이 아직까지 남아있을 뿐이다.
임요환은 과연 가을의 전설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박정석은 다시 한 번 리그의 주인공이 될까.
이윤열은 자신이 만족할만한 선수가 될 수 있을까.
홍진호가 우승하는 날이 올까….
백의, 천의, 아니 만의 일도 안 되는 확률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적어도 0은 아니다. 그들이 아직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변할지라도 그들은 그 옛 시절의 못 다한 꿈을 쫓으리라.
그들도 결국은 잊혀질 것이다. 하지만 몇 년 전에도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아득한 전설로 남아 바스라지고, 어슴푸레한 빛을 머금은 채 어두운 기억 속으로 가라앉아가리라 여겼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남아 앞을 향한다.
설령 닿지 못하는 끝이라 해도 오로지 앞으로, 앞으로.
아득한 걸음을 옮기는 그 등들이,
「우리가 여기에 있다.」
-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렇다.
우리들이 분명히 여기에 있다.
E-SPORTS의 힘겨운 어제를 함께 살아냈던 우리들은 아직 여기에 있다. 설령 언젠가 과거형이 될지라도, 모두가 우리를 기억하리라.
네 사람과 함께, 끝까지 못 다한 꿈을 잡고자 달렸던 우리들.
「그들이 여기에 있었다.」
그렇게 말하리라.
7.
그랬었다.
우리는 그들을, 다만「하늘의 왕(天王)」이라고 불렀다.
이제는 결코 최강이라고는 할 수 없는.
그러나 그럼으로써, 최강 그 이상의 하늘을 날아오르는 그들을.
우리는 하늘의 왕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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