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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8/09/10 00:36:54 |
Name |
라벤더 |
Subject |
제대로 뒷북 - FPS 진행 후기 |
블로그에 적은 것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 반말체입니다.
양해바랍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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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도 못 가고 여느 때와 다름 없이 무료한 나날
-이라 쓰고 올림픽 야구로 정신없는 나날이라 읽는다.-을 보내고 있던 8월 중순의 어느 날,
메딕님으로부터 한 통의 쪽지가 왔다. 플레이플에서 후원한다는 대회를 진행해볼 생각이 있느냐 하는.
물론 쪽지를 받기 며칠 전, 운영진 게시판에서 대회관련 글과 누가 진행요원 신청을 했더라
하는 글까지 봤었지만,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한(?) 직장 때문에
차마 선뜻 "제가 한 번 맡아 보겠습니다!" 라고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이건 피지알 내에서만 하던 -참가에 의의를 둔- 친목도모를 위해 치러지는 대회가
아니지 않던가.
하지만. 이미 대회관련 공지가 떴을 때 한 번 솔깃했었던 나는
메딕님의 '실제 대회진행은 3일 정도가 될 것'이라는 말씀에 한 번 더 솔깃,
"아무리 생각해도 라벤더님 밖에 없어요~" 라는 달콤쌉싸름한 말씀에 다시 한 번 더 솔깃하며
샤방샤방 꽃미소와 함께 "그럼 열심히 해보겠습니다!"라는 답변을 보내고 만다.
그렇게 나는 Playple배 Fomos-PGR21 대회 피지알측의 '책임자'가 되었다.
다음 날 케노피님에게서 메신저를 통해 포모스 대표님을 소개받고
또 대표님으로부터 알테어님을 소개받는 사알짝 어색한 기운이 흐른 대화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대회 진행이 시작되었다. 초반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선수 신청을 받는 공지를 하고 대회게시판을 따로 만들어
신청을 받으면서 명단만 정리해두면 되었으니까. Dave님께 대회 오프닝에 쓰일 로고를 요청하고
티셔츠 디자인이 뭐가 좋을지 상의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 어김없이 문제는 찾아왔다.
플레이플 측의 중계 문제로 불가피하게 일정을 조정해야 한다는 것.
그것도 예선 일을 늘리고 결선 일을 일주일 정도 늦춰야 하는 상황.
그 소식을 전해 듣는 순간 '이..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 갔지만
기껏 휴가 한 번 가겠다고 이미 맡은 대회를 무책임하게 놓을 수도 없었을 뿐더러,
뭐든 시작하면 죽이 되든 삼층밥이 되든 끝을 봐야 하는 피곤한 성격상
나는 아무도 모를 약 두 시간의 고민 끝에 대회 진행을 계속 하기로 마음먹게 된다.
조정된 일정은 8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예선을 치르고 예선이 끝나는 바로 다음 날
오전 10시부터 오프라인 결선을 치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소식은 나를 두 번째 고민에 빠지게 한다.
마지막 예선 일에 병가를 내거나 조퇴를 하여 일단 올라가서 예선진행을 하고
다음날 편하게 결선에 참석할 것인가, 또는 그냥 빡빡하게 일 열심히 한 뒤 철판 깔고 칼퇴하여
예선을 진행하고 다음 날 새벽에 피곤함에 쩔어 있는 폐인의 모습으로 분당으로 향할 것인가 하는.
요런 고민에 푹 빠져있던 나에게 구원의 손길이 내려온다.
"결선 날이 놀토가 아니어서 오후 2시로 시간을 늦춰야 할 것 같은데, 라벤더님 생각은?"
이라는 알테어님의 한 마디 물음이 바로 그것. 이에 나는 두 눈을 반짝이며 "네!! 좋아요!!"라고
대화창의 답변이 아닌 입 밖으로 소리를 내질러 아주 잠깐 회사 직원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게 된다.
그렇게 대회 일정이 확정되었고 점점 우리 쪽의 신청자가 줄어들어
피지알에서 부족한 인원만큼을 포모스에 신청한 인원으로 채우자는 것까지 합의하고서
차곡차곡 신청자 명단을 정리해가던 신청일의 마지막 날, 나는 한 통의 쪽지를 받게 된다.
'10레벨도 신청 가능 하다고 공지에 되어 있는데 대회 게시판에 글쓰기 버튼이 없다'는 것이
쪽지의 내용. 분명히 10레벨에게도 글쓰기 권한을 주었는데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일단 제보해온 회원의 신청을 쪽지로 받고 임의로 10레벨 아이디를 만들어 테스트 해 본 결과,
글쓰기 버튼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다.
공지에 피지알의 모든 회원에게 참가 자격이 있다고 되어있는데 10레벨 회원의 신청이 하나도 없었던 것은,
대회 신청 초중반의 신청자가 포모스에 비해 쭉 앞서가던 것이 신청 후반에 오히려 역전되었던 것은
게시판 스킨의 권한 처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던 대회게시판 때문이었던 것이었다.
나는 원더걸스 애기들이 부르는 '이 바보'를 떠올리며 게시판 스킨을 교체하였으나,
결국 더 이상의 10레벨 회원 신청 없이 신청이 마감된다.
신청자 명단을 알테어님께 넘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역시 능력자답게 뚝딱 넘어온 대진표와 공지사항을
게시하며 나는 "정말 시작이구나"하는 기분 좋은 긴장감을 가지면서 예선 일을 기다렸다.
그리고 8월 29일, 온라인 예선이 시작되었다. 예선 8일 중 앞의 1-4조는 포모스에서,
뒤의 5-8조는 피지알에서 맡아 진행하게 되어 우리 쪽에는 조금 여유가 생겼으나
포모스 측에서 일주일 넘게 하루도 빠짐없이 분당으로 출퇴근을 해야 한다는 소식을 전해듣고는
미안한 마음과 함께 왜 나는 멀리 대구에 살고 있나 하는 속상한 마음이
쓰나미처럼 한 번에 밀려들었다.
2조와 3조는 주말에 진행되어 집에서 편히 모니터링을 하였으나 평일에 진행되었던 1,4조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구 몰려오는 유지보수건들로 인해 회사에서 야근 중에 몰래 지켜봐야 했다.
전문 방송 인력과 같은 볼수록 빠져드는 중계와 깔끔한 진행으로 예선 4조까지가 마무리 되었고,
우리 측의 차례가 되었다.
피지알이 진행을 맡게 된 나흘 동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도 칼퇴근, 둘째도 칼퇴근,
셋째도 칼퇴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섯 시 칼퇴근에 성공해도 집까지 가는 시간은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는 것이었다.
7시부터 진행되는 예선을 여유있게 준비할 시간이 있기는커녕 지각을 하게 될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나흘간 택시로 퇴근하는 럭셔리한 선택을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이정하 시인의 '(택시,)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가 떠오르는 순간들이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5조부터의 예선이 시작되었고 우리는 첫날 256강 방송 중에 128강을 시작해버리는
실수를 빼놓고는 'FPS_11'님의 도움을 받아 나머지 진행을 그럭저럭 무사히 마치게 된다.
나의 1차 목표는 16강에 6명 정도를 올리는 것, 2차 목표는 4강에 한 명이라도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것은 애초 각 길드의 '대회소식'에 실린 글의 출처가 포모스로 되어 있었기도 했고,
그나마 피지알에서 '스타 좀 한다'는 후로리거들의 진출자 예상인물에 포모스에서 신청한 선수들의
이름이 많이 거론되었던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위에서 말한 '10레벨 글쓰기 권한 사건' 때문인 것도 살짝은 포함된다.)
예선 5조까지 진행했을 때 16강에 진출한 피지알 선수는 단 두 명으로 저조했으나,
6,7,8조에서 4명이 진출에 성공하며 나의 1차 목표는 힘겹게 달성된다.
그리고서 찾아온 대망의 오프라인 결선일.
새벽 6시 40분에 출발하는 성남행 첫 버스를 타고 3시간 40분쯤을 달려 성남 터미널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역시 길치답게 터미널 바로 앞의 친절한 표지판을 무시하고 야탑역의 반대방향으로 걷다가
뭔가 이상하다 싶어 길을 물어보고는 제대로 야탑역을 찾아 뿌듯해하며 서현으로 향했다.
서현에서 우리 진행요원분들을 만나 이번에는 헤매지 않고 한 번에 온미디어 빌딩을 찾는
쾌거(...)를 거두며 모이기로 했던 오전 11시 정각에 스튜디오로 들어서는데 성공.
이윽고 포모스 진행요원, 중계진 분들이 속속 도착하였고 돌아가며 인사를 하고 대회 티셔츠를 입고
- 티셔츠를 피하고자 원피스를 입은 것은 아니었음을 밝혀 둔다.- 약간의 어색한 시간도 잠시,
선수 한 명 한 명이 도착하며 본격적인 대회 분위기가 나기 시작했다.
이후의 경기 진행은 아주 정신없게 흘러갔다.
심판을 보면서 선수들의 현란한 손놀림과 컨트롤에 감탄하기를 몇 번,
어느새 나는 4강의 두 번째인 테란vs저그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주종족이 저그여서 저그 16강 진출자 세 명 중 4강까지 살아 남아있던 저그 선수를 응원하고 싶었지만,
내 앞에서 경기를 펼치고 있던 테란 선수는 피지알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것이었다.
그 선수는 결선 당일 지하철을 잘못 타서 마음을 졸이게 하였던, 그리고 다름 아닌
참가 신청 마지막 날 나에게 '게시판 10레벨 글쓰기 권한이 없음'에 대한 쪽지를 보내온
바로 그 선수였던 것이다.
결과는 모두가 알 듯 역스윕. -사실 그때의 전율을 글로 쓰기엔 필력이 바닥이다.-
실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지켜본 다섯 경기였다.
만약 결승에서 패하여 이 선수가 준우승에 그친다 해도 이미 나에게 최고는 이 선수였다.
과거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결선 날 듣게 되었지만,
256강부터 결선까지를 지켜본 나에게는 과거는 과거일 뿐이었다.
결승 상대는 강했다. 나는 보았다.
1경기 도중 질럿이 마린을 모두 잡고 드라군까지 내려오는 상황에서 경기가 멈춰버린 후에
우세승이 아닌 기꺼이 재경기를 하겠다고 말한 그 선수의 미소를.
그래, 그건 재경기를 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우러나오는 승자의 미소였다.
그리고 그 선수는 결승에서 3:0의 승리를 거두며 그날의 주인공, 우승자가 되었다.
그렇게 9일 동안 쉼 없이 달려왔던 FPS 대회가 모두 끝이 났다. 뿌듯함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피지알에서 게임/자유/유머 이렇게 3대 게시판 -요즘은 질게도 순위권- 이 아닌 게시판은
무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사실 그런 무관심 속에서 어느 정도 규모 있는 대회를
진행하기란 생각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무사히 대회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로벨리우스님, 하루나기님, 옵드라님, 문라잇님, 나래의꿈님, 차라의숲님, 빈칸세개님,
kikira님, NABCDR님, 짐쓰님, 노리군님의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희생과
(포모스에 몇 분 더 있으신데 기억력이 여기까지...-_-)
대표님, 알테어님의 배려와 케노피님, 호미님, 메딕님의 응원이
그 어느 것 하나 모자람 없이 나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참가 선수들의 관심 또한 감사의 대상이겠지만. :)
어쨌거나 짧다고도 길다고도 할 수 있는 9일간의 대회는
나에게 아주 좋은 경험이 되었고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대회 진행에 애써주신 분들과 지켜봐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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