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배울 때의 일이었을 것이다.
참 자전거 배우기기가 몹시 힘들었다.
그 때, 난 아홉 살이었고, 겁이 많은 소년이었으니까.
분명 내 어머니가 뒤를 잡아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겁에 질려서 수십 번 넘어지기를 반복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하루 종일을 어머니와 함께 자전거를 타면서 넘어지고, 다시 타고를 반복했을까, 어느새 내 자전거 타는 실력은 상당한 수준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도 산이나 들을 오래 누비는 자전거 타기를 시도하기에는 조금 자신이 없지만, 적어도 자전거를 타고 균형을 잡는 일에는 이제는 별 어려움이 없다.
천천히 실력이 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늘어버린 자전거 타기.
바라보는 선수 중에서도 그런 선수들이 눈에 띈다.
한동욱이 그렇다.
사실 신한은행 05-06 시즌 전까지만해도, 그렇게까지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아마추어 예선부터 시작해 스타리그까지 오른 정말 기적적인 업적을 남긴 선수이지만, 질레트배 이후로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남기지 못한 선수이기도 하다. 그랬던 그가 오영종, 서지훈, 이병민을 잡으면서 4강에 오르게 된 것은 어느 순간 그가 자전거 타기에 익숙해졌다는 것을 말한다.
개인리그의 세계에서 4강과 8강의 차이는 크다. 일단 시드라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4강은 안정적으로 다음 시즌에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이 있고, 8강은 처절한 싸움을 겪는 현장으로 다시금 내몰리게 된다는 점이 그렇다. 4강에서 한 경기 이기는 선수들의 경우, 바로 결승이라는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장 가깝게 가지게 되지만, 8강은 그 기회와는 조금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다. 최후에 남았다는 사실과 아직 더 도전해야 한다는 사실 사이에서 벌어지는 그 미묘한 차이라고 할까.
한동욱으로 다시금 돌아가자. 그는 최연성과의 4강전에서 허망하게 1,2경기를 내주며 경험 부족을 드러내는가 싶었다. 하지만, 그가 Ride Of Valkyries에서 최연성의 잠깐의 방심을 물고 늘어지며 결국 경기를 역전하고, 결국 5경기까지 몰고 갔을 때, 사람들은 한 신예의 자전거 타기가 이제 성장했다는 것을 알았다. 경기에서는 이겼지만, 피로에 지친 최연성의 모습과, 그 모습을 만들어 낸 한동욱. 그가 2006시즌의 첫 우승자가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는 이제 진짜 자전거를 잘 탄다.
자전거는 그러나 한 순간에 넘어지는 존재이다. 이 무대의 자전거는 불행히도 브레이크가 없어서, 어느 한 순간 삐끗하면 넘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간 많은 선수들이 자전거를 타는데 성공했지만, 어느 한 순간 넘어지면서 자신의 세상을 아쉽게 미루곤 했다. 자전거 타기는 사실 그래서 어려운지도 모른다.
심소명을 볼까. 프링글스 MSL2에서 그가 결승에 오를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사실 드물었다. 그는 그 전까지만 해도 팀플에서 더 이름을 알린 선수였다. 혹은 팬택의 항명 파동의 한 당사자로 아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사실 그의 결승 진출 과정에서 운의 요소를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가 이긴 선수들을 정리하면, 박지호, 강민, 박대만, 박용욱, 변은종이다. 부연하지 않아도 테란은 없다. 아니, 리그 과정에서 그는 테란을 단 한 번 접했을 뿐이다. 그는 임요환과의 대전에서 패했다. (물론 맵이 롱기누스이기는 했다.) 그 점 때문에 그의 결승 진출이 운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것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그는 2006 SKY 프로리그 전기리그 MVP였고, 저그 플토전에서 져서 결승에 가지 못하는 것보다는 어찌 되었건 결과가 백배 나은 것만은 사실이다. 임요환과 자웅을 겨룬 장진남도 한빛배의 성적에서 플토와 저그전 승리의 비중이 높으며, 천하의 임요환도 라그나로크의 6승이 아니었다면, 과연 코크배 재패라는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자, 심소명은 자전거를 타는데 성공했다. 비록 절대 강자인 마에스트로, 마재윤에게 진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그는 자전거를 탔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하지 않았던가, 이 판은 잠시 눈을 감을 여유도 없는 판이라는 것을. 그 자신은 눈을 감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8강에서 그가 탈락한 것은 결국 자전거를 타는 과정에서 드러난 그의 약점이었다. 그가 곰TV MSL에서 패한 선수들은 모두 테란이다. 원종서, 이재호, 진영수로 이어지는 연패는 결국 이윤열과의 대전까지 이어졌고, 그는 차기 MSL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자전거 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기대치가 다르면, 자전거도 또 다르게 타는 법이다.
그의 이름을 들으면, 어떤 추억에 잠기는 사람들, 아쉬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공공의 적, 박경락. 그는 OSL에서 단 세 명만이 달성한 3연속 4강의 주인공이자, 동시에 그 세 번의 4강에서 결승에 단 한 번도 오르지 못한 선수이기도 하다. 조용호의 2:3 분패를 기록한 파나소닉배, 홍진호에게 어이없이 무너진 올림푸스배, 그리고 정말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박용욱에게 정말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쉽게 패한 마이큐브배. 이미 파나소닉배에서 그는 자전거를 타는데 성공했고, 3연속 4강은 그가 아직도 자전거를 타고 있음을 증명해주는 계기였다. 그러나 동시에 자전거가 넘어지는 계기이기도 했다. 결승이라는 고지는 4강이라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라는 점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우승은 모든 프로들의 꿈이고, 꿈의 문턱에서 세 번이나 연거푸 넘어진 것은 자전거 실력이 떨어지는 계기가 되었음에도 충분하다. 모든 물건이 그렇듯이 녹이 슬면 가치가 바래지고, 아쉬움이 커지면, 미련이 남아 발목이 잡히는 법이다. 박경락, 나도현..... 그리고 지금의 박정석, 서지훈을 보면서 드는 느낌은 자전거의 기억이 다르다는 점이랄까. 만약에 EVER 2004에서 박정석이 결승에 갔다면? 당골왕 MSL이나 EVER2005 중에 서지훈이 단 한 번이라도 결승에 갔다면?
박지호와 차재욱을 생각해보자. 임요환과의 경기에서 2:0으로 앞서다가 내리 세 게임을 내주면서 무너진 박지호의 4강전. 공교롭게도 그와 비슷한 경력을 지닌 오영종은 결승에 올라 우승을 했고, 박지호와 오영종의 자전거는 그만큼의 차이를 띄게 되었다. 그 다음 시즌에 만난 불운, 전상욱은 이겼지만, 플토의 절망인 박성준을 만나 겪는 그의 좌절. 차재욱도 그렇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보여준 그의 남다른 경기력은 홍진호와의 PO에서 먼저 두 경기를 이기는 쪽으로 이어졌고, 결승으로 가는 길까지 열어 두었다. 단지, 그도 역전을 당했을 뿐이고, 공교롭게도 그는 듀얼에서 안기효에게 패하며, 자신의 스타리그 데뷔도 한참 뒤로 밀리게 된다.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그렇게 조금의 허점도 용납하지 않는 냉혹하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어느 고비라는 것이 분명 존재한다.
이 고비를 넘어서면, 그 선수는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자전거를 탈 때, 자전거 실력이 는다는 것을 느낄 수 없었다.
오직 지난 후에야 실력이 늘어있음을 깨닫게 된다.
고비를 앞둔 선수들은 많다. 다만, 그 것이 자신의 게이머 인생의 고비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 따름이다. 아마 지난 후에는 팬도, 선수도 깨닫을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벽을 넘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였다고. 한동욱은 그 벽을 넘어서 지금도 자전거를 참 잘 타고 달리고 있다. 심소명은 자전거를 탔지만, 잠시 삐끗한 것이 자전거를 멈추게 한 결과를 낳았다. 약점과 장점 사이에서 자전거는 위태롭게 움직인다. 여기는 브레이크도 없고, 넘어지면 울리히의 자비심을 기대할 수 있는 그런 세계가 아니다. 무수한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고, 서로 누가 잘 타고 달리는가를 겨루는 그런 세상이다.
어제 김택용은 처음으로 자전거를 멋있게 탔다. 이미 이재호를 누른 순간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지만, 강민을 상대로 강민 이상의 전략을 보여주면서, 그는 자신의 자전거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 자신은 비록 느끼지 못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의 자전거는 빠르게 달리는데 성공했다. 누군가의 말처럼, 서지훈을 처음 볼 때의 느낌, 혹은 그 이상의 다른 느낌으로.
오늘 2월 9일, 자전거를 앞에 둔 사람들이 많다. 이성은, 박명수, 변형태, 박성준. 그들은 과연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 벽을 넘으면, 또 다른 세상이 보인다. 달리는데 여유가 생기고, 자신감이 붙는다. 그리고 세상의 시선이 달라진다. 운? 그런 것은 원래 세상에 없다. 세상 자체가 운 덩어리이니까. 자전거를 타는 이들의 행운을 빈다. 어느 순간 자신의 자전거를 바라보면서 놀라게 될 그런 순간이 다가왔으니까.
자전거 타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