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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7/02/09 00:49:09 |
Name |
에인셀 |
Subject |
미안합니다, 날라. |
아직도 정신나간 상태입니다.
당신의 패배를 보았기 때문이죠...
나는 오늘 경기를 뒤늦게 볼 수 있었습니다.
엠비씨 게임 화면에 올라와 있는, 단 세 개의 VOD를 확인하고는
그 순간 나는 미소를 지었던 것 같습니다.
당신의 완승이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악마 외에는 다전제 플플전에서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고,
그 악마마저도 극복하며 최고의 플플전을 구사하는 당신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상대는 아직 신예로 분류되고, 동족전이 약하다고 평가받는
당신에게 한번 무릎꿇은 바 있었던 선수...
그 선수의 출중한 기량과 기세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오만할 만큼 당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첫 경기를 본 후 생각했습니다.
아.. 아직 VOD가 다 올라오지 않았나 보구나.
새로고침을 해 봤지만, 여전히 VOD는 세 개였습니다.
설마... 바로 그 설마였습니다.
당신의 완패였습니다.
미안합니다. 날라-
당신에게도, 상대인 김택용 선수에게도.
나는 너무도 당연히 당신의 승리를 믿었어요.
이 경기는 당신이 최고의 무대로 가기 전
무심히 밟고 올라갈 평범한 계단에 지나지 않다고 여겼죠.
어떻게 이기느냐가 중요한 상대였을 뿐
이미 내 눈앞에는
피튀긴 갑옷을 두르고 올라올, 이 시대 최강의 게이머와의 성전이 아른거리고 있었죠.
인정합니다. 내가 아무것도 몰랐어요.
오늘 당신의 상대는 최고의 선수였습니다. 빛나는 미래를 향해 무섭게 뻗어 나가는.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멍한 상태로 문득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당신도 나와 같았을지 모르겠다고.
자신의 숙적이자, 프로토스의 재앙으로 불리는 마에스트로의 존재가 너무도 커서
정작, 바로 앞에서 날을 가다듬고 있는
젊은 용사의 번뜩이는 검광을 미처 확인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는지...
이런 생각은 내 속단일 뿐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당신은 오늘 패배의 이유를 알겠죠. 아니, 알아야만 합니다.
결과를 확인하고, 나는 남은 두 개의 VOD를 모두 시청했습니다.
몇 번이고 망설였지만, 이를 악물고 당신의 무너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봤습니다.
손이 떨리고 심장이 아플 만큼 고통스러웠지만
나는 '오늘의 패배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절대로.
그리고 나는, 이 고통의 댓가를 반드시 당신에게서 돌려받을 생각입니다.
언제나 그렇게 말했었죠? 최고의 라이벌은 '나'라고...
당신은 오늘 스스로에게 또 한 번 무릎 꿇었습니다.
이제 극복할 차례입니다. 그리고 다시 보여 주리라 믿습니다. 당신의 꿈을.
여기까지인가.. 하는 순간에도 언제나 다시 일어섰던 당신이니까요.
당신이 보여주는 꿈이야말로 내게는 가장 짜릿하고 행복한 꿈입니다.
내가 믿고 있고, 당신이 포기하지 않는 한
언제까지나 당신은 최강의 프로토스이고, 최고의 게이머입니다.
패배를 되씹어 한층 더 강해지기 바랍니다. 항상 당신을 믿습니다.
뱀다리- 미안하다는 말, 내 방심 때문에 당신이 졌다는 어처구니 없는 말이 아닙니다.
눈 앞의 상대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설레발 치며 샴페인을 터트려 버린 나 스스로에 대한 분노와 자책에 다름 아닙니다.
'내가 보고 있으면 늘 지는데, 참지 못하고 봐서 미안해요' 정도의 팬심으로 봐주세요.
뱀다리 2- 결승에 올라간 김택용 선수, 축하합니다. 우승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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