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찍는 취미를 가지게 된건 약 5년 전 일이다. 용돈 없이 홀로 유학중인 학생 신분이였기에, 생활비도 별로 여유가 없는 형편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더이상 쓰지 않을꺼라며 중고 DSLR 한대를 나에게 팔기로 제의했다. 가격이 상당히 매력적이였고, 그 충동을 이기지 못해 있는살림 없는살림 긁어 모아서 겨우겨우 그 카메라를 장만하게 되었다. 결국 그 카메라를 애지중지 하게 되면서 난 사진을 취미로 시작하게 되었고, 급히 결정한 충동구매가 취미를 시작했던 계기 치고는 아직까지도 꽤 진득하게 이 취미를 붙들고 있는게 신기할 정도다.
사진을 찍으며 나만의 유별난 원칙이 있다면, 난 사진을 잘 지우지 않는다. RAW로 찍은 원본만 거의 1TB에 육박할만큼 그동안 많은 사진을 찍었다. 다만 아직도 별일 없으면 사진을 지우지는 않는다. 차라리 외장하드를 하나 더 사면 샀지, 사진을 지우는 것은 뭔가 내 기분을 이상하게 만든다. 잘 찍은것만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 없던건 아니지만, 뒤늦게 멋진 사진이였다는 것을 깨달아서 정성들여 보정하고 유의미하게 써먹는 경우도 꽤 된다. 아무튼, 사진은 묵혀두면 더 멋지게 변한다는 우스갯소리가 괜히 나온 말은 아닌것 같다.
사진은 추억이다. 내 삶의 솔직담백한 기록이며, 나의 발자취가 찍힌 곳들과, 소중한 사람들의 추억들을 담고 있다. 그것들이 설령 조금은 내 마음에 들지 않을지라도, 그 안의 담긴 것들은 나에게 한장의 사진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풍경 사진을 볼때 난 그곳에서 함께한 사람들이 먼저 떠오른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곳의 풍경이 정말 멋지게 나온 사진이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인물사진과도 같다. 나만이 볼수 있는 사진 너머의 추억들이 그곳에서 함께한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만든다. 나에게 풍경사진이란 그런 의미인 것이다.
최근,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페북과 폰에서 여러장의 사진을 지우게 되었다. 사진 지우는걸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였다. 왜냐면 그 사진들 속의 인물도 분명 내 삶에서 소중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사진들 속에서 함께했던 나도 분명 즐겁게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 사람은 생각이 나와 너무나도 달라 결국은 갈라서게 되었다.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그 사람은 나만이 아닌 내 주변에 다른 소중한 이들에게도 너무 큰 상처를 남긴 채 떠나버렸다.
아픈 기억들 또한 소중한 기억의 일부라고 했던가. 그래서 난 늘 사진들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 또한 나의 책임을 미루고 있을 뿐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내려놓아야 하는 추억들도 있는 것이며, 더이상 돌아보지 않는 것이 앞으로 만들어갈 추억에 대한 예의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물론 사진을 지운다고 그 추억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나 말고도 상처받은 누군가가 그 사진을 보고 다시 비참한 감정을 떠올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가 아니였을까.
그렇게, 사람의 얼굴이 가득했던 아픈 기억의 사진첩들에는 대체로 풍경사진들만이 남게 되었다. 선택적으로 사람만 지울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럴 방법이 없었다. 너무 아쉽지만 그곳에서 함께했던 다른 기억이 담긴 사진들조차도 지우게 되었고, 그렇게 남은 것들은 풍경사진 몇장과 다른 친구들의 독샷 몇장이였다. 그렇게 남은 풍경사진들 너머로, 기뻐했던 시간들과 아쉬움의 감정이 함께 떠오른다. 그리고 그 안에 함께했던 이들의 얼굴 또한 어쩔수 없지만 함께 떠오른다. 좋았던 시간, 좋았던 사람들, 하지만 조금은 씁쓸했던 결말. 아쉽긴 하지만 분명 시간은 나의 이 씁쓸함을 조금씩 희석시켜 줄 것이며, 먼 훗날 그 사진속의 풍경은 더욱 아름다워 보일 것이다.
바라건데, 함께했던 다른 이들도 그 풍경의 아름다움 만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아픈 기억들 따위는 훌훌 날려버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