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판의 팬덤, 같은 것을 보았으나 서로 다른 길을 택한 하태기와 조정웅
스타판은 팬덤과 함께 성장했습니다. 정정. 팬덤이 스타판을 낳았습니다. 블리자드에서 개발한 스타크래프트 : 브루드워가 세계와 한국을 휩쓸었고 이를 열광적으로 즐기는 무리들이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게임을 하다 게임이 너무 재밌으니 대회도 열고 잘하는 사람을 개중에서 가리기 시작했죠. 워낙 인기가 인기다보니 대회의 규모가 꽤 커졌습니다. 블리자드도 자사의 콘텐츠를 이렇게까지 소비하는 것이 썩 달가웠던지 자기들이 직접 대회도 만들고 세계최고수를 정하는 방식으로 스타크래프트라는 놀이문화를 더욱 부풀렸습니다. 이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더욱 뻗쳐나가 일부 방송사들을 스타크래프트 대회를 유치하고 스폰서를 구했지요. 대회 참석자는 어제와 오늘 나/너/팬과(와) 배틀넷에서 게임을 하던 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도 또 한사람의 팬이었죠. 그리고 이것들은 이 바닥의 팬이라는 이들에게 소비되기 위해 나타났습니다. 팬에 의한, 팬을 위한, 팬의 서비스. 팬덤이 이 모든 것을 낳았습니다.
지금은 전 세계인들의 스포츠가 된 프로축구지만 그 시작은 그렇게 거창하지 않았습니다. 19세기의 언젠가 일을 마친 노동자들이 서로간의 친목도모를 위해 팀을 만들고 같은 동네 다른 공장의 노동자들과 한두번 경기를 가진 게 전부였죠. 근데 이게 좀 재밌었나봅니다. 특정 동네에서만 나타나던 이런 움직임은 특정 지역으로, 곧 나라 전체로 옮아가기 시작합니다. 동네 노동자 팀들간 심판을 보던 사람이 저 남부와 북부의 먼 곳에서 올라온 이들의 경기를 중재하고, 동네 경기 진행을 위해 골을 싸매던 이들이 모여만든 자그마한 위원회가 수많은 팀들의 경기를 배치하는 협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나와 함께 공장 뒷편에서 볼을 차던 이가 필드를 누비게 됩니다. 아마도 선택이었겠지요. 그저 엉겁결에 그리 되었을수도 있습니다. 취미로 몇주에 한번 축구를 하던 사람이 주마다, 며칠동안 볼을 차게 됩니다. '나'도 '그'도 그건 몰랐을 겁니다.
그리고 어느새 축구는 더 이상 팬의 손이 닿지 않는 아스라히 먼 어떤 곳에 있지요. 백 몇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그 결을 살피기도 힘들 정도로. 그러나 우리의 스타판은 그렇지 않아요. 다릅니다. 엄재경 해설위원님과 김동수 선수가 언제나 우리 커뮤니티를 주목하고 있어요. 우리가 어제 뱉은 농담과 선수의 애칭이 그들의 입에서 튀어나와요. 본좌론은 팬이 만든 거에요. 팬이 만들어낸 작품이에요. 좀 기분 나쁠 사람도 있겠지만 콩댄스도 우리가 만들었어요. 높이와 속도를 우리 중 한 사람이 쌓았어요. 그리고 그 사람이 김택용의 싸, 싹히... 이건 좀 아닌가. 아무튼, 달라요. 다릅니다. 축구와 그들의 팬 사이엔 백년의 세월이 가로놓여있지만 우린 그렇지 않아요. 우린 마치 어제처럼 98년도와 99년도의 어느 날을 기억할 수 있어요. 그건 우리가 만든거에요. 축구팬들은 그 사실을 잊었지만 우린 잊지 않고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요. 바로 어제 신주영과, 이기석과, 김창선과, 최진우와, 국기봉과, 봉준구와 게임을 하던 내가 여기 있어요. 이제 그들과 같이 경기할 수 없고 남들 몰래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예선에 도전하지도 않지만 그 모든 것들을 내가 만들었다는 걸 알아요. 그리고 어쨌든 그들은 내가 하는 뱉은 말과 내가 하는 행동과 내가 만든 2차적 자료들을 낼름 받아써먹고 있잖아요? 그들에겐 내가 필요해요.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바닥에서 팀단위 팬에 대해 처음으로 적극적인 고찰을 시작한 건 하태기 감독이었습니다. 이전까지 팀팬이란 기존 선수의 팬이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 선수의 이미지에 크게 의존하는 부분이 많았지요. 하태기 감독은 지금까지 이어져온 이러한 구도를 재해석하여, 선수가 갖고 있는 기존의 '이미지'와 강력하고 특색있는 선수들로 뒷받침되어 나타나는 팀의 '이미지'와 이 사이에서 이어지는 싸이클을 통해 히어로라는 팀을 만들었습니다. 박성준이라는 프랜차이즈 스타를 이용해 이 '이미지'의 기반을 닦고 이 위에 하위팀이면서 박지호와 같은 개성있고 강력한 선수를 영입하여 색칠을 해나갔지요. 그리고 박지호의 영입은 이후 김택용과 같은 걸출한 프로토스 유망주를 낳게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죠. 이 수혜는 다시 김택용이라는 선수를 이해하는 프레임을 주었고 김택용이라는 선수의 '이미지'가 되었습니다. 선수팬이 팀팬으로 흡수되는 구도를 이용해 토양을 닦고 이를 통해 다시 새로운 선수의 팬을 만들어냅니다. 이 모두가 '팀'이라는 단위 내에서 굴러갑니다. 히어로를 보면서 팬들은 히어로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태기 감독이 원하는 방향으로 팬들은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1.
덕분에 우리는 06 프로리그 그랜드파이널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습니다. 정정. 그들이 짜놓은 각본을 별 생각없이 재밌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지금에 와 그것이 우리를 향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하태기 감독이 히어로를 만드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선수라면 누가 뭐래도 박성준이었습니다. 정정. 하태기 감독이 히어로라는 '이미지'를 만드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요소는 박성준 선수입니다. 박지호와 염보성. 이 둘은 질레트에서 터트린 박성준이라는 '이미지'에 하태기 감독이 덧칠했던 거죠. 그러나 박성준은 하태기 감독이 태생적으로 갖고 있어야했던 '이미지'였습니다. 임요환 팬들이 자연스럽게 T1팬이 된 것처럼, 그들이 최초의 T1의 지지기반이 되었던 것처럼, 박성준은 히어로라는 팀이 안고 갈수밖에 없는 기반이었습니다. 박성준 덕분에 히어로라는 팀이 성립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즈에는 오영종이 있었습니다. So1, 가을의 전설, 황제의 대적자, 사신, 질럿공장장. 이것이 오즈를 만들어내었습니다. So1 결승은 임요환과 오영종만의 대결이 아니었습니다. 임요환은 황제였고, 스타판이 만들어낸 최고의 스타였고, 스타판을 만들어낸 스타였고, 억대연봉의 포문을 열었던 선수였고, 최강 종족 테란이었고, 최고최강의 팀 T1의 주장이었습니다. 오영종은, 가을의 전설을 이을 계승자였고, 박지호의 클론이었고, 죽음의 조를 돌파한 사신이었고, 하위권 팀의 하나뿐인 희망이었습니다. 대결에선 오영종이 이겼습니다. So1이 최고의 대회이기에, 그리고 오영종이 우승자이기에 그에게 쌓여졌던 기대와 '이미지'는 고스란히 오즈라는 팀을 설명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오영종이라는 프랜차이즈 스타를 중심으로 조정웅 감독은 철저하게 팀 내에서 길러진 선수들로 프로리그 무대를 헤쳐나갔습니다. 이건 좀 먹혔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이미지'는 좀 먹혔다구요. 최고스타와 함께하지 않아도, 억대연봉을 쥐여주지 않아도, 정점에 도달할 수 있으라는 그 순박한 믿음이 형상화된 이미지가 오즈에겐 있었습니다. 그것이 정점에 도달하여 손에 쥘만한 무언가로 떨어졌을때 그 환희는, 결코 다른 팀 팬이 느꼈을 그러한 것과 다르지 않았겠지요. 그리고
오영종이 공군으로 갔습니다.
지금까지 화승이 쌓아놓은 이미지가 그 반대항이 되어 화승 앞에 가로 놓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화승의 이미지가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팬들은 화승을 오영종을 버린 팀, 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관찰하기 시작합니다*2. 그 전까진 오영종의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이미지'와 함께할 수 있었던 비주전(or 승리를 보장할 수 없는) 선수들이 '잉여'란 이름하에 까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화승이란 팀의 이미지에 들러붙습니다. 규율이 엄하고 연습시간을 철저히한다는, 참으로 바람직할만한 이야기가 전기의자와 지하고문실로 둔갑됩니다. 그리고 박지수 선수가 KTF로 이적합니다. 대폭발. "박지수 이적통보 문자로 받았다며?", "KTF 가서 적응 못하는 거 아냐? 너무 널널해서", "어쩜 그렇게 단물만 쏙 빼먹고 부진하니까 버리냐." 등등등. 맥락과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맥락과 사정 중 일부만 취합하여 신나게 오고 갑니다*3. 그리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 이 중 일부는 '사실'로 굳어집니다. 마치 관성처럼 그게 사실일거라고 천연덕스럽게 믿어버립니다. 전기의자는 없어도 규율은 엄하겠지, 돈까스는 안 구워도 제대로 대우를 받는 건 아니겠지, 문자까진 아니어도 납득할만한 설명 또한 없었겠지, 숙소 분위기는 굉장히 싸하고 인간적인 부분이 없겠지, 인간적인 메리트가 없는 팀이겠지, 수많은 겠지, 겠지, 겠지, 겠지, 겠지. 이것들이 화승이라는 팀으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합니다. 그리고 팬들은 이걸 생각없이 소비하죠.
06 프로리그 그랜드파이널에서 히어로가 써내려간 드라마를 천연덕스럽게 믿는 것처럼. 엄재경 해설위원께서 하신, "히어로는 기세고 히어로의 기세는 박지호야!!"란 말을 천연덕스럽게 믿는 것처럼. 박지호가 승리가 뒤이은 히어로 선수들에게 힘이 되었고 그 기세로 히어로가 그랜드파이널 우승을 차지했다 믿는 것처럼 우리는,
08/09 프로리그 플레이오프의 화승을 즐길 수가 없습니다. 08/09 프로리그 플레이오프 화승 VS CJ의 3경기를 즐길 수 없습니다. 이제동을 빼면 아무것도 못할거라는 지배적인 예상을 역전한 구성훈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뒤이은 김태균과 손찬웅의 분전에 '기세'라는 이름을 붙여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그들이 써내려가는 드라마를 이해할 수 없어서요. 복선이 없었거든요. 그럴거라는 기대를 갖게하지 못했거든요. 그래 달라 청을 받은 적이 없거든요. 각본을 쥐여주지 않았거든요.
참 바보같죠. 우리는 어쩌면 하태기의 방법론에 지나치게 길들여져온 걸지도 모릅니다. 화승을 오영종을 버린 팀이라고 말해도 상관없어요. 화승엔 전기의자 고문실이 있다 매도해도 상관없어요. 단물만 빨아먹고 버리는 팀이라고 말해도, '잉여'들을 돈까스만 굽는다고 말해도 상관없어요. 우리가 드라마를 쫓아가건 말건 상관없어요. 네, 이건 상관없는 것들이에요. 화승과 조정웅 감독은 이런 거 별로 신경쓰지 않아요. 우리가 저러건 말건 자신들에 대해 뭐라 떠들건 그것에 상처받지 않고 그것이 대단하다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우리에게 설명해주지도 않지요. 억울하다 하소연하거나 눈물짓지도 않아요. 우리의 동정과 연민이 필요하다 말하지도 않아요. 자신을 이해해달라, 어쩔 수 없었단 말따위 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냥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만 행하죠. 엔트리를 짜고, 못한 선수를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타박하고, 우리가 그 타박을 갖고 "XXX, 정신차려!" 시리즈를 만들어 킬킬대던말던 상관하지 않아요. 상관하지 않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알 수 없는 걸요.
아이의 성장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세계와 자신을 분리하는 과정입니다. 아이는 쉽게 세상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이 둘을 구분하는 걸 어려워하죠. 그리고 커가면서 깨닫습니다. 아, 이 세상이란 건 나의 영향을 벗어난 것이구나. 내 밖에 있는 어떤 거구나. 내가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것이구나. 내게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구나. 내게 자신을 일일히 설명하지 않는구나. 보통 이 사이에서 겪는 고통을 '성장통'이라 부르죠. 그리고 이건 사람/개인에게만 해당할만한 것이 아닙니다.
이 판에서 팬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나타난 폐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선수들은 시간남아 들어온 커뮤니티에서 충격을 받아 며칠이고 골을 싸매는 일이 허다합니다. 이를 보다 못한 다른 이들이 커뮤니티에 자제하라 말하고 그럼 그들은 변명합니다. "네이버 해외축구기사 봐, 이것보다 심해." 유명한 축구판이나 클럽선수들은 인터넷판에서 욕먹고 까이고 매도당하는 게 일상이죠. 그러나 그들은 그 정도로 팬덤과 밀착해있는 이들이 아닙니다. 이 판은, '프로'라는 이름으로 거듭나면서 '프로'라면 버려야할 많은 것들을 싸안고 함께 갔습니다. 그럼에도 안고 갔습니다. 그렇기에 판은 확장되고 그렇지만 '그들'과 '팬'의 거리는 모호해집니다. "여기서 욕질해도 누가 봐" 근데 봅니다. 그리고 아파합니다. 아마추어판이라면 달랐을 겁니다. 그곳에는 '그들'과 '팬'이 없으니까요. '그들'이 곧 '팬'이고 때문에 개개인들은 언제나 그 스스로와 타인을 생각하며 행동해야합니다. 그런데 판은 넓어졌고 '프로'란 이름은 달았는데 팬의 영향력은 여전합니다. 팬은 아직까지도 손 내밀면 닿을 곳에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많은 선수들이 '성장통'을 앓았습니다. 그렇다면 팬은, 팬은 어떨까요.
하태기 감독은 이 '성장기'를 절묘하게 관찰한 사람입니다. 아직 이 판에 팬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팬으로서 형상화되는 소비자 집단은 분명하며 그들에게 보다 효과적으로 다가가려면 '이미지'를 생산하려고 노력해야한다는 것을 명쾌하게 이해하신 분이죠. '프로'란 이름을 달았지만 아직 아마추어적일수밖에 없는 이 바닥. 하태기 감독은 이 바닥에서 '팬'이 생각하고 있던 '룰'에 자신을 맞춰나갔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조정웅 감독에 의해 전복되었습니다. 조정웅 감독 역시 이 판을, 이러한 딜레마를 알고 계셨습니다. 아니, 모르겠습니다. 그분이 알고 있었는지 아닌진 모릅니다. 하지만 조정웅 감독의 행동은 일종의 '상징'입니다. 이 바닥이 '프로'로 올라갔다는 상징, 그리고 '프로'는 '팬'을 위해 돌아갈지언정 '팬' 덕분에 돌아가지 않는다는 그 불편한 진실을 직시했다는 상징이지요. 때문에 조정웅 감독님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오영종 사태에 대해서, 박지수 사태에 대해서, 근거없는 무수한 소문들에 대하여. 전기의자가 뭐냐는 부인의 질문에 "전기 방석 깔린 의자?"라고 답변합니다.
어쩌면 화승은 우리네 생각과 달리 굉장히 인간적이고 따듯한 팀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화승은 우리네 생각과 달리 규율이 엄하지만 그 안에 끈끈한 정이 살아있는 팀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조정웅 감독은 우리네 생각과 달리 오영종과 박지수 개인에게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여 이적을 권유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네 생각과 달리.
그리고 우리는 묻습니다. 왜 우리에겐 아무런 설명도 없었나요. 걱정했잖아요.
조정웅 감독님은, 아마 이렇게 대답하실 겁니다.
니네하고 상관없는 일이잖아. 니네는 오영종이 아니고 박지수도 아니잖아. 이런 개인적인 일은 알 필요도 없고 알아서도 안 되는 거잖아.
축구 감독은 '이미지'에 대해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가만히 내비두면 팬들이 알아서 만들거나 다른 여러가지 조건들 속에서 나름의 의미를 낳습니다. 축구 감독은 그저 팀을 잘 유지하면 되는 겁니다. 굳이 변명 따윈 안해도 됩니다. 자신과 불화가 있어 선수가 나갔다면 "나와 철학이 달랐다." 말한마디 던지면 됩니다. 그게 축구판입니다. 그게 '프로'고 백년의 세월이 가로놓인 '팬'과 '그들' 사이의 거리입니다. '팬'을 위해 각본을 짤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들을 어떻게 소비할까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건 다른 이들이 알아서 해줄테니까요. '프로'는 그런게 아니니까요. 전술만 잘 짜고 승리만 거두면 되니까요.
울면서 보채는 아이를 위해 사람들은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고 모든 게 잘될거라 속삭여주지만
우는 어른을 보고선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조정웅 감독님은 이것을 알고 있던 겁니다. 많은 이들이 '스포츠'라는 말에 반대하며 '오락질'이라고, '놀이판'이라고 폄하하면서까지 지키고 싶어했던 그 간절한 믿음이 거짓이라고 말한 겁니다. 하태기 감독의 연극은 사실이 아니라고 언제까지 그런 것에나 취해있을거냐 타박합니다. 아니, 타박하지도 않아요. 네, 혼내지도 않습니다. 차라리,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도, 잔소리라도 해주면 좋을텐데.
곧 스타크래프트 2가 발매되고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이 판에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갖고 올 것입니다. 벌써부터 그와 관련된 움직임이 보이죠. 전 이에 대해선 어떤 말도 할 수 없습니다. 모르니까요. 블리자드가 어떻고 협회가 어떻고 그런가봅니다. 네, 그런거겠죠. 어떻게든 알아서 돌아가겠지요. 잘 돌아갈 겁니다. 잘 돌아갈 겁니다, 아마. 그리고 '프로' 감독들이 등장하고 '프로' 선수들이 게임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프로'라는 걸 확실히 알고 있는 '팬'들이 있을 겁니다. 지금의 축구판처럼 말입니다.
이건 분노해야할 일이 아닙니다. 슬퍼해야할 일도 아니지요. 기뻐해야할 것도 아니고 그냥 당연한 겁니다. 아이가 어른이 되는 것처럼, 그렇게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첫수음의 충격에 울어버리는 아이처럼, 첫사랑을 못잊어 잠을 설치는 소년처럼, 성적표를 받고 꿈과의 거리를 재며 질려버리던 그때처럼, 생리통에 아랫배를 부여잡는 소녀처럼, '아이돌' 되고 싶다 학우에게 말할때 그 망연한 비웃음을 느끼던 때처럼, 장래희망란에 '대통령'을 적어넣을때 웃어넘기지 않는 담임을 마주할때처럼, 키가 자라나며 삐걱거리는 살과 뼈에 신음할때처럼, 울고 있어도 달려와주는 어른이 없을때처럼, 울음을 터트려도 어찌할바 모르며 시선을 외면하는 사람들을 볼때처럼, 그냥, 조금, 조금, 아프군요.
주 1 : 하태기 감독의 불행이라면 히어로의 스폰서가 MBCGAME이라는데 있습니다. 그전까지 히어로의 '이미지'를 닦을 수 있게 도움을 주었고 앞장서서 나팔수 역할을 자청했던 MBCGAME이라는 든든한 지원자는 그 절정이었던 2006 프로리그 그랜드파이널 우승 이후 히어로의 발목을 채었습니다(
http://sininus.egloos.com/4901191).
주 2 : 이와 유사한 박성준 사태에서 히어로가 화승과 같은 이미지에 파묻히지 않았던 까닭은, 첫째로 그들이 더 이상 팀팬이 아닌 이들에게 회자될만한 프로리그(or 개인리그) 성적을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고(김택용의 이적이 큰 이유로 작용했겠지요.), 둘째로 히어로가 그동안, 그 이후 적극적으로 관리/조작해온 이미지 덕분입니다. 물론 모든 것을 덮을수는 없었는데, 그에 대한 리액션으로 스덕들은 한때 히어로의 상징이었던 김택용 선수를 난쏘공 패러디에 넣어 즐기곤 했었습니다. 재미있게도 이러한 '이미지'는 김택용 선수에게 덧 입혀져 눈물의 송별회와 함께 떨어져 나갔지요.
주 3 : 화승과 같은 케이스의 다른 예를 원하신다면 스파키즈를 들겠습니다. 한동욱 사태 이후, 스파키즈라는 팀이 떠안게된 '이미지'는 작년까지 이어졌죠. 그 과정은 화승과 상당히 유사한데, 김창희 선수의 버그 루머와 자극적인 세레머니 등과 어우러져 아주 신나게 까였습니다. 이를 극복하는데 큰 공을 세운 신상문 선수에게 박수를.
사족)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자체는 그렇게 대단한 작품이 아닙니다. 그저 군주가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이런 게 좋다고 일러주는 방법론일뿐이죠. 아니, 이게 폄하도 아니고 그냥 당연한 겁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실천적인 영역에서의 정치/처세서가 아니라 그를 통해 오늘날에도 영향을 받을만한 사적인 의미에서, 말하는 거지요. 다만 수많은 사람들은 '군주론'이라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라는 자극적인 테제에 속았지요. 그 때문에 마키아벨리는 지난세기동안, 그리고 지금도 역시 근거없는 찬양과 근거없는 악평 속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네, 그 수많은 사람들 때문에 말입니다. 지금에 와서는 부끄러워 찬양할수밖에 없는 그 딜레마, 말이지요. 마치, 지금 조정웅 감독에 대해 떠들어대는 저처럼 말입니다.
이제동 선수의 팬분들이 말씀하신 '본좌'가 아닌 '군주'로서의 이제동을 전 썩 괜찮은 네이밍 센스라고 봅니다. 물론 그분들이 이러한 맥락 때문에 그리 말하신 건 아닐테지만요.
사족 2)
김용택과 관련된 부분은 별로 중요하지 않기에 삭제했습니다.
사족 3)
위 글의 상당부분은 낙화유수님의 글(
http://www.fomos.kr/gnuboard4/bbs/board.php?bo_table=free&wr_id=1084270&sca=&sfl=wr_name%2C1&stx=%B3%AB%C8%AD%C0%AF%BC%F6&sop=and&page=2)을 참조했습니다. 고마워요.
사족 4)
이악물기님, 허락 안 받고 링크했다고 때리지 마세요.
사족 5)
지금까지 제 징징거림/치기어린 행동/비겁하며 비열한 짓거리/의미없고 의미있는 그러나 충분히 당신들을 아프게 하였을 말들말들에 사과합니다. 죄송합니다. 전 더 이상 아이가 아니고 이 글을 본다고 "오오, 이런 글이라면 용서할 수 있지" 이딴 해피엔딩이 안 나오리라는 걸 압니다. 왜냐면 첫번째로 이 글은 그럴만한 글도 아니고, 둘째로 제가 한 행동들은 이 글과 별개의 것이니까요. 별수없죠. 제가 저지른 것이니 제가 짊어지고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차치하고, 사과는 사과니까, 제발 아니꼽더라도 이것만큼은 받아주세요. 아, 절대 비꼬는 게 아닙니다. 진짜, 미안해요, 죄송해요. 때문에 제가 쓴 글은 지우지 않겠습니다. 지우신다면 별 수 없는데, 이게 아니면 그냥 정말 입 싹닫고 즐먹어라, 하는 식이잖아요. 그런 건 싫고 그런 게 싫으니 사과하는 거에요. 그것 때문에 굳이 PGR에 올리는 거고. 이거 하나 올렸다고 그냥 활동할 생각은 없고 당분간 눈팅만 할 건데요, 그래도, 그냥 가는 건 그러니까. 여러 PGR 여러분들의 타박과 조언으로 보다 좋은 글(좋은 글은 아니지만 솔직히 전보단 낫잖아요.)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어제부터 이어진 제 모든 행동과 말에 사과드립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