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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8/07/01 17:45:17 |
Name |
장경진 |
Subject |
'몽상가의 꿈'과 '비수 같은 현실' |
프로토스도 저그를 '잘 잡을 수 있다'는 꿈을 심어준 프로게이머는 단연코 강민이다.
강민은 뛰어난 피지컬을 가진 선수는 아니지만
그의 주변사람과 팬들이 종종 이야기하듯 빌드를 개발하고 연구하는 능력만큼은 발군인 게이머였다.
커세어다크와 커세어리버를 누가 먼저 만들었고 실전에서 사용했는지 의견은 분분할지 몰라도
그런 빌드를 실전에 사용해 저그를 가장 화려하게 무너뜨렸던 선수가 강민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강민이 최절정의 포스를 뿜었던 것은 스타우트-마이큐브배 시절로
스타우트 때는 주로 테란전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마이큐브 때는 무려 조용호-홍진호 조합을 물리친 적도 있었지만
박정석-박용욱으로 이어지는 부산콤비와의 플플전 다전제 명경기 덕분에 그의 저그전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강민이 보여준 화려한 저그전의 본격적인 시작은 변은종과의 한게임배 4강이라고 할 수 있다.
자원만 먹을 수 있으면 웹-캐리어의 화려한 향연이 가능하다는 것도,
중원을 가르며 내려오는 닥템떼에 속절없이 썰리던 울트라를 보여준 것도 강민이었다.
이 때부터의 강민은 전성기보다는 다소 포스가 떨어졌을지 몰라도
저그전을 새롭게 마스터하면서 팀리그와 프로리그에서 새로운 중흥기를 맞았다.
물론 저그전 스페셜리스트 단계에 이르기까지 땡히드라에 맥없이 털리고 아리조나 XX관광을 맛보는 수모도 겪었지만
더블넥과 수비형 프로토스로 요약되는 그의 저그전은 무력한 패배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해나갔다.
그 정점에, SKY2005 1Round SKT vs KTF 5경기 박태민과의 Forte 경기가 있었다.
한쪽은 디파일러-울트라-디바우러, 다른 쪽은 커세어-리버-캐리어의 럭셔리 조합에
마법이 난무하고 서로의 멀티를 빼앗고 또 재건하며 온 자원을 다파먹은 1시간짜리 대혈전이었다.
지금이야 마법전이 일상화되었고 다크스웜 잘못 뿌리면 까이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당시엔 PGR에 올라온 찬사의 글에 중계글도 아니건만 댓글이 400여개가 달릴 정도로 극찬을 받았던 경기다.
물론 그 댓글 중에는 이렇게 해야만 프로토스가 박태민을, 저그를 이길 수 있는 거냐는 자조어린 평가도 많았다.
프로토스가 저그를 '때려잡을 수 있다'는 꿈을 현실로 만든 프로게이머는 단연코 김택용이다.
마재윤이 3해처리로 공방저그들에게 테란을 잡아잡수는 비법을 알려줬다면
김택용은 비수더블넥으로 공방플토들에게 저그를 씹어먹을 수 있는 비책을 주었다.
김택용 등장 직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프로토스들은
저그가 1년에 플토에게 두 번 지고 대플토전 승률이 90%에 육박할 동안 뾰족한 해법을 강구하지 못했다.
강민식 패러다임으로 강민과 극소수의 플토가 근근이 저그전에 승수를 쌓았지만
기본적으로 플토유저와 플토로 데뷔하려는 게이머들에게 저그전은 여전히 큰 장벽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2006년까지의 저그들은
장님플토의 처량한 신세를 알았고, 느려터진 회전력을 알았고, 가스가 없으면 말라죽는 사치스러움을 잘 알았다.
이는 조용호와 양박을 거쳐 마재윤에 이르러선 급기야 '프로토스의 대재앙'으로 표현될 정도였다.
임요환-이윤열의 혹독한 시대를 버텨왔지만 끝내 최연성식 패러다임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던 홍진호처럼
양박시대를 홀로 힘겹게 이겨왔던 강민도 마재윤의 뭐든 맞춰가는 운영 앞에서는 번번이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강민식 수비형 프로토스의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새로운 혁명이 필요했던 것이다.
김택용은 강민과 같이 끈기 있는 연구자 타입은 아니다.
3.3혁명을 일으킨 눈부신 패러다임 하나만으로도 김택용의 존재는 가치가 있지만
더블넥 이후의 전개는 선배들이 쌓아온 프로토스의 유산에 여전히 기인하고 있다.
다만 그 유산을 자신의 비수더블넥과 교묘히 조합해 누구보다도 잘 운용할 수 있는 프로토스가 바로 김택용인 것이다.
프로리그 SKTvs르까프 vs이제동 in 안드로메다에서 김택용이 들고나온 빌드는 바로 강민의 커세어리버 견제 후 캐리어였다.
견제가 맥없이 - 라기엔 드론 두부대와 맞바꿔도 시원찮을 리버셔틀 두 대였지만 - 막힌 뒤 김택용은
이제동의 버로우 히드라가 그랬듯 12시로 올 견제가 당연하다는 듯이 이동해 드랍병력을 막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저그의 해처리는 이미 무지막지하게 늘어난 상태.
이제동은 세 개의 라바에서 동시에 뛰쳐나오는 저그의 회전력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저그이고
바로 그 회전력과 멀티태스킹의 조합으로 울트라 없이 블루스톰에서 김택용을 패배시킨 적도 있었다.
이 때, 김택용의 반박자 빠른 캐리어 전환이 안드로메다로 직행할 뻔한 상황을 반전시켜버렸다.
지난 날을 돌이켜보면, 김택용은 저그와 처절한 싸움을 한 적이 거의 없다.
Forte 혈전이 그랬듯 맵상의 자원을 다 파먹으면서까지 저그의 끊임없는 해처리를 깨가며 쟁취해낸 승리의 공식을
김택용은 멀티태스킹을 바탕으로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 체제전환 및 조합을 구성해 깔끔한 답안으로 마무리짓는다.
저그와 맞확장전을 펼치면 옛날토스를 시전해도 이길 수 있는 것이 김택용의 저그전이다.
무한확장과 소떼, 미친 저글링과 다크스웜 위주로 풀어가는 조용호, 김준영식 저그보다
경기 내내 플토의 약한 곳을 언제든 찌를 준비가 되어 있는 박성준, 이제동식 저그가 전적에서 1경기라도 앞서 있는 게 그 증거겠다.
커세어-리버-캐리어라는 오래 된 빌드를 사용해도 그것이 김택용이 만들어 낸 또 하나의 화려한 저그전이 되는 것은
하템과 더불어 컨트롤하기 가장 까다로운 세 유닛을 동시에 컨트롤해내며
강민의 처절한 수비를 완벽한 수비로 탈바꿈시킨 신기의 피지컬에 있는 것이다.
몽상가의 꿈은 그렇게 비수 같은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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