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ports, 망하는가? #7. ‘프로 스포츠’로서의 E-sports - 1
변명을 하자면 그동안 좀 아팠습니다. -_-; 지금도 목이 잘 안 돌아갑니다. 원래 제 글 쓰는 스타일이 귀차니즘 반에 슬럼프 반이고, 거기에 한번 글 외부의 요인으로 인해 탄성을 잃어버리니 도저히 원래 컨디션을 찾기가 어렵더군요. 도저히 안 써지던 참에 처음부터 제 글을 다시 한 번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크게 반성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좋은 글 기대하겠다고 써 주셨던 댓글들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 ‘잘 한다’는 칭찬은 ‘끝까지 잘 하기를 기대한다’라는 의미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정말 죄송합니다.
‘쉬는’ 동안 이런 저런 책들을 읽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오래 붙들고 있었고 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바로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였습니다. 은하 제국의 몰락과 그를 예견한 어떤 수학자의 안배... 이렇게 써놓으니 무슨 무협지 같긴 합니다만, 제가 이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다시 한 번 일깨워주기도 했습니다. 그 수학자처럼 미래를 완벽하게 읽고 대비까지 하지는 못한다 해도 전망이라도 하는 것이, 더더군다나 일단 시작했으면 끝내는 것이 옳은 태도일 테니까요.
지난 편으로 ‘E-sports의 수용층’에 대한 제 생각을 전부 정리하였습니다. 지난 편이 하도 오래돼서 기억을 잘 못하실 분들이 많으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1. 수용층을 적극적 수용층, 팬, 게이머, 소극적 수용층의 넷으로 나눌 수 있다.
2. 게이머층은 배틀넷의 붕괴로 인한 이탈자, 수준 상향평준화로 인한 신규 유저 진입 난항으로 인해 점차 소극적 수용층으로 편입될 것이다.
3. 팬층은 새로운 세대들이 등장함에 따라 기존 선수들이 세대교체되게 되고, 이 선수들의 팬 중 일정숫자가 소극적 수용층으로 편입될 것이다.
4. 소극적 수용층은 선수 및 팀의 전략 선택상의 제한성이 점차 생기게 되고, 그로 인해 경기가 유사한 양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점차 ‘재미’가 없어짐에 따라 이탈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또한 수준의 향상으로 인해 ‘신규 수용자’가 새로 진입하기가 힘들어진다.
5. 이러한 상황들을 종합해 볼 때, 현재 스타크래프트 리그의 팬은 앞으로 줄어드는 경향이 커질 것이다.
또한 6.5편이라는 이름을 붙인 편에서는 스타크래프트 이외의 E-sports, 즉 워크래프트3, 카운터스트라이크를 포함하는 FPS, 스포츠 게임 등을 별도의 편으로 분리하여 다루었습니다. 이로서 <수용층>에 대한 논의는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현재 ‘업계’의 상황에 대해 간략히 다뤄보고자 합니다. 다들 한번쯤은 생각해 보셨을 이야기이니만큼, 제 의견에 대해서도 찬성 혹은 반대를 표현해주시고 그로서 새로운 뭔가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저번 회 보기>
#1. 인사말을 겸한 소개
#2. 현재의 E-sports의 상황
#3. E-sports의 과거와 현재
#4. 줄어들 수밖에 없는 E-sports의 팬의 수 - 1
#5. 줄어들 수밖에 없는 E-sports의 팬의 수 - 2
#6. 줄어들 수밖에 없는 E-sports의 팬의 수 - 3
#6.5. 줄어들 수밖에 없는 E-sports의 팬의 수 - 3.5
(1) 지금까지의 상황에 대해서
지금의 E-sports 게임계는 매우 특이한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발생은 우리나라의 기타 프로스포츠와는 달리 자생적이며 특히 ‘시장의 수요에 의해’ 창출되었고, 또한 그 결과로 갖추어진 체제는 ‘방송국 주도의’ 스포츠로, 현재 외국에서 그 형태가 살짝 보이려고 하는 ‘미디어 스포츠’에 가까운 형태였습니다. 자세한 점은 #3번 글에 제가 링크로 걸어놓은, 이전에 제가 E-sports 세미나 때에 발제한 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어찌되었건, 온게임넷과 후발주자 엠비씨게임은 래더 체제에서 착안하여 1:1을 중심으로 하는 체계를 구축하였으며,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필연적으로 선수들 개인이 위주가 되는 체제를 의미합니다. 마치 바둑의 그것처럼, 선수들은 특정한 곳에서 후원을 받지 않고 상금 및 기타 부수입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며, 대부분의 대회는 개인전 대회인 체제이죠. 이러한 체제가 성공적으로 정착하였다면 지금 바둑이 그러한 것처럼 팀 리그 형식의 단체전의 정착과 함께 지금과는 또 다른 상태가 유지되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후에 선수들의 미래를 다룬 편에서 다시 한 번 이야기 하겠습니다만) 1) 바둑에 비해 대전료를 주는 대회가 너무 적었고 2) ‘기타 부수입’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죠. 이로 인해 정상급 이외의 선수들은 - 제가 #5에서 설명드렸던 ‘빠른 은퇴’와 함께 - 상금을 거의 기대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고 이는 선수들의 생활에 특히 가혹하게 작용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팀 제도의 도입은 필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IS나 이전의 한빛소프트 등이 단지 ‘선수의 집단’이고, ‘매니지먼트’를 제공하지 못했던 데 비해서 지금의 T1, KTF, CJ 등은(그냥 생각나는 순서대로 쓴 것이며 나오고 안나오고에 큰 의미는 없습니다) 감독과 코치가 임무를 수행하고 팀의 분업 등이 완벽히 갖추어진 정말 ‘프로 구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후원 기업이 갖추어져서 선수들에게 일정 정도의 연봉이 제공되게 되었으며, 이와 함께 합숙 훈련의 보편화, 팀 단위에서의 전략 창출 등으로 인해 내적, 외적으로 급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겉으로 보이는 상황에 대해서 간략히 요약하였습니다. 일견하기에는 매우 희망적으로 보이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미 말씀드렸듯이 저는 그러한 전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자 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내적’인 측면, 즉 게임 자체에 대해서는 수용층을 다룬 지난 네 편에서 충분히 설명드렸듯이 <수용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반박하시고 싶으신 분들은 지난 글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위에 설명했듯이 현재 성장일로에 있고 낙관적으로 보이는 저러한 ‘외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어떠한 전망이 가능할까요?
(2) 우리나라에서의 ‘프로 스포츠’와 E-sports
선수들의 생계와 연습 등을 위해 팀 제도의 도입과, 팀 제도의 정착을 위한 후원 기업의 영입, 그로 인한 ‘프로 팀 제도의 정착’은 당시의 여건으로 봤을 때 도입은 어떤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과연 지금 정착된 제도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일까요? 그 의문에 대해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나라에서 ‘프로 스포츠’가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스포츠2.0이란 잡지를 아십니까? 대체 이런 퀄리티의 잡지를 매주 한 번씩 내면서 값은 천원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질적으로 우수하고 기획도 좋은 스포츠잡지입니다. 이번에 현대 야구단 인수 파동을 맞아 이 잡지에서 한국 스포츠산업의 규모와 현실에 대해서 다룬 기사가 있어서 관심있게 보았습니다. 이하는 그 기사를 주된 뼈대로 하여 약간 재구성한 것입니다. (인터넷 서비스가 안돼서 링크를 제공하기 힘든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간단히 말해 프로팀의 가치는 ‘스포츠사업체로서의 가치’와 ‘마케팅 도구로서의 가치’가 있습니다. 사업체로서의 가치는 순수한 스포츠사업으로 발생하는 매출 및 보유자산의 총가치이며, 또한 미디어 콘텐츠로서의 프로 구단의 가치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마케팅 도구로서의 가치는 이미지 개선 등의 효과와 구단운영으로 인한 모기업 및 계열사의 매출 상승 등이 그 효과일 것입니다.
그런데 프로 구단은 이 평가를 꺼려하거나 평가 자료를 공개하기를 매우 껄끄러워합니다. 이 잡지에 공개된 2001년 해태 타이거즈 구단 평가 자료나, 2005년 삼성 라이온즈의 손익계산서를 보고 저는 그 이유를 조금 알 수 있을 것도 같았습니다.
먼저 2001년 해태 타이거즈 평가 자료는, 스포츠사업체로서의 가치는 운영 기간을 20년으로 잡을 때 총 620억원의 적자가 발생하고, 마케팅 도구로서의 가치는 계열사의 유형 무형의 이익이 구단 운영으로 인해 연간 70억원 이상 증가해야 한다고 결론이 나왔습니다. 또한 삼성 라이온즈의 2005년 손익계산서는 명목상으로는 6억원 이익이지만, 수입의 70%를 차지하는 <광고수입>은 99%가 삼성 계열사로부터의 수익으로 실질적으로 지원금이고, 또한 사업 수입 등에서도 삼성 계열사가 상당부분을 차지하며, 입장수입은 20억원 내외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는 몇 백억대의 적자를 내는 구조입니다.
이 점은 누구나 익히 알고 있던 점을 수치로 명확하게 한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더욱 주목해야 하는 점은 우리나라 프로 스포츠 구단의 목표라고 누구나 생각하는 <모기업 홍보>에는 거의 효과가 없고(위의 매출 70억 증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마케팅 비용은 합쳐도 채 6억원이 되지 않을 정도로 미미한 점을 볼 때 거의 투자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즉,
우리나라 프로 스포츠 구단은 사업체로서의 가치나 홍보 효과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운영하면 운영할수록 적자가 계속되며, 시장의 규모는 4대 프로스포츠(야구, 축구, 남녀 농구)를 합쳐도 경정에 못 미칠 만큼 협소합니다. 또한 선수들의 연봉은 공헌도나 성적에 따른 정확한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존심’이라는 이상한 기준에 의해 책정되고, ‘자존심’을 내세우지 못하는 하위 랭커들은 낮은 연봉과 이른 은퇴 속에 신음합니다.
즉 이는 여러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프로 스포츠는 진정한 프로가 아닙니다. 그럼 왜 이 형태가 유지되고 있을까요? 그저 ‘없앨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해오던 관성과, 없앴을 때 받을 비난 및 이미지 하락이 두려워서가 아닐까요. 아무튼 우리나라의 프로스포츠는 적자 투성이의, ‘홍보 효과도 의심스러운’ 그런 지경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E-sports 구단에도 또한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점입니다. 특히나 E-sports는 게임의 저작권 등의 문제로 입장수입 등을 기대하기 힘든 구조이기 때문에 더더욱 젊은 층에의 이미지 제고와 홍보 효과 등만을 보고 운영해야 하는데, 위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저 홍보 효과나 이미지 제고 효과는 허수에 가까운 것입니다. 또한 다른 프로스포츠에 비해 수용층이나 사업 규모가 훨씬 적은 점, 또한 수용층의 나이대가 한정되므로 홍보 효과에도 한정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 등도 분명한 단점입니다.
(3) E-sports가 갖는 E-sports만의 장점
물론 E-sports 구단에는 타 스포츠가 갖지 못하는 장점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자금이 극히 적게 들어간다는 점입니다. 물론 지금도 팀의 운영 규모나 지원은 점차 증가하고 있지만, 이는 다른 스포츠의 자금에 비하면 새발의 피이고, 또한 다른 <몸을 쓰는> 스포츠에 비해서 지속적인 지출이 적다는 점도 분명한 장점입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단점이 작다>는 것이 장점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는 위에서 잠깐 나온 것인데, ‘미디어 콘텐츠로서의 프로 구단의 가치’입니다. 기타 프로 스포츠의 경우, 구단을 소유하고 있는 모기업이 점차 미디어 기업을 확보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으며, 그로 인해 그 모기업의 방송 콘텐츠 확보 및 모기업 홍보에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기에 E-sports는 애초에 미디어가 주체가 되는 형태로 출발하였기 때문에 이 점은 구단의 가치에 있어서 상당한 플러스 요소입니다. 현재 게임 방송을 하거나 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온게임넷, 엠비씨게임, CJ가 모두 구단을 소유하고 있는 점을 볼 때 이 점은 증명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E-sports 업계의 상황은 이 두 번째 장점을 약화시키는 형태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글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으므로 다음 글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글 예고
다음 글은 최대한 빨리 쓰도록 하겠습니다. 적어도 토요일까지는 올릴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 이미 못믿을 양치기 소년이 돼 버린 느낌이지만요;;;
다음 글에서는
현재 E-sports 업계의 구조에 대해서 다룰 예정입니다. 협회와 구단, 방송사간의 구조와 그 문제에 대해서, 그리고 오늘 다룬 프로 스포츠로서의 E-sports의 위치와 연관지어서, 또한 앞에서 설명했던 수용층과의 연계도 모색해 볼 생각입니다.
늦어서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_ _) 앞으로는 성실하게 쓰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