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어느 날부터인가 문득문득 느끼게 되죠. '아, 나도 늙는구나. 좋은 시절 다 갔구나'
저는 특히 몸이 예전같지 않을 때 이런 걸 느끼는데, 아마 다른 분들도 크게 다르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개가 저걸 느끼는 걸 봤습니다.
참 -이성은 몰라도- 감정은 사람하고 다를 게 없더군요.

우리 개는 2003년생입니다.
원래는 부모와 함께 살았는데, 아비는 늙어죽고, 어미는 시골 갔다가 뭔가를 잘못 주워먹고 죽어버렸습니다[살만큼 살긴 했습니다만].
이 녀석이 아비 죽는 건 봤고, 어미는 돌아오는 걸 기다리다가 이제는 안 오는 걸 받아들이는 눈칩니다.
아비어미 살아있을 때는 죽자사자 물어뜯던 녀석이, 혼자가 되자 정말 외로워하더군요.
이 녀석도 이제는 늙어서, 뒷다리가 풀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저도, 일은 훨씬 힘들지만 이 녀석을 더 자주 볼 수 있는 곳으로 옮겨왔습니다.
아비어미 살아있을 때 더 잘해주지 못한 게 정말 후회되더라구요. 같은 실수 되풀이 않기로 했습니다.

오늘 잠시 뒷산에 데려갔는데, 어린 수캐 한 마리가 같이 놀자며 뛰어들더군요[이 녀석은 암컷입니다].
이 녀석도 처음엔 좋아하더니, 곧 뭔가를 깨닫고는 슬슬 피합니다.
수캐 주인의 말로는 한살짜리 수캐랍니다.

개 한살이 사람의 일곱살이라던데.... 그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봤을 때 이 녀석 몸 상태가 사람으로 치면 예순은 넘어보입니다.
함께 놀자며 계속 달라붙는 수캐를 뒤로하고, 얼른 집으로 가자고 앞장서는 녀석의 표정을 봤습니다.
'아 나도 늙었구나. 좋은 시절 다 갔구나' 하는 게 정말 진하게 느껴지더군요.
스물 몇 꽃다운 총각의 구애를 사절하고 돌아서는 늙은 여성의 심정이랄까.....

세월 앞에 장사 있냐고 달래면서 돌아왔습니다.


참, 개는 표정이 없다는 게 '과학적 사실'이라고 들었는데, 그건 정말 아닙니다.
저도 개를 여러 마리 길렀는데, 그냥 마당에서 기를 때는 몰랐지만 집 안에서 함께 사니까 알겠더군요.
개도 표정이 있어요.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