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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10 08:40
형주남부는 조조한테 한번 빼앗겼더가 유비가 다시 가져간것 아닐까요?
그래서 황개는 조조가 형주를 빼앗을 즈음에 오나라로 돌아갔을 것 같습니다
16/08/10 10:12
조조가 형주를 정벌한 시점부터는 형남4군도 조정에 귀속되기때문에 그 당시엔 황개가 무릉태수가 되었다고 보긴 힘들어요. 금선이란 사람이 무릉태수였거든요.
황개는 215-220년 사이에 죽기때문에 황개가 무릉태수가 되는 시점은, 유비가 형남4군을 공략한 이후와 익양대치 시점이 될 수 밖에 없거든요.
16/08/10 10:15
208년 조조가 형주로 내려와 유종의 항복을 받았을 때 무릉은 일단 조조의 세력권 내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조조가 중앙에서 김선을 무릉태수로 내려보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208년 겨울에 적벽에서 조조가 대파당하고, 유-손 연합군은 강릉을 공략합니다. 이후 주유가 결국 강릉을 점령하는 건 209년 겨울 무렵이며, 유비가 형남 사군을 점령한 건 그보다 전인 대략 209년 여름 정도로 판단됩니다. 즉 208년~209년에 걸쳐 무릉의 주인은 유표(유종)->조조->유비였습니다. 이후 다소 꼬이는 것이, 유비는 제갈량에게 군사중랑장을 맡기고 장사-영릉-계양 삼군의 부세를 거두게 합니다. 무릉이 빠져 있죠. 그러면 이 시점에서 가능한 가설로, 무릉은 손권의 권역이었고 황개가 이곳의 태수를 맡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릉이 손권에게 넘어갔다는 내용은 사서 어디에도 없으며 오히려 유비가 강릉 남쪽의 땅(공안)을 얻어 치소로 삼았다는 점을 볼 때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됩니다. 저는 오히려 이 때 유비가 공안과 가까운 무릉을 직접 관할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영무릉태수 딱지를 스스로 붙였든, 아니면 김선을 얼굴마담으로 앉히고 실제로는 자신이 직접 맡았든 간에요. 좀 더 밀어붙인다면 공안을 무릉에 편입했을 수도 있겠죠. 그러면 황개의 무릉태수 시절은 언제인가? 가능한 시점은 손권이 형남을 무력으로 공격했을 때밖에 없습니다. 그 때 유비에게 복속되었던 무릉만이가 반란을 일으켰기에 황개가 그걸 진압했다고 보면 대강의 얼개가 맞습니다. 특히 이 때 병사를 약간밖에 거느리지 못했다고 나오는데 대부분의 병사가 유비와의 싸움을 위해 동원되었다고 보면 논리적으로도 이해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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