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모든 생명체 중에서도 유래에 없을 정도로 긴 유년시기를 보내는 동물이다. 태어난지 몇시간도 채 되지 않아 몸을 일으키는 평원의 포유류들과는 달리, 인간의 자식들은 몇 개월 동안은 제대로 움찔거리지도 못하고, 몇년 동안은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다. 필연적으로 부모는 불안정한 자식을 돌보아야 하는데, 기능적으로만 따지면 이처럼 비효율적인 경우가 있을 수 없다. 생명체로서 자립하지 못하는 무능한 새끼시절이야 말로, 생명체로서 인간의 가장 큰 약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새끼는, 꿈을 꾼다. 천장을 쳐다 보면서, 따스한 어머니의 품과 차가운 공기를 비교하면서, 자장가와 소음을 번갈아 들으면서 아이는 꿈을 꾼다.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에, 고작해야 꿈만을 꾸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꿈이, 지금의 인간과 문명을 이룬 것은 아닐까? 창의력이라 불리는, 도전이라 불리는 그런 특별한 것들이, 사실은 이 무능하기 짝이 없는 시기에 형성된 것은 아닐까? 정글에 던져져, 생명체로서의 기능을 깨닫고 학습하는데 정신이 없는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제한 없이 세상을 즐길 수 있는 축복을 받은 것일 수 있다. 바로 제일 무능한 시기에 말이다.
그래서 인간의 미래는 아이들에게 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내일의 세상을 움직일 대상은 아이들이다. 꿈꾸고, 부딪치고, 넘어지고, 헤매고, 어리석은 그런 아이들이 바로 우리의 미래인 것이다. 그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왜, 이런 말도 있지 않는가? 아이들은 모두 천재라고.
여기에서, 어른의 책임이 파생한다. 인간의 미래가 아이에게 있기 때문에, 어른의 역할과 책임은 그 아이를 보호하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본문의 맥락에서 그 '보호'에 대해 말하자면, 어른들의 역할은 아이들이 마음껏 꿈꾸고 그 꿈을 향해 달려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자전거를 붙잡아 줌으로서 아이는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된다.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든 매가 아이를 더 공부하게 만든다. 그렇게 얻은 힘과 속도로, 아이는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그것은 곧 이 사회와 인류의 힘이 된다. 그렇게 인간은 앞으로 전진해 나가는 것이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십년전, 단지 어느 한 게임회사에서 오락거리로서 만들어진 하나의 게임이 있었다. 십년전으로 돌아가, 누가 그들에게 이 이 게임의 가치가 무어냐 물어도 그들은 '재미' 이상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도 그것이 정답일지 모른다. 오락질은 오락질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그런 오락질에서 이상한 꿈을 꾼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이것은 게임 이상의 것이 될지도 모른다고, 더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무언가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다. 이런 꿈을 꾼 사람들이 모두 아이는 아니었지만, 아이 같은 꿈이라고는 말할 수는 있겠다. 여전히 포털의 관련 기사엔, 오락질로 억대 연봉을 받는게 말이 되느냐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 나이를 떠나, 그들의 뇌는 어른일지도 모른다. 게임이 게임 이상이 될 수 있음을 이해하는 것은, 꿈꾸지 않는 자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기 까지 왔다. 어린 꿈을 끌고 여기까지 왔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문맥상 짐작 가능하겠지만, 그것은 어른의 힘일 것이다. 누군가는 이것을 통해 사업적 가치를 발견했고, 누군가는 그 꿈에 현실성을 불어 넣었다. 우리가 즐기는 스타리그 방송 뒤에는, 수많은 어른들이 흘린 땀과 노력이 담겨 있다. 우리가 받아 보는 이스포츠 언론 소식에는, 수많은 어른들이 뛰어다닌 발자국이 담겨 있다. 아무것도 그냥 이루어진 것은 없다. 하나하나 언급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그 어른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아이로서 꿈을 꾸게 해 주었던 어른들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이제는 내 눈에는 다른 것들이 보인다. 어떤 선수의 억대 연봉 체결 소식을 보면 단순히 그 대단함에 감탄하기 보다는, 기업 입장에서 그만한 광고 효과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어느 늘그막 선수의 극적인 승리에 마냥 감동하기 보다는, 그의 장래에 대한 생각을 한다. 그 동안 쌓인 지식은 나를 삭막하게 만들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어른이 되버린 걸까? 하지만, 여전히 꿈은 존재한다. 무대 위에서 여전히 반짝이는 꿈을 꾸는 아이들이 존재한다. 내가 꾸지 않더라도, 꿈은 실존한다.
내가 처음 그들의 꿈을 보았을 때는, 나도 아이였다. 자립할 수 없는 불안정한 한명의 아이. 그래서 그 때는 그런 꿈의 무게를, 책임이란 것을 몰랐다. 마냥 꿈 꿀 권리가 있었다. 이렇게 말을 하지만, 사실 지금도 나는 사회적으로는 아이일 것이다. 하지만 마냥 아이라고 부르기에도 머쓱해졌다. 프로게이머들은 나보다 어리고, 내가 처음 지켜봤던 이들은 어느새 스러져 사라졌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여전히 꿈은 존재한다. 여전히 꿈은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이제 아이가 아니다.
10년간, 그들의 꿈으로 인해 나는 너무나도 즐겁고 행복했다. 감동했고, 안타까워했고, 웃음지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내가 꾸었던 꿈은, 내 안에 살아 숨쉬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그들의 꿈을 보호할 때이다.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다. 어른으로서, 한명의 팬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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