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게임넷 박카스 스타리그 16강 3회차 일정에는 제가 오래 전부터 기대해왔던 매치업이 무려 둘이나 들어있습니다. 하나는 프로리그 저그왕 이제동과 테란왕 염보성의 경기이고, 다른 하나는 한 때 한솥밥을 먹었던 두 남자, 박성준과 김택용의 경기. 둘 중 하나는 거의 완벽하게 예상대로 돌아갔지만, 다른 하나는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로 끝을 맺었는데요. 그럼 16강 3회차 경기를 한 번 되짚어 보겠습니다. 편의상 경어는 생략하였으니 많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
A조 3경기. 이제동 vs 염보성 @ 카트리나 / 상대전적 3:3
이제동 vs 염보성. 이건 누가 뭐래도 이번 스타리그 16강 최고의 매치업이다. 개인리그 본선에서 이 두 선수가 맞붙기를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던가. 이제동이 요새 얼마나 잘 나가고 있는지야 두 말하면 입이 아플 뿐이고, 그런 이제동을 상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테란 중에서도 첫 손에 꼽히는 염보성. 이건 뭐 아무리 설레발을 쳐도 그러려니 해줄 수 있는 경기가 아니겠남.
무난한 원배럭 더블을 택한 염보성과는 달리, 이제동은 베짱 좋게 노풀 쓰리햇을 가져갔다. 하지만 빌드의 유불리를 따지기도 전에 염보성의 아주 작은 방심으로 게임은 허무하게 끝을 맺고 말았다. 본진 앞쪽, 그러니까 건물이나 SCV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곳에 생마린을 배치해 두었는데, 한 부대 남짓한 이제동의 발업 저글링이 들이닥쳐 마린의 수를 크게 줄여 버린 것이다. 메딕이 나오기 직전 타이밍을 노린 이제동의 타이밍도 대단하지만,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생마린을 전진 배치해둔 염보성의 실수가 아닐까.
여튼 이 한 방으로 염보성의 마린 수는 크게 줄었고, 이어지는 이제동의 뮤짤에 테란이 원사이드하게 당하는 풍경이 연출. 그 와중에도 마린이 줄자 저글링을 찍어 보내고 럴커가 채 나오기도 전에 퀸즈네스트를 지으면서 하이브를 준비하는 이제동의 철두철미함은 정말 후덜덜. 이건 뭐.. 할 말이 없게 만든다. 정말.
그토록 기대했던 매치업은 이처럼 허무하게 끝을 맺었다. 염보성 경기를 보다보면, 오늘처럼 방심하고 있다가 터무니 없이 져버리는 경기가 종종 있다. 오늘의 패배는 그 중에서도 본인에게 특히 뼈 아픈 실책이 아니었나 생각. 16강에서 탈락하지만 않는다면 오늘의 이 패배가 좋은 치료약이 될 수도 있을 테지만.. 글쎄. 남은 선수가 한 때 테란의 재앙이었던 마재윤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낙관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제발 16강의 벽을 뚫고 더 높은 곳에서 이제동과 다시 한 번 겨루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보성아, 너도 개인리그 우승 한 번 해야지.
그리고 이제동은 뭐.. 이 선수를 어떻게 이기나요. 우승자 징크스 같은 건 완전 강 건너 사는 김씨 아저씨네 이야기도 안 되는 듯 막강한 포스로 연승행진을 이어나가고 있다. 오늘 경기까지 해서 공식전 11연승이던가. 지금 OSL 16강 멤버 중에서 이제동을 꺾을만한 사람은 염보성, 이영호, 김택용 정도 밖에 없을 듯 한데.. 저그 선수가 두 시즌 연속으로 OSL 우승 뱃지를 가져가는 사상 초유의 사태도 그리 먼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아아.. 이 포스를 이어갈 수만 있다면 전성기 마재윤도 부럽지 않겠군요.
B조 3경기. 안기효 vs 이영호 @ 악령의 숲 / 상대전적 2:2
안기효의 판 짜오기가 아주 제대로 먹힌 경기. 본진 사이의 거리가 비교적 가까운 점을 이용해서 정찰 프로브로 입구를 막을 수 없도록 견제하면서 질럿을 밀어 넣는다.. 는 전략이 아주 깔끔하게 들어갔다. 거의 크리급 히트가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였으나 이영호의 수비 선방으로 질럿 찌르기는 어찌어찌 막아낸다. 하지만 이미 역전은 불가능한 상황. 첫 공격을 막아냈다손치더라도 그건 지지를 잠시 유예시켜주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머지않아 리버 두 기를 실은 셔틀이 도착하면서 게임 셋. 안기효가 이영호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지난 시즌 스타리그 16강에서의 패배를 설욕하는데 성공했다.
안기효의 OSL 전적은 이 경기를 포함해서 12승 23패. 두 차례 16강의 벽을 뚫었지만 각각 박성준과 이병민을 만나면서 상위 라운드 진출에는 실패한 경력이 있다. 그 외에는 모두 16강 탈락, 혹은 24강 탈락. 안기효의 게임상 아이디는 WWE 역사상 길이 남을 슈퍼스타 the Rock의 이름과 같지만, 그가 OSL에서 올린 성적은 프로레슬링으로 치면 미들카터 수준에 불과하다. 개인적으로 군입대전의 이주영과 더불어 스타계에서 롱런하는 미들카터 양대 산맥으로 평가. 본인들의 의지야 어찌되었건 보는 사람의 눈에는 '짧고 굵게'보다 '길고 가늘게' 라인을 밟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튼 안기효는 스타리그만 올라오면 미스터리한 경기력과 더불어 안타까운 인상을 팍팍 심어주는데 이번 리그에서도 이런 아스트랄함을 유감없이 발산하고 있다. 지난 주에는 송병구를 상대로 바위에 마우스를 던지는 듯한 플레이로 패배를 자초하더니, 오늘은 이영호를 시종일관 압도하며 승리. 스타리그 16강에 꾸준히 들 수 있는 경기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건 알겠는데.. 문제는 역시 그 경기력을 꾸준히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이겠지요. 심리적인 문제인지, 아니면 단순한 성격상의 문제인지.
어쨌거나 이 날의 승리는 OSL 8연패 끝에 따낸 첫 승리이자, 지난 06년 10월에 이병민을 상대로 타우 크로스에서 8강 첫 경기 승리를 기록한 이후 15개월만의 승리이기도 하다. 과연 안기효가 다음 윤종민과의 경기에서도 이 승리의 힘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두둥~
C조 3경기. 박성준 vs 김택용 @ 블루스톰 / 상대전적 1:0 박성준 우세
저그가 김택용을 이기기 위한 가장 수월한 방법은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김택용의 체제가 갖추어지기 전에 먼저 한 타를 갖추어 토스를 밀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에는 한 가지 난제가 있다. 그것은 프로토스의 눈을 가려야 한다는 것. 첫 정찰 프로브를 최대한 빨리 잡아내고, 이후 정찰 프로브를 철저하게 봉쇄하며, 첫 커세어가 정찰을 오기 전에 게임을 끝내거나 끝낼 수 있는 준비를 마쳐놓아야 한다. 말 그대로 입스타. 게다가 이 방법을 실천하기 가장 까다로운 프로토스가 김택용이다. 모든 사람이 알고 있지 않은가. 그의 '죽지 않는 정찰 프로브'를. 하지만 지난 스타리그 8강에서 마재윤이 김택용을 상대로 이 입스타를 실현해낸 적이 있다. 비록 그 뒤에 2연패를 당하면서 다소 빛이 바래긴 했지만, 어쨌거나 적어도 그 한 경기에서만은 마재윤이 김택용을 압도했던 것이 사실이다.
여튼 이 경기에서 박성준도 김택용을 상대로 바로 그 입스타를 실현해 냈다. 첫 정찰 프로브를 빠르게 막고 업글 땡히드라라는 한 타를 준비하면서 후속 프로브의 정찰을 철저하게 차단했다. 이 날 박성준의 플레이에서 가장 빛났던 부분이 바로 이 추가 정찰의 차단이다. 첫 정찰 프로브를 막아낸 이후 박성준의 플레이를 보자. 저글링들을 흩뿌려 밖으로 나와있는 프로브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추가 프로브가 정찰을 위해 지나갈 수 밖에 없는 소로 양쪽 언덕 지역에 저글링을 한 줄로 깔아놓는다. 그리고 결과는 보시다시피. 정찰 나온 프로브는 저글링에 걸려서 본진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비명횡사하고 만다. 이후 커세어가 나올 때까지 김택용의 정찰은 전무. 김택용의 눈을 가린 것이다.
이 상황에서 김택용은 난처할 수 밖에 없다. 상대방이 땡저글링인지, 땡히드라인지, 저글링 히드라 조합인지, 아니면 배째라 식으로 드론 팍팍 찍으면서 확장을 늘리고 있는지, 상대방의 체제를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택용은 그 가능성 중 저글링 한 타에 가장 큰 비중을 두었고, 캐논을 저글링 방어에 용이한 형태로 배치했다. 하지만 박성준의 한 타는 업글 땡히드라였고, 김택용은 그 공격을 막을 수 없었다. 게다가 박성준의 타이밍도 어찌나 절묘한지. 다크 템플러가 생산되기 직전에 김택용의 게이트가 모두 파괴되고.. 뜬금없이 디스. -_-
김택용과 박성준의 대결은 그 기대값에 걸맞게 훌륭한 경기였으나, 저 너무나도 시기적절한 디스 한 방으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누가 보아도 박성준의 우세승이 분명한 상황에서 심판진은 한참이나 시간을 끌었고, 설상가상으로 심판의 말을 듣고 불만으로 가득찬 박성준의 표정이 생방송으로 노출. 각종 스타 커뮤니티, 특히 스갤에서는 '디스토스'라는 소리까지 나오면서 김택용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김택용이 무슨 죄가 있겠나. 비록 타이밍이 절묘하긴 했지만 김택용이 의도적으로 디스를 건 것도 아니고. 아무리 경기가 많이 기울었다고 치더라도 100% 확실한 결말이 나지 않았는데 선수가 자기 밥줄이 걸린 시합을 쉽게 포기할 수도 없는 거고. 오히려 잘못은 심판진의 답답한 대응에 있겠지. 확실하게 확인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생방송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음.
결국 경기는 예상대로 박성준의 우세승으로 끝이 났지만, 입맛이 씁쓸한 것은 어쩔 수 없구나. 쯔쯔.
D조 3경기. 박명수 vs 손찬웅 @ 트로이 / 상대전적 3:3
역시 트로이는 저그가 좋다. 토스가 앞마당에 캐논 심고 하면서 더블넥 가져가면 저그는 본진과 앞마당에 추가멀티까지 하나 더 먹고 시작하면 그만 아닌감. 저그가 질럿 드라군 모아서 공격적으로 나온다치면 추가멀티 앞 어시밀레이터 깨서 지상병력이 못 들어오게 하면 그만이고. 워낙 저그가 자원적으로 유리한 측면에서 게임을 풀어나갈 수 있다보니, 토스가 자원 먹고 커세어-리버든, 커세어-다크든, 하이템플러를 섞은 지상병력 조합이든, 뭔가 체제를 갖추기 전에 빠른 3가스를 바탕으로 한 발 앞서 물량을 폭발시킬 수 있다.
오늘 경기도 이런 흐름이었다. 손찬웅이 앞마당 먹고 방어하면서 커세어-리버 테크를 준비하자, 박명수도 앞마당에 추가 멀티까지 하나 챙기고 드론 팍팍 찍으면서 자원을 확보했다. 그리고는 손찬웅이 리버를 생산하기 직전 타이밍에 대규모 저글링-히드라-럴커 병력을 생산, 한 큐에 토스 앞 마당을 밀어버렸다. 한 발 늦은 리버가 저그 병력의 본진 난입을 막았고, 모여있던 커세어들이 상대 오버로드를 모조리 잡아냈지만, 이미 벌어질대로 벌어진 자원의 격차는 아무리해도 따라잡을 수 없었다. 결국 박명수가 오버로드 다시 보충하고 추가병력을 계속 찍어내면서 공격, 1패 뒤에 값진 1승을 챙겼다.
으음. 트로이 맵에서 프로토스가 저그전 해법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을 듯 하다. 저그가 워낙 부유하게 자원을 먹을 수 있는 데다가 앞마당 지형도 완전 개방형이라 비수 더블넥을 쓰기도 만만치 않아 보이고. 초반 질럿의 압박을 통한 플레이라던가, 아니면 역으로 토스가 여기저기 확장 먹고 어시밀레이터를 깨서 아예 섬맵 플레이를 하는 것도 생각해 봄직하다.
지금 가장 궁금한 건 역시 김택용이 이 맵에서 저그 유저를 상대로 어떤 플레이를 펼칠까 하는 점이겠지. 과연 이 맵에서도 꿋꿋이 비수 더블넥으로 저그를 압살할 수 있을 것인가. 솔직히 맵 구조나 어제 박성준과의 경기를 생각해보면 불가능할 것 같아 보이지만, 그래도 김택용이라면.. 하는 기대가 있는 것도 사실이고. 여튼 이 맵에서 김택용이 저그전 하는 거 한 번 보고 싶다.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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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너스 4회차 승자 예상.
A조 4경기. 마재윤 vs 도재욱 @ 카트리나 / 상대전적 없음
B조 4경기. 송병구 vs 윤종민 @ 악령의 숲 / 상대전적 4:0 송병구 우세
C조 4경기. 서지훈 vs 박찬수 @ 블루스톰 / 상대전적 1:1
D조 4경기. 박영민 vs 김동건 @ 트로이 / 상대전적 없음
4회차에는 마재윤 - 송병구 - 박찬수 - 박영민 예상. 제가 봐도 너무 무난한 예상인데요, 이거. ..
지난 번 염보성 - 이영호 - 박성준 - 박명수 예측은 50%의 정확도를 달성. 과연 이번에는 몇 개나 맞출 수 있을까요?
※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출처는 포모스(
http://fomos.kr)임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