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꽤 친한 친구를 만났었다. 자기 여자친구가 잠수를 타서 답답했다는 이야기를 나눈게 기억난다. 여자친구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지금도 모른다니 내 친구 입장에서는 충분히 화가 날만한 일이라 생각한다. 이별은 기존 연애의 끝이자 새로운 연애의 시작이다. 끝과 시작이라는 정 반대되는 성질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에 이별을 대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잠수를 타는 사람은 극단적으로 이별을 후자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이별을 전자의 관점에서 본다. 이별할 당시에는 상대방에 대한 애정이 많이 식은 상태이고 심지어는 증오의 감정까지 느끼는 시점이다. 하지만 만나왔던 지난 시간동안 내 감정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상대를 진정으로 생각했고 좋아했었기에 최소한 이별은 지난날의 시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한다. 그래서 되도록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서 이별을 맞이하고자 한다. 똑같은 말이라도 카톡으로 하는 것과 만나서 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가령, '넌 정말 좋은 사람이야. 하지만 단지 나와 너는 맞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이별하는 것이야. 다음에는 나보다 좋은 사람 만났으면 좋겠어.'와 같이 전형적인 이별멘트를 예로 들어보자. 저 말을 카톡으로 듣는다면 상대방은 저 말을 액면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른 근원적인 이유가 있지만 이를 구구절절 말하는 것이 불편하기에 그저 립서비스용 멘트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만나서 위와 같은 말을 한다면 그래도 상대방은 저말을 그대로 믿어 줄 가능성이 더 커진다. 카톡보다는 전화가 전화보다는 만나서 하는 말이 더 호소력이 있다.
그런데 후자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나와는 정 반대로 이별을 바라본다. 어짜피 나는 지금 만나는 사람이 정말 싫고 빨리 잊고 싶을 뿐이며, 나가서 그 사람을 만나면 괜히 머리만 복잡해진다고 생각을 한다. 옳고 그름은 없으며 두 가지 관점 모두 일리가 있다. 단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 할뿐이다. 이별을 나처럼 보는 사람들은 반대로 보는 사람들을 무례하다 생각을 한다. 반대의 관점에서는 나를 눈치가 없고 답답한 사람이라 생각을 한다.
뭐 구구절절히 친구 이야기도하고 이별에 대한 관점도 이야기를 한 것은 내가 어제 차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연애를 하면 최소한 100일 이상은 만나고 반년 일년까지는 만났는데 한달만에 차여서 뭔가 기분이 더 좋지 않다. 트러블이 있다면 서로 대화를 통해서 조율하고 해결할 생각을 해야하는데 전 여자친구는 이런 과정이 없이 그냥 바로 이틀간 잠수를 타고 다시 카톡으로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했다. 심지어 수요일(오늘) 만나자는 약속까지 한 상태에서 잠수를 탄 상황이라 이틀간 난 걱정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통보를 받고 집앞까지 찾아갔지만 내 얼굴을 보고 싶지도 않고 목소리도 듣고 싶지 않다고 카톡으로 답장이 왔다. 뭐 결국 다시 전철을 타고 터덜터털 집으로 돌아왔다. 너무 황당해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솔직히 자존심이 상한다. 다른건 몰라도 난 여자친구한테 많은 관심을 가지며 애정을 표현을 잘 한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 친구는 내가 이런 점이 부족하기에 헤어지자고 말을 했다. 이 말은 여태 여자를 만나면서 처음 들은 말이었기에 더 자존심이 상한다. '자기는 이기적이다. 그렇기에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여태까지 남자친구들에게 많은 애정(정확한 단어가 기억이 안난다)을 받아왔다. 하지만 오빠는 그런 것 같지 않다. 만나면서 계속 전 남자친구와 비교를 하게 되었다.' 만나서 대화로 해결할 생각을 안하고 저렇다해서 바로 헤어지자 말을 해버리니 기분이 몹시 나빴다. 차라리 내가 왜 별로였는지 적나라하게 말이래도 해 주었다면 속이라도 후련했을건데 저렇게 두루뭉술하게 말을 하니 더 답답할뿐..
근데 돌이켜보면 내가 여자를 찼을 때에도 뭔가 이유를 콕 찝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그냥 나와 이 사람은 안 맞았을 뿐이라 생각하는게 편할 것 같다. 내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차인 이유는 오직 그 사람만 알 뿐이며 혹시 안다 하더라도 내가 다시는 이 사람을 만날 일이 없기에 알 필요도 없다.
집에 돌아와서 키 크고 잘생긴 멋진 친구와 상담겸 통화를 했다. 이 친구는 잠수이별이 새로운 트랜드라고 했다. 뭐 잠수이별이 이별을 고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편하고 쉬운 방법이라는 것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이를 쿨하게 이별로 받아들이지 못 하고 걱정하고 전화하고 찾아가는 사람을 두고 미련하다고 폄하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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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나를 어떻게 봤으면 잠수를 탈 정도 까지 싫어하나 혹은 그렇게 위해를 가할 놈으로 착각할 정도였는데 대체 여태 나는 왜 만났나 별별 생각이 다나죠. 그냥 이제 끝냈으면 좋겠다 한 마디면 될 것을 아무 언질도 없으면 이쪽은 언제 끝내야될지 감도 못 잡고 말이죠.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안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같은 경우엔 대부분 썸에서 끝났으니 다행이면 다행이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