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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22 14:40
영화에서 문학작품을 읽는 느낌이였어요.. (실제로 원작이 있지만)
이창동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력이 극에 달한 느낌을 받은 영화.
16/04/22 15:02
전도연은 최고의 연기를 했죠.
그리고 송강호는 그냥 김종찬이 되었습니다. 정말 좋은 영화입니다. 다만, 호불호가 갈릴거라는 생각은 합니다.
16/04/22 15:10
아마 이청준의 원작이 5.18을 은유하고 있다고 원작자분이 말씀하셔서 그런 해석이 있기도 하는것 같아요.
역시 해석의 다양함을 줄 수 있는게 이창동 영화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16/04/22 15:11
어떤 평론가의 말마따나 '이창동 영화의 인물들은 우리 주변에서 지갑에 주민등록증을 넣어놓고 살아갈' 정도의 생동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16/04/22 15:10
영화가 무시무시하다는 느낌을 처음 받게 해 준 작품이었습니다.
공포스럽다는 의미가 아니고, 지독하리만큼 집요하게 신애라는 한 인간을 파고드는 모습이 무섭더라고요. 가장 인상깊은 장면은 전도연이 부엌에서 일하다가 벌레를 발견하고 기겁하며 비명을 지르고, 송강호가 뛰어와서 아무 것도 아니라며 벌레 잡아주던 장면입니다. 그 과정에서 단 한 번도 벌레를 비쳐주지 않고 다만 전도연과 송강호의 연기만으로 그 존재를 만들어내더라고요.
16/04/22 15:14
이창동 감독 영화는 보고 난뒤의 찝찝함 때문에 도저히 처음부터 끝까지 못 보겠더군요. 그나마 끝까지 본 작품이 오아시스 하나 입니다.
16/04/22 15:15
흐흐 저는 그 찝찝함...이랄까 여운이 더 좋더라구요. 정말 끝까지 가는 점도 좋고....후기작으로 갈수록 이 성격이 더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초록 물고기'는 비교적 덜하고, '시'는 정말 여운이 길죠.
16/04/22 15:26
['밀양'에서 이야기 하는 신의 의지는 숨쉬는 공기, 내려쬐는 햇빛과 같습니다. 특정한 방향으로의 흐름이 아니라 무릇 그저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죽음으로서 하나님, 신, 절대자의 질서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신애가 다시 살고 싶어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함으로서 다시 그 질서안에 들어왔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내려쬐는 따스한 햇빛은 그 절대자의 마음이 그저 모두를 한결같이 바라본다고 할 수 있을겁니다. 밀양의 영어 제목이 secret sunshine인 것 또한 그 내려쬐는 햇빛이 신의 보살핌임을 잘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반기독교적이라고 잘못 받아들이지만 아주 기독교적인 영화입니다. 이러한 고통들이 다 신에 의한 장난이라면서 싸우려드는 신애지만 신은 그 분노마저 그저 따스하게 바라보고 있고, 신애는 결국 다시 신의 질서 안으로 돌아오지요.] 이런 해석이 가능하군요. 음.. 검색해보니 감독 자신도 이 영화가 기독교적 영화라고 하고. 하지만 저는 만약 저런 신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해도 저런 신을 거부할 겁니다.
16/04/22 15:31
결국 유/무신론을 결정짓는건 개인의 결단이라고 생각해요. 전 개인적으로는 유신론자인데, 왜 유신론이냐는 질문을 무신론자에게 받으면 "난 신이 있다고 믿는 편이 훨씬 행복하다"라고 이야기 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오마럽님의 거부도 존중합니다. 그런데 거부하거나 인정하려는 그 시도 만으로도 유신론의 영역에 들어온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네요.
16/04/22 15:36
저는 '잘못된 것을 믿어서 행복하느니, 참된 것을 (인간이 100% 알 수는 없겠지만) 추구하면서 고통스러워하겠다' 쪽입니다.
1. 박근혜가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쪽으로 교과서를 편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2. 옛날 일본 제국이 반자이 어택하고 돌격하고 1억 총옥쇄를 주장하는 것이나, 3. 기독교 성경을 글자 그대로 해석해서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데 쓰는 것이나. 다 '자기가 행복하겠다고 잘못된 것을 믿는' 결과가 되는 거죠. 진화론에 따르면, 애초에 신이 이 세상의 성립과 유지, 발전에 끼어들을 어떠한 필요성도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도입할 필요성이 없는 것에 대해서 전 거부합니다. 아, 인격신이 아닌 형태의, 자연법칙적인 신은 믿습니다.
16/04/22 15:34
마지막 장면에서 머리를 자를 때 전도연이 송강호보고 거울 좀 잡아달라고 하는 장면을 완벽한 결말이라고 느꼈습니다. 인간세상에서 절망하고 절대자의 도움을 간절히 원하다가 그마저도 자신을 버렸다는 좌절감에 바닥까지 떨어졌던 사람이 다시 바로 옆에 서있는 동반자한테 처음으로 도와달라고 하는 장면이 이 영화의 기승전결을 모두 담고 있던거 같아서 정말 감명깊었습니다.
16/04/22 15:55
짧게 언급되었지만 저 있어보이는 척때문에 참.... 정말 좋아하는 영환데...
이상하게 송강호가 교회 주차관리 해주던 그 씬이 자꾸 생각납니다... 진짜 너무 리얼했거든요..
16/04/22 16:16
이런영화를 뭐라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런걸 어려운 영화라고 부르는데 정말 싫어하는 편이죠. 뭔가 영화가 너무 어려워서 공부하면서 봐야할것 같은 그런 느낌?
그래서 이 영화 볼때도 싫었지만 그 당시 썸녀가 너무 좋아해서 어쩔수 없이 봤었는데 보고나서 정말 긴 여운 남는 영화 였습니다. 보길 잘했다 싶었던 영화. 그전까지는 송강호나 전도연이 연기 잘하는지 몰랐는데 이걸보고서 진짜 그냥 그 캐릭터 자체더군요
16/04/22 16:25
잘봤습니다 예전에 본 영화지만
이 글을 보니 다시금 새롭게 다가오는군요 그 특유의 먹먹함과 불편함 아득함이 깊게 박히는 작품이 아닌가 싶어요 다른 얘기로 서두에 '다른 감독들이 섭섭할까봐 이참에 밝혀둔다' 라고 하셨는데 혹시 저희가 잘아는 영화쪽관계자거나 영화감독님이신가요 미리 인사드립니다!! ^^ 반갑습니다
16/04/22 20:17
아 제 블로그에 있던 글을 긁어와서 저런 자의식 과잉 표현이 여과없이 들어갔네요 유유 관계자가 아닙니다 관계자 친구는 몇명 있지만유..
16/04/22 17:41
원작인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는 아주 짧은 단편이지만 기독교적 종교관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정말 많이 준 작품이죠. 신의 가장 큰 자비 중의 하나일 용서가 사건의 가해자에게는 희망을 주고 피해자에게는 절망을 준다는 이 간단한 이야기는 원작에서는 본문에서 말하셨듯이 자살로 다소 아쉽게 결말이 나지만 누구라도 그 상황에서 결말을 내는것이 쉽지 않았을것 같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인 김은국의 순교자에서는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종교관을 보여주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요. 이 이야기의 결말 역시 기독교의 종교관 밖에 서있던 주인공이 마지막에 길게 늘어선 무리에 합류하면서 이야기가 끝나게 됩니다. 이 장면이 '하나님, 신, 절대자의 질서에서 벗어나있던 주인공이 다시 그 질서안에 들어왔음을 의미한다' 점에서 제가 밀양의 결말을 보고 생각했던바가 글쓴분의 결말에 대한 해석과 유사한 점이 있는것 같아서 반갑네요.
16/04/22 17:51
박해받는 신도들을 구출하고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는 대체역사물.... 은 농담이고 다크나이트 시리즈 생각해보면 잘 어울릴 거 같은데요.
16/04/22 17:50
으레 원작대로 가겠거니 싶었다가 전도연에게 잘 보이려고 종교생활을 하기 시작했던 송강호가 마지막엔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안에 들어가 있던 부분에서 많이 놀랐죠. 원작이 원작인데다 전도연의 임팩트가 너무 커서 묻혔지만 이 영화는 어떻게 봐도 기독교적 영화에요. 제가 목사면 맨날 설교시간에 송강호 얘기할텐데.... 일단 종교(특히 기독교)면 까고들어가는 게 기본 속성인 요즘 영화들 사이에서 정말 보기 드물게 종교적 메시지를 녹여냈죠.
16/04/22 19:06
교회 내에서 많이 언급 되긴 합니다~
주로 "용서, 회개" 라는 주제로 설교할 때 단골로 나오죠. 용서와 회개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깊은 생각을 가지게 하는 좋은 영화입니다.
16/04/22 18:28
저는 종교적이지만 기독교적인 영화는 아니라고 봤습니다. 신애가 마지막에 도움을 청하는 장면을 통해 감독은 구원이 어디에 있는지 말합니다. 그것은 십자가달린 건물에 있는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 즉 '인간'에 있는 것이죠. 이 지점이 원작과의 차이점이고 이창동 감독의 필모에서 보이는 그의 작가관이 아닐까 합니다.
16/04/22 19:34
저도 똑같은 생각을 했네요..!!
영화에서 인상적인 씬이 많지만 가장 좋았던 부분은 역시나 엔딩부분 이였네요 몇번이고 다시돌려 봤습니다
16/04/22 20:16
역시 해석은 다양해야 즐겁네요^^ 저는 그 씬에서 땅바닥에 떨어진 햇살을 오래도록 비추는 카메라에 더 의미를 뒀었습니다. 신애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종찬이 신의 모습이다라고 표현한 평론도 있더라구요.
16/04/22 20:27
'종찬이 신이다.'라는 건 결국 '인간이 구원이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고 보여지네요. 이를 신의 자애로움으로 보느냐,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 주목하느냐로 갈리는데 이쯤되면 다소 정치적인 의견 차이가 아닐까 싶네요. 종교를 옹호한다면 전자로 볼 것이고, 종교에 회의적이라면 후자로 바라볼테니까요.
다만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할 점은, 이 영화가 종교적 허상(최소한 국내 기독교의 병폐)에 대해 확실히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겠죠. 신의 자애로움을 말한다 하더라도 속세의 때를 나무라고 있다는 점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16/04/23 10:27
그렇게 보기엔 [십자가 달린 건물]은 기독교 스스로도 까는 유명한 클리셰라서요.
예수는 딴 것도 아니고 예루살렘 성전보고 이딴 건 그냥 무너져 이럴 정도였으니 뭐....
16/04/23 07:24
보고 싶었던 영화인데 어쩌다 보니 기회를 놓쳐서 못본 영화중의 하나인데 이 리뷰를 보니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영화를 안 본 입장에서 설명하시는 줄거리와 장면들을 한번 상상해 봤는데, 본문의 내용만으로는 신애가 자살하려다가 종찬의 도움을 청해서 삶을 이어가는 것, 그리고 마지막에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장면을 여주인공이 신의 질서안으로 들어온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위에서도 몇 분이 말씀하셨지만 결국 신애를 구한것은 인간인 종찬이었고, 자살을 포기했다고 해서 신애가 가지고 있었던 신에 대한 반항심(?)이 없어진다고 볼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혹시 영화에서 신애의 심경 변화를 나타내는 장면이 있었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어쩌면 따뜻한 햇살은, 우리가 신을 믿건 믿지 않건간, 누군가를 용서하건 용서하지 않건, 삶을 이어가건 이어가지 않건 변함없는 자연의 모습일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영화를 안 본 터라 참 궁금하네요. 그리고 제가 아는 이창동 감독님은 그렇게 편하게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나타내는 영화를 만들 분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 사람의 생각이라는게 계속 변할 수 있는 거라...
16/04/23 10:26
이 영화에서도 한국 기독교의 허상 같은 건 여지없이 탈탈 털어서 비판했는데 종교 자체에 대한 선은 넘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이 보여서
저도 좀 의외이긴 했습니다. 원작에 이창동에 이거 내용 뻔하겠거니 싶었는데 이창동 감독도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16/04/23 12:25
신앙으로서의 기독교를 설명하지는 못한 영화지만,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설명해주는 영화는 된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대해 접근하는 영화는 아니지만(그런건 교회가서 배워야겠죠), 신과 종교에 대한 대표적 오해에 대해 풀어준 영화 아닌가 싶어요. 한국 사회에 종교를 불문하고 가장 널리 퍼진 가치는 '복' 이죠. 복받고 잘살기위해 종교 믿는거고 신은 나를 잘되게 잘살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흔히 생각하는데요 영화는 자식이 유괴살해당한 이 엄청난 불행 앞에서 종교가 말하는 '복' 의 개념에 대해 정면으로 다시생각해보라고 해주고 있죠. 사람의 입맛대로 복을 주고 필요에 따라 주문하면 채워주는게 신이고 종교인가? 자식을 살해한 살인범도 회개하고 평안하게 세상 떠날수 있는 그 거대한 진리 앞에서 과연 주인공은 신으로부터 어떤 복을 받고 있다고 할수 있는가? 영화는 물론 신애를 중심으로 두고 있지만, 전혀 종교와는 상관없을것 같은 종찬이 교회에 출석하고 마음이 편하고 좋은것같다 하는 결말 부분을 보며, 이런 사건들이 종찬에게 또한 신의 섭리가 있었다라고 풀어내는 모습에 감탄했습니다. 햇볕은 누구에게나 따뜻하게 내리고 있으니까요. 아주 종교적인 영화였습니다. 흔히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신과 종교에 대한 이미지에 대해 오해를 많이 해소해준, 어떤면에서는 본질에 가까웠고 그래서 더 불편했겠다 싶은 영화였어요.
16/04/23 12:53
저도 그랬고,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보고 기독교의 '용서'에 대한 회의가 드셨을텐데, 의외로 성경에 그 답이 나와있더군요. 피지알 질게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태복음 5장 23~24절] 유괴범은 먼저 신애한테 용서를 구했어야죠. 아무튼 저도 이 영화의 여운이 굉장했었네요.
16/04/24 13:27
잘 읽었습니다.
워낙 좋아하는 영화라 늦게나마 댓글 달아봅니다. 대부분의 밀양 리뷰가 그렇지만 지나친 종교적 해석이 오히려 이 영화가 가진 깊이를 깍아먹는것 같습니다 이 영화에서 종교를 단순히 신애가 '살아내가는' 과정중에 하나로 보면 흥미로운 해석의 가능성이 많이 열리게 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말씀해주신 신의 섭리, 질서 그런거 없고 결국 삶이란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다라고 봤습니다. (반독교적으로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저 기독교인입니다.) 이러한 해석이 힘을 얻는 이유중에 하나만 꼽아보자면 송강호는 굉장히 도구적인 역할로 관객의 시선을 대변하죠. 어디에나 있을 법한 사람입니다. 위대한 신의 섭리를 가진 신과 '반대되는 의미로서의 사람'을 연기한 셈이죠. 이러한 맥락에서 엔딩신에 멀찍이 떨어져 거울을 들어주는 송강호는 신애가 그렇게 갈구하던 '신이 사랑한 신애가 아닌' '사람'이 사랑한 신애를 말해주고 있어요. 마지막 장면, 잘려진 머리카락 너저분한 쓰레기들 모두 사람들이 자아낸 것들이죠. 이러한 장치들 때문에 거기에 비친 햇살은 따스하지만 아주 투박해 보입니다. (이 영화에서의 햇살은 각각 다른 상징성을 가지고 세번정도 등장합니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신의 섭리를 나타내는 햇살이 아닌 단순히 인간 군상들을 비추는 빛으로 읽히죠. 혹은 위대한 신의 섭리 그런거 없이 그저 지켜 보기만하는 신으로 읽히기도하구요. 또 하나 보태자면 이창동 본인도 "너무 종교적으로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바 있고 추측이지만 작위적인 것을 극도로 혐오하는 이창동이 신과 종교에 대한 어떤 메시지를 이 영화를 통해서 전달하려고 했다? 그다지 설득력이 없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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