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파의 전성시대는 언제였을까.
꾸준히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피파리그.
하지만, 그들은 항상 메이저이지는 않았고, 약간은 마이너에 더 가까운 측면도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꾸준히 게임을 이어왔고, 오늘날에 비슷한 피파온라인으로 종목을 변화하면서도 자신의 영역을 지켜가고 있다.
투명클랜이라는게 있다.
피파의 클랜인데, 이 클랜의 지주 역활을 한 선수는 프로다.
그냥 프로가 아니라, 대단한 업적을 남긴 프로다.
아이디는 화산이라는 뜻의 Volcano.
그래서였을까. 그는 몇 번의 폭발로 천지를 뜨거운 용암으로 물들이는 화산처럼, 몇 차례의 폭발적인 위력을 내세우며 천하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데 성공한다. 최대한, 그의 이름을 포털에서 치면, 이종격투기 선수 이름이 먼저 뜨지만, 그래도 그는 성공한 피파게이머이다. 아래에 나열할 그의 경력을 보면, 화려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 것이다.
[2002년 3월] 2002 인천 KT배 FIFA2002 대회 우승
[2002년 5월] Cocacola FIFA2002(WCC) 세계대회 한국 국가대표선발전1위
[2002년 6월] Cocacola Wolrd Cyber Cub (WCC) 세계대회 우승
[2003년 7월] 온게임넷 피파2003 Cyber PeaceCup Korea 우승
[2003년 8월] 제 3회 WCG2003 세계 게임 올림픽 한국 국가대표 선발전 1위
[2001년 9월] 메가패스배 FIFA2001 대회 32강
[2002년 9월] 제 2회 WCG 2002 세계게임올림픽 한국국가대표선발전 16강
[2003년 10월] 제 3회 WCG2003 세계 게임 올림픽 글로벌 파이널 동메달
[2003년 10월] 제 3회 WCG2003 세계 게임 올림픽 글로벌 파이널 국가대항전 4위
[2004년 8월] 제 2회 챔피언스데이 MBCgame 싱크마스터배 Fifa2004 A1리그 2위
[2004년 8월] 제 4회 WCG2004 세계 게임 올림픽 한국 국가대표 선발전 2위
[2004년 10월] 제 4회 WCG2004 세계 게임 올림픽 글로벌 파이널 금메달
(강조는 필자.)
2002년 6월의 우승 기록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나와있지 않다.
워낙 피파리그의 기록이 적기 때문에 그가 어떤 선수들과 부딪히면서 우승을 차지했는가에 대해서는 알려진바가 없다. 다만, 명색이 세계 대회였던만큼 세계 각지의 선수들과 겨루었음에는 분명하다. 사실, 2001년과 2002년에는 한국이 피파에 있어서는 세계 최강국이었던 시절이기 때문에, 그의 우승은 그런 흐름의 한 연속이라고 보아도 좋았다. 아직은 아마추어 신분이었지만, 이 당시에 그는 이미 프로의 기량을 지니고 있던 선수였다.
2003년 처음 개막한 피스컵. 그에 맞추어 홍보를 위해 사어버 피스컵이 기획이 되었고, 그는 당시 아마추어 예선 1위로 통과하는데 성공한다. 그는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우승자로 짝을 이룬 것이 누구인지는 확인할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지훈으로 기억이 되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 여하튼 그는 이 대회의 우승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2004년은 그에게 있어서 영광의 한 해였다.
투명클랜을 이끌고 그는 먼저 MBC게임 피파 클럽 챔피언십에 나간다.
투명클랜의 전력이 탁월한 것은 아니었기에, 그의 성적은 다소간 평범한 수준으로 끝이 났다. 하지만, 이어 벌어지는 MBC게임 피파 A1리그에서는 다른 성적을 낸다. 강력한 모습을 연이어 선보이면서, 파죽지세로 결승까지 오른 것이다.
그 해 8월에 벌어진 결승전에서 그는 하지만 아쉽게 패한다. 단단하고 정석적인 스타일을 구사하는 게이머, 황상우에게 패배하면서 그는 자신의 리그를 이렇게 마무리하게 된다. 결승전에서 승 패는 주고 받았지만, 자신의 홈에서 더 많은 골을 내 주었던 것이 뼈아픈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그러나 10월의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달랐다. 이미 그는 WCG 2003 동메달로 WCG에 대한 경험을 축적한 상태였고, 그 경험은 점점 커지면서 한국 예선전을 1위로 통과하고, 본선에서도 기세를 떨치는데 도움이 되었다. 총 전적은 9승 1패. 압도적인 스코어였고, 결승에서는 피파가 마지막 메인 경기로 선정이 되면서, 이 대회 최후의 금메달리스트라는 영광까지 함께 안았다. 2003년의 아쉬움을 완벽하게 떨쳐버리는 그런 결과를 차지하게 된 것이자, 동시에 그는 세 번째로 WCG 우승을 차지한 피파 한국게이머가 되었다.
그 뒤의 소식은 좀 짧아진다.
MFL에 출전했찌만, 2004년의 영광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처음을 3전 3승으로 통과했지만, 8강에서 3전 3패로 무너지는 실망스런 결과를 나타나었다. 물론, 그가 맞선 상대들은 강했지만, 그는 이미 그런 상대들을 뚫고 여러 번 결승에 진출한 역전의 용사였다. 단순한 컨디션의 난조였을까, 아니면 그의 스타일을 읽고 나온 상대의 대비때문이었을까, 어찌 되었건, 그는 이 대회를 끝으로 피파 무대에서는 사라지게 되었다. 지금 한창 진행중인 온라인리그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아니, 2005년 8월의 MFL1에 그의 이름이 없는 것을 보면, 그는 어쩌면 게임에 대한 의욕을 잃고서 시즌에 임했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그는 갑작스런 3패로 탈락의 고배를 들면서, 동시에 사라졌다.
마치, 화산이 타올랐다가 순식간에 꺼진 것처럼.
그는 휴화산일까, 사화산일까.
그가 1982년생임을 감안할 때, 현재 군에 입대하지 않았을까 하고 추정도 해 보지만, 정답은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그가 한 시대를 풍미한 피파 게이머이고, 피파를 사랑했던 사람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의 지금 모습이 어떠했던, 그가 보여준 투지와 능력, 그리고 우승의 영광은 그를 기억하게 만드는 한 추억의 장이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