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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6/10/14 02:26:32 |
Name |
두번죽다 |
Subject |
죄송합니다. 공부 열심히 하세요. |
힘든 하루를 끝내고, 조금은 여유있게 금요일의 향기를 만끽하고 있는 늦깍이 고시생입니다.
하하하! 사실은 백수죠 ㅜ.ㅜ
꼬박 1달 간을 뜬 눈으로 밤을 새면서 어렵게 결정한 고시생 얘기는 둘째치고,
공부가 사실은 재밌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분노해 기염을 토하며, 도서관을 제 집처럼 잘 쓰고 있습니다.
남자의 계절 가을입니다. 가을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그녀가 없다면 조금은 식상하겠죠?
맞습니다. 제 맞은 편에는 이틀 걸러서 한번씩 보름달이 뜹니다.
제 서식지인 모교의 열람실은 칸막이가 낮아서 고개를 들면 마주앉은 사람 얼굴을 훤히 볼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
보름달 같은 그녀는 정말로 보름달입니다.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맞며느리감으로 손꼽힐 스타일의 그녀,
도서관에서 자다 입가에 살짝 흐른 침을 닦으며 눈을 부비되는 그녀를 보며,
학구열에 불타는 고시생의 마음도 잠깐 움직였나 봅니다.
하지만, 고시생이라는거~
그것도 이제는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라는 사실에 과거와는 달리 소심해지는 저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남자는 나이를 먹을수록 약해지고, 소심해진다는 얘기가
어느 날부턴가 집안 설겆이와 빨래를 도맡아하고 계시는 아버지의 모습과
지금의 제 모습이 눈 앞에 살포시 겹치면서 절심히 와닿았습니다.
군대에서 잠깐 만나본 마초맨이 소리칩니다. '그래, 넌 고시생이야. 2년만 고생하면 세상 여자는 모두 니꺼야'
이어서, '2년 지난 후에 보름달을 만난다는 보장있냐?'라고 남자의 로망이 가만히 속삭입니다.
그렇게 1달을 보냈습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신경쓴 보름달의 옷차림에 가슴이 뜁니다.
"그래 저건 분명히 나에게 뭔가를 바라는 제스쳐야!" 혼자서 곡해합니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지만, 알지만, 속아줍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불패라는 50%확률의 제 연애지침서는 이미 던져버린지 오래입니다.
제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립니다.
'니가 장동건이냐?', '장동건이라도 힘들지 몰라' 라고 외치는 제 진심은 몰라라한채 일단 쪽지 하나 들이밉니다.
커피 한 잔 하실래요?
...
...
이 얼마나 진부한 멘트입니까?
이미 고등학교 시절 마스터했다고 생각한 '차 한잔해요'와 전혀 차이점을 찾지 못할 쪽지를
건너편으로 보낸 저에게 여유가 그리 없었나봅니다.
그리고, 'Yes --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No -- 공부만 열심히 할께요'라는 참 순박한 마무리까지 해줍니다.
당연히 사태는 예정된 수순으로 흘러갑니다.
'죄송합니다. 공부 열심히 하세요'라고 쓰인 쪽지가 건너온 순간,
사실 보름달이 제 얼굴을 볼까봐 책상에 얼굴 밀착하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공부 열심히 하세요'를 넓디넓은 연습장에 쭉 써내려갔습니다.
한 페이지 정도 써서 제 아픈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사실 2줄 쓰고 말았습니다.
하하하~ 네, 저 이런 놈입니다.
그리고, 보름달은 문자를 보냅니다. 오늘도 한 놈 낚았다는 승전보를 보내는 모양이더군요. ㅜ.ㅜ
뭐, 지루한 고시생활의 활력이라고 생각하면 큰 무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알고싶었던 사실은 무엇이었을까?' 제 자신에게 묻습니다.
저는 우리(?) 보름달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습니다.
앞으로 봐도 좋고, 안봐도 그만이지만,
처음 본 순간 이 사람이라고 하는 느낌보다는 그냥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 그래서 궁금한가 봅니다.
지금 힘들면, 2년 후라도 꼭 한 번은 만나서 누구지는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야 Plan - Do - See - Act라는 답이 나오니까요.
곰곰히 담배 한 대를 피면서 생각했습니다. '어쩌지?' 답이 없더군요.
답이 없을 땐 정공법!
제 삶의 목표이자, 친구인 여유란 놈이 슬금슬금 찾아와서 제 어깨를 가만히 토닥입니다.
'이제 서로가 서로를 알겠다. 걍 인사하고 다녀.'
음.. 그렇게 마무리지어졌습니다. 헤헤.
저는 그렇습니다. 남자친구가 있어도 그만, 사귈 맘이 없어도 좋습니다.
하지만, 궁금합니다. 어떤 사람인지
딱히 찝어서 말하기 힘든 느낌의 정체는
우리 만나요가 아닌 당신은 누구세요?입니다.
P.S. 사회가 어려워지면 고시 열풍이 분다는데, 고시생이 많아지는 도서관입니다.
모두가 힘들때지만, 소소한 일상 속에서 찾는 감동과 재미 잊지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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