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에 벌어진 군사 반란을 배경으로 하는 근현대사 역사 영화다. 역사가 스포일러인지라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결말을 알다시피, 서울의 봄은 요즘의 봄날처럼 짧게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길고 긴 군사 독재의 겨울이 이어졌다. 영화는 우리의 봄날이 어떻게 독재의 겨울에 짓밟혔는지 그 내막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 영화는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등장인물의 이름을 실제 인물과 다르게 부르고 있다. 이 글은 가급적 영화에 집중하기 위해 실존 인물이 아닌, 등장인물의 이름을 쓰고자 한다.
굉장히 상업적인 영화
역사 영화라고 소개하면 지레 거부감이 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루하지 않을까? 훈계하는 느낌이 아닐까? 영화 <서울의 봄>은 전혀 그렇지 않다. 2시간 내내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이 가득하고, 관객의 심금을 울리는 연출이 산재해 있다.
반란군의 입장에서 보면 군사 반란 계획이 틀어질까 봐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면, 영화 초반 전두광 장군이 총리 공관 위병소에서 체포당할 뻔한 순간이 있었다. 그 숨 막히는 상황과, 또 이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절로 조마조마해진다. 역사 영화가 아니라 잘 만든 첩보 서스펜스 영화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진압군 입장에서 보면 애국심을 자극하는 연출이 눈에 띈다. 특히 백미는 이태신 장군이 홀로 행주대교를 건너려는 2공수여단을 막아선 장면이다. 아무리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고 하나, 이런 장면은 잘못 연출하면 촌스러운 모습으로 비치기 쉽다. 장비가 장판파에서 홀로 조조 군을 막아낸 것처럼 무력과 기백으로만 상황을 처리했다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의 똑같은 결과를 내면서도 적절한 상황을 제시하고 세련된 영상미를 더하면서 납득할 만한 장면을 만들었다. 뽕은 뽕대로 채우면서 촌스러움도 피해 가는 영리한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뽕 차오르는 장면을 촌스럽지 않게 연출할 수 있다면 안 할 이유가 없다. (대부분 그걸 못하지만) 그리고 당연하게도 무미건조한 연출보다 훨씬 재밌다. 영화가 굉장히 대중적이면서도 완성도가 높다고 느꼈던 지점이다.
그리고 반란군과 진압군의 구도를 이태신과 전두광의 인물 간 구도로 함축한 점도 훌륭하다. 조직보다는 인물에 감정을 이입하기가 쉬운 법이다. <서울의 봄>은 내전 구도를 대결 구도로 함축하면서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확실한 재미를 거머쥐었다.
마지막으로 기꺼이 설명충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대중적인 영화라고 칭찬하고 싶다. 영화에는 중간중간 움직이는 PPT가 등장하거나, 작전 성패의 핵심 요소를 등장인물이 자세하게 내레이션하기도 한다. 그런 긴박한 상황 속에서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현실성을 강조하는 영화는 가급적 설명충이 등장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기도 한다. 더 나아가 설명충이 상황을 내레이션하는 것보다는 인물과 사건을 보여주는 게 영화적으로 더 좋은 연출이기도 하다. 하지만 <서울의 봄>은 기꺼이 설명충이 되었다. 심지어 PPT까지 삽입했다. 이는 온전히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함이다. 더 예술적인 영화를 만드는 것보다 관객에게 친절한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나는 이 점을 매우 극찬하고 싶다.
이 PPT의 백미는 마지막에 12. 12 군사 반란에 가담한 사람들이 얼마나 해 처먹었는지 브리핑하는 것이다. 그들이 파티를 열고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영화다운 연출이었다. 하지만 그런 상징적인 장면보다 PPT로 보여주는 게 훨씬 더 와 닿았다. 그리고 더 효과적이었다. 참 많이도 해 처먹었다는 게 확실하게 드러났으니 말이다.
허술함을 뛰어넘는 무능함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점은 12. 12 군사 반란이 생각보다 허술했다는 점이었다. 사실상 시작부터 삐걱였다. 대통령의 재가도 받지 못했고, 정상호 총장을 납치했던 것도 순탄치 않았다. 전두광이 총리실 위병소에서 체포당할 뻔했을 때는 '이딴 작전으로 나라를 뒤집으려 했다고?'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런데... 그 허술함을 뛰어넘는 무능함이 있었다. 민성배 육군 참모차장은 매번 잘못된 상황 판단으로 막을 수 있었던 군사 반란을 성공으로 이끌었고, 오국상 국방부 장관은 제 몸 하나 챙기기에 급급해서 끝내 군사 반란 성공에 마침표를 찍어 주었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어느 쪽도 성공하고픈 마음이 없어 보일 정도였다. 90분 내내 똥볼만 차다가 자책골로 승부가 결정되는 축구 경기를 본 것 같은 기분이다. 그나마 그 와중에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고, 이를 밀어붙이는 추진력을 보여준 사람은 이태신과 전두광뿐이었다고 생각한다.
이태신 vs 전두광
앞서 말했듯이 영화는 반란군과 진압군이라는 내전 구도를 이태신과 전두광이라는 인물 구도로 함축하고 있다. 아주 명확한 선악 구도로 나타낸 것이고, 이는 당연하게도 대중적인 면모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이 하나 있다. 전두광을 무능하게 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니, 솔직히 영화에서 가장 유능한 인물을 꼽자면 단연코 전두광일 것이다. 위기를 극복하는 영리한 기만전술을 선보이기도 하고, 필요한 인물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게 긴박한 상황 속에서 임기응변으로 이루어 졌고, 그때마다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선보인다.
최고의 장면은 도희철 2공수특전여단장을 현장으로 보내기 위해 설득하는 장면이었다. "지금 현장으로 가지 않을 거면, 차라리 나를 쏴라."라는 모습은 '리더십'이라는 말을 기꺼이 붙여주고 싶을 정도로 훌륭하게 느껴졌다.
만약 위 장면까지만 나왔다면 '악역인 전두광을 이렇게 묘사하는 게 과연 맞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다음에 놀라운 장면이 등장한다. 이태신이 전두광과 똑같은 리더십을 보여준 것이다.
소수의 병력만으로 사실상 죽으러 가겠다는 이태신 장군을 부하인 강동찬 대령이 총으로 막아선다. 그러자 이태신 장군은 "쏠 거면 지금 쏴라. 시간 없다."라고 말한다. 배우가 다르고 연기 톤이 다르긴 했지만, 사실상 똑같은 리더십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왜 감독은 선역과 악역이 똑같은 리더십을 갖춘 것으로 묘사했을까? 나는 <서울의 봄>이 일부러 전두광을 유능하게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종종 정치인을 두고 다음과 같은 'vs 놀이'를 하곤 한다.
'착하지만 무능한 정치인 vs 나쁘지만 유능한 정치인'
여기서 꽤 많은 사람이 나쁘지만 유능한 정치인이 차라리 낫다고 말한다. 솔직히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서울의 봄>은 '나쁘지만 유능한' 인물이 권력을 잡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는 역사가 말해주듯이 길고 긴 군사 독재의 겨울이었다.
국가와 민주주의를 좀먹는 기생충은 누구인가?
영화를 보기 전까지 나는 12. 12 군사 반란이 굉장히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만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운이 좋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그 운에 어느 정도 필연적인 면이 있었다는 생각이다.
반란군의 계획은 허술했지만, 당시 정부 관료와 장성들은 그 허술함을 뛰어넘을 정도로 무능했다. 그럼 그들은 왜 무능했을까? 영화에서 이에 대해 전두광이 노골적으로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박 대통령이 반란이 일어날까 두려워 무능한 똥별들로 자리를 채웠다." (정확한 워딩은 다르다) 지난 시절의 독재가 소신 없이 보신만을 바라는 인물들로 조직을 채웠고, 그 덕에 허술한 계획조차 막지 못한 무능한 결과가 초래된 셈이다.
[소신 없는 보신. 나는 이것이 국가와 민주주의를 좀먹는 기생충의 정체라고 생각한다.] 나라와 국민을 위하지 않는 사람들이 국가의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자리에 있으면, 아무리 그 사람들이 똑똑하고 유능해도 국가라는 조직은 무능하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오국상 국방부 장관의 모티브가 된 노재현은 멍청한 사람이었을까? 아니다. 육군사관학교 3기 출신으로 한국전쟁에도 참전해 활약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제 몸 하나 챙기기만 급급해서 최악의 한 수를 두게 된다.
21세기라고 다를까? 국민을 사랑하지 않는 공무원, 정의를 하찮게 여기는 검사, 공정함이 결여된 판사, 승진만 바라보는 군인, 국가의 미래보다 공천이 더 중요한 국회의원까지... 12. 12 군사 반란은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결과라고 생각한다.
영화 <미스 슬로운>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서울의 봄>에 등장했던 무능했던 사람들에게 이 말을 들려주고 싶다.
"저는 투표권을 행사하는 분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과 나라의 이익을 따라주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제 소원은 헛된 것이고, 절대 이뤄질 수 없다는 걸 압니다. 이 나라의 시스템이 썩었기 때문입니다. 양심에 따라 투표하는 정직한 의원에게 보상하지 않고, 쥐 같은 자들에게 보상합니다. 자기 자리만 보전하면 나라도 팔아먹을 자들에게요. 실수하지 마세요. 이 쥐들이 민주주의의 진정한 기생충입니다."
덧. 당시로부터 44년이 지난 오늘날에 12. 12 군사 반란을 다룬 영화가 어떤 의미를 전달해 줄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오동진 영화평론가의 칼럼이 좋은 대답을 들려준다. 관심이 있다면 꼭 읽어보길 바란다.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019
덧2. 마지막 최한규 대통령의 행동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는 마지막에 가서야 정상호 육군 참모총장의 체포를 재가하면서, 재가 시각인 '12월 13일 A.M. 5:30'을 적는다. 그리고 "사후 재가입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실제 역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정말로 정의로웠다면 끝까지 결재를 승인하지 말았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것이 결정적 증거가 되어 훗날 전두환, 노태우의 내란죄가 성립되기도 했다. 이 장면은 사람에 따라 평가가 나뉠 여지가 많은 부분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영화는 이 장면을 담담하게 힘을 빼고 그려낸다. 판단을 관객의 몫으로 돌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런 결정이 꽤 적절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