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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9/12/04 04:31:25 |
Name |
王天君 |
Subject |
Play at the Game. |
기대에 부풀어, 혹은 불안감에 떨며 송병구와 이영호의 경기를 보았다. 그야말로 용호상박의 대결이오, 명불허전의 승부였다. 둘의 컨트롤, 전략, 심리전들도 참 좋았지만 그 둘의 특성이 그대로 나타나는 게임이라 더 재미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불같은 기세로 기회다 싶을 때 치고 나가는 이영호, 위기를 물 흐르듯 유연하게 받아넘기는 송병구, 서로의 손에 꼭 맞는 창과 칼을 휘두르며 맞부딪히니 불꽃이 튀고 바람이 베이는 듯 했다.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순간에서도 서로 미소를 주고 받는 그 모습에서는 무림의 낭만 같은 것마저 느껴졌다고 할까. 호적수를 만나 자신의 모든 기량을 뿜어냈다, 이기고 지는 것이 얼마나 대수롭겠는가 - 하는 고수들의 초연한 정신세계를 엿보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경기도 경기거니와 그 둘의 시합이 시작되기 전 응원전이 또 볼 만했다. 목소리와 목소리가 공중에서 엉키고 파열한다. 송병구 파이팅 이영호 파이팅 하고 한번 외치는 것으로는 못내 부족한지 몇 번씩이고 관중들은 이름을 연호한다. 송병구를 향한 굵은 목소리들이 쩌렁쩌렁하게 울리는가 하면 이영호를 향한 높은 목소리들이 캬랑캬랑하게 울린다. 모니터 너머로 보는 데도 불구하고 공기가 파르르 떨리는 듯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이내 현장에 있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 함성 속에 실린 기세를 직접 느꼈었다면 좋았을걸. 공교롭게도 앞의 세 경기는 애피타이저 요리처럼 가볍게, 싱겁게 끝나버렸다. 이제 특급요리사들의 진미가 눈 앞에 펼쳐지기 직전 주방에서 나오는 풍미에 본식을 기다리는 식객들은 벌써부터 들썩거리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어디서 많이 봤던 듯한 장면이다. 4연패 이후 이영호와의 승부를 앞둔 송병구를 뜨겁게 응원하는 경기장의 모습에 자연스레 다른 경기가 오버랩되었다. 바로 신한은행 스타리그 4강 5경기 오영종 대 전상욱. 한치도 물러설 곳이 없는 배수의 진 앞에서 최강의 적을 눈앞에 두고 있는 그의 이름을 팬들은 목청껏 부르짖으며 승리를 기원한다. 이길 수 있으리라는 만용에 가까운 믿음, 이겨야 한다는 절박함, 긴장감이 팽배하게 감도는 가운데 염원과 염원이 충돌한다.
한낱 게임질을 보면서 왜 이리도 흥분하고 열광하는가. 그것은 게임이라는 장에 승부의 진정성이 묻어나오기 때문이다. 스타리그는 버라이어티 쇼가 아니다. 선수들에게 시청자들을 고려할만한 여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보는 사람 즐거우라고 몰래배럭을 하며 막더블을 가지 않는다. 눈 앞의 1승에 목을 매는 프로들이다. 과거 김철민 캐스터의 표현을 빌리자면 현대의 Gladiator들인 것이다. 이 와중에도 관중들은 무난한 승부보다는 누가 이길지 모르는 극적인 재미를 바라는 욕심쟁이들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의 강함은 훼손되지 않기를 바란다. 결코 양립할 수 없는 Invincibility와 Drama. 시대의 강자로 설 수 있는 게이머는 많지 않다. 그러나 강하면서 동시에 감동을 줄 수 있는 게이머는 더 적다. 그렇기에 두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게이머는 하늘이 내려준, 복이 많은 선수인 것이다.
그렇기에 흥행적인 측면에서 볼 때 온게임넷 관계자들은 김택용보다도 오히려 송병구를 선호하지 않을까 하고 개인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묘하게도 송병구 선수는 극적인 상황을 잘 연출해낸다. 화려한 경기, 압도적인 경기는 선수 본인의 의지와 노력이 곁들여지는 부분이 많다 치더라도 치열하고 아슬아슬한 경기, 누가 이길지 모르고 마지막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그것은 그야말로 쿵짝이 맞고 상대방과의 손발이 맞지 않으면 만들어지지 않는 철저한 리얼이오 즉석에서의 라이브 협연이다. 하늘만이 결말을 아는 각본 속에서 송병구는 주연이 되어 열연을 펼칠 수 있는 경기복을 갖춘 선수다. 과거에 박정석과 오영종이 맡았던, 가슴 깊은 곳까지 뜨겁게 달구는 Dramatic Player의 계보를 이제는 송병구가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왜 하필 프로토스가 이렇게 극적인 승리를 일궈내는지. 프로토스란 약체종족의 숙명일까. 테란의 강대한 화력과 저그의 끝없는 생명력을 아직 다 밝혀내지 못한 신비로운 지혜로 맞서는 그 모습은 참 위태로워 보인다. 그렇기에 템플러의 싸이오닉 스톰이 작렬하고 인터셉터를 휘날리며 캐리어가 등장할 때 감동은 오히려 테란의 시즈탱크가 포화를 날릴 때보다, 디파일러가 다크스웜을 뿌리는 것과는 또다른 짜릿함을 느끼게 한다. 박정석, 오영종, 송병구, 그들은 그렇게 프로토스를 닮아있다. 강대한 적에 맞서는 순간 느껴지는 그 불안함도, 그리고 끝내 그것을 넘어서면서 모두에게 주는 카타르시스까지도 말이다.
*강민, 박용욱 해설은 굳이 넣지 않았습니다..위기를 넘어서는 드라마틱한 모습에는 쪼금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레포트 안쓰고 뭐하는 짓인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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