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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8/10/23 23:55:56 |
Name |
legend |
Subject |
두번째 황금의 가을(Golden autumn) |
오늘 윤용태 선수가 환상적인, 드라마틱한, 놀라운, 그 외 여러 수식어들을 더 붙여도 모자랄 훌륭한 경기로
현 저그 최강자 이제동 선수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윤용태 선수의 포스 뒤에 가려진 한가지 사실이 더 있습니다.
바로 오늘 치뤄진 경기에서 프로토스가 모두 올라갔다는 것이죠. 김구현, 윤용태, 김택용 모두 타종족들을 잡고
8강에 진출했습니다. 그리고 반대편 조에 있는 토스, 송병구와 허영무 또한 1:0으로 앞서며 유리한 상황에 있습
니다. 또한 온게임넷에선 도재욱과 송병구 두 토스가 4강을 치룸으로써 결승전에 토스가 오르는 것이 결정되어
있습니다.
이제 그 사실을 가지고 저는 지금의 시기에 제목과 같이 붙이고자 합니다. 두번째 황금의 가을.
길고 긴 10년 스타 역사에서 프로토스는 대부분 가장 약한, 가장 소수의, 그러나 가장 인기 있는 종족이었다.
대부분의 시기를 테란의 무한한 발전에 압박을 받고, 저그의 영원한 압제 속에 신음했다.
그러나 모든 10년이 다 그렇지는 않았다. 짧지만 강렬하게, 프로토스가 다른 두 종족을 앞섰던 시기들이 있
었다. 그 기간에 가을이란 계절이 자주 겹쳐서 가을은 프로토스의 계절이 되었다. 대부분의 가을이 프로토스
에게 있어 낭만과 아름다운 기억이었지만 특히 기억될만한 어떤 년도의 가을이 있다. 2003년의 가을, 온게임
넷에서 마이큐브-한게임으로 이어지는 바로 그 시기를 프로토스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3.3혁명 이전
모든 시기를 통틀어 프로토스가 유일하게 두 종족을 압도했던 시기, 그 때의 주인공들이 바로 현재 프로토스
의 전설이라 일컬어지는 박정석, 강민, 박용욱 등의 선수들이 활약하던 시기였다. 그야말로 프로토스의 넥서
스 색깔만큼이나 찬란한 황금시대였다. 가을 햇살에 익어가는 논의 황금빛 물결, 바람에 휩쓸린 노오란 단풍이
알 수 없는 어떤 낭만을 느끼게 하는 그런 가을, 황금의 가을이었다.
사상 처음의 프로토스 동족전 결승을 맞보며, 아름다운 시대를 만끽한 프로토스에게 그 다음에 올 암흑기에 힘
겨울 때에 우리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버텨나갈 수 있었다. 박정석과 강민, 박용욱이 보여준 아름다운 시대
는 훗날의 프로토스 플레이어에게 자존심, 자신감, 혼을 불어넣었다.
마지막 가을의 전설을 오영종이 이룬 후 3.3혁명때까지 프로토스가 버틸 수 있었던건 위와 같은 업적이 있었기에
힘을 얻었을꺼라 주장해본다. 단순히 게임 상의 발전만으로 프로토스가 변화한 것이 아니다. 스타가 스포츠라는
이름을 걸고 있다면 분명 그렇다. 스포츠에 있어서 과거의 기억과 영광, 그 정신의 소중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2007년, 3.3혁명 이후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던 저그의 압제는 끝났고, 프로토스와 저그는 주인과 노예의
관계에서 같은 신분의 자유민으로써 제대로 된 승부를 겨루게 되었다. 이는 단순히 저그의 극복이 아니다.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던 프로토스 정신의 해방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프로게이머 김택용의 플레이는 싫어하지만 프로토스
김택용이 종족에 기여한 공은 절대적이며, 지금의 평가보다 더 크게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로토스 정신의 해방은 곧 그동안 무언가에 갖혀 있던 다른 프로토스 게이머들이 벽을 뚫고 나오는 계기가 되었다.
알 수 없는 한계에 부딪혀있던 프로토스들이 벽을 넘어서자 곧 실질적인 게임상의 내용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좀 더 단단하게, 좀 더 날카롭게, 좀 더 화려하게, 좀 더 완벽하게.
멋과 정신이라는 사변적인 것에만 머물러 있던 프로토스가 테란같이 실제적인 면을 완성하기 위해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2008년, 약 2여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프로토스는 진화했다. 가슴엔 낭만을, 머리엔 완성
을 생각하는 프로토스 2세대들이 날개를 펴고 창공을 날아가기 시작했다. 바로 오늘같은 모습처럼.
그 모습이 왠지 낯이 익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예전의 어떤 시기와 많이 닮았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다.
작년 가을과 똑같은 올해 가을인데, 작년 가을의 누런 단풍잎이 올해엔 황금빛으로 찬란히 빛나고 있다.
혹시...두번째 황금의 가을(Golden autumn)이 오는 것은 아닐까?
무결점의 총사령관, 송병구. 현재 프로토스 중 가장 본좌에 가까운 완성형 프로토스. 그에게 남은것은 우승뿐.
혁명가, 김택용. 프로토스의 정신을 해방시킨자. 하지만 그에겐 기존 체제를 바꿀 힘이 한번 정도밖에 없었던 것인가?
그렇다 할지라도 그는 여전히 강하다. 강한 자는 언제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자신의 강함을 잃지 않는다면.
괴수, 도재욱. 프로토스의 영원한 무기, 물량의 극한에 들어서다. 파죽지세. 현재 그를 멈출 수 있는건 아마 총사령관
밖에 없을 것이다.
뇌제, 윤용태. 전투불패. 하지만 이제 그는 단순히 전투에서의 승리만을 아는게 아니다. 전투 그 자체를 완벽히 지배했
다. 전투를 조율할 줄 알게 된 그에게 저그의 마지막 보루 이제동마저 무너졌다.
곡예사, 김구현. 프로토스 사파의 뒤를 잇다. 김성제 등이 끊임없이 추구하던 견제의 극한, 그가 그 길을 이어받았다.
허느님, 허영무. 송병구의 거대한 그림자조차 그의 무한한 잠재력을 가리진 못했다. 폭풍이 불기 전, 고요한 대지에
그는 서 있다. 곧 불어닥칠 것이다. 엄청난 폭풍이.
공명, 박영민. 노장(老將). 하지만 신체는 젊은이의 그것이다. 오랜 경험의 연륜과 젊음에서의 파괴력. 그것이 합쳐진
그는 진정으로 명장이다.
끝이 안 보인다. 저들을 제외한 또 다른 신예들이 그들의 뒤를 이어온다. 첫번째 황금의 가을과 비슷하지만 또 다르다.
그때는 위대한 거목 몇몇이 모든 대지를 다 비추었다면, 지금은 드넓은 논의 황금빛 벼들이 수없이 출렁이고 있다.
곧 시작될 것이다. 아직 황금의 가을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제 너무나도 찬란히 빛나서 감히 쳐다볼 수 없는 그런 아름
다운 시대가 프로토스에게 열릴 것이다. 그것을 막을 수 있는건 테란제국의 유구함도, 저그의 구세전설도 아니다.
오직 시간만이, 그 찬란함을 퇴색시킬 수 있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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