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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8/01/18 00:17:27 |
Name |
카인 |
Subject |
천재니까 |
노을 짙은 하늘 아래 피투성이의 한 남자가 아무렇게나 쓰러져있다. 과거 영광스러웠던 시절, 그 때를 추억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그의 시선은 하늘을 지나 저 먼 곳을 향해 있었고 입가에 맺혀있는 희미한 미소는 불안정하기만 했다. 아니, 처연하다. 항상 최고의 자리에 있었기에 현재 자신의 위치를 인정할 수 없는걸까. 단지, 과거만을 그리워하는걸까.
"……."
그는 대답할 수 없었다.
제국의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천재라고 했다. 수많은 전장에서 그는 자신의 뛰어난 전략과 전술,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재기발랄한 기략으로 승리의 역사를 써내려갔다. 때로는 압도적인 힘으로, 때로는 특유의 경쾌함으로, 때로는 근성의 대역전극으로. 천재가 써내려가는 역사는 드라마 그것이었고 그 드라마 속의 주연은 역시 항상 천재 그 자신일 수 밖에 없었다.
천재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꾸며 절대적인 강함을 보유했다. 그가 속한, 그가 지휘하는 테란은 당시의 어떤 부대보다 강력했고 그 강력함을 기반으로 그는 과거 황제의 영광을 재현했다.
천재, 그는 황제의 뒤를 잇는 명백한 테란의 군주였다.
그 뒤로도 그의 군대는 계속해 승리를 거두었고, 단번에 절대적인 위치에까지 올라섰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전장을 누비며 그의 가슴에는 그 전장만큼이나 많은 수의 영예로운 훈장이 전리품처럼 달렸다.
누구도 그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으며 그에게 패배란 단어는 영영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인가. 그 자연의 법칙은 허무하게도 그에게, 너무나도 손쉽게 몰락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어느 순간 밤하늘을 가르는 휘황찬란한 보름달에서, 그 빛을 잃었다. 밤하늘의 별 그들 중 하나로까지 맥없이 추락해버리고 말았다.
"어째서?"
묻는 말, 대답하는 이는 없다. 아니, 애초에 대답을 기대한 것일리 없다. 그는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패배를 당연시하며 받아들이고 있는 자신. 과거의 영광, 말 그대로 그것은 과거의 영광일 뿐인가. 한때의, 달콤했던 기억일 뿐인가.
자신은 단지, 영광을 추억하며 현재의 위치를 자위하는, 그런 자로서 만족할 뿐인가.
"아니, 그럴 수 없다."
그는 대답했다. 다짐한다. 이렇게 무너질리 없다. 아니 무너질 수 없다.
그는 스스로에게는 이미 익숙한 전장터에서 지고 이기고를 반복하다가 결국 여기까지, 이 위치까지 왔다. 아니 최근의 전장, 살피면 대부분 그의 패배로 끊임없이 후퇴만을 반복해야했다. 더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정체되어있다. 전진하지 못하고, 계속되는 패퇴는 그에게 무기력함만을 안겨주었다.
이미 여럿 그를 가리켜 패배자로까지 일컫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낙인에서 벗어나고싶거든 다시 승리자로서 그 위치를 차지하라는, 너무도 바라마지않는 달콤한 유혹까지 있다.
승리, 그 유혹. 너무나도 원했다. 과거의 빛, 그 빛을 향해 뛰어드는 한낱 불나방이 될지라도 그는 달려들고 싶었다. 쟁취하고 싶었다. 패배를 모르는 과거의 그 때처럼, 승리만을 얻고 싶었다.
그러다 돌연, 현기증이 났다.
"나는 누구인가?"
언제부터 승리를 이렇게 갈망했던가. 자신의 위치, 현재 그 위치는 어디인가. 최고의 자리에서 나락까지 떨어진 지금, '아니 아직 거기까진 아니야.'라고 속으로 외치는 지금. 스스로 쟁취하고 나아갈 길은 무엇인가. 그가 선택할 선택지, 그것은 무엇인가.
"아니."
거부한다. 그의 본능이 철저하게 외면한다. 본능적으로 부정한다. 그가 걸어야할 길은 그런 길이 아니었다. 그의 과거, 그는 결코 이런 생각에 얽매여있지 않았다.
자유분방함.
그를 이끄는 것은 단어 그대로, 그것 그 자체로서 힘을 발휘했다.
천재. 그를 수식하는 단어. 그렇다. 그는 천재다. 범인과는 궤를 달리는 천재인 것이다. 천재가 범인의 자리까지 추락할 필요는 없다.
별은 별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천재는 천재인 것이다.
천재라면, 천재답게 천재의 자리를 지키고 천재로서 나아가면 되는 것뿐이다.
그렇다. 간과하고 있었다.
비로소 그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자신감 가득한 미소가 한가득 번져간다.
그림처럼 파도처럼 퍼져간다.
"그래, 난 천재니까."
그가 몸을 일으켰다.
<hr>
그냥 이윤열 선수의 경기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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