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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6/12/05 15:01:44 |
Name |
거짓말 |
Subject |
미안해 고마워 |
아래 elecviva님의 글을 보았습니다. 깊은 공감이 되었습니다.
얼마 전 부터 부쩍 많이 미안해져서 언젠가는 한번쯤 드리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이런 고백의 마음 따위가 빚을 갚는 길이긴 한 걸까요?
오히려 이 공간에 불필요한 잡담 하나만 더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입니다.
처음 이 공간을 알게 되었을 때가 2001년 말이었습니다.
모두들 그렇겠지만 특히나 저는 잘 쓰여진 글을 좋아합니다.
누구나 봐도 잘 썼다 싶은 글도 좋지만 화려한 어휘 구사능력이나 신념에 찬 논지는 없어도
마음을 다해 썼다는 것이 느껴지는 글이 좋고 사람 냄새가 나는 그런 글이면 맞춤법 같은 건 틀려도 상관없이 참 좋아합니다.
어쩌다 게임방송이 있고 리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보게 되고 그러다 처음 이 공간을 알게 되었을 때 이 공간에 쓰여진 글들이 참 좋았습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그 땐 게임 본다는 사람들이 이런 좋은 글들을 써낸다는 게 너무나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제 주변에도 차고 넘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분야에서
잘 쓰여진 글을 보게 되었을 때의 행복한 충격은 사는 재미 하나를 더 추가해 주었습니다.
때때로 들려 그 재미를 기꺼이 즐겼습니다.
나만 몰래 너무 받아가는 듯한, 그렇게 빚지는 기분이 없잖아 있었지만 지금도 저는 이 곳의 그 어떤 분보다도
게임에 대해 잘 분석할 자신이 없고 게이머에 대한 애정 가득한 글을 잘 쓸 자신이 없고
비판할 것을 제대로 비판하고 칭찬할 것을 제대로 칭찬할 자신이 없어 그냥 가만히 보기만 했습니다.
물론 그 오랜 기간동안 이곳도 너무 많이 알려져 다양한 사람들이 들락거리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곳이 예전같지 않음에 실망하고 글의 무게가 예전같지 않음에 실망해도
여전히 이곳을 빛내는 많은 분들의 마음을 다해 쓴 글과 열정 있는 글이 참 좋았습니다. 그래서 늘 고마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곳이 없었으면 현재 참 좋아하는 어떤 공간의 사람들을 알게 되지 못했을 것이고
그들의 존재가 지금 내 삶을 참 따스하게 하는 일부분이 되지도 않았을 겁니다.
여러모로 너무나 감사하고 고마운 곳입니다.
물론 글 보고 화도 많이 났고 실망한 적도 많습니다.
제가 임요환 선수의 팬인데 임빠들은 모두 싸잡아 그 모양 그 꼴이라고 속칭 까일때;;;
유독 임요환 선수에게 너무 많은 짐을 올려주는 사람들을 볼 때
너무 속상해서 한 마디씩 거들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결국 한번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선수와 그 팬의 숙명이라는 생각으로 위안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이 공간에 그렇게 참 고맙고 늘 빚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만은 빚을 더 보태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더 많은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참지 못하고 문득 수면 위로 올라와 어찌보면 정치적인 글들에 호응하는 글들을 적어가야 할때
지겹도록 반복되는 얘기지만 그걸 해야할 것 같은 나를 볼 때
이 공간에 내가 그럴 자격이 있나 미안하고 부끄러웠습니다.
미안합니다. 이 공간을 더 까칠하고 재미없게 만드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어서요.
늘 받아가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그런 빚까지 지게 되어서 정말 미안합니다.
누군가의 팬이 되고 그가 속한 팀을 응원하게 되면서 무엇을 바라고 좋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신들이 좋아해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마음에 들이고 욕심을 가진 것 모두 다 나 혼자 한 일입니다.
마음으론 늘 다른 것은 더 바라지 않겠다고,
그저 내가 응원하는 그의 게임을 즐겁게 보고 기쁘게 응원하면 그 뿐이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지금 뒤돌아보니 그게 잘 되지 않았었나 봅니다.
이렇게 하면 더 좋았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냐고 자꾸만 욕심을 내고 화를 내게 됩니다.
사실은 고마운 것이 더 많았습니다.
내가 우리 편이라며 응원할 수 있는 게임이 있다는 것이
앞으로 무엇을 보여줄까 기대하며 응원할 수 있는 게임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더 솔직하게는 내 본진이 개인리그에서 번번이 좌절할 때 동료로서 언제나 함께 해주고
우리 팀이라는 이름으로 우승트로피를 드는 영광스런 순간을 함께 기뻐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웠습니다.
늘 고마웠는데 고맙다는 말은 한 번 못하고 욕심의 말부터 쏟아내어 미안합니다.
당신들이 말보다는 게임으로 보여주는 것이 옳은 것처럼
나 역시 말보다는 묵묵한 응원으로 우선 힘을 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바보같이 변명을 하자면 이번만큼은 당신들이 나를 무작정 밀어내는 것 같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나 봅니다.
이제 됐다고 이제 그만하라고 이제는 필요없다고 그런 너의 마음이 별로 소중하지 않다고
자꾸만 밀어내는 것 같아 가만히 있어지지가 않았습니다.
나는 그저 당신들에게 널 그렇게 밀어내려는 건 아니었다는 얘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그건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라 그저 실수였다고 네가 그런 생각을 가지게 만든 건 정말 실수였다는 말을 듣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내 마음의 일은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변해서 생긴 일 같습니다.
당신들에 대한 고마움을 모두 잊고 점점 욕심을 갖게 된 내가 문제인지 모릅니다.
미안합니다. 또 고맙습니다.
지금 어느 곳에 있던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행동을 할 것이었던지 간에
모두들 한번씩 스스로를 그리고 주변을 돌아봤음 좋겠습니다.
그게 선수던 팀이던 방송사던 협회던 팬이던 또 이런 공간이던 그 무엇이던간에
잠시만 숨을 크게 내쉬고 서로를 돌아보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잘못한 것은 정말 미안하다고. 그리고 사실은 그보다 더 많이 고맙다고.
어쩌면 그저 낭만적인 이 글이 이 공간에 대한 제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에도 앞으로도 이 공간에
열정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자신의 열정을 드러내는 일에 주저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고
그저 욕심과 불만과 비난을 툭 던지고만 가는 실례는 그 누구도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더이상 빚을 지지 않으려 다시 노력하면서
건강한 열정을 가진 모든 분들의 마음이 지치는 일 없기를 항상 마음으로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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