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즐겨보는 TV예능입니다. 최근 방송들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들을 적어봅니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가 처음 방영 되었던 2017년 보다 약간 더 이전 시점, 한국인의 외국 여행 예능이 트렌드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나영석의 「꽃보다~ ○○」 시리즈가 엄청난 인기몰이에 성공했으며, 한국 여행 못지않게 외국 여행을 많이 떠났던 「배틀 트립」, 패키지 여행이라는 독특한 컨셉의「뭉쳐야 뜬다」등이 있었지요. 이러한 흐름속에서「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역발상으로 외국인들의 한국 방문기라는 실험적인 컨셉의 파일럿으로 출발 하였습니다. 파일럿 3회 방영 간 반응은 꽤나 나쁘지 않았고, 바로 다음 달인 2017년 7월에 정규 편성 진입에 성공하게 됩니다. 그 이후로 벌써 5년 차의, 어엿한 장수 예능 중 하나가 되었지요.
곰곰히 생각해보면 TV프로그램의 전체적인 역사로 봤을 때, 외국인의 한국 방문기가 그렇게 신선한 포맷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가 큰 화제 속에서 단기간에 정규 편성에 성공한 요인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 이후에 장수 프로그램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먼저 파일럿이 방영되었던 그 시점으로 돌아 가보겠습니다.
2017년 6월, 지금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외국인 방송인 중 한 명이 된 '알베르토 몬디'가 첫 게스트로 출연하면서 이 프로그램은 시작합니다. 알베르토 몬디의 절친한 친구 3명은, 한국은 커녕 아시아 국가로의 여행조차 생소한 이른바 '한국 무식자'들이었고, 이탈리아 현지에선 한국 여행에 대한 정보조차 구하기 힘든 실정임을 토로합니다(사실 인터넷의 시대에 가이드북이 부실함을 들어 정보가 적다고 한 것은 이들이 '한국 무식자'임을 강조하기 위한 제작진의 의도된 연출로 생각합니다). 또한 3명의 친구는 남유럽 사람들답게(?) 영어에도 서투른 모습이 역력했으며, 꽤나 오랜시간 여행 계획을 논의 했음에도 불구하고 두리뭉술한 계획으로 마무리 하게 됩니다. 게다가 이들이 한국에서 주로 머물고, 활동할 지역은 단연 서울인데, 이들이 살고 있는 이탈리아는 서울과 같은 초거대 도시가 존재하지 않는 국가이지요. 밀라노(Milano)가 아닌 미라노(Mirano)는 인구 5만명이 채 되지 않는 소도시입니다. 외국 여행은 물론, 거대 도시의 방문도 낯설만한 환경이었습니다. 이들이 한국에 방문하여 서울의 고층빌딩과 사방으로 펼쳐진 거대한 크기에 놀라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요.
이렇듯 모든게 낯선 상황이다 보니, 역시나 여행이 제대로 진행될리가 없습니다. 인천공항을 빠져나오는 데도 여러 난관에 부딪혔으며, 길을 헤매는 본인들에게 친절하게 길 안내를 해주는 승무원들을 오히려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기도 합니다. 너무 늦게 식당을 찾아 출발하는 바람에 알베르토가 나타나지 않았으면 저녁 식사를 굶을 뻔 하기도 하죠. 홍대에서 한식을 찾아 들어간 식당은 의도치 않게 일식당이었습니다.
그렇게 좌충우돌 한국을 여행하는 동안 외국인 친구들의 반응은 가감없이 방송 됩니다. 이탈리아 친구들은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오르면서 '한국인들은 엘리베이터를 안 타나?' 라고 불평합니다. 프랑스 친구들은 첫 식사로 떡볶이를 먹으며, 무려 한국인의 쏘울 푸드인 떡볶이를 '사탄의 퓌레', '마그마'라고 악평 하기도 하지요. 터키, 르완다 친구들은 날 것의 해산물 음식에 극도로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하며, 인도 친구들은 한국인들이 생각하기로 외국인들 대부분이 싫어할 것이라 여기는 소주는 매우 좋아했지만, 오히려 그 반대인 막걸리는 매우 싫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요.
외국인 출연 예능에 '국뽕' 논란은 필연적입니다. '국뽕'요소에 대해 극도의 거부감을 가져 외국인 출연 예능 자체를 안 보는 시청자들도 꽤나 있지요. 그러나「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제작진의 개입을 최소화 한다는 방침아래, 외국인들의 '날 것에 가까운' 리액션을 최대한 반영하고자 한 점이 눈에 띕니다. 때로는 외국인 출연진들이 보여주는 '팩트 폭격'은 '국뽕' 요소를 꽤나 줄여주는 부분입니다. 또한 출연진들이 한국 방송과 전혀 관계없는 생 일반인들로 구성된 점도 한 몫 했습니다. 방송을 의식하지 않는 순수한 리액션 외에 때로는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개그 요소를 첨가해주기도 합니다. 여성 게스트 보다는 남성 게스트가, 지나치게 고연령 혹은 저연령층의 게스트 보다는 2030 연령대의 적절히 젊은층의 게스트가 선호되는 것도 이러한 개그 요소를 고려했기 때문이지요. 우리나라 방송 정서상 망가지는 모습에 바보 캐릭터를 맡아도 가장 부담없는 세대가 젊은 남성층이니까요. 따라서 이 프로그램의 주요 재미 포인트는 '외국인 방송' 이기 보다는 '일반인들의 날 것 방송' 으로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수 많은 몸개그 장면을 연출한 스웨덴 친구들의 태권도 체험
하지만 그렇게 잘 나가던 프로그램에 큰 위기가 찾아오는 데, 바로 코로나19 판데믹 입니다. 여행 프로그램의 특성상 다른 프로그램들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고, 따라서「이웃집 찰스」처럼 한국에 정착을 시도하거나 혹은 오래 정착한 사람들이 일상 생활을 관찰하는 것으로 긴급하게 포맷이 변경되었지요. 포맷이 변경되면서 게스트 구성에도 큰 변화가 찾아오게 됩니다. 이전의 포맷에선 스튜디오 게스트의 '일반인 친구'들이 주요 출연진이었던데 반해, 현재의 포맷에선 한국에 정착 생활을 하는 모든 외국인들이 섭외 대상이다보니 그 폭이 훨씬 넓어진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파비앙(전문 방송인), 니퍼트(前 KBO 야구선수), 브래드 리틀(뮤지컬 배우) 등과 같은 이전 출연진에 비해 훨씬 네임드이거나 혹은 영국 대사관, 로레알(L'Oréal), 레고(LEGO), 이케아(IKEA), 리버풀FC(Liverpool FC) 등과 같은 특정 국가나 유명 글로벌 기업체의 한국 지사 근무자들이 출연하게 됩니다. 이들의 출연으로 프로그램이 더욱 풍성해진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주한 영국대사와 영국에서 파견온 지 불과 1년 3개월 밖에 안 된 외교관 그레엄 넬슨이 한국어로 대화를 하고, 사자성어를 비롯한 한국어를 끊임없이 배우는 모습이나, 프랑스 출신 파비앙이 한국사 1급 자격증을 취득하고, 한글 서체를 만들기 위해 전문가와 수련하는 모습은 충분히 인상적이었지요. 뮤지컬 배우 브래드 리틀은 세계 어디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들다는 캣츠의 백스테이지를 일부분 공개함으로써 큰 화제가 되었지요.
그러나 이러한 게스트들의 한계는 한국에서 일정기간동안 활발한 경제활동을 해야하는 사람들인 점입니다. 따라서 한국 여행을 마치면 한국 과는 별다른 접점이 없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가 더욱 보장된 이전 포맷의 게스트들과는 달리, 현재 출연하고 있는 게스트들은 한국인들의 반응을 의식할 수 밖에 없지요. 특히 국가나 기업체를 대표하는 직업을 가진 게스트들은 본인의 리액션 하나하나가 소속 단체의 이미지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레고의 CEO의 신분으로 출연한 게스트가 한국 문화나 혹은 음식에 불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기업의 직접적인 매출 타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국뽕'을 배제하여 인기를 끌었던 이 프로그램이, 최근엔 '국뽕'요소로 종종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캣츠'의 뮤지컬 배우 브래드 리틀은 동료 배우들과 추어탕을 먹으러 갔는데, 방송에는 마치 맛있게 먹은 듯 연출되었지만, 실제로는 다 남기고 간 모습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지요. 이전에 출연했던 네덜란드 친구 중 한 명이 추어탕을 거의 먹지 못하며 몸살까지 앓았던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캣츠'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현 상황 상 방송에서 음식에 대해 부정적인 리액션은 뮤지컬 흥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리버풀FC 유소년 아카데미의 코치인 피터는 수원 지성동탄로에서 런닝을 하던 중 박지성 조형물에 존경심을 표하는 장면이 있는데, 두 사람의 소속팀 관계를 감안했을 때(리버풀FC-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극악의 라이벌 관계), 지나가면서 어쩌다 우연히 보게된 것도 아니고 매일 같이 뛰는 도로에 있는 라이벌 팀의 선수 조형물에 멈춰서서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은 다소 부자연스러운 연출이기도 했지요.
놀랍다고는 했지만, 맛있다고는 안했다!
결론적으로 팬데믹이란 특수한 상황에서 예전처럼 한국 방문이 완전히 처음인 '일반인'들을 섭외할 수 없기 때문에, 위와 같은 '국뽕'요소의 첨가는 코로나19의 종식 전까지는 불가피할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저 같은 일부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아쉬울 순 있어도, 제작진의 입장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찾아온 위기를 '화제성'과 '섭외력'으로 성공적으로 극복해 낸 결과라고 볼 수도 있지요. 그러나 '국뽕'요소는 항상 시청자들의 반감과 콘텐츠의 매너리즘이라는 위험성도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얼큰한 국뽕 한사발이라도, 계속 먹으면 질리기 마련이니까요. 따라서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프로그램이 이전의 신선함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종식될 것을 기원하며 글을 마칩니다.
※ 링크의 브런치에도 같이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