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들아 내일 점심에 뭐해? 어버이날이니까 밥 먹게" 나는 동생들을 카톡방으로 불러 모았다. 5월 8일에 출근하게 되는 바람에 하루 전에 밥이라도 같이 먹으려는 생각에서였다.
"오빠 어디 생각해 둔 데 있어?" "아니 없어, 그냥 드시고 싶은데 물어봐서 가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부쩍이나 건강에 신경 쓰시는 우리 부모님. 특히 먹는 것엔 철저하셔서 어느 식당이 신선한 재료와 건강한 음식을 파는지 누구보다 잘 아신다. 고기나 패밀리 레스토랑은 정말 싫어하신다. 그러니, 내가 어딜 알아보는 것보단 부모님이 원하시는 곳이 낫겠다 싶었다.
"엄마 아빠~ 내일 점심시간 괜찮죠?" "응 별 건 없는데?" "그럼 내일 같이 나가서 밥 먹어요"
TV를 보고 계시던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게 익숙해져 버렸다. 우리 집에 대화가 사라진 지.. 부모님은 TV 보는 게, 나는 방에서 핸드폰 하는 게 익숙해져 버렸다. 간단한 안부 인사 빼곤 서로의 얼굴을 보기보단, 드라마 주인공의 얼굴을, 피지알 유머 게시판 연예인들의 얼굴을 보는 시간이 더 길었다. '오랜만에 밖에 나가 얼굴 보며 이야기 좀 해야지..' 나름의 다짐을 하고 잠이 들었다.
[3월 3일 늦은 오후]
"엄마, 난 왜 이래?"
TV를 보고 있는 엄마에게 답답한 내 마음을 표현했다. 엄마는 딱히 내게 눈길을 주진 않았다.
"면접관이 나한테 뭐라고 한 줄 알아? 패기가 없데. 본인의 성격이 어떤 것 같은지 설명해보래. 자기는 내가 소극적으로 보인다는 거야"
알고 있었지만 우리 엄마는 맞장구쳐주는 스타일은 아니시다. 그 모습에 답답함을 느낀 나는 욱하며 평소에 담았던 생각을 내뱉어버렸다.
"엄마, 난 왜 이래? 왜 이렇게 소극적이야? 엄마 닮아서 이런 거 같아 진짜..."
"너는 왜 안 좋은 건 항상 엄마 닮았다고 하니?"
엄마 기분이 상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이었고 아차 싶었다. 사실 아빠랑 엄마는 성향이 정반대다. 나는 엄마를 닮았는지 내향적이었고 그걸 깨려고 노렸했지만 내향적이라 마음속 다짐만 계속했다. 고등학교 때 시작한 타국 생활이 전환점이 되긴 했지만 졸업 후 돌아온 한국. 그리고 낯설고 긴장된 한국 기업에서의 면접은 예전의 나로 되돌려버렸다. 한 달이 지나면 취준 2년째인 상황도 나를 더욱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건 변명에 불과했고 난 엄마가 받았을 상처를 보듬어주긴 커녕 집을 박차고 나갔다.
[5월 7일 11:00 AM]
오랜만에 쉬는 날이라 늦잠을 잤다. 찌뿌둥함 몸을 일으키며 정신을 차리려는데 보글보글 소리가 들렸다. 방문을 열었더니 찌개가 끓는 소리였다.
"엄마..."
요리에 열중하신 엄마는 대답이 없으시다. 된장찌개에 온갖 채소. 아는 분한테 받았다며 간장게장까지 밥상에 올라왔다. 분명 어제 외식한다고 말씀드렸건만 밥상이 너무 정성스레 차려져서 아무 말도 못 했다.
자꾸 맛있는 부분만 내 밥공기 위에 올려주신다. 시선은 TV에 향해 있지만 게다리를 바르는 엄마의 손놀림은 바쁘다. 별다른 대화는 없었지만 왠지 느껴졌다. 이제 막 한 달 차에 접어든 신입 사원 생활, 자취하며 밥도 못 챙겨 먹는 내게 맛난 밥 먹이고 싶은 마음에 아니었는지. 밥맛 없으면 게장 국물을 말아먹으라며 한사코 거절했던 게장 국물을 받아들고 조금 전 집을 나섰다.
진짜.. 엄만 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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