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올려보면 그 당시 집안의 분위기는 언제나 삭막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집 화장실의 칫솔이 5개에서 4개가 된 이후부터 우리 가족들은 모두가 필사적이었고, 그에 더욱 지쳐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 자신의 상처에 매몰될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었다.
언제나 기운차게 집의 밝은 분위기를 이끌던 누나는 내가 군대에 간 사이부터 사실상 가장의 역할을 떠맡게 되면서 아침 일찍 나가 저녁 늦게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와 "피곤해" 한마디만을 남기고 쓰러지듯이 자는게 일상이 되었고, 할머니는 자신의 노구를 혹사시키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으신듯 누구도 신경쓰지 않을 숨겨진 집안일을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내 자신의 몸을 지치게 하시는데 전력을 쏟으셨다. 대체 왜 해야하는지 알 수 없는 집 바깥 창문의 먼지를 닦는 일을 하시면서 이 늙은이가 이 몸을 가지고 이렇게 해야겠냐, 이런것쯤은 알아서 깨끗하게 해라라는 식의 일갈을 종종 내뱉으실 때마다 당시 실직 상태였던 아버지는 짜증을 내시며 담배를 피러 나가셨고, 누나는 피곤함에 나도 좀 쉬자를 외치며 방문을 쾅하고 닫기 일쑤였다.
그 사이에서 내 역할은 오로지 누나는 피곤하대요. 어제도 일하느라 늦게 왔잖아요. 제가 할게요. 아버지도 잠깐 나가셨어요. 아빠도 답답해서 저러지 뭘 하는 식으로 그저 집안 내의 싸움이 나지 않게 하는데만 전력을 쏟으며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스트레스를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지 않고 그저 넋두리를 하는 것으로 소모할 수 있게 하는 그런 단순한 것이었다. 당시의 나는 학교가 끝나면 단지 "집안에서 싸움이 나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빠르게 집에 들어가는 것이 버릇이 되어 있을 정도였다. 집안에서 가장도, 돈을 벌어오는 사람도, 살림도 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인 내가 할 수 있던 것은 그러한 역할 뿐이구나라는 것을 빨리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단순한 일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군대를 다녀온 후부터 3년이란 시간동안 꾸준히 축적되자 나도 그만 지쳐 이제는 될대로 되라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어 이어폰을 낀 채 방문을 닫아거는 횟수가 늘어갔고, 그래서인지 지난 3년보다 2015년 그 해의 상반기, 우리집은 더더욱 삭막했었다.
그리고 그런 삭막하던 때, 니가 우리집에 왔다.
추석 연휴가 끝나던 날. 누나가 뜬금없이 보내온 "얘 데려갈거야"라는 메세지와 함께 첨부된 동영상 속에는 떨고 있는 너가 있었다. 그 영상안에서 크지 않은 내 손하나만도 안되어 보이는 너는 마치 곧 쓰러질 것처럼 투명한 동물병원 케이지안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그 영상을 처음 봤을 때 내가 보낸 한마디는 "일찍 죽을거 같은데 건강한게 낫지 않아?" 였다. 지금은 가족들끼리 종종 너무나도 똥꼬발랄한 지금의 너와 그 때의 너를 비교하면서 연기력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지만.
누나가 너를 데려온다는 소식을 할머니에게 전하자마자 할머니가 나에게 노발대발하셨던게 떠오른다. 똥오줌은 누가 치울거며, 털날리는건 어쩔거며, 개는 싫다, 데려오기만 해봐라 당장 가져다 버릴거다... 그러나 너는 영악하게도 누나가 너를 데려온 가방을 열어주자마자 그 앙증맞은 다리로 바로 할머니에게 달려가 손을 핥았지. 그리고 그 순간 다시 할머니는 나를 쳐다보며 노발대발하셨었다. 뭐하냐. 애기 데려오는데 멕일 거 안가져왔냐, 애 추워보이는데 담요는 어디있냐, 빨리 잠자리 봐줘라...
내 손바닥보다 작은 3키로가 채 안되는 조그마한 시츄였던 너는 우리에게 와 잃어버린 하나의 칫솔 대신 하나의 따듯한 사고뭉치로 자리잡았다. 너가 우리집에 온 그 날부터 사막은 바다가 되어 그 삭막함은 마치 언제 존재나 했었나 싶을 정도로 저 멀리 지나가버렸다. 엄마를 대신해 나와 누나에게 엄마의 역할까지 대신해주려고 노력하던 고모도 너에게 푹 빠져버렸지. 예전엔 전화하면 할머니는 어떠시니가 첫 한마디였던 였던 고모가 지금은 너는 뭐하고 있니로 첫마디가 바뀌는데는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 불투명한 유리막에 있던 3년간의 기억보다 너와 함께 있는 지금 이 1년이 넘은 시간동안의 기억이 훨씬 더 생생하다. 니가 처음으로 자기 쿠션을 올라타는데 성공했던 날, 처음으로 배변판을 사용하던 날, 처음으로 구토해 정신없던 날, 처음으로 불린 사료가 아닌 건사료를 먹던 날, 장난감을 망가뜨리고 아닌 채 하고 있던 날, 첫 산책을 나가서 마음껏 달려봤던 날... 그때를 기억하며 일기를 쓸 수 있을만큼 그 하루하루가 내 머리속에 너무도 생생히 기억난다.
물론 1년 반만에 3키로 짜리가 7키로에 육박해 한손은 커녕 두손으로 들기도 힘들고, 손바닥이 아닌 내 팔뚝은 우스울 만큼 타 시츄보다 훨씬 기다란 몸을 가지게 된 너를 보면 한숨이 나오긴 하지만... 지금도 코골며 자다 깨서는 문틈에 고개를 내밀고 "안자냐 얼른 자라"라는 표정으로 한번 쳐다보고 한숨쉬고 다시 자러가고 있는 너를, 나는 이제 너가 없는 나를 상상할 수가 없다. 너는 사람보다 빠른 시계를 가진 탓에 언젠가 나를 떠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그 날 겪을 상실감이 더욱 커질 것을 아는데도 나는 그 상실감에 붙는 이자를 잊어버릴만큼 너를 사랑한다.
고집세고 맨날 사고만 치고 아닌 채 잡아떼도, 내가 먹는 건 뭐든지 다 먹고 싶어하다가 안주면 토라져서 날 쳐다보지 않는 척을 해도, 산책나가면 하네스를 잊은 듯 숨가쁘게 달려도 좋으니...
바라건대 너는 언제나 그렇게 있어라. 사랑한다 호두야.
PS) 아무리 그래도 우리.. 누워 있는 형 명치에 다이빙하는건 이제 그만하자 이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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