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생 시절 용돈을 모은 적이 있다. 정기적인 용돈은 없었다. 책이나 학용품을 사고 남은 돈을 꽤 오랫동안 모았다. 그 돈으로 엄마의 생일선물을 사려 했다. 여자는 작고 반짝이는 선물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다. 목표는 액세서리로 정했다. 반지나 목걸이는 너무 비쌌다. 꿩대신닭이라는 기분으로 나는 브로치를 사기로 했다. 이마저도 어린이에게는 비싼 물건이었다. 그러니 긴 시간 모아온 돈으로 브로치를 샀을 때 얼마나 기뻤겠는가. 선물을 사고 집으로 돌아오던 때가 지금도 생생하다. 혹시나 잃어버릴까, 행여나 깡패라도 마주칠까, 나는 주머니에 넣은 상자를 꼭 쥐었다. 엄마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발걸음도 빨라졌다. 긴장과 기대가 뒤섞인 흥분 속에서, 쿵쿵 쾅쾅, 심장이 요동쳤다.
엄마의 반응은 기대와 달랐다. 브로치를 선물했을 때 돌아온 것은 미소가 아니라 고함이었다. 싸구려 브로치에 큰돈을 썼다며 엄마는 나를 나무랐다. 당장 가서 브로치를 환불해오라고 하셨다. 나는 펑펑 울었다. 처음에는 환불해오라는 말이 무섭고 창피해서 울었다. 가게 주인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까? 환불해달라고 말하면 몹시 화낼 텐데. 환불할 생각을 하니 비싸게 산 브로치가 그렇게 값싸 보일 수가 없었다. 아이에게는 큰돈이었지만, 어른에게는 한 끼 외식 값에 불과한 가격이었다. 그걸 아까워서 환불해달라고 말하기가 너무 창피했다. 아마도 집안 형편이 어렵다 보니 자격지심에 그랬겠지. 결국, 환불은 하지 않았다. 브로치는 장롱 구석 반짇고리 어딘가에 꼭꼭 숨겨졌다. 그러나 아이의 작은 가슴에 슬픔이 숨어있을 공간은 없었다. 생각할수록 억울하고 서글펐다. 마지막으로 브로치를 꺼내봤을 때 나는 소리 없이 눈물만 뚝뚝 흘렸다. 나는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던 것뿐인데. 엄마는 내 마음도 몰라주고...
왜 하필 브로치였을까? 작고 반짝이는 물건이라면 머리핀도 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도 아니고 우리 엄마가 브로치를 달고 다니실 일도 없었다. 그 시절 나는 선물 고르는 눈이 없었다. 대학생이 되고, 연애를 하면서 선물 고르는 안목이 생겼다. 그쯤 돼서야 엄마가 화를 내셨던 이유를 알았다. 내가 브로치를 산 곳은 동네의 조그만 선물 가게였다. 아기자기한 도자기 인형이나 벽시계, 액세서리 따위를 파는 가게였다. 그런 곳에서 밥 한 끼 가격에 파는 브로치가 얼마나 가치 있겠는가. 브로치가 어땠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당연히 귀금속은 아니다. 유리 큐빅이 몇 개 박힌 플라스틱 제품이라고 추측해본다. 그걸 당시에 몇만 원이나 주고 사 왔으니 엄마는 얼마나 분통이 터졌을까. 머리가 커지고 나서야 엄마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처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 새겨진다. 그리고 흉터로 남았다. 부모님께 선물드리기가 나는 아직도 영 불편하다. 선물을 고를 때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지만 선물해야 하는 순간은 매년 꼬박꼬박 돌아온다. 안타깝게도 엄마가 내 선물에 만족하신 적은 별로 없다. 돌아오는 어버이날에도 나는 "슈퍼선물러 K"를 수행할 예정이다. 과연 이번 선물은 몇 점일까? 마음에 들어 하실까?
인간은 어리석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나는 내가 받은 상처를 남의 가슴에 똑같이 아로새기고 말았다. 여자친구가 그림을 선물해준 적이 있다. 함께 경복궁에 놀러 가 찍은 사진을 보고 스케치한 그림이었다. 여자친구는 아직 미완성이라며 조심스럽게 그림을 보여줬다. 러프한 스케치가 아니었다. 선은 깔끔하게 정리됐고, 배경도 꼼꼼했다. 스케치만으로 이미 훌륭한 작품이었다. 그런데 그림 속 내 모습이 영 보기 싫었다. 어쩌겠는가. 내가 그따위로 생겼는데. 하지만 나는 여자친구를 탓했다. 너무 못생기게 그린 것 아니냐고 툴툴댔다. 물론 그리 심각하게 한 말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웃으며 나눈 이야기였다. 하지만 여자친구에게 상처가 되었다. 완성하면 선물하겠다던 그림은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미완성 상태다. 가끔 그림은 어찌 됐냐고 물으면, 아직 다 그리지 못했다고 여자친구는 말을 돌렸다. 이렇게 허물은 대물림되었다. 내가 실망했을 때 여자친구는 얼마나 섭섭했을까? 나는 몹쓸 짓을 했다. 그녀에게 미안하다. 정말로 정말로 미안하다.
보다시피 나는 선물에 관해서는 비뚤어진 사람이다. 나에게 선물은 기쁨보다는 슬픔에 가깝다. 쓰라리고 미안한 기억이 더 많다. 안 좋은 기억이라도 잊을 수는 없다. 하지만 좋은 기억으로 덮을 수는 있다. 한때 오믈렛 만드는 동영상에 빠진 적이 있다. 노란 계란을 매끈하고 봉긋하게 말아놓은 것이 참 예뻐 보였다. 나는 오믈렛 만들기에 도전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고 나서 그럴듯한 오믈렛을 만들 수 있었다. 자랑스러운 마음에 나는 엄마에게 오믈렛을 만들어 드렸다. 엄마는 간이 너무 짜다며 시큰둥하게 반응하셨다. 엄마답다는 생각이 반, 섭섭하다는 생각이 반이었다. 섭섭함을 덮어준 것은 여자친구였다. 여자친구는 내가 만든 오믈렛을 좋아했다. 먹어본 음식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맛있다고 했다. 푹신푹신하고 부드럽다는 섬세한 평도 해줬다. 여자친구의 칭찬이 너무나 고마웠다. 덕분에 요즘도 나는 오믈렛을 자주 해 먹는다.
여자친구는 나처럼 비뚤어진 사람과는 달랐다. 선물을 받으면 순수하게 기뻐했다. 선물하는 사람의 노력을 알아봐 줬다. 선물을 주면 그보다 큰 행복을 돌려줬다. 여자친구를 바라보며 나는 처세술을 하나 깨달았다. 선물은 평가해서는 안 된다. 오로지 기뻐하고 고마워해야만 한다. 나는 이미 비뚤어져서 마음과 행동이 다를 수도 있다. 선물을 받고 실망하는 순간이 또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래도 겉으로는 기뻐하려 한다. 이것은 거짓말이다. 하지만 하얀 거짓말이다.
요즘에는 선물은커녕 축하받을 일도 없다. 세월이란 단어가 민망하지 않을 나이가 되고 나니 생일축하 문자도 별로 오지 않는다. 얼마 안 되는 축하 문자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사람이 이렇게 어리석다.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는다. 예전에 나에게 축하 문자를 보내줬던 사람들에게 정성스레 감사하지 못해서 후회되고 미안하다. 감사하는 마음과 표현이 상대를 행복하게 만든다. 그 사실을 좀 더 빨리 알았어야 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감사할 줄 알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다.
나에게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알려준 그녀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사랑한다.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 고쳐야 할 성격이 하나 더 있다. 뭔가 해주고 나서 몹시 생색낸다는 점이다. 보답 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상처가 남아있어서 그런 것 같다.
Written by 충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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