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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0/01/23 22:40:04 |
Name |
저글링 |
Subject |
최악의 무대 최고의 선수 |
최악의 사고가 있었습니다.
준결승이 끝나기도 전에 오버랩된 이영호 선수의 얼굴과 울려퍼지는 리쌍의 '우리 지금 만나'
결승 경기 중에 쏟아지는 끊임없는 광고와
3경기의 어이없는 정전으로 인한 우세승
보면서 처음에는 엠겜에 짜증이 나다가 나중에는 웃음이 나오더군요.
뭔가 의욕은 앞서는데 실력이나 수준이 이를 받쳐주지 못한다고 할까...
아니면 태어나서 고기 한점 못 먹어본 아이가 처음으로 꽃등심을 먹다가 탈이나 설사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어설프고 허둥지둥하는 모습에서
웬지 코메디같다는 느낌마져 들더군요.
딱하다...MSL
너희 짱 먹어라 Kespa
딱히 두 선수의 팬은 아니지만
이왕 온게임넷 먹은거 엠겜도 이영호 선수가 먹길 바랬습니다.
선수들과 전문가들 예상도 이영호 선수의 우세가 점쳐지기도 해서
편한 마음으로 3:1 아니면 3:0으로 이영호 선수가 이기겠구나 내심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뚜껑은 열어봐야 아는 법
이제동선수는 괜히 랭킹 1위가 아니더군요.
역시 대단했고
경기는 점점 흥미진진해졌습니다.
그래서 엠겜이
그래서 케스파가 (우세승이라는 결과를 떠나 매끄럽지 못한 대처가)
더 아쉽고 원망스러웠습니다.
이번 결승은 굳이 포장할 필요가 없는 무대였습니다.
그냥 그대로
있는 그대로
원래 했던 대로
선수들의 경기를 보여주기만 했어도
충분히 인구에 회자되는
명경기가
명승부가
나올 수 있었는데 말이죠.
물론 이번 결승은
충분히
아니 그 어떤 경기보다 인구에 회자 되긴 하겠네요.
그리고 마르고 닳도록 까일겁니다.
여튼 지금 까지 위의 내용은 잡설이었습니다.
정말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제 부텁니다.
우왕좌왕하며 자칫 그대로 망가져 버릴 수도 있는 무대를
결코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영호 선수였다면 억울했을겁니다.
'3경기 내가 잡을 수 있었어...정전만 아니었다면...'
제가 이제동 선수였다면 억울했을겁니다.
'3경기 내가 잡은 경기야...정전이 아니었어도...'
그러나 분노한 팬들보다
최악의 상황을 연출한 엠겜이나 케스파보다
선수들은 훨씬 멋졌습니다.
다시 4경기는 진행이 되었고
생각보다 쉽게
어쩌면 생각처럼 쉽게
이영호 선수는 초반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승부를 내주고 맙니다.
그리고 시상식 자리
우승한 이제동 선수의 표정은 밝지 못했고
준우승한 이영호 선수는 오히려 한번 씩 웃으면서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제 실력이 부족했습니다.'
전 이영호 선수의 그 말에 이때껏 화내던 제가 조금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이영호 선수가 분한 표정으로 눈물을 지으며 푸념을 늘어 놓을거라고
생각했던 것 역시 조금 부끄러웠습니다.
나이 서른이 넘어도 전 아직도 철들려면 먼 것 같은데
무대 위의 그들은 이제 갓 20대의 선수임에도
무대를 망친 어른들보다
분노한 30대의 팬보다
훨씬 의젓하고 프로다웠습니다.
그들이 저보다 낫더군요.
그저 게임을 남들보다 조금 잘하는 '아이'들로 알았는데
그들은 진정한 프로게이머였습니다.
아마도 최악의 무대였기에
최고의 선수들이 더 빛난건 아닐까 하는
그들의 명승부를 보진 못했지만
그들의 '그릇'을 볼 수 있는 무대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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