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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8/10/19 16:27:51 |
Name |
skzl |
Subject |
타이타닉의 음악단 |
<타이타닉>은 내 취향의 영화가 아니었지만, 한가지 잊지 못할 명장면이 있었다. 침몰하는 타이타닉에 아이와 여자가 먼저 보트를 타고 배를 탈출하는 상황. 생과 사가 오고가는 그 절박한 상황에서, 일찌감치 자신들에게 남은 여분의 보트가 있지 않다는 걸 안 (혹은 여분의 보트가 있어도 포기했음직한) 음악단이 침몰하는 배를 끝가지 지키며 연주를 한 장면이다. 애절한 연인들의 안타까운 이별보다, 나는 숭고한 장인들의 연주에 눈물을 쏟았던 기억이 있다. 비록 그 이후가 없다고 하더라도 사라져가는 것을 기품있게 지켜가는 이들을 나는 존경한다.
모처럼 스타크래프트 판이 아주 즐거워졌다. 리쌍의 기세가 약화되는 듯 하다가, 다시금 치고 올라가는 이제동의 기세는 여전히 무시무시하며, 우리들의 영웅. 황제 임요환은 발키리를 이용한 대 저그전 전략으로 '스타의 끝'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아직 그 길이 멀고도 멀었다는 사자후를 터트렸다. 그리고 본좌 마재윤이 블리즈컨에서 박지수 허영무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는 소식에. 우리들의 일그러진 본좌의 과거를 추억하는 사람들은 다시 한번 가슴 설레는 기대를 하게 된다. 그리고 내게 있어 이번 주 스타 소식 중 가장 강렬했던 사건은 정명훈의 배후에서 다시 부활한 거장 최연성이었다. 그들의 명경기를 일컬어 '죽은 이중이 산 대인배를 이겼다.'는 Judas Pain님의 요약은 근래 내가 읽은 문장 중 가장 인상깊은 한줄요약이었다.
최연성의 저 자부심은 전성기 때, 기세로 상대를 찍어누르던 모습 그 자체였다. 그리고 정명훈은 그 배후의 최연성과 함께 기세를 이어갈 것이다. 하지만 정명훈이 거장이 되기 위해서는 언젠가 최연성의 그림자를 뛰어넘어야 할 것이다. 어찌되었든 마재윤희 3해처리 이후, 우리는 다시 한번 패러다임의 변화를 목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거장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최연성인지, 정명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김준영이 허무하게 무너졌듯, 당분간 이 변화의 시도는 대다수 저그들이 넘어야 할 숙제로 보인다.
이 흐름에 자꾸만 이제동이 기대된다. 과거의 본좌들은 패러다임을 변화시켜낸 거장들이었다. (이윤열은 제외다. 그는 시작부터 완성되어 있었고, 지금도 천재다.) 현존하는 프로게이머 중 가장 본좌에 가까운 사람은 두말할 나위없이 이제동이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냈다기 보다는 과거 선배 프로게이머들이 남긴 유산을 가장 극단까지, 정교하게 완성시킨 비수같은 프로게이머이다. 그래서 그에서 풍기는 풍미는 '거장'의 그것보다 '장인'의 그것에 가깝다. 최연성과 정명훈의 결합이 이제동을 만날 때가 나는 기대된다. 최고의 판에서 최고의 기량을 가지고, 두 명인이 붙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소년의 로망을 잃지 않은 우리 스타크래프트 팬덤은, 그들의 경기에 또 다른 이름을 붙이며 오랫동안 기억 할 것이다.
코치로써 최연성의 명활약을 지켜보니 자꾸만 강민이 아쉬워진다. 최연성은 강력했지만, 강민은 유연했다. 그 몽상가적 기질을 현실로 실현시켜줄 강력한 후계자를 만났다면 어땠을까? 그 또한 패러다임을 여러번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지 않을까. 전통이 계승되고, 거장이 재현되며, 전설이 살아 꿈틀거리고, 본좌가 부활하는 요 한달 스타의 판도에는 하모니가 느껴진다. 그것은 이제 더이상 다음이 없을 것 같았던, 우리가 막연하게 암울해 했던 불안을 한 걸음 더 극복하는 것이였으며. 이제 스타 2의 등장으로, 정말 사라져갈지도 모르는. 2000년를 살아간 소년들의 로망이 마지막으로 연주해내는 연주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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