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모스 '꾸에에'님의 글입니다.
http://sininus.egloos.com/4399143
=====================================================================
12.0.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으나 새롭지 않은 어떤 것도 없다. 하이브는 아주 오래 전부터 실험이 이루어진 체제였다. 그러나 피를 말릴 정도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퀸즈네스트를 짓고 하이브로 가는 것은 스스로 헛점을 만드는 것이었으며 그래서 저그 대부분은 레어단계에서 머무르며 승부를 결정지으려 했다. 하이브는 위험하다. 레어단계에서 테란을 진압하지 못하면 처절한 응징을 당할 일만 남는다는 것을 저그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고 그래서 하이브는 어디까지나 끝내기를 위한 체제였다. 결국 레어에서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능력은 당대최강의 저그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었으며 치열한 교전을 거듭하며 승부의 추를 조금씩 기울여가는 과정이야말로 저그가 거쳐야할 수행이자 의례였다. 바로 레어마스터, 그것이 틀리지 않다는 것은 홍진호를 통해 여실하게 드러났다. 말하자면 최연성 등장 이전까지 저그압살맵 속에서도 끊임없이 당대최강의 테란들과 물고물리는 격전을 펼쳤던 한 명의 저그에 의해 저그의 끝은 레어를 지배할 수 있는가 없는가로 판명난다는 것이 실증된 것이다.
물론 홍진호와 그의 의지를 이은 레어마스터들은 필요한 상황에서는 하이브로 가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그러나 그것이 레어의 끝은 하이브마스터를 향한 시작이라는 식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레어마스터의 하이브는 이미 끝난 경기를 마무리짓기 위한 체제였다. 이미 중앙교전에서 박살나고 본진에 틀어박혀서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언덕 위 탱크화력에 기대 버티며 저그의 무모함을 바라는 테란을 끝내줄 수 있는 유닛이 가디언이었기에 굳이 하이브체제를 갖추었던 것이지, 실제 경기는 이미 레어단계에서 끝나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이브가 승리의 깃발을 올리는 의식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의미이지, 결코 승리를 위해 감내해야 하는 무엇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어떤 저그들에게 하이브는 도피처였다. 레어단계에서 도저히 테란을 상대할 수 없음을 인정한 저그가 보는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러나 현실을 외면한 그들이 도착한 곳은 또다른 현실일뿐 결코 이상향이 아니었으니, 하이브로 도망간 저그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조용호의 목동체제가 그렇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바닥을 뒤흔들었던 파괴력에 대비될 정도로 짧은 수명 때문이었다.
12.1.
하이브는 끝내기를 위한 체제, 이것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저그는 역시 박경락이었다. 그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3해처리를 자신의 경기 안에 녹여낸 저그였는데, 안타깝게도 2배럭아카데미에 대응하는 3해처리의 특성상 중앙교전에서 승리를 자신할 수 있을 정도의 병력을 확보하는 데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중앙교전에서 이길 수 있는 타이밍이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중앙교전을 피하면 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테란에게는 피해를 안겨야만 한다. 중앙교전의 타이밍을 영으로 수축시켜 버리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말인데, 박경락에게 이것은 드랍으로 드러났다. 보통 경락마사지 또는 삼지안 드랍이라 부르는 3방향 갈래 드랍이 3해처리를 완성시키는 마지막 한 점이 되었다. 엠비씨게임의 맵에서는 홍진호도 자신있게 보여줬던 중앙교전 회피체제는 압박을 위해 진출한 테란의 벙력을 순식간에 우왕좌왕하게 만들며 그 효용이 증명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추가멀티와 하이브, 박경락은 이 승리공식을 통해 스타리그 연속 4강이라는 위업을 달성하며 많은 이들에게 강한 임팩트를 남겼다.
많은 이들이 하이브에 대해 이야기할 때 조용호를 먼저 말하고 이어서 박경락을 꺼낸다. 그러나 조용호의 하이브와 박경락의 그것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어떻게든 하이브까지 가야만 교전을 개시할 수 있는 조용호와 하이브를 가기도 전에 이미 테란을 반파한 박경락이 같을 수는 없다. 박경락은 하이브는 레어마스터의 그것이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박경락이 하이브를 애용했던 것은 교전이 갖는 불확실성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으며 이것은 바로 목동체제에 필적하는 파괴력을 선보이며 많은 이들을 매료시켰다. 드랍이 두려운 테란은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저그는 여유있게 추가멀티를 가져가며 러커진출을 통해 먼저 압박한다. 본진방어에 신경쓰다 앞마당 커맨드센터의 방어병력이 줄어드는 순간에는 돌파까지 노려볼 수 있다. 결국 진출을 위한 한방병력이 완성된 테란이 상대하는 것은 가디언의 지원사격을 받는 다수 저글링과 러커나 때로는 다시 등장한 목동체제의 병력이었다. 어디까지나 레어단계에서의 우위를 통해 하이브병력을 운영한다는 점에서 박경락은 레어마스터의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 글쓴이의 의견이다.
12.2.
박경락의 영향이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이 하이브의 파괴력은 분명히 한빛의 저그들을 매료시켰고 조형근과 김준영이라는 두 저그는 조용호 이후 다시 한 번 레어를 건너뛴 하이브로의 돌입을 위한 실험을 시작했다. 하이브로 빨리 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레어단계의 유닛인 러커나 무탈리스크의 양 자체가 줄어들 수밖에 없으며 상대적으로 저글링의 비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중앙교전의 축인 레어유닛의 축소를 통해서까지 하이브로 안전하게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질문에 대한 답은 두 가지로 나왔는데 첫번째는 하이브체제가 완성되기 이전까지 최대한의 중앙교전 회피였으며, 두번째는 어쩔 수 없이 늘어난 저글링의 활용 극대화였다. 첫번째는 끊임없이 빈집털이를 노리는 술래잡기 모양의 병력운용으로 제어할 수 있으나 두번째가 문제였다. 박성준 정도의 컨트롤을 할 수 없는 저그가 병력운용을 통해 저글링을 활용하는 데는 확실히 한계가 있다. 그러나 술래잡기를 통해 버는 시간은 하이브는 물론 다른 것을 위한 여지가 될 수도 있음을 두 저그는 곧 깨달았는데 바로 갑피라고 부르는 방어력업그레이드 완료까지의 시간이었다. 극단적으로 두 개의 에볼루션 챔버로 드러나는 빠른 업그레이드는 저글링의 질 자체를 바꿔버렸으며 하이브 이후 아드레날글렌즈까지 완료되는 순간 저글링은 가장 무서운 유닛으로 탈바꿈했다. 이후에는 미친저그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빠른 하이브와 방어력업그레이드의 기원은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저그의 전성기는 수많은 기둥들이 떠받치고 있었는데 이 기둥들 하나가 당시에 루나를 필두로 등장한 수많은 밸런스맵이었다.그런데 이 맵들 중에서 특히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은 러시아워 시리즈에서 김준영은 유독 고전했는데 당시의 경기를 살펴보면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음을 목격할 수 있다. 다른 저그들에 비하면 초라하기까지 한 러시아워2에서의 성적, 그것과 도저히 아귀가 맞지 않는 러시아워3에서의 전승은 이 실험의 궤적이라고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서경종에 의해 무탈리스크 뭉치기가 발견된 이후에는 무탈리스크 게릴라를 통해 더욱 안정적으로 시간을 벌 수 있었으며 이때에 와서 저그가 테란 상대로 펼치는 경기의 틀 대부분이 완성되었다. 레어는 어디까지나 하이브를 위한 브릿지, 조용호가 제시한 이 테마가 드디어 레어마스터를 건너뛴 하이브마스터라는 새로운 키워드의 태동으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 읽은 이들 중 대다수는 고개를 갸웃거릴 것인데, 그것은 지금에 와서 거의 정형화된 이 공식을 정립한 것은 마재윤이 아닌가 하는 의문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분명히 그는 리버스템플과 롱기누스에서 이윤열을 격파하고 자신의 가치를 극적으로 증명한 신한은행 스타리그 S3에서 누구보다 이 공식을 철저하게 이용한 저그였다. 그렇다면 극강의 컨트롤과 멀티태스킹을 자랑한 이제동은 차치하고서라도 하이브마스터의 원조격인 김준영조차도 무릎을 꿇었던 리버스템플과 롱기누스의 사악함을 극복한 근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데, 그 답은 마재윤이라는 저그의 기초가 박태민이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특정타이밍의 인구수와 자원량까지 고려하는 판짜기의 대가 박태민의 그림자는 마재윤에게까지 드리워져 있었던 것이다.
=====================================================================
1. 이번편은 레어와 하이브라는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사실 2008년 지금조차 대 테란전의 근본적인 힘은 레어에서 나옵니다.
그 가장 좋은 예가 바로 진영수 대 이제동의 타우크로스전과 최근의 폭풍의 언덕 경기라 생각합니다.
두 경기 모두 진영수의 한방병력은 결국 전멸하지만 승리한 선수는 달랐습니다.
타우크로스 경기에서는 진영수의 배럭은 5개 밖에 못돌아 갔지만 폭풍의 언덕에서는 8배럭이 돌아갔거든요.
그 차이는 바로 뮤타에게 얼마나 일꾼이 잡혔는가에서 난 것이구요.
지금 이제동 선수의 하이브 전투력은 저그중에서 최강이고 전성기보다도 강하다는 평입니다.
그럼에도 집니다. 이제동의 힘은 레어 단계에서의 뮤컨에 있었는데 이게 봉쇄당했기 때문입니다.
2. 2006년을 진동시켰던 디파일러를 무력화 시킨것은 결국 염보성식 투엔베였습니다.
기교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힘의 우위로 공간을 지배한 것이죠. 그리고 그 근간에는
바로 뮤타 견제를 차단하는 빠른 멀티 전략이 있습니다.
3. 한때 유행이었던 미친저그의 근간이 조용호선수에게 있다는 것은 정확한 지적이라 생각됩니다.
사실 2쳄버를 제외한 나머지 요소들은 조용호 선수의 전성기 리버 오브 플레임의 그것과 거의 흡사합니다.
4. 마재윤에게 드리워진 박태민의 그림자라는 의견에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당시 마재윤은 이미 그 골격이 완성된 상태였고 실재로 박태민 선수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테란전은
마재윤 선수에게 배운것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마재윤 선수는 대신 저그전과 토스전을
박태민 선수에게 배웠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었구요. 상호간에 장기인 종족전의 기술을 주고받은게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