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편] 스콜지 멸망의 서곡
우승을 수차례 차지한 자에게선 절로 오오라가 풍기는 것인가. NGL 플레이오프 대 MOUZ 전에서의 박준은 그랬다. 마우즈는 유럽 최고의 언데드로 급성장한 ‘해피’, 유럽 최고의 휴먼 ‘토드’, 유럽 상위 나엘 ‘사세’, 세계 3대 오크 ‘플라이’를 보유한 무시할 수 없는 강팀이다. SK는 리마인드와 소주가 나가서 사세, 하수를 끝내는 2킬 2다이에 그쳐 상당한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필자는 SK를 응원하는 입장에서 조금의 걱정도 없었다. 박준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준은 리마인드를 이긴 해피를 언데드 지옥의 맵인 ‘로스트 템플’에서 간단히 짓밟았고 대장 ‘토드’까지 테레나스에서 쓰러트리며 팀을 최종결승에 올렸다.
최종결승 상대는 MYM 드림팀... 이미 승자 결승에서 맞붙어 2:4로 패한 바가 있었다. 박준도 거기서 장재호에게 무너졌었다. 최종결승의 선봉은 오정기와 소주였다. SK는 최근 양 나엘의 분위기가 좋지 않았는데 여기서도 소주는 힘없이 무너졌다. 오정기는 기세를 몰아 중견 강서우까지 제압했다. 다음 맵은 로스트템플... 누가 나올지는 뻔했다. 박준의 등장이었다. 그러나 오정기도 준비한 것이 있었다. 휴먼이었다. 박준이 그나마 약한 휴먼을 하여 이기겠다는 계산이었다. 경기력을 봐서는 어느 정도 준비는 되어 있는 듯했다. 그러나 스카이와 토드를 상대로 대등하게 싸운 박준이었다. 부종족 휴먼으로 상대가 될 리가 없었고 오정기는 간단히 무너졌다. MYM의 중견은 ‘문’ 장재호... 이 둘의 싸움은 치열하게 진행되었고 박준이 어렵게 승리를 따냈다. 승자결승의 복수를 한 셈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힘을 뺐는지 그는 MYM의 부장 포커스에게 패했고 대장 리마인드가 포커스를 쓰러트리긴 했으나 노재욱에게 패하면서 플레이오프 우승은 MYM에게 돌아갔다. NGL 전시즌과 정반대의 결과였다.
NGL 플레이오프에서 아깝게 우승을 놓치긴 했으나 그래도 SK는 더 권위있는 대회인 WC3L에서 당당한 1위를 질주하고 있다. 그것도 매우 여유있는 1위이다. 세부 세트 득실차가 +46인데 2위인 BET는 +30이다.
1라운드 WE전 5:0 (박준 2vs1 Like) - 현 4위팀
2라운드 attax전 5:0, (박준 2vs0 Yaws) - 현 7위팀
3라운드 hooria전 5:0 (박준 2vs0 Elfi) - 현 11위팀
4라운드 GO(현 fnatic)전 4:1 (박준 2vs0 yange) - 현 8위팀
5라운드 MYM전 3:2 (박준 2vs1 포커스) - 현 3위팀
6라운드 PGS전 5:0 (박준 2vs1 Shade) - 현 10위팀
7라운드 serious전 4:1 (박준 2vs1 Bro88) - 현 12위팀
8라운드 Wicked전 2:3 (박준 출전 안함) - 현 5위팀
9라운드 Mouz전 4:1 (박준 2vs0 토드) - 현 6위팀
10라운드 BET전 2:3 (박준 2vs0 위너스) - 현 2위팀
적수가 없다. 양나엘이 부진하긴 하나 그래도 준치이다. (이들의 팀플은 18승 4패로 여전히 최강이다.) 강서우는 이제 완연한 팀의 기둥이다. 최근의 모습은 6언데 중 제일이다. SK의 올드 멤버 miou는 휴먼으로서 팀의 한축을 지탱하고 있다. WE 시절의 스카이에 비할 수는 없겠으나 그래도 제 몫은 충분히 하고 있다. 그리고 박준은 개인전 18승 4패로 팀의 에이스다운 성적을 내고 있다. 매치별로 따지면 무패이다. 더구나 9라운드에서 박준이 셧아웃시킨 토드는 이전까지 개인전 14승 1패의 압도적인 성적을 내고 있었다. 이런 여러 곳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박준은 ‘고수게이머즈’라는 사이트에서 매기는 랭킹 3월차에서 2위로 뛰어올랐다. 1위인 장재호와의 차이는 근소하다.
이런 그의 행보는 세계 3대 오크 중에서 단연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 박준은 최근 1년동안의 대활약으로 그보다 먼저 두각을 나타냈던 플라이와 시아오티를 모두 뛰어넘었다. 언데드전은 이 두 중국 오크도 다 잘하지만 박준의 그것은 차원이 다르다.
또한 오크의 오랜 숙적인 나엘전에서도 박준은 이들보다 한 차원 앞서있다. 박준의 나엘전을 보면 그의 타우렌 칩튼은 대규모 교전시 마나번을 거의 맞지 않는다. 상대 데몬헌터가 칩튼에게 붙기 전에 레이더로 묶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컨트롤을 하면서 다른 컨트롤을 다 해주는 것은 현재로선 박준 만이 완벽하게 할 수 있다. 나엘과의 교전에서 칩튼이 훨씬 더 활개를 치니 싸움에서 이득을 보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래서 박준의 전투력이 뛰어나다고 하는 것이다.
단, 휴먼전에서만큼은 플라이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데뷔부터 스카이를 2:1로 잡으며 떴던 선수인 만큼 휴먼전 실력은 오크 중 제일이다. 그는 휴먼의 타워러쉬를 막는 실력이 상당히 뛰어나며 그래서 타워의 마스터인 ‘인피’ 왕수웬을 상대로도 대등한 전적을 내고 있다. 그러나 박준보다 월등히 뛰어난 수준은 아니고 근소한 차이일 뿐이다.
동족전인 오크-오크전은 잘 모르겠다. 필자가 워낙 동족전을 혐오해서 안보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워3의 동족전이란게 운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플라이와 박준, 시아오티의 오오전을 보면 플라이의 성적이 약간 더 좋은 것 같긴 한데 큰 의미는 없다고 본다.
이런 박준의 본좌 행보에 걸림돌은 몇 되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휴먼이다. 오크는 유저의 실력과는 무관하게 그 종족 자체의 천적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바로 휴먼인 것이다. 박준은 4대 휴먼과의 상대전적에서 딱 5할 정도 승률을 보이고 있는데 이것 때문에 그의 휴먼전이 약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이 정도면 준수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크 중 가장 우수한 휴먼전을 가진 플라이도 4대 휴먼 상대로는 5할 초반 정도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박준에게 특히 강한 휴먼이 바로 ‘인피’이다. 둘의 이야기는 작년 IEF 결승부터 시작된다. 당시 국내 e스포츠 팬들의 시선의 대부분은 256강인 천하제일대회로 쏠려있었다. 당시 워3 부문에선 장재호와 ‘영삼이’ 후앙 시앙의 명승부 등이 있었다. 필자도 이것을 보느라 동시에 열리던 IEF를 보지 못했고 결과만 들었는데 박준이 결승에서 왕수웬이란 휴먼에게 0:2로 셧아웃 당했다는 말에 큰 충격을 받았었다. 박준은 오크전의 지존 ‘스카이’를 상대로 3:2로 이긴 자인데 그가 다른 휴먼에게 셧아웃을 당하다니... 나중에 알아보니 모두 타워러쉬에 끝난 것이었다.
인피는 이후 팀 선배인 ‘스카이’ 밑에서 많은 조언을 받은 것인지 기본기까지 급속히 늘어 당당한 세계 4대 휴먼이 되었다. 타워러쉬, 우주방어타워밖에 할 줄 모르던 싸이코 휴먼은 이제는 정상급의 기본기와 더욱 날카로워진 타워질로 상대 종족에 공포를 안기게 되었다. 특히 휴먼의 과거 타워러쉬가 단순히 피니셔 역할이었다면 인피는 타워를 거점 장악에 쓰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거점이란 상대 확장에 가깝고 좁은 길목을 말한다. 이곳에 가드타워를 4개 쯤 박고 전종족 중 가장 민첩한 공성병기인 ‘모탈팀’ (공성병기 중 이동속도가 유일하게 ‘보통’이고 충돌범위가 작아 버벅임이 적다) 를 활용하여 상대방 확장을 건드린다. 상대로선 확장을 포기해야 한다. 워3에서 타워를 많이 쓰면 욕을 먹는데 인피는 그런 것에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 승리를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선수이다.
휴먼의 미래는 이래서 밝다. 정석적이면서 유연한 ‘스카이’와 ‘토드’, 그리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선보이는 ‘판타지스타’ 영삼이 (최근에는 선 아크-세컨 알케미스트라는 색다른 영웅조합으로 Srs팀의 ‘로테르담’을 격파하였다.), 지독한 플레이의 대명사 ‘인피’ 등 색깔이 다른 최강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종족은 발전할 수밖에 없고 안그래도 종족 밸런스 상 밀리는 오크의 박준으로서는 두고두고 골치 아플 일이다.
그러나 박준 역시 계속 발전하고 있다. 그가 언데드 전에 계속 실험하면서 마침내 50% 정도 완성시킨 포트리스 테크라는 ‘신검’은 언데드에게만 겨누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닐 것이다. 라지컬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곰드라가 오크, 언데전에서도 쓰이듯이, 언데드가 무서워 가게 된 캐슬 테크가 오크, 나엘전에서도 강력하듯이, 포트리스 테크 역시 잘만 완성된다면 전 종족을 상대로 유용하게 쓰일 날이 있을 것이다.
오크의 최종 3테크 포트리스...
오크의 구원자 ‘자카드’ 황태민은 ‘오크는 2테크에 강하다. 그 때 끝낼 생각만을 하고 있다.’라고 하였고 많은 오크 유저들이 그 생각에 찬성하고 있다. 당시엔 그 말은 진리가 맞았다. 영웅을 2기만 뽑는다고 할 때 가장 강한 것은 오크의 블마-칩튼이고 빌드로 봐도 오크의 그런트-레이더를 당해낼 2테크 빌드는 휴먼의 매지컬 뿐이다. 그러나 지금의 다른 종족들은 수비력이 매우 좋다. 그들은 오크의 2테크의 공세를 유연하게 막아내면서 확장과 3테크를 갈 능력이 있다. (언데는 아직...) 오크가 이것을 상대하려면 역시 포트리스로 가야하는 시대가 되었다.
포트리스의 가능성은 상당하다고 본다. 시멘트업은 오크의 약점 버로우테러를 없애준다. 수비력이 개선된다면 그것은 공격력 강화로 이어지는 법이다. 오브는 오크의 대공능력을 강화시킨다. 트롤 버서커는 ‘잘죽이고 잘죽는’ 유닛인 트롤헤드헌터의 생명을 연장시켜준다. 레이더와 버서커를 잘 활용하면 어느 정도 수의 프웜, 그리폰, 키메라 등을 쉽게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버프마법 ‘블러드 러스트’는 그동안은 쓰레기처럼 취급받았으나 박준이 딱 한번 가능성을 선보인 적이 있다. 유럽의 중급 언데드와의 경기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언데드는 파워핀드를 하느라 테크가 많이 늦었다. 그것을 이용하여 그런트 레이더에 마스터업 샤먼을 추가하여 ‘디스트로이어’가 뜨기 전에 언데 본진을 맹폭하였다. 그 언데드는 디스를 2기 정도 띄우기는 했으나 이들만으로 다수의 블러드러스트를 제거할 수는 없었다. 테크의 타이밍을 잘 노린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굳이 매지컬의 마스터 마법을 쓰지 않는다 해도 마스터업을 한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마나 회복 속도가 비약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오크의 샤먼이나 워커는 마나가 항상 부족한 편인데 포트리스의 마스터업은 이 문제를 해소해줄 것이다. 이것 외에도 여러 가지가 좋은 가능성이 많이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다 가능성에 불과한 입워크이다. 박준이 강적들을 상대로 정말 활용하는데 성공한 것은 ‘언데드’전에 한하여 3테크로 유연하게 가는 운영, 시멘트업과 ‘오브 블마’, 트롤 버서커 뿐이다. 그러나 강함에 계속 갈증을 느끼는 박준이라면 이것들 중 최소한 일부 이상은 해낼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 사실은 언데드를 절망케 하고 있다. 언데드는 이제 겨우 프로스트 웜을 해법으로 보고 거기까지 가는 운영을 연구하고 있는데 박준은 벌써 프웜의 카운터를 완성해가고 있다. 최근 6언데는 박준을 상대로 무리하게 프웜을 띄우는데 성공했으나 그 프웜은 레이더의 그물에 의해 오크 진영 한복판으로 떨어졌고 주위의 트롤 버서커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되었다. 또한, 오크가 시멘트업을 달성한다면 프웜을 통한 버로우 테러도 어려워진다. 그것 뿐이겠는가. 필자가 1편에서 언급했던 우주방어+레이더 테러+문어발 멀티 전략을 실행하기가 더욱 쉬워진다.
필자가 앞서 ‘언데드를 멸망시킬 사나이’라고 한 것도 이것 때문이다. 그가 창조하고 정립시킬 포트리스테크는 상위 오크들에게 머지않아 전파될 것이다. 워3 대회는 리플레이가 완전히 개방되기 때문이다. 리플레이만 있으면 남이 닦아놓은 길을 따라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황태민이 과거에 했던 것처럼 박준도 ‘선구자’가 되는 것이다. 황태민(블리자드도 한몫 거들고)이 5:5를 7:3으로 만들었다면 박준은 7:3을 8:2 혹은 9:1로 만들 것이다.
밸런스가 이렇게 극단적이 된다면 언데드는 대체 오크를 상대로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오직 부종족으로 ‘휴먼’을 하는 것 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NGL 로템에서 오정기가 휴먼을 했듯이 정말로 트렌드는 그렇게 될 지도 모른다. 부종족을 하는 것이 필수사항이 된다면 과연 언데드를 하는 사람이 남을까? 설령 남는다 해도 부종족 연마에 상당한 정력을 쏟아야 하는 자가 주종족의 실력이 무뎌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상위랭커에서 언데드란 종족은 사라져버릴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필자의 과대망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다. 블리자드가 오랫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WOW에 빠져서 워3의 밸런스 패치를 하지 않는다면 언데드의 미래는 없다. 언데드와 오크의 관계는 그만큼 위험하다. 오직 암흑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런 암울한 현실 속에서 스콜지(언데드 국가를 칭하는 말)를 오랫동안 지켜왔던 6언데는 계속해서 유저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6언데 뿐 아니라 ‘스페이스’ 박승현이 내리고 있는 한줄기의 미약한 빛에서 더 높은 가능성을 보고 있다. 그 빛은 정말로 미약하지만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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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입니다.
개인적인 잡설을 좀 하자면 워3의 모든 영웅 중 타우렌 칩튼을 제일 좋아합니다. 쇼크웨이브라는 대량학살 스킬, 복수 유닛 스턴의 워스텀프, 최고의 오오라 인듀런스 오라륵 가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칩튼 가지고 놀아야지~'하고 오크로 선칩튼만 하다 때려쳤습니다. 이놈이 덩치에 피해 생각외로 맺집은 없고 (드래군처럼) 경험치 올리기도 힘들어 스킬 찍기가 힘들더군요. 그래서 그냥 나엘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이 올라오고 얼마 후, 댓글로 '박준이 선칩튼으로 승리했다'는 소식이 들리더군요. 상대가 제대로 안해서 이긴 감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박준은 그정도로 '한계를 두지 않고 모든 가능성을 열고 도전하는 선수'입니다.
캘로그님이 언데드의 대재앙 박준의 대항마로 박승현 선수를 꼽고 있지만, 소오올직히 말해서 전 부정적입니다. 스타판이야 (전지하진 않아도)전능하신 맵퍼님이 계시지만, 맵 조작 사건 이후 레더맵을 쓰는 워3판에 맵 수정은 오로지 블리자드의 몫입니다. 궁극의 해결책인 패치도요.
그런데 와우에 빠진 블리자드가 패치를 언제쯤에야 해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