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큰 그릇은 늦게 찬다, 박준
‘언데드를 멸망시킬 사나이’
필자는 박준을 이렇게 보고 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냐면 그의 강함은 그 자신에 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의 압도적인 우세를 유지해주고 있는 오크의 빌드와 체제에 만족하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있다. 유연하게 포트리스 테크로 가는 운영법을 만들어낸 것이 대표적이다. 일반적으로 목이 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법인데 박준은 장래에 목이 마를 것을 대비해서 미리 우물을 파는 유비무환의 정신을 가진 것인지, 그게 아니면,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는 병에 걸린 히딩크처럼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 병에 걸린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승리에 대한 끝없는 갈증과 탐욕은 그를 계속 강하게 만들고 있다. 그는 지금도 좀 더 완벽하고 압도적인 승리를 위해 신병기를 창조 중이다.
박준의 이런 만족을 모르는 성격은 어쩌면 굉장히 오랜 시간을 기다려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매우 오래된 선수이다. 프로즌쓰론 초기부터 이미 배틀넷에서 오크 중 탑 순위에 들며 이름을 날렸다. 그 때가 2004년 초이니 무려 4년 전이다. 모두가 이중헌 만을 바라보던 시절이라서 꽤 뭍히긴 했지만 그는 오크 최초의 50레벨 달성자이다. 당시 배틀넷 래더는 굉장히 공신력이 있어서 거의 모든 프로게이머들이 참여하고 있었고 50레벨을 달성하려면 이들 사이에서 승률 60% 이상을 해야 했다. 당시의 최악의 종족 오크가 이것을 하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었다. 박준은 이것을 결국 해내었고 그 실력을 인정받아 장재호가 소속되어있던 ‘조아’ 팀에 입단했다.
그리고 곧바로 플레이오프 승자결승에서 최강의 팀 ‘손오공 프렌즈’의 에이스 ‘체크’ 이형주와 만나게 되었다. 당시 스코어는 3:1로 조아가 앞서고 있어서 박준이 이기면 끝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박준은 그 경기에서 신인의 단점을 그대로 드러냈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시야가 극히 좁아져 이형주의 빠른 멀티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완패였다. 그 후 조아는 장재호-강윤석의 팀플이 무너지고 ‘레인보우’ 김태인마저 이중헌에게 패하면서 3:4로 역전패했다.
이 후 조아는 한빛을 4:0으로 잡고 최종결승에 올라갔으나 손오공 프렌즈에게 0:4로 완패하면서 준우승에 그쳤다. 박준은 이 동안 1번도 출전하지 못했다. 아무 활약도 못한 채 박준은 다음 시즌을 맞았다. 조아팀은 B조에 들어갔고 박준은 삼성칸과의 경기 마지막에 출전하였다. 상대는 ‘레인’ 강서우였다. 당시 워3는 1.15버전이었는데 이때가 그 유명한 ‘버그 디스’의 시대다. 디스트로이어의 스킬 ‘멸망의오브’는 마나소모가 적어 오랫동안 쓸 수 있었고 본 데미지의 100%에 해당하는 스플래쉬 데미지가 들어갔으며 스플래쉬 범위가 엄청나게 넓어서 ‘버그’라 불리고 있었다. 실제로 블리자드도 의도한 것 이상으로 강했다면서 버그임을 인정하기도 했다.
박준은 이런 버그 디스를 구사하려는 강서우를 상대로 기가 막힌 뱃라이더 자폭을 성공시키며 우세를 잡았고 그 후 계속하여 언데드 본진을 맹폭하였다. 강서우가 칼을 뽑으려하면 본진이 위태로워졌고 포탈을 타며 회군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낙관이 너무 빨랐다. 강서우는 휘둘리면서도 악착같이 오크의 확장 의도를 분쇄했다. 그러면서 언데드의 영웅레벨이 올라갔고 한순간에 역전되었다. 강서우의 승리였다. 이것으로 팀은 패했고 이 패배 때문에 4강 진출에 실패했다. 박준은 매우 잘 싸웠지만 이길 기회를 놓친 것은 초중반의 선전을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이후 박준은 그다지 특출난 활약을 하지 못하며 오랜 동면기를 가지게 된다.
박준은 오랜 시간을 그냥 좀 잘하는 수준에서 정체하고 있었다. 엠비씨게임 프라임리그에는 올라갔으나 높은 곳까지 가지는 못했다. 그 긴 시간동안 오크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황태민의 등장과 1년간의 치세, 그리고 장재호에 의한 황태민의 몰락, 그 후 황태민의 플레이를 완전히 흡수한 그루비와 ‘파시어’ 홍원의의 활약 등이 있었다.
원래 박준보다 아래의 선수로 평가받았던 홍원의는 눈부신 성장을 하였다. 황태민의 선블마와 레이더 활용에다 본인이 창조한 세컨 팅커 전술은 대 나엘전에 굉장한 파괴력을 선보였다. 그의 나엘전은 10분을 넘기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는 휴먼전에서도 세컨 팬더를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스카이를 여러 차례 격파했다. 그가 가장 빛났던 대회는 스타즈워 1회 대회로 유럽, 중국, 한국에서 몇 명씩을 대표로 뽑아 붙이는 방식이었다. 처음 매치에서 승리한 자는 다음 상대를 지명하여 계속 경기를 이어가는 것이었는데 홍원의는 4연승을 달리던 그루비를 제압한 후 계속 승리하여 무려 9연승을 달렸다.
홍원의에게 자극받은 것일까. 박준은 이후 열린 MWL(엠비씨게임 워3 리그)에서 홍원의와 함께 동반으로 4강에 오르며 오크의 시대가 건재함을 알렸다. 맵 조작이 배제된 깨끗한 대회에서도 오크가 이렇게 강하다는 것을 알렸다. 그러나 나엘에는 그가 있었다. ‘둘이 아주 놀구들 있네요.’라는 듯이 장재호는 4강에서 홍원의를 3:0, 결승에서 박준을 3:0으로 작살냈다. 오랜 잠에서 깨어나는 듯하던 박준은 이 충격으로 다시 동면에 들어갔다. 홍원의도 이 후 기세가 크게 꺾이며 포스를 잃었다. 홍원의는 장재호를 극복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였으나 끝내 트리플 스코어 이상 따라잡지 못하며 좌절하였고 결국 은퇴하였다. 오크유저로서 이것은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는 어린 선수였고 더 발전할 여지가 많았다. 그때의 고난을 이겨내고 더 노력했다면 언젠가는 벽을 깨게 되었을 것이고 지금의 성장한 워3 시장에서 많은 상금과 연봉을 받는 선수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강서우가 성공적인 복귀를 했듯이 그도 최상위급 오크로 금방 설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 후 워3는 유럽과 중국시장의 활성화로 판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 한국의 수많은 인재들은 유럽, 중국팀에 소속되어 각종 개인, 팀 대회에 참가하였다. 그러나 WC3L이 각종 워3 대회의 중심으로 우뚝서고나서 여러 시즌을 거칠 때까지도 박준은 부름받지 못했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2006년 7월말이 되어서야 그는 WE(월드 엘리트)팀에 입단할 수 있었다. 이 팀에는 ‘리마인드’ 김성식, ‘소주’ 이성덕, ‘체크’ 이형주, ‘수호’ 등 쟁쟁한 나엘들이 가득했고 최강의 휴먼 ‘스카이’ 리샤오펑이 있었다. 이런 환상적인 연습 상대들과 함께하며 박준은 드디어 벽을 깼다. 단번에 팀동료 ‘시아오티’를 넘어 최고의 명성을 떨치는 ‘그루비’에 근접하게 된 것이다.
WE팀은 종전의 스카이, 소주, 리마인드의 3톱에 박준이라는 특급카드까지 얻게 되어 디펜딩 챔피언 4K의 유일한 대항마로 떠올랐다. 많은 이들이 이 두 세력의 격돌을 예상하며 즐거워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4K는 그루비가 카산드라를 만나면서 슬럼프에 빠졌고 승부는 싱겁게 끝났다. WE는 6언데의 일원이었던 강서우까지 가세하면서 WC3L 9승 무패를 달렸고 NGL도 장재호, 노재욱의 MYM을 4:3으로 간신히 이기고 우승했다. 박준은 WC3L 플레이오프에서 그루비를 박살내면서 최고의 오크가 누군지를 세상에 알렸다.
다음 시즌을 앞두고 박준, 김성식, 이성덕은 연봉, 상금 분배 문제 등의 이견으로 WE를 떠나게 되었다. 박준, 김성식은 SK에 입단했고 이성덕은 시간이 좀 더 흐른 후, 그리고 강서우도 계약기간이 만료되자마자 SK로 갔다.
이러는 동안에도 박준은 계속하여 성장했다. 그는 W3에서 오크 상대로 무적의 포스를 뿜던 스카이를 상대로 5번기에서 승리하는 기적을 연출했다. 당시 스카이는 이 대회 우승과 장재호 타도를 위해서 세계 메이저 대회인 eswc까지 포기하려 했는데 박준에게 2:3으로 지는 바람에 그러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이후 W3 타이틀결정전에서 박준은 디펜딩 챔피언 장재호와 만나 1:3으로 패했다. 그러나 국내 방송경기에서 더욱 강해지는 장재호를 상대로 한 세트라도 따낸 것은 참 대단한 일이었다. 박준은 다음 W3에서 장재호를 또 만나 2:3으로 패했다. 장재호로선 이겼어도 모골이 송연해질만큼 위기를 느꼈을 것이다.
이런 일취월장하는 기량을 기반으로 박준의 SK는 상승가도를 달렸다. ‘몰락왕가’는 박준과 한국인들의 힘에 의해 다시 일어섰다. 국내 프로리그 방식과 유사한 WC3L에선 정규시즌과 플레이오프 모두 MYM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고, 엠겜 팀리그 방식과 유사한 NGL에서도 정규시즌 9전 전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개인대회에서도 박준은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MGC란 중국대회에서 그는 패자조를 뚫고 올라와 장재호를 만났고 패자조 출신의 페널티를 뚫고 2:0, 2:0 (도합 4:0)의 믿기지 않는 압승을 거두었다. 박준의 기세와 실력은 누구나 알고 있었으나 그래도 오크가 장재호에게 4:0을 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EM(익스트림 마스터즈)라는 유럽 대회에서도 박준은 돌풍을 이어갔다. 그는 순조롭게 결승에 올라 패자조를 뚫고 올라온 ‘토드’ 유안 메를로와 만나 3:3 (1:2, 2:1)의 혈전을 벌였고 최종전에서 이겼기 때문에 우승을 차지하였다. 휴먼전도 뛰어나다는 것을 알린 것이었다. 박준은 전 EM 대회우승에 이어 2연패를 달성했다.
AWL(아프리카 워3 리그)라는 국내대회에서도 박준은 날라다녔다. 1차시즌 ‘스페이스’ 박승현에게 패하여 8강에 머물렀지만 2차시즌엔 16강 강서우, 장재호를 잡으며 2승 1패로 8강에 올랐고 디펜딩 챔피언 ‘싸커’ 윤덕만(나엘)을 2:1로 제압하며 4강 진출에 성공했다. 4강부터의 행보는 시원시원했다. 박준을 만난 ‘불행한’ 언데드 천정희는 0:3으로 힘없이 무너졌고 결승에선 떠오르는 오크 강자 ‘포커스’ 엄효섭을 역시 3:0으로 완파하며 2차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AWL 3차시즌에서도 기세는 이어졌다. 16강에서 유원석과 노재욱을 가볍게 잡으며 8강에 올랐고 8강 대 이종석(휴먼)전 3:1, 4강 대 조대희(언데)전 3:0, 결승 대 박승현(언데)전 3:0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2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장재호나 세계 4대 휴먼이 참가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박준의 털 끝 하나 건드리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었다.
박준의 나이는 이제 만 21세이다. 1월생이니 한국식으로 치면 23세 쯤 될 것이다. 작년초부터 활약을 했으니 21~22세에 전성기가 찾아온 셈이다. e스포츠 선수들의 연령을 볼 때 정말로 대기만성이라 할 수 있다. 그는 3년이란 시간을 음지에서 보냈고 그동안 좌절과 갈등도 많이 겪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국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20세가 넘은 것 가지고 자신의 전성기는 끝났다는 둥 하는 선수들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한때 날랐다가 잠잠해진 선수들도 희망을 잃지 말았으면 한다. 과연 과거에 날랐을 때가 그들의 진정한 전성기였을지를 의심하길 바란다. 어쩌면 진짜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박준도 이제 막 전성기란 시기에 발을 디딘 정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는 아직 ‘천하제일인’이 아니고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스스로에게 만족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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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데드-박승현 시리즈의 4편에 넣으려고 했는데 한편으로 끝날 것 같지 않아서
따로 했습니다. 그러나 내용은 언데드-박승현 시리즈와 이어집니다.
스토리는
1. 야언좆 -> 2. 야언좆2 -> 3. 야언좆3 -> 4. 박준 -> 5. 박준2 -> 6. 한줄기의 희망 박승현이 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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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입니다.
워3에 식견이 깊지 않은 저에게 박준이 처음 각인된 시기는 W3였습니다.
SKY와 장재호의 리매치가 기대되던 때, 잘 몰랐던 박준-_-이라는 오크가 난대없이 SKY를 3:2로 잡아버린 사건때 말이죠. 당시 '오크가 휴먼 잡는건 종족빨'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난대 없는 무관심 오크가 상성빨로 SKY잡고 빅매치 망치는구나ㅠㅠ'라고만 생각했습니다. 30연승이 넘는 장재호의 대 오크전 연승기록 때문에요.
그런데 기대 밖으로 박준 선수는 장재호 선수의 오크전 연승을 끊으면서 선전했고, 현재 신준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 입워크는 안하길 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