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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7/01/08 19:40:03 |
Name |
M.Ladder |
File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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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어느 CJ ENTUS 팬의 하루 (결승후기) |
- 어제 결승에서 돌아와 일기용으로 시작한 글이라 반말체임을 양해해주세요.
- 도우미로 결승 준비를 하고 경기들을 보며 느꼈던 감정들을 한번 써보고 싶었습니다.
아무래도 CJ 팬이다 보니 지나치게 CJ 쪽에 편중되어 있는 글이긴 하지만; 모쪼록 어쩔 수 없는 팬심을 어여삐 여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MBC게임의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
오늘은 결승.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시계를 찾는다.
어제 설레는 마음에 잠이 안 와 늦게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에 혹여나 늦잠을 자지 않았을까 걱정했지만
아직 시계 알람도 울리지 않은 이른 시각.
어제 미리 준비해두었던 응원도구 및 현수막, 칼이며 가위 등 여러 준비물을 챙겨 결승장소로 향했다.
이재훈 선수의 팬으로 시작해 수 없이 눈물을 흘렸던 지오의 팬으로, 그리고 이제 기업팀의 후원을 받는 CJ ENTUS의 팬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 여러 가지로 이름을 바꾸어가면서 스타크래프트와 선수들을 지켜봐 왔던 오래동안
직접 내 손으로 우리 팀의 결승을 준비하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너무도 설레고 긴장되는 아침이었다.
나는 사실 이번 결승에 재훈선수가 출전할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한가지 기대하는 일이 있었다.
이번 결승에서 우승하고 통합결승에서 SK를 상대하게 되면 그때는 한 경기쯤 출전해주지 않을까.
기왕이면 최연성 선수의 스나이퍼로 출전해 팀에 귀중한 1승을 안겨주었으면 좋겠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재훈의 팬으로서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추위에 곱은 손으로 가위질을 하고, 모여있는 팬들을 줄을 세워 좌석 신청 명단을 확인하고 번호표를 나눠주는 것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눈이 온다던 일기예보와는 달리 춥기는 했으나 맑은 하늘 덕에 마음은 더욱 즐겁고 마냥 기쁘기만 했다.
번호표를 나눠주고, 준비해 간 현수막을 매달고 잠시 빵으로 빈속을 달래다 보니 어느덧 입장시간이 다가왔다.
아침부터 기다리다가 번호표를 받고 잠시 흩어졌던 팬들을 다시 순서대로 줄 세우고
회사에서 준비한 맛밤과 맥스봉, 미초와 두건을 나눠주는 동안, 마치 그 모든 걸 내가 준비하기라도 한 듯이
어깨가 으쓱으쓱 괜스레 신나고 뿌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
드디어 경기장의 문이 열리고 배치받은 팬 좌석에 어느 곳이 보기 편한 자리일까 생각하며 팬들을 착석시킨 후
선창 연습을 하고, 운영자들끼리 준비해간 선수들 개별 닉네임을 적은 현수막을 적당한 자리의 팬들에게 맡겨놓고
우리는 잠시 밖으로 나와 서로 담소를 나누거나 CJ직원들과 눈치싸움을 하며 (^^;) 남은 맥스봉을 몇 개 챙겨 먹기도 했다.
맛밤을 둘러싼 쟁탈전도 벌어졌으나 CJ직원들은 맛밤만은 도우미들로부터 사수하는 데 성공하고,
이후에 토라진 척 하는 도우미들에게 화해의 뜻으로 건네주신 맛밤 몇 봉에 분위기는 급 화해모드로 전환~
생각해보면, 이때 우리에게 누군가 "MBC는 응원연습 하는데 우린 안 해도 돼?" 하는 물음에
"저희 선창 연습 다 했어요~" 하고 생각 없이 대답 한 것은 맥스봉에 정신이 팔린 성의 없는 대답이었을 수도 있겠다.
이후 김철민 캐스터의 양팀 서포터즈들이 준비한 응원을 보여달라는 멘트에 황급히 준비해 간 현수막을 들어올리긴 했지만
우린 다른 응원 준비는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왠지 기세싸움에서 지고 들어가는 것 같은 안타까운 기분에 우리는 약간 우울해졌다.
오늘 이기고 통합결승에 가게 되면, 그때는 멋진 응원전을 펼치자고 서로 다짐을 하며 경기가 시작되었다.
아침부터 좋았던 기분이 약간 걱정스럽고 우려되는 마음으로 바뀐 것은 엔트리를 확인한 이후부터였다.
우리의 가장 강한 카드인 마재윤 선수가 서경종 선수와 맞붙게 되었을 때
서경종 선수와 팬들에겐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당했다' 라는 생각이 스칠 수밖에 없었다.
승부의 행방을 예측하기 힘든 저그대 저그전, 패배하더라도 사기가 크게 꺾이지 않을 수 있고
서경종선수가 마재윤 선수를 잡아내었을 때는 크게 사기가 상승할 수밖에 없는 엔트리.
저프가 대세인 망월에서의 저테조합, 저테가 대세인 뱀파이어에서의 저프조합.
내 머릿속엔 이대도강이라는 병법과 손빈의 병법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어쩌면 CJ팀의 카드는 너무나 뻔한 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마재윤 서지훈 변형태 박영민의 개인전카드. 단지 그들을 어느 맵에 배치하느냐는 정도의 변수만 있을 뿐이니 말이다.
그리고 이주영 김환중의 망월팀플과 장육 주현준의 뱀파이어 팀플.
장육선수 대신 김민구 선수가 대체되긴 했지만 저,테 조합이라는 예상을 뛰어넘는 조합이 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막을 테면 막아봐'라는 지오팀의 엔트리는 예전부터 보아왔고,
그것이 통하는 장면 또한 여러 차례 경험해 왔기에, 나는 우리 선수들을 믿고 있었다.
1경기, 역시 우리의 에이스, 마재윤 선수는 서경종 선수를 잡아내었다.
초반 서경종 선수의 저글링의 움직임에 잠시 숨 쉬는 것을 잊을 정도로 긴장했지만
특유의 단단한 방어력으로 별 피해 없이 막아내고 발업도 안된 저글링으로 오히려 상대의 본진에 난입하는 재윤선수의 플레이는
그가 왜 CJ의 에이스인지, 그가 왜 마재윤인지 여실히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2경기는 플토대 플토전, 박지호 선수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지만 나는 테란전보다 강한 박영민 선수의 플토전을 믿었다.
그러나 상대의 기습적인 노게잇 더블과 본진 입구를 가로막은 파일런으로 인한 초반 견제 실패로 이어진 박영민 선수의 뼈아픈 패배.
3경기 우리의 주력 팀플 조합인 주영,환중 조합을 무너뜨린 슈퍼 테란 이재호선수의 눈부신 활약.
머릿속을 맴돌던 손빈의 병법과 MBC게임의 엔트리가 정확하게 들어맞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은 이맘때부터였다.
상대의 에이스 카드는 모두 마재윤을 피해갔다.
마재윤만 피한다면 개인전은 5:5 선수 개인의 면면은 CJ나 MBC 어느 한팀도 앞서거나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팀플, 우리의 중간말은 이주영, 김환중 조합의 망월 팀플레이이고 약한 말은 뱀파이어의 팀플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중간 말인 주영환중 조합은 상대의 강수 이재호 테란의 팀플 기용에 잡혀버렸다.
상대는 뱀파이어에서도 뭔가 준비했을 것이다.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4. 5 경기를 반드시 잡아내야 한다.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4경기 변형태 선수의 무언가 전략적 사명을 띠고 나온 듯한 SCV가 김택용 선수의 프로브에 발각당하고
원팩 더블을 준비하는 무렵에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원팩 더블 이후 엔베없이 3팩을 올리는 변형태 선수와, 트리플 넥을 가져가는 김택용 선수의 빌드가 맞물리면서
그리고 변형태 선수의 벌쳐가 김택용 선수의 2번째 멀티로 이동하는 프로브를 발견하면서
나는 옆 사람과 함께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전진해!! 고고고!! 벌쳐~!!!"
우리가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반대쪽에 앉았던 녀석은 귀를 막고 있었다고 경기가 끝난 후 알려주기도 했다 ^^;;
그렇게 변형태 선수가 짜릿한 승리를 거둔 후 CJ 팬 석의 분위기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제 한 경기만 더 잡아내면, 적어도 에결이다.
그리고 5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는 다름 아닌 우리 팀의 기둥인 서지훈 선수가 아닌가!!
'변형태'를 연호하는 CJ팬의 함성과 '괜찮아'를 외치는 MBC의 함성 속에서,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5경기, 무시무시한 포스를 내뿜는 원배럭 투엔베 이후 4배럭의 서지훈 선수의 빌드.
그러나 첫 진출 병력이 앞마당에 모여있던 소수의 병력과 뒤에서 달려든 저글링 뮤탈에 힘없이 싸 먹히고
전성기적 기량이 깨어난 듯 무시무시한 전투력을 뽐내며 서지훈 선수의 본진으로 달려드는 저그의 병력에
나는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벌써 눈물을 보이는 몇몇 CJ의 팬들과 박성준을 연호하는 MBC의 팬들을 보면서 바로 앞 경기의 양 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팬들은 선수를 닮기 마련인건지, 우리는 팬들조차 항상 패배엔 묵묵했다 ^^;
MBC처럼 져도 '괜찮아'라고 선수들에게 힘을 주는 응원은 별로 하지 못했었다.
그 순간엔 진심으로 MBC 팬들이 부러웠다. 그리고,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우리도 저들을 본받아
비록 선수가 경기에 패하더라도 씩씩하게 선수들을 위로할 수 있는 듬직한 팬의 모습을 보여야겠다고 생각했다.
6경기, CJ팬들은 기적이라도 바라는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보지 않았을까.
초반부터 수상한 상대 플토의 움직임, 노게잇 더블을 감행하는 프로브의 움직임에 양 팀의 벤치와 팬들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저글링과 마린의 공격을 받아내는 프로브와 저글링, 질럿의 공방전에 팬들은 탄성과 탄식을 내뱉었다.
결국 주현준 선수의 파이어뱃까지 별다른 활약 없이 잡히고 MBC가 승기를 잡아나가자, MBC쪽은 팬들은 물론이고
선수들조차 앉아 있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등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CJ쪽은 차마 경기를 끝까지 보지 못하고 자리를 떠나는 팬들의 모습도 보였다.
사실은 나도 경기 후에 정리할 것이 없다면 당장 그 자리를 빠져나가고 싶을 만큼 안타까운 기분이었다.
그러나 김민구 선수가 엘리되어 경기에서 빠져나간 후에도, 끝까지 고군분투하는 주현준 선수의 모습을 보면서
결국 코끝이 시큰하게 달아올라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주현준 선수가 안타깝고, 고맙고, 대견했다.
누구도 포기할만한 상황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주현준 선수의 근성에
오늘 CJ는 패했지만 그래도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가슴 한편에 위안이 되기도 했다.
광안리에서 안타깝게 울분을 삭혔을 MBC 선수들의 기뻐하는 모습과 그들의 팬의 모습에 박수를 보냈다.
멋진 경기를 펼쳤다. 오늘 승리하기에 MBC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고개 숙인 CJ 선수들과 팬들에게 죄송하다고 말씀하시는 감독님의 모습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할 수만 있다면 선수들 모두를 꼭 안아주고 오늘 멋지게 싸웠다고, 기운내라고, 다음엔 꼭 승리하자고 말해주고 싶었다.
CJ ENTUS 로 창단되기 전까지, G.O는 많은 눈물을 삼켜왔다.
주전 선수 2명의 공백으로 휘청일만한 상황에서도 꿋꿋이 버티면서
어느새 부쩍 자라 팀의 기둥역할을 튼튼히 하고 있었던 변형태, 마재윤, 박영민 선수.
단 7인 엔트리로도 알고도 못 막는 전력을 과시하며 전 선수의 에이스화를 이루었던 Greatest One.
이재훈, 서지훈, 김환중, 이주영, 마재윤, 변형태, 박영민
그리고 그 시절을 견고히 견디며 ENTUS로 거듭나 새롭게 자라나는 CJ의 신인
장육, 주현준, 권수현 그 외의 많은 신인 선수들.
CJ ENTUS의 역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예전 Greatest One 이 그러했듯이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최강의 팀으로서,
선수들 간의 유대와 화합이 만들어내는 흔들림 없는 강함을 지니고
명장 조규남 감독의 휘하에 이제는 CJ라는 든든한 버팀목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간다.
오늘의 눈물은 새로운 싹을 틔우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전기리그에서 안타까운 눈물을 흘렸던 MBC가 오늘 그러했듯이.
그리고 나는 변함없이 그들을 응원하며 지켜볼 것이다.
언젠가 기쁨의 눈물을 흘릴 그날을 기대하며.
GO GO! CJ EN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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