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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7/01/07 22:50:21 |
Name |
새벽의사수 |
Subject |
MBC게임 히어로의 우승을 축하하면서... |
* 2003년에 PGR에 가입해놓고, 여지껏 글 하나 제대로 안 써봤는데 오늘 결승의 감동을 놓치고 싶지 않아 졸문을 올려봅니다. 제 블로그에 쓴 글인지라 독백투인데다가 '선수' 호칭도 없습니다만, 양해 부탁드려요. :)
#1.
스타크래프트를 TV에서 방송하는 걸 처음 본 것부터 따지면 나도 꽤나 오래된 축에 들어간다. 워크래프트 2를 즐겼던 탓에 스타 오리지널이 나오자마자 플레이했었고, 무심코 텔레비전을 켰을 때 itv에서 간간히 해주던 스타 경기를 누가 누군지도 모른 채 보곤 했으니까. 하지만 본격적으로 스타리그를 마니악하게 챙겨보기 시작한 것은 2002-2003년 파나소닉배부터였다. 당시의 '절대강자'였던 이윤열의 팬이 됨과 동시에, 나는 2005년까지 나의 고등학교 시절 3년을 스타리그와 함께 했다.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이 바닥에, 많은 젊은이들은 게임에 대한 열정과 실력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보다 강해지겠다는 욕구만을 버팀목 삼아 거침 없이 뛰어들었고, 나는 내가 섣불리 뛰어들 수 없었던 꿈을 향한 질주를 그들에게서 발견했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게이머라는 직업의 입지를 다져가고, 대중적으로도 보다 인정받을 수 있는 프로 게임계를 위해, 게이머와 팬들은 물론 방송사마저도 한 마음이 되어 달려나갔던 그 시절의 스타판은, 학교-집이라는 정해진 길만을 걸어가던 내게 설령 대리만족에 불과할지라도 너무나도 매력적인 꿈의 색채를 띠고 있었다.
그랬던 스타리그가, 2006년에는 전 팀이 창단을 이루고, 억대 연봉 선수를 손가락으로 꼽기 힘들 만큼 발전했다. 한 경기 한 경기 끝까지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던 게임의 감동은 늘어난 경기 수만큼 늘어난 상황평준화된 실력들 때문에 줄어들었고, 그와 더불어 방송에 갓 등장한 신인들의 ID마저 외우고 있을 정도로 열정적이었던 스타리그에 대한 내 관심 또한 줄어들었다.
한동안 스타리그를 멀리했다. 대학이란 새로운 사회에 부딪힌 탓도 있었고, 내가 좋아했던 선수들은 모두 올드 게이머가 되어 하나 둘씩 이 바닥을 떠난 것 때문이기도 했고, 내가 주목했던 신인들은 이제 더 이상 신인이 아닌 중견급 선수가 되었다는 이유도 있었다. 선수들의 게임에 대한 이해는 더 이상 깊어질 수 없을 만큼 전체적으로 깊어져서, 생판 모르는 신인들이 너무나도 강했던 과거의 선수들을 손쉽게 격침시켰다. 더블, 더블... '수비형'이 고개를 들면서 직접 플레이하는 게임 자체에 대한 흥미도 떨어졌다. 나는 2년여 동안 열심히 연마해온 스타크래프트를, 생각날 때나 간간히 하는 선에서 그만두었다.
#2.
한 번 식어버린 열정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PGR21에 들르는 목적이 게임 관련글이 아니라 유머 게시판을 보기 위한 것으로 바뀌었다. 국가 대표 월드컵 경기보다 가슴 졸이며 지켜보았던 이윤열의 늘어가는 패배에도 무덤덤해졌다. 대박 경기도 챙겨보기보다는, 그저 경기 결과만을 확인했다. '누가 이겼구나...' 혹은 '누가 졌구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스타리그는 나의 어린 날의 추억 한 켠에 간직될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남아서, 자취의 외로움을 달래고자 무심하게 VOD로 간간히 다시 보기 시작한 스타리그에서 나는 다시 한 번 꿈의 빛을 발견했다. 곧 30대가 다가오는 맏형 임요환의 제대 후에도 프로게이머를 계속하겠다는 약속에서, 3회 우승의 영광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뜬 아버지께 바치는 이윤열의 눈물에서, 팀이 창단될 때까지 보다 좋은 대우를 전부 뿌리치고 꿋꿋하게 GO와 함께 한 서지훈의 도도한 표정에서, 팀의 위기 상황에서 극적인 승리를 한 뒤 벌벌 떨면서도 치켜든 박지호의 엄지손가락에서, 파릇파릇하던 GO의 막내곰 시절을 지나 '통합 지존'의 자리에 올라선 마재윤의 담담한 자존심에서...
그랬다. 스타크래프트는 이미 내게 게임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게임 그 이상의 무엇이었다. 오늘의 결승전에서도, 내심 CJ를 응원하긴 했지만 게임 내용과 승패는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다. 더 이상 누가 어떻게 재밌게 플레이를 했고, 누가 어떻게 완벽한 플레이를 했는지가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주된 요소가 아니었다. 스나이핑을 당해도 깔끔하게 승리하는 마재윤의 침착한 자부심이, 파일런 하나로 승부를 가른 박지호의 승부사 기질이, 극심한 부진과 비관적인 예상을 모두 박살내는 듯한 박성준의 환한 웃음이 감동이었다. 패배한 뒤 CJ의 안타까운 모습과, 고생 끝에 우승한 MBC게임 히어로의 기쁜 모습 모두가 감동이었다. 아마도 '해적단'으로 불렸던 POS 시절부터 MBC게임의 팬이었을 여성팬들의 환희의 눈물과, 끝까지 진행에 힘쓰는 김철민 캐스터의 쉰 목소리가 감동이었다.
그래, 그래서 나는 스타리그를 계속 사랑해 왔던 것이다. 판이 앞으로 커지든 말든, '이스포츠? 스타뿐이면서!'라는 비아냥이 터져나오든 말든, 프로리그 주5일제가 논란이 되든 말든, 나는 그들의 꿈빛 열정을 예전만큼 정열적으로는 아닐지라도, 찬찬히 지켜보는 선에서라도 한 발자국씩 쫓아가 볼 거다. 그들 모두의 꿈에 박수를 보내는 것밖에, 지금은 달리 방법이 없긴 하지만.
제목에 이어, 다시 한 번 MBC게임 히어로팀의 승리를 축하합니다. :)
좋은 경기 펼쳐준 양 팀의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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