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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6/11/26 16:43:04 |
Name |
pailan |
Subject |
예선장의 추억들. |
안녕하세요. pgr에 다시 글 쓰는 건 정말 오랜만이라 저절로 인사가 나와버리네요^^
어제 늦은 밤에 스타뒷담화 재방송을 봤습니다.
그 주제중에서 예선장의 문제점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다가 예선장에 얽힌 여러가지 추억들이 떠오르더군요.
아마도 임요환 선수가 우승자에게 시드조차 배정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예선에 불참했던 그 해의 예선장이었습니다.
아는 동생들과 큰 맘 먹고 예선장인 어느 PC방까지 찾아가면서 굉장히 고민했습니다.
"혹시 우리 못 들어가는 거 아니야? 쫓겨나면 어쩌지?"
"설마 그러겠어? 혹시라도 그러면 선물만이라도 전해주고 가자."
그. 러. 나. 완전히 쓸데없는 고민이었습니다.
화목하고 가족적인 분위기에 아무나 출입가능한 커다란 문, 심지어는 각 팀 감독님들도 별로 오지 않으셨더군요.
저희 같은 고민을 한 팬들이 많았었는지 팬들의 숫자도 많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원없이 선수들과 이야기+선물전달+관람의 풀옵션의 영광을 누렸습니다.
선수들의 긴장도도 높지 않았고, 일명 '올드게이머'들이 많아서 서로 안부를 묻고 장난을 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참 좋아보였습니다. 요즘같이 선수들이 많아지고, 경쟁이 많아진 상황에선 힘들겠죠.
임성춘 선수가 멋진 까만색 반팔 쫄티를 입고 등장하시는 바람에 제가 침을 흘릴 뻔 하기도 하고(정말 몸매가 멋있으셨습니다;;), 밖에서 흡연하는 선수들을 보고 깜짝 놀라서(어린 선수들도 있었는데;;) 뒷걸음 쳤던 일, 선수들 뒤에 옹기종기 모여서서 조그맣게 저희만의 해설을 해가며 관람을 했던 것 등 지금 생각해도 그 날 간 건 정말 잘 한 일이었습니다. 언제 저에게 그런 기회가 또 올까요.
이어지는 예선에도 기대를 품고 갔었는데요, 도대체 장소 섭외를 누가 한건지, 종각역 한가운데 지하 광장, 사람들 막 지나다니고, 소음에 먼지까지 많은 곳에서 경기를 하는 선수들이 안쓰러웠습니다.
이번에는 확실히 진출에 가까워져서였는지, 선수들의 신경도 날카롭고 경기도 장기전이 늘어나서 즐겁기보다는 숨이 막혔습니다.
떨어지고 쓸쓸하게 장비를 챙겨서 조용히 나가는 선수들의 뒷모습들은 아직까지도 가슴이 아픕니다. 역시 승부의 세계란 비정한거구나... 라고 생각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날의 압권은 김정민 선수와 김현진 선수의 초초초 장기전이었습니다.
맵을 동서로 갈라서 모든 맵에 터렛이 깔리고 배틀크루저가 몇 부대씩 움직이는 엄청난 경기였는데, 그 누구도 누가 이길지 예측 못하는 가운데, 해설을 시작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김동수 해설이었습니다.
역시나 편안한 슬리퍼에 머리띠를 하고 나타나셔서 선수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으셨는데, 김정민 선수의 우세를 점치시면서 하셨던 한마디.
"나보고 이런 경기 해설하라 그러면 죽어버릴거야!"
결국 경기는 김정민 선수가 이겼고, 뒤에서 보던 저는 정말 무당해설이라고 감탄에 감탄을 했습니다. 경기보는 눈이 정말 날카로우시더군요.
그 날 엄청난 장기전을 이기신 김정민 선수께 조심스레 사진을 청해서 같이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열심히 하는 모습과 끝까지 기다린 팬들을 배려하는 모습은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요즘 들어 제가 열심히 경기장에 다니고, 예선장까지 쫓아다닐 때 항상 보이던 선수들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김정민 해설처럼 새로운 길을 걷기도, 강도경 선수처럼 군대에 가기도, 그리고 조용히 은퇴하시기도 한 많은 선수들.
너무 그립네요.
어떤 길을 다시 가시더라도 모두 잘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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