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ports, 망하는가? #5. 줄어들 수밖에 없는 E-sports 팬의 수 - 2
역시 저번 편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군요. 이전 편의 댓글을 모두 합한 것보다 댓글이 많을 줄은...;;; 관심에 감사드리며, 특히 의견 제시해 주신 SEIJI님과 레이싱보이 님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많은 분들이 논지에 공감해주셔서 저로서는 제가 조류를 잘못 읽지 않았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회에는 ‘팬’층의 전환 혹은 이탈에 대하여 쓰고자 합니다. 저번 회에서 정의한 개념을 토대로 논지를 전개할 부분이 많기 때문에, 처음 읽으시는 분들이 있으시다면 꼭 저번 회를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저번 회 보기>
#1. 인사말을 겸한 소개
#2. 현재의 E-sports의 상황
#3. E-sports의 과거와 현재
#4. 줄어들 수밖에 없는 E-sports의 팬의 수 - 1
3) ‘팬’들의 황혼 - 선수가 사라지면 팬은 어떻게 될 것인가
수용층의 분류를 설명하면서 저는 팬층이야말로 인기를 지탱하는 주요한 수용층이라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그것은 스타 마케팅이야말로 구단 및 구단을 후원하는 기업의 이익을 실현하기에 가장 용이하며, 이 스타 마케팅의 주요한 대상은, 그리고 이 스타 마케팅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층은 바로 이 팬 층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팬층의 충성도가 유지되기 위한 단 한가지의 조건은
‘응원하는 스타가 일정한 정도의 성적을 거둘 것’입니다. 만약 이 스타가 은퇴 또는 도태될 경우, 세 가지 정도의 길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적극적인 수용자층으로의 전환입니다. E-sports로서는 이 경우가 가장 바람직한 경우이겠지만, 이는 애초에 그 팬이 선수만을 보는 경우가 아닐 것을 전제조건으로 하며, 그 팬은 단순히 ‘팬’층에만 속한 수용자가 아닌, 적극적인 수용자층과 겹치거나, ‘게이머’층과 겹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두 번째는 응원하는 선수를 바꾸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는 계속 ‘팬’층에 남아있을 것인데, 선수를 좋아하는 이유가 각양각색이고 싫어하는 이유도 그렇지요. 또한 팀, 종족, 선수들의 외모와 스타일, 경기 스타일에 따라 정말 다양하기 때문에 지지가 100% 이전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소극적인 수용자층으로의 전환입니다. 쉽게 말해 ‘에휴, 누구도 안나오는거 뭐 재미나 있냐’ 하면서 걸리면 보고, 안 걸리면 안보는 경우이겠지요. 이 경우가 가장 위험합니다. 소극적인 수용자층은 항상 떠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죠.
스타크래프트 게이머의 세대를 구분하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며 나름의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제 나름의 분류를 제시하고자 합니다. 제가 판단하는 두 가지의 큰 격변은 1) 리플레이의 도입 2) 팀 제도의 확립입니다. 이 기준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요?
리플레이의 도입은 ‘기술의 공유가 쉬워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로 인해 이전에는 일부에게만 공유되던 것들이 일반 유저에게까지 공표가 됨으로서, 이전에 비해 훨씬 빠른 시점에서 게이머에 도전할 만한 실력을 쌓을 수 있게 된 것이죠. 실제로 1.08패치 이전과 이후에 등장한 게이머의 실력은 많이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팀 제도의 확립이 의미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이 때쯤부터 E-sports가 나름의 지위를 확립하게 됩니다. 이전까지 프로 게이머의 수익모델이 확실하지 않았고, 그래서 일부의 스타 선수들을 제외하고는 수입이 불안정했습니다. 그랬던 것이 사회의 인식이 변화되고, 팀 제도와 연습생 제도의 도입으로 인해, 그리고 ‘파이가 커짐’으로 인해서 이전에 비해 게이머를 지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만약 전체 인구 중에서 스타가 될 소질과 성격, 재능을 지닌 사람의 비율이 어느 정도라고 해 봅시다. 팀 제도 정착 이전에 게이머가 되었고 스타가 된 사람들은 ‘게임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 그 비율 중에 해당하는 사람들’이었다면, 팀 제도 정착 이후의 인기 게이머들은 그보다 훨씬 넓은 풀(pool) 중에서 그 비율 중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지요. 이전까지는 이러한 재능있는 사람들이 장래 불안 등의 문제로 프로게이머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다면, 이후에는 더 넓은 범위의 사람들이 게이머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이전의 세대에 비해서 동등 혹은 그 이상의 재능을 지닌 선수가 더 많이 공급되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이 추세는 그러나 언젠가는 뒤집힐 수밖에 없는데, 이는 선수 편을 다룰 뒤에 가서 다시 말하겠습니다.) 또한, 이러한 선수들은 팀 제도의 확립이 갖는 두 번째 장점인 ‘체계적인 연습과 관리’를 통해 이전 세대의 게이머들에 비해 훨씬 빨리 실력이 제 궤도에 오르게 됩니다.
자,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이전에 비해 게이머를 지망하는 사람들의 상황은 많이 좋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무엇이 문제일까요?
저는 앞에서, ‘팬’층의 인기도 유지에는 선수의 성적이 유지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씀드렸으며, 그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팬’층은 다른 수용층으로 전환되기 쉽고, 이 중에서 ‘소극적인 수용자’층으로 전환될 경우가 문제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제 이 문제들이 지금의 E-sports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새로운 세대들의 등장
물론 E-sports는 대부분의 경우 제가 전에 E-sports 세미나에서 발제한 대로 인간과 인간의 ‘대결’이며, 승부에는 경기 내적인 요소 이외에 경기 외적인 요소도 정말 많이 작용합니다. 이러한 요소의 개입을 줄일 수 있는 것은 다름아닌 ‘경험’이며, 이는 아무리 더 재능있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더 체계적인 연습과 관리를 통해 성장한다 해도 충족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세대들에게 이제 경험이 쌓였다는 말입니다. 드래프트 제도 등이 정착된 것이 2004년에서 2005년, 이제 1년 가량 지나면서 이 세대들은 혹독한 단련을 통해 이미 각종 개인리그와 프로리그 등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조금 세대가 걸쳐있는 듯하지만 이제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마재윤 선수나, 지금은 잠시 주춤하지만 슈퍼루키로 이름을 날렸던 고인규 선수 등이 이 세대들에 해당합니다.
(2) 한정된 활동무대
이 실력을 쌓은 선수들은 점차 중앙무대로 올라오게 됩니다. 그런데 (추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현재는) 방송을 통해서만 존재하며, 방송으로 중계되지 않는 리그는 존재하지 않거나 크게 인정받지 못하는 지금의 E-sports는 ‘방송으로 중계되는 리그’만이 중앙무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둑처럼 개최되지만 방송되지 않는 기전이 없다는 것이죠.
물론 이전이라고 해서 예선이 치열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예선은 게이머 출신인 김정민 해설조차 “무섭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합니다. 프로리그 중심의 개편안이 통과되게 되면, 이러한 신인선수들의 등장 무대는 더더욱 좁아지게 될 것이며, 한정된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이러한 선수들은 더더욱 이를 악무는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
(3) 원하지 않는 세대교체
자,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습니다. 실력도, 경험도 갖추었고, 한정된 무대를 뚫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렇다면 선배 세대들은 자기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서 역시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앞에서 팀 제도 정착 이전의 선수들은 ‘한정된 pool 안에서 소질과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던 반면, 팀 제도 정착 이후의 선수들은 그 pool이 훨씬 크게 커졌다는 말씀을 드린 바 있습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팀 제도 정착 이후에는 이전에 비해 재능있는 선수가 더 많이 공급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예가, 당시에 실력있던 아마추어 게이머 출신이 대부분인 1세대 게이머들이 대부분 현재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지 않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저러한, 자신보다 어쩌면 더 재능이 있고, 스타크래프트 자체가 너무 많이 연구되었기 때문에 기술의 발전도 이전보다 훨씬 높은 정도로 이루어졌으며, 수많은 연습과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경험도 풍부하게 갖추고 있는, 간단히 말해서 어쩌면 자신보다도 재능이 뛰어날지 모르는 후배들을 상대로 선배들은 계속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sports에서 선수의 수명은 다른 스포츠에 비해 상당히 짧은 편입니다. 이는 E-sports가 육체적인 측면 뿐만이 아니라 전략적 사고와 정신적인 측면을 많이 요구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며, 이러한 것들을 최상급으로 오랫동안 유지한다는 것은 극히 힘들기 때문입니다. ‘이 선수를 이길 선수가 있을 것인가’라는, 소위 본좌 소리를 듣던 선수들이 지금은 그런 성적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 선수들이 전성기를 맞게 되면 필연적으로 많은 대회에 출전하게 되고, 이는 자신의 스타일, 버릇, 전략 등이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됨을 뜻합니다. 자연스럽게 그 선수는 분석되게 되고 파훼되게 됩니다.
그래서 그것이 개인리그의 예선이건, 프로리그의 팀 내 엔트리 결정이건 앞선 세대의 선배 게이머가 새 세대의 후배 게이머를 영원히 이길 수는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온게임넷 듀얼 토너먼트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현재 스타리그에 진출해 있는 선수들은 현재 전성기를 맞고 있는 선수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스타리그 진출을 놓고 싸우는 선수들은, 새로 예선 관문을 뚫고 올라온 새로운 세대의 선수들과, 전성기가 약간 지났거나 불운 등으로 인해 다시 듀얼 토너먼트를 거쳐야 하는 앞선 세대의 선수들일 것입니다. 제가 앞에서 썼던 대로 새로운 세대들에게 이점이 있겠지만, 그러한 이점들과 단점들을 다 제외하고 승부를 5:5라고 봅시다. 그러면 단순 계산으로, 듀얼을 거칠 때마다 절반 가량이 세대교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단순히 한 예가 아니라, 그만큼 선수의 수명이 짧고, 롱런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4) ‘전환’되는 ‘팬’들
이상의 과정을 통해 저는 E-sports에서 세대교체가 다른 스포츠에 비해 빨리 이루어진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실제로 다른 스포츠 같으면 현재 육체적, 정신적으로 팀을 이끌 선수들이 군대를 가거나 은퇴하는 등의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점이 근거가 될 수 있겠지요.
그리고 서두에서 저는 이렇게 선수들이 물러나게 될 경우 점차 팬들이 다른 층으로 전환될 것이며, 특히 ‘소극적인 수용자’ 층으로 전환되는 것이 문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낙관적으로 잡아서, 그러한 ‘소극적인 수용자’에의 편입이 전체의 10%라고 해봅시다. 그렇다면 한 명의 선수가 물러날 때마다 10%의 팬이 소극적인 자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선수의 비율에 따라 이 %는 더 오를 가능성도 있으며, 이미 다른 선수에게서 지지가 옮겨온 경우에는 더 이탈하기 쉬울 것입니다. 물론 계속 E-sports를 시청하는 ‘팬’들이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팬’층이 줄어드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방증 자료 중 하나가 VOD의 클릭 수입니다. 제가 조사해 보겠다는 마음만 먹고 미처 정리해보지는 못했지만, 어떤 선수 A가 다른 선수 B와 대결한 VOD의 조회 수가 3만이라고 해 봅시다. 그런데 A가 다른 선수들과 대전했을 때 평균적으로 2만이 나온다면 1만은 B의 네임 밸류에 의한 것이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다른 요인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통계적으로 완전히 의미있는 자료는 아닙니다.) 그런데, 임요환, 강민 등의 스타 게이머들의 경기가 6만, 7만이 찍히는 데 비해서 일반 게이머들의 경기는 그 절반 가량인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실증적인 자료를 기반으로 한 통계는 아닙니다만, 임요환, 강민 등의 노출도가 줄어들면 3만명의 시청자가 줄어든다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의 상당수가 팬 계층이며, 그 중 앞에서 말했던 대로 10%만 전환되어도 2천명 가량의 팬이 소극적 수용자로 전환되는 것입니다. 물론 항상 저렇지야 않겠습니다만, 점차 ‘팬’ 계층이 다른 계층으로 전환되는 경향을 보이리라고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수치라고 생각합니다.
(5) ‘팬’ to ‘팬’이 쉽지 않아진다
또한 점차 ‘다른 선수’의 팬으로의 전환도 쉽지 않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많은 경기수와 빠른 세대교체로 인해, 얼굴이 너무 빨리 바뀌어버리기 때문인 이유가 첫 번째이고, 새로 등장하는 선수들은 ‘어쩔 수 없이’ 완성된 게임 스타일을 견지하게 되는 것이 두 번째 이유입니다(이 점은 선수를 다룬 편에서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선수에게 반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습니다만, 최대한 단순화시켜서 1) 외모, 2) 게임 스타일이 재미있어서, 3) 잘하니까, 4) 특정 구단의 선수이기 때문에 라고 해 봅시다. 그렇다면, 점차 등장하는 선수들이 ‘완성형’의 스타일에 가까운 선수들이라면 2)에 해당하는 팬들은 다른 선수들을 찾기 어려워질 것이며, 따라서 소극적 수용자로 편입되기 쉬울 것입니다. 또한 1)이나 4)는 통제 가능한 요인이 아니므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죠. 이러한 점도 역시 ‘소극적 수용자’로의 편입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4)와 (5)에 대해서는 뒤에 연재될 다른 편에서 추가적으로 보강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짧은 수명과, 재능있고 단련된 새 세대의 등장 등이 요인이 되어 현재 인기있는 선수들의 노출은 점차 줄어드는 추세가 될 것이며, 이러한 추세는 팬층을 감소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 제 결론입니다.
다음편 예고
어째 점점 더 길어지는 것 같네요. 쓰다가 많은 부분을 버렸는데도 그렇습니다. 그만큼 할 말이 많은 부분이라서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글이 좀 길어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또한 개인사정으로 인해 좀 급하게 쓰느라고 글이 거친 부분이 있으니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앞에서 ‘게이머’층과 ‘팬’층의 ‘소극적 수용자’층으로의 편입 경향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소극적 수용자’이면 안되는 겁니까? 그냥 심심할 때 보고, 챙겨보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까? 원칙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겠지요. 다른 스포츠들이 그렇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E-sports에서는 이것이 문제가 되는 환경이 되고 있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이 점은 다음 편에서 - 시험이 있어서 이번 주 중에는 연재가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의견, 이번 편에도 부탁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