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보통 '콜라' 하면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마케팅 전쟁을 떠올리는 분이 많습니다. 각각 1886년, 1898년에 시작했으니 라이벌로서 역사가 100년이 넘으니까요.
펩시는 콜라 부분에선 코카콜라에서 뒤쳐지며 '2인자 아니냐?'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콜라' 부분입니다. 매출액으로 따지면 펩시의 매출액이 코카콜라를 능가하거든요. 펩시의 매출의 54%가 식품, 과자고 펩시콜라는 그 중 20%정도 밖에 안됩니다.
2. 그렇지만 이번 글에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주가총액이나 매출이야기가 아닙니다. 말 그대로 펩시가 민간기업중 가장 강력한 무력을 보유했던 이야기를 하려고 하거든요.
도널드 켄달 펩시코 최고 경영자는 23년간 펩시에서 일했는데 CEO로 일하는 동안 매출을 2억달러에서 76억달러로 뻥튀기 시킨 전설적인 결과를 낸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냉전 시절 소련의 흐루쇼프 서기장에게 콜라를 맥인(?) 것으로도 유명하죠. 1959년 러시아에서 열렸던 모스크바 박람회에서 리처드 닉슨 (당시 부통령)이 흐루쇼프 서기장과 만나 미국식으로 꾸며졌던 부스에서 험악한 말싸움을 벌였던 '부엌논쟁'이 있었거든요.
위 영상은 부엌논쟁이후 다시 만나서 또 말싸움을 하는 흐루쇼프와 닉슨의 영상입니다. 다행히 한글자막이 있네요.
닉슨과 흐루쇼프는 자본주의가 더 우월하니 사회주의가 더 우월하니 하고 말싸움을 하다가 뜬금없이 닉슨이 '펩시나 한잔 하십시다' 라고 하면서 펩시 로고가 그려진 컵에 펩시를 담아 흐루쇼프에게 권합니다.
흐루쇼프가 들고 있는 컵에 써진 Pepsi가 인상적입니다. 이걸 마신 흐루쇼프의 첫마디는 '신선하다' 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냉전시기 소련의 최고 지도자인 흐루쇼프가 펩시를 마신게 우연이었을까요? 사실 리처드 닉슨의 친한 친구였던 도널드 켄달이 '기회가 되면 흐루쇼프에게 펩시 한잔만 먹여주라' 라고 한거죠.
실제로 닉슨은 흐루쇼프를 데리고 도널드 켄달이 있는 펩시 부스로 데리고 가거든요. 켄들은 소련의 물로 만든 펩시를 주면서 '소련에도 펩시 공장을 지으면 이렇게 맛있는 펩시를 매일 마실수 있다' 고 했죠. 하지만 애석하게도 펩시의 첫 소련 진출이 바로 그 자리에서 이뤄지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14년뒤, 펩시는 철의 장막을 뚫고 소련에 들어간 소비재가 되는데 성공합니다. 소련의 돈은 시장가치가 없어서 돈을 주고 펩시를 사오진 못했고, 대신 소련의 유명한 특산품인 스톨리치나야 보드카와 물물 교환을 하는 조건으로 펩시가 진출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평화롭게 물물 교환을 하다가 계약 만료 시점이 다가왔고, 소련은 1980년대 경제난을 겪게 되었습니다. 펩시는 너무 덩치가 커져버렸고 소련의 보드카 물물 교환에도 시큰둥해졌고요. 하지만 소련은 이야기가 좀 달랐습니다. 갑자기 (펩시)콜라가 사라진 세상을 상상할 수 없잖아요. 훈련소에서 다들 하는 한 마디가 '콜라 한 잔만....' 아닙니까?
몸이 달아오른 소련은 소련의 특산품이었던 군수물자를 펩시에 제공하는 조건으로 다시 딜을 걸게 됐습니다. 군비경쟁때문에 군수물자는 많은데 돈은 없었거든요. 그런데 주기로 한 군수물자가 좀 많이 거창했습니다.
잠수함 17척 순양함 구축함 호위함 유조선 10척에 달하는 함대를 주게 됐습니다.
이 당시 펩시가 받은 소련의 군함은 당시 기준으로 세계 6위의 해군력을 자랑했다고 합니다(....) 물론 무기는 떼버린 상태라서 그 해군력으로 코카콜라 공장에 폭격을 할 순 없었지만요. 이 배들은 가져다가 며칠 후에 스웨덴의 조선소에 팔아넘겨 고철로 만들어버렸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