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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8/04/19 01:29:32 |
Name |
The xian |
Subject |
[경기감상평] 에버 스타리그 2008 Round 1 B조 경기 감상평 |
* 선수의 존칭을 생략한, 평어체입니다. 양해를 바랍니다.
[경기결과]
1경기 도재욱(P) 승 <화랑도> 패 이윤열(T)
2경기 마재윤(Z) 패 <화랑도> 승 임원기(P)
3경기 도재욱(P) 승 <안드로메다> 패 임원기(P) - 도재욱 2승, Round 2 진출
4경기 마재윤(Z) 패 <안드로메다> 승 이윤열(T)
5경기 이윤열(T) 승 <트로이> 패 임원기(P) - 이윤열 2승 1패, Round 2 진출
1경기 : 도재욱, 그는 껍질을 깨는 중이다.
선수들의 피지컬이 워낙 좋아진 지금, 신예들은 '물량'을 기본으로 갖추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 신예들 중, 얼마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 그 단계에서 껍질을 깨고 나오는 선수들이 있는데, 이런 선수들을 만났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과거에 알던 모습'만을 가지고 상대했다가는 뒤통수를 호되게 얻어맞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윤열의 실책이 바로 그것이었다.
굳이 이윤열의 경기 후 인터뷰가 아니더라도 이윤열의 경기 중 움직임은 '다크템플러 드롭'은 거의 배제한 움직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이윤열의 움직임은 다크템플러에게 '날 잡아 잡수'라고 하는 정도였다고 할까. 어쨌든 도재욱이 쓴 것은 다크템플러 드롭이었고, 다크템플러가 출발했을 때에야 엔지니어링 베이와 아카데미가 건설 중이었던 이윤열의 피해는 막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 피해는 그 상황에서 GG를 그냥 쳐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피해였고, 승부의 추는 돌이킬 수 없었다. 도재욱이 전 병력을 이끌고 그대로 들이닥쳐서 경기를 조기에 끝내느냐, 아니면 좀 더 틀림없게끔 테크와 병력을 확보한 다음 200 채우고 밀어버리느냐의 차이만 존재했을 뿐이다.
어느 정도의 격차였냐면 경기 중반, 도재욱의 인구수가 190일 때 이윤열의 인구수는 110 남짓인 시점이 있을 정도였다. 아무리 종족이 다르다고 해도 인구수가 80 가까이 차이가 난 경기였기 때문에 다크템플러가 테란의 본진을 휘저은 시점에 이미 경기는 끝났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호되게 얻어맞은 뒤에야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이윤열의 때늦은 분전은 그 상황을 뒤집기에 역부족이었다.
자. 경기는 이쯤 이야기하고, 과연 도재욱이 껍질을 깨게 만든 요인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니 지난 번 송병구와의 8강전에서 겪은 뼈아픈 패배 때문일 수도 있고, 김택용이라는 걸출한 프로토스의 영입 때문일 수도 있겠다. 박용욱 코치의 조련 때문일 수도 있겠고. 하지만 그 이유가(혹은 이유들이) 무엇이었든 간에 도재욱의 변화는 현재 진행형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껍질을 지금 깨고 있다. 박용욱, 최연성의 은퇴의 공백과 기존 프랜차이즈 선수들의 부진으로 인한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좋은 선수인 '도재욱'이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SKT T1 팀에 있어서나, 그 팀을 사랑하는 팬들에게나 모두 좋은 소식이다.
2경기 : 이도 저도 아니고
파이터포럼에 관련 기사가 올라온 것처럼 마재윤과 임원기, 이 두 선수에게는 예선에서의 인연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예선의 처음처럼 임원기는 초반 전략을 준비했고, 그 초반 전략을 예상한 마재윤의 오버로드가 임원기의 전진 게이트를 보았을 때 사람들은 거의가 마재윤의 무난한 승리를 예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임원기는 전진게이트가 들켰는데도 불구하고 게이트 건설 이후 포지와 캐논까지 지으면서 화랑도의 언덕지형을 이용하여 계속 병력을 생산했고, 질럿 서너 기 정도가 모이자 앞마당을 슬슬 두들기기 시작했고, 결국 전진지역에 게이트 하나를 더 늘리며 쌓여 가는 질럿으로 우위를 차지해서 마재윤의 앞마당 해처리를 부수는 데 성공하며 승리를 가져간다. 들킨 전략이라도 언덕의 우위를 바탕으로 뚝심 있게 밀고 나간 임원기의 일관된 판단이 승리를 가져온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임원기의 모습과 확연히 대비되는 것은, 이 과정에서 보여준 마재윤의 일관성과는 거리가 먼 대응이었다. 마재윤은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시쳇말로 '이도 저도 아닌' 대응을 했다. 첫째는 정찰 갔던 드론으로 몰래 해처리를 지으려다가 취소한 행동. 이로 인해 초반 질럿들에 대응할 만한 정도의 저글링들이 쌓이지 않았다. 둘째는 여섯 기 정도의 적은 저글링으로 우회해서 게이트를 장악하려고 했지만 게이트에서 나온 후속 병력들과 포톤 캐논에 막혀 실패한 행동. 결국 저글링만 낭비한 격이 되고 말았다. 세째는 뒤늦게 레어를 가려고 한 행동. 테크로 승부하려는 의도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의도가 문제가 아니라, 그 전략이 늦어도 너무 늦었다는 게 문제였다.
그런 대응을 했으니 초반 전략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이길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3경기 : 도재욱 vs 도재욱 (?)
약간의 변곡점이 있기는 했지만 미네랄 멀티까지 가져가는 정도까지는 똑같았고, 제 2멀티를 가져가면서부터 바뀐 빌드. 임원기는 게이트 둘을 먼저 건설한 다음 도재욱의 본진 가까이로 병력을 집결시켜 입구 가까이에 진을 쳤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그 다음의 임원기의 무모한 돌진이 문제였다. 그 당시는 테크가 약간밖에 차이 안 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상대가 나오는 입구에 진을 치고 센터만 잡고 있어도 상대를 답답하게 만들며 우위를 가져갈 방법을 여러 갈래로 찾을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임원기는 센터를 잡아 우월해졌으니 소모전만 해도 자신이 우월함을 계속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지, 아니면 '참는 법'을 몰랐던지, 아니면 그 둘 다였던지간에 상대의 좁은 본진으로 그대로 병력을 이끌고 뛰어들었다.
넓은 곳으로 나오려 하는 상대를 싸먹는 대신 상대가 기다리고 있는 좁은 입구로 쳐들어온 임원기의 병력들은 좁은 곳으로 쳐들어온 것 치고는 불행 중 다행으로 비슷한 수를 죽고 죽이는 싸움을 했지만, 문제는 그 과정에서 수반된 도재욱의 템플러 견제였다. 그것이 '베라미스의 검' 처럼 두 선수 사이에 작은 틈을 만들었고, 계속된 견제로 슬슬 생채기를 낸 덕에 결국 승부의 추는 업그레이드와 자원 확보에 앞선 도재욱에게 기울며 승부가 났다.
그나마 그 경기에서 그 무모한 돌진의 순간 이후에도 지속적인 교전이 발생한 것은 상대적으로 좀 덜해 보였던 도재욱의 생산력에 비해 마치 과거의 도재욱을 보는 듯한 임원기의 짐승 같은 생산력과, 저돌적인 공격성 때문이었다. 견제를 받으면서도 마치 '프로브는 인구수에 방해가 된다'는 식으로 자원을 쥐어짜내어 병력을 생산했기 때문에 도재욱의 병력과 그나마 균형이 맞춰져 보였던 거지, 다른 선수였으면 교전이고 뭐고 거기에서 그냥 본진까지 주욱 밀리면서 GG를 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네랄과 개스가 세자리수가 되는 꼴을 보지 못하는 임원기의 무지막지한 생산력과 저돌성은 칭찬해 주고 싶지만, 주요 자리를 선점해 놓고 더 유리하게 경기를 이끌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무작정 돌격만 해서 자신에게 굴러들어온 호박을 차 버린 행동은 그가 고쳐나가야 할 과제로 보인다.
마치 상대보다 더 유리한 생산력, 더 유리한 공격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머리를 쓰는 상대에게 그 힘이 흩어져버리면서 제 풀에 지쳐 버렸던 임원기의 모습은, 작년 시즌에 자신의 우위를 살리지 못하고 들이받는 바람에 거의 손에 움켜쥐었던 시드를 날리고 좌절했던 도재욱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껍질을 깨고 있는 도재욱에게 껍질이 채 깨지지도 않은 과거의 도재욱의 모습으로 이길 수 없었던 것은 당연했다. 1경기에 이어 도재욱이라는 선수의 발전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었던 경기.
4경기 : 안드로메다......
선배럭 이후 벙커링을 한 이윤열에 대한 마재윤의 수비가 아주 나쁜 건 아니었지만 드론이 3기가 죽었다는 점과, 6~7기의 드론이 일을 하지 못하고 짓다 만 벙커를 깨는 데에 동원되었다는 것은 이윤열이 선배럭으로 가난하게 시작했음에도 저그보다 부유해질 수 있도록 하는 기회를 주었다. 물론 이것까지는 빌드의 차이로 인해 생긴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었겠지만, 승부를 가른 것은 벙커링 시도 직후에 나타난 이윤열과 마재윤의 움직임의 차이었다.
이윤열의 승리를 결정지은 두 가지 결정적 장면이 있었는데 하나는 벙커링 시도 직후 이윤열이 또 한번 마재윤의 진영에 정찰을 성공한 장면이다. 해처리를 추가하지 않고 익스트랙터를 먼저 추가하는 것을 본 이윤열은 저그가 선택할 수 있는 다음 전략의 경우의 수를 확 줄일 수 있었고, 결국 뮤탈리스크가 오기도 전에 터렛으로 방비를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저그 앞마당 지역에 떨어뜨린 스캔으로 상대가 발업 저글링을 많이 뽑았다는 것을 눈치챈 것인데, 이것은 거의 '맵핵수준'이라고 불렸던 이윤열의 예전 센스가 아직도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결정적이었다.
반면 마재윤의 입장에서는 정찰을 허용한 것이나 몰래 빼놓으려 했던 다수 저글링이 들킨 것도 문제였지만, 저글링이 상대의 앞마당으로 난입하면서 뮤탈리스크가 돌진해서 싸웠던 장면은 오히려 저그 병력을 사지로 몰아넣는 판단이었다고 생각된다. 안드로메다의 테란 진영 입구 지점 근처에 저글링들을 먼저 투입시키고 난 뒤 뮤탈리스크가 날아와 같이 싸운 것은 오히려 지형과 새로 생산된 병력의 투입, 진출 병력의 회군을 통해 저그의 병력을 싸먹을 수 있는 지형을 상대방에게 만들어 준 거라고 보기 때문이다.
혹시 그 상황에서 발업 저글링 한 부대 정도가 더 있어, 진출 병력이 형성한 하나의 벽을 이미 투입된 저글링과 함께 앞뒤로 싸먹을 정도로 많았다면 그 지역에서의 전투는 또 몰랐겠지만, 테란의 압박에 성큰까지 늘이면서 짜내면서 뮤탈을 찍어야 했던 저그에게 그 정도의 역량이 남아 있지는 않았다.(2해처리 뮤탈을 했던 마재윤이 중간에 드론을 한 타임 보충했어야 했을 정도니 얼마나 가난했을지는 짐작이 간다) 어쨌거나, 테란의 바이오닉 병력이 저그의 앞마당 성큰콜로니 지역을 성큰 일점사를 하지 않고도 깰 수 있었던 모습은 경기 내내 이윤열이 하는 일마다 이득을 보았고, 마재윤이 하는 일마다 손해를 보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이었다.
이윤열은 악몽의 날을 벗었고, 마재윤에게는 안드로메다라는 맵에서 안드로메다로 가는 악몽만이 남게 되었다.
5경기 : 문단속으로 완전히 끝난 승부
초반 투게이트로 강한 압박을 예고한 임원기의 병력 침투 의도는 좋았지만 원질럿 원프로브가 상대방 진영에 들어갔다가 머린조차 건드리지도 못하고 결국 입구 밖으로 다시 물러난 것은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고 본다. 차라리 테란 본진에서 돌아다니면서 상대를 바쁘게 했다면 없던 틈이라도 만들 수 있었지 않았을까? 여하튼 프로토스의 어정쩡한 병력 움직임은 결과적으로 이윤열에게 문단속을 할 시간을 주었다. 물론 병력을 더 이끌고 와서 여차하면 입구를 깨버리겠다는 의도로 2차 압박을 한 임원기의 선택이 아주 나쁜 건 아니었지만, 그보다는 그 2차 압박을 탱크와 머린, 그리고 SCV를 다수 동원하여 언덕에 벙커를 건설하면서 별다른 피해 없이 막아낸 이윤열의 대처가 훨씬 좋았다. SCV의 길막기에 막혀 탱크를 일점사하지 못했던 임원기의 콘트롤은 거듭 아쉬움을 주었다.
프로토스는 투게이트로 초반에 자원을 많이 썼고 테란은 초반에 압박을 들어왔던 프로토스 병력까지 줄여주었기 때문에 경기는 이제 이윤열이 유리한 상황. 하지만 힘대 힘이 본격적으로 격돌한 것은 아니었고 자원피해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임원기에게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여기에서 잠시 프로토스의 문단속이 소홀한 틈을 타 스피드업이 되지 않은 이윤열의 벌처 두 기가 난입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 벌처 두 기는 한 부대가 넘는 프로브를 잡아버렸고, 프로토스에게 영원히 승부를 가져올 수 없도록 만들고 말았다.
초반 전략이 실패한 것 때문에 다급해져 있었던 임원기는 프로브를 다수 잃고 더욱 다급해진 나머지 테란 앞마당에 병력을 무리하게 들이대는 결정적인 패착을 범했다. 그러나 마인에 탱크, 벙커까지 존재하는 테란의 앞마당에 발업도 안 된 질럿을 겨우 두 기를 앞세우고 들어간 러쉬는 무모했고, 너무도 무난히 막히고 말았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이어진 이윤열의 '타이밍'이 빛을 발휘하는 순간, 프로토스의 병력들은 속절없이 밀렸고 결국 게이트웨이까지 장악당하며 경기는 그대로 끝나고 말았다.
앞서 3경기에서 과거의 도재욱과 임원기의 모습이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박카스 스타리그 3경기에서 도재욱은 유리한 상황에서 송병구에게 들이받다가 경기를 내주고 말았다. 그런데 임원기는 불리한 상황에서 이윤열에게 들이받는 어리석음을 저질렀다. 유리한 상황에서 들이받아도 지는데 불리한 상황에서 들이받았다면 결과가 어떠한지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 아닐까? 뭐, '경험보다 위대한 스승은 없다'는 말도 있으니 이것은 임원기가 자신의 껍질을 깨 가면서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작년의 도재욱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4년 전 4월 18일, 이윤열은 최연성에게 패해 센게임배 우승을 놓쳤던 아픔이 있었다. 상처가 많아 웬만한 상처에는 이골이 났을 이윤열이란 선수가 한때 경기 아이디를 Remember 4.18이라고까지 쓸 정도면 그 상처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4월 18일, 패배의 위기까지 몰렸지만 그는 다시 지지 않았고, 살아남아 올라갔다.
양산형이라는 탈을 벗고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도재욱.
아픈 상처의 날을 특별한 승리의 날로 바꾼 이윤열. 두 선수에게 감사하며. 글을 마친다.
- The xi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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