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미안하구마.
니한테는 또 제일 궂은 일만 맡긴데이.
1.
기억하나.
니 밤바다 광안교마냥 번뜩번뜩 하던 날.
안나면, 한 잔 받고 떠올려보래이.
2002 스카이, 실은 그 때, 니 참말로 밉상이었데이.
무당 스톰인지, 무당 리번지. 포비든 존에서 한 대 한 대 터져가는 탱크들 보면서 그렇게 속이 쓰릴 수가 없었데이.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었는기라.
이묘화니는, 한 번도 안 지고 그 자리꺼정 올라왔고
니는, 지고, 지고, 또 지면서 올라왔는데
거기서 이묘화니가 그렇게 깨질 줄 누가 알았겠나. 로열로드를 걸었던 황제가, 몇 번이고 16강에서 미끄러진 니한테 그리 깨질 줄 누가 알았겠나.
억울했데이.
참말로 억울했데이.
그렇게 미끄러지고, 깨지고 그러면서 올라온 니한테 3회 우승이라는 위업이 박살나는 거 보고.....오죽하면 최저 승률 우승자라꼬, 희안한 꼬리표꺼정 달고 다니는 니 모습 볼 때마다 그 날이 떠올라서 몬 견디겠더마.
뭐 대단한 거라꼬, 최저승률 우승자라 부르는 지 이해도 못했데이.
긴데, 나중에 보니까 그게 훈장이더마.
암, 훈장. 훈장이라카이.
번쩍번쩍하고 누구한테도 안 꿇리는 훈장이라카이.
2.
결국 아직까지도 니 우승은 한 번이가.
그 날, 바로 그 날 딴 우승컵 하나가.
두 번이나 더 결승 올라가지 않았었나.
4강도 또 한 번 들지 않았었나.
니 까들이 니 운 좋아서 영웅이 아니라 영운이라 카지만 그게 다 개뻥이데이.
도대체 세상 천지 어디 운 좋은 프로토스가 있어서 그 무대에서 만나는 게 박성준이고. 만나는 게 최연성이고. 만나는 게 조용호고. 마재윤이고.
기억나나.
안 나면, 한 잔 더 받그래이.
프로토스의 무덤이라 안 캤나. 머큐리.
판에서 놀만큼 논 프로토스도, 화끈하게 밀어 붙여 볼라카던 젊은 놈들도, 모조리 머큐리 하나에 발리고 발려서 떨어지는 판에 니는 혼자 즈려밟고 안 올라왔나.
깨작대는 러커 연탄밭 화끈하게 안 뚫었나.
머슴이.
괴물이제. 참말로 괴물이었제. 보이는 건 테란이고, 쩌그고, 프로토스고 닥치는대로 집어삼키던 진짜 괴물이었제.
근데 니 우쨌노. 지 불에 지가 확확 데이게켔지.
아들이 그것도 운빨이라 카드나. 야, 등짝은 마인도 컨트롤이구나. 그리들 안 말하더나.
용호, 프로토스에게 지는 날이 일 년에 몇 번이었노.
니, 저그한테 약하다, 약하다 소리 듣던건 또 몇 번이었노.
농담아이고 난 그 날 번뜩번뜩 하는 마엘스트롬에 혼절하는 줄 알았다. 새까맣게 뒤덮은 디바우러들 이리저리 터져나가더니 그 다음은 또 하드코어 질럿이가.
멍~ 하니 그 경기들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들드라.
로망아이가.
하모. 프로토스의 로망, 남자의 로망아이가.
근디 그 머큐리 다음에 나오는 게 우찌 최연성이고.
근디 그 최연성, 조용호 다음에 마재윤이 왜 나오노.
기껏 진 땅 박차고 일어섰더니 왜 그리 되노.
그래서 니 포기했었나.
안했데이, 죽어도 안했데이.
문득 정신이 들어보니까 손에 땀이 장난 아니더마.
‘징한 놈’, 그리 중얼거리고 있었데이. 내가.
그 날 알았데이. ‘최저승률 우승자’가 훈장이라꼬.
3.
나도 어렸을 때는 슈퍼맨, 배트맨 다 보고 컸다아이가.
‘영웅’이란 ‘영웅’들은 다 보고 컸다아이가.
나는 왜 사람들이 니를 영웅이라카나, 그걸 몰랐데이.
영웅은 개뿔. 허구한날 처발리고 다니는 게 영웅이가? 내 쩌그해도 저건 잡을끼다.
저어기 스갤에서 나는 그리고 말하고 돌아다녔구마. 참말로.......빙,신같은 짓이었지. 참말로 미안하데이.
증슥아.
그냥 지 가는데로 다 베어넘기고 길 만드는 영웅은 이 세상에 없데이.
유아독존, 만인지적, 천하무쌍. 그런 영웅은 다 개소리라카이. 그런 건 없다, 이 말인기다.
증슥아.
아무리 두들겨 맞아도
다시 오뚝이마냥 일어서는 거, 그거 바보가, 영웅이가?
‘냉엄한 현실’이니, ‘극복할 수 없는 세상 이치’니 그런 소리 듣고서도
포기할 줄 모르는 게 바보가. 아님 영웅이가?
내는 이건 안다.
포기할 줄 모르는 게 바본가, 영웅인가는 몰라도 내는 이건 안다.
아무것도 못하는 건 송장이나 다름없는기다. 그냥 손 놔버리면, 지 스스로 송장 되는기다.
그래.
그 때, 내는 그걸 몰랐다카이. 또 알았다캐도, 아무것도 못했을 간나 밖에 못 됐데이.
그래서 하마터면 그 때 E-SPORTS 팬으로서의 나는 송장이 될 뻔 했던 기다.
알고 있었나.
스카이 2002. 그 리그 망하면 온게임넷은 스타리그 끝내야 할 지경이었다 카더라.
결승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일 줄 몰랐던기다.
스타는 둘이 하는기다.
그 날 이묘화니가 아무리 하늘을 날고 땅을 기었어도 혼자는 못했을기다.
니가 해낸기다. 결승의 한 축이 니었기에 그리 된 게 아니겠나. 니가 지고, 지고, 지면서도 끝까정 매달려서 박차고 일어서서 가을의 전설이 됐기에 그리 된 게 아니겠나. 그 수많은 사람들이 올림픽 공원까정 니 게임 보러 온 게 아니겠나.
알고보니 내는 니한테 그 날 빚을 진기라.
증슥아.
바보랑 영웅이 한 끗 차이란 걸, 난 너무 늦게 알았다카이.
니는 틀림없는 영웅이데이. 빚졌구마, 또.
4.
증슥아.
니는 또 서있었던기라.
다음 스타리그, 기억하나. 이 문디야.
이것도 기억 안난다카면, 니는 슬슬 치매 걱정을 해야 할 거구마.
잘은 모르지만두, 4대 천왕의 시대를 그리던 사람들은 니 하나만 바라보고 있었을끼다.
팬들만 있었겠나.
니 형태 잡던 날에 엄재경 해설위원 고래고래 소리치던 건 어느 구녕으로 들었는지 모르겠구마.
난 니가 고마웠데이.
그 진 데, 그 힘든 데, 그 궂은 하늘 아래 일어나준 니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데이.
너 탈락한 날 밤에 마음으로는 소주를 나발로 불고.
‘그리 탈락할거면 뭘할라꼬 사람을 이리 설레케 하나!’
씁쓸한 맛에 스타리그 오프닝을 보는데 리그 주인공마냥 위풍당당하게 헤드셋 들어올리는 니 모습이 볼만 하더마. 탈락한 주제에.
근디 그제서야 알았데이. 니 얼굴에도 세월이 묻어나더마. 겨우 몇 년인데, 한 때 미소년 소리까지 듣던 네가 아니던기라.
내가 말했었나.
프로게이머한테 기백이란 거, 진짜 있데이. 나는 안데이.
내가 수년을 게임을 봤는데 이묘환이만 유독 희아한 느낌이 들더마.
뭐고. ‘패기’도 아니고, 그냥 기세도 아니고, ‘절박함’도 아니고, ‘분함’은 더더욱 아니었데이. 그냥, 그걸 모조리 쓸어다가 바닥이 까마득한 어두운 구녕에 넣은 듯, 전부 뒤엉켜서 뭔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카이.
근디 그 날 그게 니한테도 보이던기라.
근데 그 얼굴이 왜 이리 힘들어보였는가 나는 모르겠데이.
내가 영어는 잘 못하지만두
I promise you,, I promise you......
약속한다, 약속한다. 왜 그 소리가 메아리마냥 끝도 없이 귓가에서 울리더라만은, 왜 그랬는가 나는 모르겠데이.
증슥아.
니는 또 서있었던기라.
니한테는 맨날 궂은 일만 시켰는기라. 내는.
5.
증슥아.
나는 지금 또 니보고 일어서달라고 말하는기다.
올림픽 공원에서의 그 날처럼
스타리그 16걸, 혼자 프로토스로 일어서던 그 날처럼
용호, 연성이를 이기던 그 날처럼.
또 일어날서달라고, 그리 말하는기다.
참말로 미안하데이.
그래도 말이다 증슥아.
니는 ‘히로’ 아니가.
땅 끝에 떨어져도 떨쳐 나오는 우리들의 ‘히로’ 아니가.....
우리 모두 고개를 저을 때도
수십놈, 수백놈이 비웃어도
허공에다 맨주먹 휘두르며 홀로 일어서는
우리들의 ‘히로’ 아니가.
..........내 또 무슨 입이 있어 이리 말하고 있는가 모르겠구마.
참말로 미안하데이.
........듣고 있나?
박정석이.
.............부산사나이, 영웅 프로토스 박정석!
듣고 있나!
.......듣고 있으면 대답 좀 해봐라, 이 문디야.
그 때처럼, 그 때처럼, 또 그때처럼.
맨땅 박차고 또 일어서서, 멋들어지게 주먹 휘두르면서....
........히로! 듣고 있나! 히이-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