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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6/09/30 13:32:34 |
Name |
The xian |
Subject |
[만화 '식객' 이야기] 들어가는 말 & '밥상의 주인' |
- 들어가기 전에 -
'만화 '식객' 이야기'는 현재 읽고 있는 '식객'이라는 만화에서 나오는 에피소드 중 특별한 감상을 받은
에피소드에 대해 The xian의 삶의 이야기나 감상 등을 섞어 짤막하게(?) 서술하는 글입니다.
다른 글도 그랬었지만 이 글 역시 특정한 이유가 있어서 올리는 것이 아니고, 굳이 이유를 대자면
제 손을 풀어보고 싶은 소재가 요즘 애독하고 있는 '식객'이라는 만화였습니다. 따라서 비정기적으로 올라옵니다.
제가 바쁘면 몇 달이 지나도 안 올라올 수 있습니다.
'만화 '식객' 이야기'는 기본적인 존칭을 제외하고는 모두 평어체로 쓰여지게 됩니다. 별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오늘은 '들어가는 말'과 같은 잡다한 소리가 서두에 너무 많이 섞여져, 평소보다 많이 길어지겠습니다.
- 들어가는 말 -
나는 만화를 좋아한다. 그리고 만화에 대해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게임과 비슷한... 동질감이랄까. 그런 것을 느낀다.
첫째 이유는 둘 다 어린 시절에 때로는 친구가, 때로는 휴식이 되어 주었던 것들이고,
둘째 이유는 재미있다는 것이며.
그리고 세째 이유는 게임이나 만화나 엄연히 하나의 문화 현상이자 문화의 산물인데도 대한민국에서는 문화 대접은 커녕
공짜인 게 당연하다는 인식을 받거나, 마약 또는 범죄수단과 다름없는 푸대접과 부정적 인식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게임과 만화, 그 두 가지에 있어 나에게 한 가지 코드가 맞지 않는 점이 있다면,
나는 게임은 그나마 내가 조금이라도 자신 있는 분야가 있는 반면
그림 실력은 아무래도 답이 안 나올 정도로 형편없다는 것이다.
사회인이라는 이유로 지갑 여는 데에 깐깐해진 나이건만, '식객'과 눈이 맞아 지갑을 연 지
벌써 열두 번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 이야기를 하고 싶다.
"밥상의 주인"
이 에피소드가 나타내는 핵심 내용은 "밥상의 주인은 '밥'이다"라는 바탕 아래 '맛있는 밥을 짓는 방법'이다.
매우 간단한 내용이지만 이 내용이 나에게 매우 와닿았던 주된 이유는, 집에서 내가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밥을 못 지어 햇반 같은 것으로 때우는 일은 없지만 가마솥이나 가스불에 밥을 짓지는 않는다. 작가인 허영만 선생님이 '퇴출 운동을 벌일 생각이 있다'라고 말할 정도로 밥 맛을 너무 규격화시키는 존재인 전기 압력밥솥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상한 것은, 똑같은 양의 쌀을 씻고, 쌀을 똑같은 시간 동안 불리고, 똑같은 양의 물을 부어서 전기밥솥에 밥을 지으면 되는 그 편리하고 정형화된 작업 속에서도 그날 그날에 따라 밥맛에 미세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밥맛 뿐만이 아니라 밥이 질어질 때도 있고, 밥이 너무 꼬들꼬들해질 때도 있다.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쌀을 씻는 작업과 마음가짐에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씻었는지 말았는지 의식도 없는 손으로 대충대충 쌀을 씻고 거칠게 정리한 다음 앉히면 밥이 참 사나워진다. 전기밥솥이라 밥이 타는 일은 없지만 심지어는 이층밥이 되기도 한다. (겉은 질고 속은 익은 밥... 뭐 그런 정도) 특히나 내가 한 밥에서 머리카락 같은 거라도 나오면 그 날은 참 난감하다. 반대로 쌀을 정성스럽게 씻고 씻어서 불린 쌀을 잘 정리해서 앉히면 같은 양의 쌀과 물을 넣은 밥인데도 참 잘 된다. 그리고 맛있다. 가마솥 밥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말이다.
또 하나, 전기밥솥이건 가마솥이건 어떤 곳에 밥을 하건 간에 밥이 다 되면 밥을 주걱으로 세워 줘야 한다. 밥을 세워 주지 않으면 물기가 찰 뿐만 아니라, 계속 보온이 되는 전기밥솥의 경우에는 그대로 오래 놔두면 밥이 떡이 된다.;;
회사 일이 늦게 끝나고, 바쁘고 하다 보면 하루나 이틀(혹은 그 이상) 전에 지어져 전기밥솥 속에서 변색된 밥을 먹게 된다. 참 고역이다. 버리기는 쌀이 아깝고, 맛은 이미 떨어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맛있는 반찬이라도 있으면 참고 먹겠지만, 반찬이 늘 맛있는 것이 있지는 않기 때문에 그럴 때면 참 고달프다. '밥을 적당히 해야지'라고 되뇌이지만 그게 어디 맘대로 되는 일도 아니고... 어떤 날은 그 날 한 밥이 그 날 동이 나 정작 먹을 게 없는 반면 어떤 날은 밥이 변색될 정도로 남아 있게 되니, 참 아이러니하다.
사람 일이 사람 맘대로 안 된다는 것을 나는 내가 지은 밥이 없어지는 날짜가 들쭉날쭉한 것을 보면서 느낀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무슨 일이든 내 맘대로 해 보려고 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내 모습을 보면서 또 다른 아이러니를 느낀다.
가마솥 밥을 맛있게 먹는 사람들 앞에서 성찬이 했던 대사가 떠오른다.
"우리는 밥상을 받으면 눈으로 반찬의 종류를 가리고 난 뒤 입으로 반찬의 모습을 보면서 식사를 하게 됩니다.
식사가 끝난 뒤 반찬의 맛을 따지면서 잘 먹었다, 못 먹었다를 결정하지요.
이때 섭섭해 하는 밥상의 주인이 있습니다. 바로 밥입니다!"
그렇다. 우리가 끼니 때마다 받는 상은 바로 '밥상'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밥상의 주인' 이야기를 읽었을 때에
나와 가족들이 먹는 밥을 지으면서도 정작 '밥상'의 주인이 밥이라는 것을 잊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방금 앉혀 놓은 쌀으로 늦은 점심 밥을 지으러 부엌으로 들어가야겠다.
(그런데 오늘은 프로리그도 없으니 무엇을 반찬 삼아 밥을 먹을까나?)
- The xi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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