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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13 17:23
그그그... 태사령 왕립이 천문을 보니 태백성이 뭐 어쩌구 저쩌구 해서 천지?를 지나가고 화성은 빛을 잃어 어쩌구 저쩌구 하니 이는 금과 화가 바뀔 운세다라고 언급하는 장면이 있지 않았나요? 라디오 삼국지 들을 때 빠지는 걸 본 적이 없는데...
화성은 불의 색이니 빨간색, 그리고 화성을 제압하고 기가 성한 토성은 황색이니 위나라 역시 황색을 상징으로 삼았다, 이렇게 연례하면 너도나도 황색을 쓴 이유가 좀 연계가 되는 것 같네요.
16/08/13 17:30
네~ 그런 장면 있어요.
왜 왕립이 저런 말을 했냐? 하면 태사령이기 때문에 그런거에요. 태사령이 하는 일이 천문 관측 등이기때문에. 말씀하신 부분중에 오행설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어요.
16/08/13 17:34
오 마침 삼국지 관련 몇가지 질문좀 하고 싶었는데 여기서 곁들어 가도 괜찮을까요??
1. 삼국지의 삼국을 위, 촉, 오 라고 부르는게 그 당시에도 그렇게 불렀던건지 아님 후세에 와서 우리들이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건지 문득 궁금해 지더라고요. 만약 후세에 와서 부르기 시작한거라면 왜 하고 많은 글자 중에 위, 촉, 오를 선택한건지, 그 뜻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2. 조조가 인재욕이 굉장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왜 여포세력의 장료는 영입을 하고 고순은 처형했을까요? 제 기억에는 고순은 항복하지 않고 여포? 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조조 쪽으로 안간걸로 알고 있는데... 고순이 정말 훌륭한 장수였다면 조조가 어떻게든 영입하려고 했을거 같은데 그 정도의 가치까지는 아니었던건가요? 아님 제가 모르는 다른 이야기가 있을까요?? 3. 제갈량의 친형제라고 알고있는 제갈근은 오나라에서 중요한 위치로 알고 있는데요. 굳이 친형제가다 다른 진영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제 생각에는 친형제라면 같은 세력을 따랐을거 같은데... 굳이 형제끼리 적대 세력에서 있을 필요가 있었을까요??
16/08/13 17:45
1. 위나라와 오나라는 위와 오라고 했는데, 촉은 사실 한이라고 했어요. 다만 동맹관계인 오나라는 촉한을 촉이라 불렀는데 한이라 부를 경우는 자신들의 국가가 아무래도 정통성 측면에서 쳐지기때문에 촉이라 불렀고 촉나라도 그런 부분은 융통성있게 넘어갔습니다. 국명은 사실 춘추전국시대의 위치적 지명에서 따오는데 그들이 나라를 세운 위치가 혹은 봉국을 받은 위치가 춘추전국시대의 국가 위치였기때문입니다. 촉은 스스로를 한이라고 했지만 촉한, 계한으로도 부르는데 제가 굳이 촉이라 하는 이유는 가치중립적인 측면에서 한이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정통성을 촉나라에 치중하기때문에 그래서 촉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16/08/13 17:43
촉은 그냥 한을 계승한거니 한으로 불렀습니다. 촉혹은 촉한은 한나라와 구분하기위해서 후세에 그렇게 부른거구요. 당시 촉나라에서는 그냥 자신들을 한나라라고 불렀습니다.
한국의 고조선도 당시에는 그냥 조선이었지만 이후의 조선과 구분해서 부르기위해 현재 고조선이라고 부르는것처럼요. 촉한이라고 하는건 파촉지방에 있는 한나라였기에 그렇게 부릅니다.
16/08/13 17:48
2. 장료는 스스로 투항을 했고 고순은 투항을 하지않았습니다. 아무리 인재를 아낀다해도 적군과 아군의 특성상 죽일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3. 아마도 자신들의 생각과 사상, 그리고 출세 문제에 있어 더 유리한 곳으로 출사한게 아닌가싶네요.
16/08/13 17:50
1. 조조가 위 '공'이라는 작위를 받아서 공국을 세워서 일겁니다.
중국은 나라를 세울때 근거지 지방의 옛이름(시황제의 진나라 이전 전국시대때 나라이름)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 지역 나라 이름을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더군요 오나라가 그런 경우일겁니다 우리로 치면 후백제, 고려 같이요 촉은 스스로 한나라 라고 했지만 후한과 구분하기위해+위,진나라에서 통일을 한탓에 사서에서 촉이라고 불러서 일겁니다 2.고순의 경우가 좀 특이한 경우라고 봅니다만 능력이 있어도 충성심이 강한경우는 조조가 죽인 예가 몇번 있습니다. 심배,저수 등이 그렇죠 3.제갈근이 손권 밑으로 간게 7~8년 먼저고 처음에는 직위도 낮았죠. 게다가 오나라는 호족들의 힘이 강해서 제갈량이 가진 뜻을 펼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16/08/13 22:54
3번만 답을 하자면 위나라 출신 강유가 촉한에서 귀한 대접을 받자 위나라에서 끊임없이 회유를 하죠.
참고로 강유는 홀몸으로 항복했으니 강유의 가족은 위에서 핍박을 받았을 확률이 높습니다. 강유의 부모가 강유에게 한의학 재료인 '당귀'를 보냅니다. 당귀란, 한자어의 의미대로면 당연히 돌아온다는 말로, 위로의 귀순을 말한 것인데, 강유가 시로 답한 것 또한 흥미롭습니다. 시의 내용 중에 밭을 가는데, 당귀는 없고 원지만 있다는 표현이 있는데, 원지(이 또한 한의학 재료랍니다)는 원대한 뜻을 의미하고 당귀가 없으니 돌아갈 생각이 없다고 말한 것이죠. 당시 효와 충 사이에 무엇이 우선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말씀하신 경우가 적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나 싶네요. 사실 위가 망하고 사마염이 제위를 찬탈할 때, 그 앞에서 슬픔을 표출한 것 역시 사마씨기도 하니까요.
16/08/13 23:47
3번은 형과 나이차가 큰 데다가 제갈량이 출사가 늦었던 게 손권은 자신의 이상에 맞는 군주가 아니어서 그러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유비랑 손권은 적대관계가 아닌 협력관계였죠. 제갈량의 동생 제갈균도 형과 같이 유비에게 임관해서 일을 했고 방통의 동생 방림도 형과 같은 군주를 삼겼으니 제갈량도 어지간하면 형을 따라 손권을 섬겼겠지만 하필 뒷치기할 것 같은 쥐새끼... 아 아닙니다;;;
16/08/14 03:42
3번에 대해서 말하자면
일단 공명과 근의 나이차가 꽤 납니다 먼저 제갈근이 오나라에 출사를 했구요 그 이유는 아마도 고향과 가까웠기때문입니다 그리고 장성한 공명이 출사를 하려고 할때 조조,유표,손권등 각 군주를 살펴보았지만 누구하나 마음에 들지않았고, 결국 귀큰놈이 데려갑니다 물론 제갈근이 자리를 잡고 공명에게 출사를 권했지만,이미 많은 장수들이 포진되어있는 진영에 가고싶지않았을테고 또한 손권도 마음에 차지 않았던것같습니다 그래서 단념하지요 물론 공명과 근은 계속 편지를 통해 소식을 주고받았으며, 공명이 아들이 없자 근의 둘째아들을 양자로 들이는등 둘의 형제간의 교류는 이어졌습니다
16/08/14 12:38
백관지 번역한 것을 본 적이 꽤 있는데 아직도 헷깔리는게 상서대의 위치와 구경의 역할입니다.
쭉 살펴보면 상서대는 정치에 관한 실무 권한을 다 쥐고 있던 것으로 보이는데 품계는 그에 비해 지나치게 낮아보이거든요. 태상, 광록훈, 위위, 태복, 정위, 대홍려, 종정, 대사농, 소부가 구경이란 이름으로 묶여있는데 역할과 직위이 너무 중구난방이라서...
16/08/16 10:13
위계와 실권이 동일하지않는 경우는 많습니다.
상서대의 장관인 상서령의 경우, 황명출납 및 상주문 관리가 주 업무입니다. 구경의 경우는 중2천석으로 나라의 중요업무를 수행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파성넷에서 백관지나 동관한기 백관지 보시면 세세히 설명이 잘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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