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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9/01/23 06:44:02 |
Name |
The xian |
Subject |
편안하게 보았습니다. 그리고 평안을 주어서 감사합니다. |
어제의 경기를 다시 돌아봤지만 감정의 변화가 밖으로 그다지 드러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랜만에 '전혀 질 것 같지 않았던'경기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1경기는 벌처로 머린만 끊어주고 아머리를 배럭으로 가리는 센스와 함께 레이스로 마무리까지. 더 말할 필요도 없는 완승이었고, 승자전의 벌처 교전에서 졌던 때에도 불안한 마음은 아주 잠깐 들었을 뿐입니다. 경기 후 인터뷰 기사에서 언급되었던 것처럼 그 순간에 상대의 벌처가 밀려들었다면 모르겠지만, 그 잠깐의 시간 이후에는 다시 완전히 평안해졌습니다. 상대의 벌처에 포위되어 있는데도 질 것 같지 않아보였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승리였습니다.
새해 들어 송병구 선수와의 경기부터 시작된 4연승으로 좋은 기세를 이어가고 있는데다가 이번 달에는 경기가 더 없기 때문에 이번 달 승률은 100%가 되었습니다(엥?)
언젠가부터 공공연히 말한 대로 그대의 경기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빈도가 꽤 줄어든 것도 사실인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글과 말과 표정으로 드러나는 것만 줄인 것일 뿐, 내 속에는 아직도 파도가 몰아치고 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손바닥으로 가린다고 하늘이나 태양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듯.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도 진심이란 것은 무엇을 통해서든 나타나듯.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는다고 아무리 마음을 잡는다 해도 감정을 숨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좋은 감정이라면 더 숨기기 어려운 것이고 그것이 한낱 감정이 아닌 내 영혼의 공명이라면 더더욱 숨기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가능한 한 고요함을 유지하려 하는 것은 그대의 경기를 보며 느끼는 감동이나 영혼의 공명이 줄어들어서가 아닙니다.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그대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때가 오기를 바라고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손에 들려 있는 'Genius Terran' 배지에 새겨진 'Soon it shall also come to pass'(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처럼 어제의 경기로 받았던 감동은 어제의 일로 놓아 두고, 새로운 경기에서 그대의 새로운 652번째. 그리고 그 이상의 승리를 바라겠습니다.
아직도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는지. 잠을 못 이루는 밤과 새벽이 가끔은 찾아옵니다. 오늘처럼.
컴퓨터를 다시 켜고 인터넷 창을 열어 그대의 일기를 들여다보다 이 구절이 눈에 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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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었던 사람들 모두가.. 나를 믿지 아니 하더라도..
그것이 비록 현실 일지라도.. 나는 1%에 도전하고 싶다..
그래.. 불가능해 보이겠지.. 그래서 내가 도전 하는 거다..
그래서 내가 아직까지 살아있는 거고..
- 이윤열 선수의 1월 3일 일기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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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좀 짜게 식어가는 것 아닌가. 했던 마음에 다시 불이 붙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새해 들어서부터는 불황 때문인지 원고도 없어 무료한 시간은 게임을 해도 남아돌 정도가 되었습니다. 무리도 아니지요. 그 전 몇 년간은 일, 게임, 글쓰기 등으로 하루가 25시간이어도 모자랐기에, 시간이 비어 있는 것에 익숙할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새해 들어 멍한 상태로 있는 시간이 약간 늘었더랬습니다.
물론 프로로서의 마음가짐을 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것 외엔 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지금의 길을 가기 시작한 지 햇수로 7년째가 되어 가기 때문에, 언제나 무엇이라도 남기기 위해 골몰하고 생각하고 살피고 있는 건 여전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의 일기를 보고 나는 뒤늦은 자극을 받습니다. 뭔가 풀어져 있던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힘을 얻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명색이 팬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고 나 역시 프로인데 도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한시라도 잊는다면 안 될 말이겠죠.
일은 바쁘고 세상은 고단하고 아직도 가끔, 오늘처럼 잠 못 이루는 새벽은 힘겹습니다. 그러나 일이 바쁘고 세상이 고단해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현실이 어떻든 간에 나는 나의 영역에서 도전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 힘을 낼 수 있고, 나 역시 그래서 살아있는 것이고, 비록 잠이 오지 않더라도 그대의 말과 그대의 경기로 힘을 얻을 수 있어 새벽인데도 깨어 있는 시간이 즐겁습니다.
TV 화면으로만 보았지만 한 달 전에 보았을 때보다 좋은 기색이었습니다. 주저함, 망설임 같은 것이 그 때에 비해 덜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첫 달을 승률 100%로 시작하는 것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그런 긍정의 힘으로 계속 나아가면 원하는 것을 얻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일찍 집에 내려가게 되어 기쁘다 하였으니, 설 잘 보내세요.
그리고 어제 그대가 보여준 승리에 진심으로 존경과 경의를 표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 The xi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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