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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6/12/23 17:07:36 |
Name |
The xian |
Subject |
[만화 '식객'이야기] 소고기 전쟁 - 대분할 정형 |
'만화 '식객' 이야기'는 기본적인 존칭을 제외하고는 모두 평어체로 쓰여지며, 비정기적으로 올라오는 이야기입니다.
"소고기 전쟁 - 대분할 정형"
수입 소고기로 인해, 그리고 질 좋은 소고기의 보급으로 인해 때로는 어떤 부위만 한정한다면 돼지고기보다
값이 싸질 때도 있는 소고기이지만. 아직 우리네 살림살이에서 소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부(富)의 상징으로 인식된다.
내 주변에만 그런지는 모르지만, 블로그를 돌아다녀 봐도 고기를 먹었다는 이야기를 쓸 때 반농담으로 '소고기님'이라는 말을 쓰는 경우가
'돼지고기님'이라는 말보다 많다는 것을 보아도 느껴지는 일이거니와. 회식을 하기 위해 고깃집에 들어가 가격표를 보고 난 뒤
내가 모시는 윗사람이 "오늘은 예산이 좀 딸리니까 미안하지만 돼지고기로 하지. 다음에 좋은 고기 먹자고."라는 말을 할 때 보면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놓고 보았을 때에 어느 쪽이 위라는 것은 말 안 해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대접받는 '고기'를 생산하는 사람들에 대한 시각은 정말이지 냉담하다.
냉담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냉정하고, 무슨 벌레를 보는 사람처럼 보는 이들이 아직도 적지 않다는
부끄러운 현실을 우리는 항상 목도한다.
정형 기술자들이 숙련된 손놀림으로 생산한 고기는 손님들의 상에 올라가든 마트나 정육점에 가든 고기의 질에 따라
제값 혹은 그 이상의 값에 팔려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그 생산자도 그 제품에 맞는 대접을 받아야 정상일 텐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고기를 생산한 이들은 사회에서 제대로 된 생산자로서의 대접과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는 다른 거 필요 없이 정형 기술자들을 부르는 '호칭'만 들어 보아도
누구나 알 만 할 것이다. 우리네 중에서는 그들을 정형 기술자라고 부르는 이들조차도 거의 없다. 대신 아주 상스러운 말들로 부른다.
바로 우리들의 역사 속에 뿌리깊이 박혀 있는 양천반상의 의식, 그리고 거기에서 가장 하층민의 한 자리를 차지했던 직업...
'백정'이라는 말로. 우리는 그들을 부른다.
게임이나 만화 계열 종사자들이 유희를 직업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들로 인해 홀대를 받고 있는 것이라면,
정형 기술자는 우리네의 삶의 질과 생활 수준의 발전에 의식 수준의 발전이 따라가지 못하여 생겨난
과거의 인습, 즉 뿌리깊은 고정관념과 시대 착오적인 생각 때문에 홀대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모습이 슬프다.
사실 이 "소고기 전쟁 - 대분할 정형" 편의 이야기는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이다. 기존의 요리 만화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만화에 등장할 법한 승부의 플롯을 그대로 따르고 있고. 있을 법한 이야기로 포장된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 편이 승리하는 구조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리얼리티 쪽으로 따지자면 최근에 연재된 돼지고기 이야기에서
돼지고기 정형 기술자와 주인집 딸이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으나, 집안의 반대로 주인집 딸이 자살했다는 이야기가
더 리얼리티가 있을지 모른다.(내가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허영만 선생님의 이야기 구성에 리얼리티가 없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이번 이야기와 관련된 사례는 들어 본 적이 없지만 돼지고기 이야기에서처럼 집안의 반대로 누군가 자살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들은 이야기에서는 정형 기술자인 남자 쪽이 자살했다는 것 뿐.)
그러나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이지만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야기가 하나 숨어 있다.
그것은 승부가 끝나고 난 뒤 성찬이 정형 기술자 조경기씨에게 전한 말에 들어 있다. 그대로 옮겨 와 보면 이렇다.
"소고기를 좋아하면서 도축장의 정형 기술자들에게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소고기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줄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고기를 먹을 자격이 없다."
물론 우리는 그러한 고마움을 너무도 쉽게 잊는다. 공기가, 햇빛이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사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만약에 갓 구운 고기를 한 점 집어먹는 사람들 앞에서 위의 말을 한다면, 아마도 이런 말을 듣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리라.
"젠장, 고기를 누가 잘라주던 말던 뭔 상관이야? 나는 돈을 냈으니 고기를 먹는 건데 무슨 고마움을 느껴야 해?
내가 고기를 사 주기 때문에 그런 백정놈들도 먹고 사는 거잖아!! 그나저나 지금 고기도 비싸 죽겠구만!!"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고기를 사 먹는 사람이 있기에 정형 기술자도 밥 먹고 사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니니까.
하지만 우리는 고마워해야 한다. 마땅히.
보는 사람들을 토악질이 나게 만들었던 미국산 소고기 관련 영상을 기억하는가? 소의 생육 과정도 과정이었거니와
소고기를 2분할하기 위해 도살한 소의 도체를 전기톱으로 자르는 그 비인간적인 광경은 먹고 있던 음식물을
당장 뱉어 내고 싶을 정도였고, 그것으로 인해 충격을 받은 이들 중 많은 이들은 '미국산 소고기는 죽어도 먹지 않겠다'
'사람이 먹으라고 저런 고기를 만들었단 말이냐' 라고 너도나도 소리를 높였을 정도였다.
그러나 소고기를 만들어 주고 분할해 주는 사람의 수고를 모른 채 그저 돈으로, 자기가 손님이니까.
자기가 치른 값의 고기를 먹는 데에만 관심이 있고, 고기가 더 싸지기만을 바라고, 그 고기가 어떻게 생산되고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이 없다면.
그래서 직접 자신의 손길로 일일이 정형을 하여 깨끗한 먹거리를 만들어 주는 정형 기술자들이 사라지게 된다면.
아마 가까운 미래에는 전기톱으로 자른 한우 고기가 우리들의 밥상에 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정형 기술자들에게 무슨 장인이나 명인의 대접을 해 달라는 게 아니다.
적어도 백정이라는 말로 멸시의 뜻을 가지고 그들을 부르지 말아 줬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그들이 자기 손과 발과 팔과 다리를 베여 가며 생산하는 고기에 걸맞은 대접과 관심만이라도 받기를 바랄 뿐이다.
- The xi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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