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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2/23 02:23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게 책을 읽는 그 자체보다도 더 좋은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야기들 속에서 무언가를 얻던...아니던 개인의 취사선택이 있겠지요. 그리고..그런 이야기를 할수 있게 해주는 몇몇 책들은 그런 의미에서의 좋은 책이겠지요. '좋아하는'책은 조금 다른 것이지만요.^^;
그러니까..문자는 인류의 재앙(?)이라니까요. 으하하하!
06/12/23 02:46
저는 예전에 노자사상에 심취한적이 있었는데요. 정말 마음의 평안을 얻는데는 그것만큼 좋은게 없더군요. 하지만, 마음의 평안뿐, 현실에는 도움이 안됩니다. 머리로 사는게 아니라 행동으로 사는게 현대사회인데, 그리고 밥을 먹지 않으면 못사는게 현대사회인데, 이상에만 젖어있다면, 이상만 그리다 죽어야죠. 이상과 현실은 구별해야 된다 봅니다...하지만, 현실에 충실하다면, 이상 정도는 가지고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
06/12/23 02:51
예전에 강유원씨의 '책과 세계'라는 책에서 이런 구절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정확한 구절은 기억이 안 납니다만 '책을 보는 인간은 항상 소수였으며, 병적인 자만 책을 읽는다.' 정도의 내용이었습니다. 책을 읽는 것은 책만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구성하고 있는 '세계'를 읽어내는 것이라는 이야기였죠.
위의 두 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책'만 읽고 '세계'를 읽지 않아서 위대한 사상이 악용될 수도 있는 것이겠죠. 유영철씨만 해도 니체와 쇼펜하우어를 좋아했다고 하잖습니까.
06/12/23 03:06
카뮈... 니체... 세계를 우울하게 만든 분들이네요. :) 혼자만 우울했으면 차라리 나았을지도?
니체가 죽을 때 길거리에서 짐 끄는 늙은 말 목을 껴안고 엉엉 울다가 죽었다는 얘기를 봤는데; 불쌍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 말 입장에서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ㅡㅡ; 신앙인이면서도 역시 세계를 우울하게 만든 키에르케고르 강의 들을 때 키에르케고르가 약혼녀를 매몰차게 차버린 일화를 봤는데요. <그는 우울하다. 그녀는 쾌활하다. ... 나는 결혼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인간이 못 된다.> 는 절정의 오만을 부리면서 애초에 자기가 좋아해서 쫓아다닌 여자를 버리고, 그것도 글로 써서 온 사방에 광고를 하면서 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약혼녀에게 '저런 개념없는 남자는 걍 니가 먼저 차버렷!' 하고 응원을 하고 있었더랬죠. ㅡ.,ㅡ 후에 그 약혼녀는 대사까지 지낸 외교관과 결혼해서 오래오래 잘 살았고요. (앗싸!) 키에르케고르는 <이 세상의 보통 사람들이란 심하게 말해 세상에 몸을 판 사람들이다> 라는 소리를 하면서, 우아하게 점점 줄어드는 유산만으로 먹고 살다가, 유산이 다 떨어진 날 죽었습니다. 절묘한 타이밍? "...영감, 나는 당신이 싫어. 당신 같은 인간이 싫어. 가능하다면 영감을 아래층으로 굴렸다가 마당으로 끌고 나가 옷을 홀랑 벗기고, 똥구멍에는 깃털을 꽂고 면상에는 물감을 칠하여 요술쟁이나 어릿광대로 만들어 놓고 싶어! 그러면 수도원 전체가 영감을 보고 깔깔거릴 테지. 그러면 이 어린것들이 더 이상 영감을 겁내지 않을 테지. 그래, 영감의 몸에다 꿀을 잔뜩 바르고 깃털 위로 굴린 다음 가죽끈을 목에 감아 끌고 저잣거리로 나가 이렇게 외치고 싶군. <이 영감이 여러분에게 진리를 말한다. 진리라는 것이 죽을 맛이라고 하고 있으니 여러분은 영감의 말을 믿을 것이 아니라 꼴을 믿으시라!>..."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중에서 철학자들의 날카로운 통찰에 감탄하는 것도 좋지만, Orbef님 말씀처럼 맥락을 잘 잡아야 할 것 같아요. ;) 아아... 저도 말과 꼴이 좀 걸맞는 인생을 살아야지 말입니다. (반성중...)
06/12/23 03:58
비판하기 위한 근거 역시 또 배우고, 결국 체계에 대한 넓은 지도를 만들기 전에는 마땅한 비판의 틀을 구하기도 어려운게 사실이겠죠.
그냥 부딪히는 거라고, 읽고 배우면서 알아가는 거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
06/12/23 08:57
저도 대학교1학년때 니체와 카뮈를 만났던 적이 있어서 반가움에 리플 답니다.
글쓴분의 의견은 분명 맞는 말씀입니다. 잘못된 해석은 오히려 나쁜 영향을 끼칠수 있는게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니체의 초인사상을 제대로 공부하면, 허무보단 긍정의 메세지를 발견할수 있습니다. 권럭의지 또한 번역에서 오는 오해때문에 요즘은 위버맨쉬라는 말 자체로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위버맨쉬는 동력의 근원이라고 해야하나요. 모든것은 자신의 힘을 강하게 하기 위해 이루어진다 라는 의미라고 생각하면될듯 합니다. 결국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거죠. 자세한건 제 능력밖이라 설명하기 힘들지만, 분명 진리의 상대성, 허무주의의 극복이 니체 철학의 진수라고 생각합니다. 카뮈도 '웃으면서' 다시 정상으로 돌을 굴러올리는 시지프 이야기를 통해, 죽는걸 알지만 최선을 다하는 부조리함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전 오히려 두경우에서 어떻게 하면 행복할수 있는가를 느꼈고, 이를 비추어보면 분명 해석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쓴분의 이야기처럼 오히려 안좋은 영향을 미칠수도 있겠지만, 분명 한번쯤 읽어보고 생각할만한 책들이라고 생각합니다.
06/12/23 09:24
카뮈는 어렵더군요;
니체는 니힐리즘에 빠지기 전에 이거야 원, 배경지식이 부족하니 알 수가 없더군요. 당시 유럽의 정황, 역사, 기독교, 바그너와 니체의 개인적인 관계 등등이 짬뽕되어 있으니까 그걸 모르고 섣불리 읽으면 니체가 뭔소리 하는건지 모르겠더군요. 뭐, 짜라투스투라는 아무것도 몰라도 왠지 멋있었습니다. 그놈의 초인사상 =)
06/12/23 11:27
카뮈의 스스로 이방인을 통해 부정을 패스트를 통해 긍정을 표현하려고 했다고 하죠.
카뮈라는 하나의 작가 속에서 긍정의 원천도 부정의 원천도 솟아날 수 있습니다. 어느 한 부분에 편중되지 않고 여러가지 책을 골고루 읽는다면 크게 문제될 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이렇게 책에 관련된 글이 자주 올라오니 참 보기 좋네요 ^_^
06/12/23 13:57
책은 통념과 다르게 사태를 보게 해주는 게 유일한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책은 거기 있고 나는 여기 있다면 읽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구요.
하워드 진의 "오만한 제국"이나 "미국민중사" 같은 책을 읽고 나면, 월드컵 때의 "오! 필승 코리아"가 위험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사람은 길들여진 대로 대개 통념을 따라가게 됩니다. 그리고 통념을 지지하기 위해서 부실하지만 나름대로 근거를 갖고 있구요. 책은 거기에 의문을 품었던 사람이 결국 문제를 차례로 따라나가다가 어느 정도 완성된 형태로 서술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책은 "내가 지금 당연하게 생각하는 바로 이 문제는 당연한가?"와 같은 방식으로 서술된 것이 아니라, 그런 의문 끝에 이를 수 있는 가능한 결과들 가운데 하나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서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비유하자면, 선형대수학이 형성되고 발달하기까지, 왜 그런 사유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 수많은 맥락이 있지만, 선형대수학 교재에는 그런 맥락은 다 빠지고 완성된 내용들만이 추상적인 형태로 정확하게 기술되어 있는 상황과 같습니다. 왜 필요한지도 알 수가 없고 이해하기도 쉽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구체적인 예제를 반복해 가면서 왜 필요한지, 이 추상의 의미는 무엇인지 피부에 와닿을 수 있게끔 노력하게 됩니다. 책 읽기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어느 정도 사유가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 범위 밖을 너무 벗어나는 책을 보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연애를 해볼 나이가 되지 않은 사람은 연애에 관한 서술을 잘 이해할 수 없는 게 당연합니다. 고등학교 교육에서 아무 불편함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존 듀이의 "민주주의와 교육"을 제대로 읽을 수 없는 건 당연합니다. 물론 "민주주의와 교육"이 사고를 확장시켜 주기도 하지만 그건 어느 정도 준비된 사람에게만이라고 생각됩니다. 고전을 바로 읽기보다는 현실에 있는 문제들을 다르게 생각하게끔 해주는 잡지, 시사 프로그램, 칼럼, 에세이집, 영화 같은 것들을 따라가 보면서, 사유를 좀더 구체적으로 확충해 나간 다음에 관련된 문제를 다루는 고전을 나중에 읽는 게 좀더 옳은 순서가 아닐까 합니다. 이를테면, 아직 "민주주의와 교육"이 와닿지 않는다면 "죽은 시인의 사회"와 같은 영화를 보며 그간 당연하게 생각했던 많은 것들을 반성해 보는 게 좀더 좋다고 생각됩니다.
06/12/24 20:31
저.... 물론 교양수준으로 니체를 접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저 가르쳐준 교수님이 니체의 독일어 원전을 최초로 한국어로 번역하신 분이시기도 하고.... (지금도 진행중이실겁니다. 4년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니체번역서들은 전부 영어나 일어를 다시 한국말로 번역한 것들이었죠.)
어쨋든 니체의 철학이 염세주의나 파시즘의 시초가 되었다는 건 터무니 없는 오해라고... 그 교수님이 얼굴 붉히면서 강변하셨습니다. 독일어 원전도 안읽고 일본애들이 억지로 만든 책들 다시 번역해서 그런 오해가 생긴거라고... 제가 배운 니체 주의는 삶의 희망을 주는 건강한 철학이었습니다. 말그대로 '실존주의' .. 왜 내가 이 땅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미를 주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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