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마지막 날. 화려하고 뜨겁게 타올랐던 여름을 마무리하는 기간이자 가장 뜨거운 기간. 순록의 나무들은 다가올 가을이 그들의 생명력을 빼앗는 황혼의 시간이 오기 전에 어느 때보다 푸른빛을 발하며 태양 역시 다가올 추락의 나날을 한탄하며 불타오른다. 하지만 그렇게 불타오르는 것은 태양뿐이 아니다. 야구와 축구 같은 필드 스포츠 역시 얼마 남지 않은 시즌의 막바지를 향해 무섭게 달아오른다.
그런 점에서, 필드 스포츠는 아니지만 중국의 워3열기도 별 반 다를 것은 없었다. 물론 워3리그는 야구나 축구처럼 일정 기간을 두고 기나긴 리그가 펼쳐지지도, 일정기간의 휴식기가 존재하지도 않는다. 끊임없이 온라인, 오프라인 토너먼트 대회가 1년 내내 벌어지는 방식. 그래도 지금 중국을 달구고 있는 CEG(China E-sport Game)는 그들에겐 그런 수많은 대회 중에서도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대회다. 비록 명확한 국제대회는 아니라 전 세계의 고수들이 자존심을 벌이는 상징적인 의미는 없지만 적어도 중국 16억 인구 중에서 누가 제일 워3를 잘하나, 라는 의문에는 충분히 대답을 해줄 수 있을 만한 대회임에는 틀림없으니까.
그래서 리허는 그런 대회의 4강에 올랐다는 사실에 충분한 만족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의 성격상 그런 위치에서 만족했다고 감사의 뜻을 관중들에게 보내면서 얌전히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그는 마우스 감도 조절을 하면서 다른 외부인들-팬이나 해설자와 같은 관계자들-이 자신을 거론할 때 빼먹지 않고 들먹이는 단점을 떠올렸다. 중요 대회에서 우승 경험이 없다. 그건 그도 잘 알고 있으며 굳이 들먹일 필요가 있냐고 가끔은 따지고 싶은 부분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CEG는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어느 대회나 처음 예상은 경험과 저번 대회까지의 전적 등의 자료를 꺼내면서 노장들의 우세를 점치지만 예상대로 가는 스포츠는 그 가치를 잃어버리듯 이번 대회 역시 적절한 비율의 파란과 다크호스 등장이 혼합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지금 그를 상대하는 인물은 대회 첫 참가의 신예이고 앞서 결승이 확정된 선수도 아무래도 홈팬들의 호응을 받기 힘든 외국인 선수로 결정된 것이다.
“확실히 리허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되겠군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정작 녀석에게 그런 말을 하면 화를 낼 거다. 아무리 약점들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들은 그런 약점을 모두 겪으면서 지금의 위치에 있는 자들이다. 더 어려우면 어려웠지 쉬울 것이라는 생각은 결코 하지 않는다, 라면서.”
경기장 외곽 관람석 제일 뒷부분. 그 곳에 두 명의 남자가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히 좌석이 없으니 관람석이 아니었고 서서 보기에도 거리와 각도의 위치상 꽤나 애로사항이 많은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런 점들은 그 두 명에게는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어차피 지금 그들의 목적은 관람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그건 사실이야.”
“그런가요.”
“그래도 정말 놀랍군.”
신예의 반란이 어느 대회나 존재하는 법이라고는 해도 이번 대회는 특별했다. 전 대회 우승자를 잡아내고서 4강에 오른 자가 이번이 첫 오프라인 데뷔전이며 나이가 이제 14살이 된 선수라면 좀 지나칠 정도로 특별할 것이다.
“정말 저 나이 때 이런 무대를 밟다니 대단하죠.”
“아아, 난 저 때 뭐하고 있었나.”
“뭐, 우리 때는 워3가 없었잖아요.”
“그건 그렇군.”
왼쪽에 좀 더 나이를 먹은 것 같은 남자가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흔히들 게임에선 나이가 어릴수록 유리하다는 말을 한다. 집중력이라던가, 손 빠르기 같은 신체적 조건에서 뛰어나기 때문이라 하지만 그는 무엇보다 딴 생각 없이 오로지 게임에만 몰두할 수 있어서가 아닐까하고 추측했다.
“북경 팀 내에선 이미 ‘신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고 하더라.”
“신의 아들이요? 거창하군요. 게임신의 아들이라는 말이겠지요.”
“응. 부담이 될 수 있는 칭호지만.......사람에 따라서는 자신감을 가지고 탄력을 받을 만한 별명이기도 하지.”
그것도 분위기에 따라 인간이 변해버리는 어린 선수에게는 더더욱. 그는 짜오융쒀(赵泳硕)의 8강 경기를 떠올렸다. 그 시합은 왜 그가 어린 나이에 거창한 별명을 받았는지를 알려주는 경기였다. 천부적인 재능에도 여러 가지 요소들이 들어있겠지만 그가 선사받은 재능은 전투력이었다. 워3에서 유닛 한기 한기가 중요하다는 것은 두 번 말하면 입이 아프고 세 번 말하면 알츠하이머가 의심될 만큼 강조되는 말이다. 아무리 자원을 많이 먹더라도 뽑을 수 있는 유닛의 한계는 100. 더욱이 자신의 유닛이 죽는다는 것은 단순한 자원낭비, 병력낭비의 측면을 넘어서 상대에게 뼈가 되고 살이 된다는 점은 실제적인 손해 이상으로 심리적인 타격이 크다. 워3는 누가 뭐라고 해도 영웅의, 영웅을 위한, 영웅에 의한 게임. 영웅이 있고 없고, 영웅의 레벨이 낮고 높고는 생각 이상의 차이를 가져온다. 짜오융쒀는 그것을 이곳에 모인 수많은 관중들에게 보여줬다. 계속 전투를 유도하고 그 전투마다 이득을 챙겨간 작디작은 소년은 결국 밀려있던 자원과 유닛의 차이를 무시무시한 영웅의 힘으로 극복했다. 그는 천재는 노력가를 이기지 못한다는 철칙을 맘에 품고 있었지만 그 시합을 보며 짜오융쒀의 천재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진호 형은 저 꼬마가 이길 수 있다고 생각 하나요?”
“승부에 확실이나 반드시라는 말을 금물이지. 누구에게나 이길 기회는 존재하는 법이야.”
“그런 정론은 옆에 밀어 놓고 솔직한 예상을 하신다면?”
“리허.”
키는 작지만 단단한 바위를 연상케 하는 외모의 남자는 옆에 있는 남자가 어떤 고민이나 망설임 없이 대답을 하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을 본 진호는 잠시 생각을 한 후에 부연설명을 시작했다.
“리허와 짜오융쒀가 8강에서 만났던 지앙엔(張權)은 서로 다른 플레이 스타일을 가지고 있지. 그리고 무엇보다 짜오융쒀는 이미 자신의 최대 무기가 무엇인지를 대대적으로 내보였어. 이에 대한 대응책을 리허가 생각하지 않을 리가 없지. 그가 큰 대회 우승이 없다고 하지만 큰 무대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야. 게이머 생활도 훨씬 오래됐고 무엇보다.......영악한 놈이거든.”
그리고 진호는 씩 웃었다.
“물론 수학처럼 철저한 계산이 가능한 품목이 아니니까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는 거야. 자, 슬슬 시합 시작하겠다. 대기실로 돌아가자.”
짧은 머리의 남자, 성훈은 주변을 살펴보았다. 아무리 눈에 들어오지 않는 으슥한 위치라고 해도 시합이 펼쳐지지 않는 시간이라 화장실이라던가, 오랫동안 앉아있는데서 오는 피로를 회복하기 위하여 꽤 많은 사람들이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중국의 광범위한 워3팬 중에서도 가장 매니아적인 자들만 골라서 모인 이 자리에서 그 둘을 몰라볼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미 몇 몇 중국인 팬들이 그들 근처에 서서 뭔가를 이야기 하고 있었고 그들 중 일부는 용기를 내어 다가오려 하고 있었다. 물론 그가 말도 통하지 않은 외국에서 사인해달라고 찾아오는 팬들을 귀찮거나 거추장스럽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고맙다거나 기쁘다거나 하는 느끼면 모를까. 하지만 시기가 좋지 못했다. 진호의 말처럼 양쪽 모두 세팅을 마치고 마지막 손풀기를 하는 중. 사인을 해주느라 시합의 초반부를 놓치는 상황은 곧바로 결승에서 둘 중 하나와 맞붙어야 하는 그의 입장에서는 사양하고 싶은 장면이었다. 둘은 서둘러서 통로를 내려갔고 그들이 도착하는 것과 동시에 4강 두 번째 시합을 알리는 사회자의 목소리가 특설 경기장 내부에 울려 퍼졌다.
잠시 후 이번에는 관중들의 탄성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족전을 제외하고 언데드(Undead)의 선 영웅이 데스나이트(Death-Knight)라는 말은 워3 내에선 내일 태양이 떠오르는 곳은 동쪽이라는 말과 같다. 그리고 리허는 그런 일종의 자연 법칙과도 같은 관념을 깨트렸다. 짜오룽쒀는 구울들을 데리고 다니는 다크레인저(Dark-Ranger)를 보면서 꽤나 당황했다. 거기에 리허는 그런 상대를 당황을 부채질이라도 하듯 포탈(Portal)을 판 모습을 당당하게 보여줬다. 다크레인저의 장점이라면 무엇보다 초반의 수많은 해골전사를 이용한 빠른 사냥과 압박이다. 짜오룽쒀는 리허가 다크레인저의 스킬과 아이템을 이용한 다수의 해골전사와 함께 초반 투 크립트(Two Crypt) 압박으로 끝낼 생각이라 추측하고선 자신도 두 번째 엔션트 오브 워(Ancient of War)를 지으면서 아쳐(Archer)를 꾸준히 생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오판이었다. 리허는 해골전사로 압박을 하려는 척하면서 서둘러 멀티지역의 사냥을 끝마쳤고 포탈을 팔아서 번 자원으로 빠른 멀티를 시도하였다. 뒤늦게 이를 알아낸 짜오룽쒀는 대량으로 생산한 아쳐와 비스트 마스터로 찌르기를 시도했지만 아무리 전투에 자신이 있다고 해도 다수의 해골과 구울, 방어타워들이 버티고 있는 적진으로 과감히 뛰어들 수는 없는 상황. 결과적으로 자원과 테크트리, 모두 언데드가 큰 우위를 가지고 중반으로 넘어들어 가게 되었다.
‘확실히 영악하긴 영악하군.’
성훈은 살며시 팔짱을 꼈다. 페이크 멀티 자체는 이미 몇 번 사용되었던 적이 있고 그 자신도 사용했던 경험이 있는, 대중화 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엄청 새롭고 경이로운 시도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분명 짜오룽쒀도 그런 작전이 있다는 것 정도는 인지하고 있을 터. 하지만 리허는 그에 앞서 한 번 더 페이크를 사용했다. 단지 죽음이 어둠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처음 당하는 나이트엘프(Night-Elf)는 당황하여 스스로 자기 본진에 갇히고 말았다. 그는 옆에 앉아 있는 진호가 입술을 살짝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경험부족’. 그는 살짝 고개를 끄떡였다.
“힘들게 가는군요.”
“그래. 상대에게 의표를 찔렸으면 무슨 생각인지 알기 위해 더 달려들었어야 했는데.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팠군.”
둘은 곧바로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비법을 나이트엘프의 위치에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언데드가 꽤나 높은 상대 우위를 점하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타격을 받은 것은 역시 아니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드라이어드를 생산하는데 큰 무리는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아처가 많기 때문에 가고일 견제도 쉽지 않을 테니 드라이어드를 꾸준히 모으면서 멀티를 하고 한 타를 노린다. 둘은 합의점을 봤고 그 점에서는 짜오룽쒀 역시 동조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리허도 그 생각에 찬성했다.
“완벽히 읽혔다.”
진호의 목소리에는 감탄과 함께 일종의 답답함마저 배어나왔다. 아무래도 같은 나이트엘프 유저다 보니 당하는 입장에 너무 몰두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리허는 극소수의 가고일만 상대 진영에서 왔다 갔다 보여준 후 슬레터하우스를 곧바로 3개 올렸다. 리허는 철저했다. 이미 다수의 드라이어드를 생산한 짜오룽쒀는 그 병력을 가지고 결판을 내려 달려들었지만 그는 자원을 바탕으로 한 아이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전투를 계속 회피했다. 그리고 이 와중에 나이트엘프는 멀티마저 원래 타이밍보다 늦어버리게 되었다. 그렇게 계속 전투를 피하면서 꾸준히 고급 유닛들을 모았던 리허가 드디어 칼을 빼들었을 때는 아무리 전투적 센스가 뛰어난 신의 아들이라도 뒤집는 것이 불가능한 시기가 되었다. 압승. 어보미네이션과 디스트로이어, 그리고 소수의 미트 웨건까지 조합된 언데드 병력은 나이트 엘프의 병력을 보트를 뒤집어버리는 거대한 파도처럼 쓸어버렸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진호는 목이 칼칼한 듯 멱살 부분을 살짝 잡아당겼다.
“어렵게 됐어. 지금과 같은 상황이면 결승에선 너와 리허가 붙는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1경기를 내주고 2, 3경기를 가져간다. 무수히 많이 펼쳐지 3전 2선승 제 시합에서 저런 선례 역시 무수히 존재했다. 하지만 그는 짜오룽쒀의 역전승에 대한 가능성은 없다고 판단했다. 넋이 나간 얼굴은 멀리 떨어진 관중석에서도 그대로 내보였다. 아무리 천재라고 불리지만 그래도 어린애다. 어차피 산전수전 다 겪고 나면 나이가 많고 적고는 문제될 것 없지만 그는 그런 경험마저 부족한 상태. 성훈 역시 리허를 상대로 확정짓고 머릿속으로 동족전에 관한 여러 전술들을 되짚기 시작했다.
“실력이 더 좋아졌어.”
4강전이 모두 끝난 휴식 시간. 어차피 다음이 결승이라 장비를 철거할 필요가 없어 가벼운 모습으로 무대에서 내려온 리허를 향해 진호는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아직 멀었어. 일 년 세계대회를 모두 차지하기 전에는 멈출 수야 없지.”
“.......이거야, 원. 게임 실력보다 한국어 실력이 더 늘은 것 같은데. 이제 억양과 발음만 좀 고치면 한국인 유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거야. 젠장, 난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데. 남 고생시키지 말고 그쪽 길로 꺼져버렸으면 좋았잖아?”
자신에게 패해 8강에 머물었던 상대를 보면서 리허는 살짝 웃어줬다. 진호는 복도에 있는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꺼내 결승 진출 선물이라며 던져 줬고 둘은 나란히 벽에 기대었다.
“즉석에서 생각했던 거야?”
“아니, 언젠가 한 번 써보려고 맘먹었던 영웅 선택이었어. 어차피 견제를 할 것이 아니라면 사냥 속도에서 월등하니까. 나중에 데스나이트를 뽑으면 데스 코일(Death-Coil) 받기도 하고.”
“그래도 중반 이후로 가면 확실히 데스나이트와 리치(Lich)의 레벨이 높은 것이 훨씬 도움이 되잖아.”
“그래서 초반에 확실히 격차를 벌이지 않으면 위험한 작전이지. 영웅의 힘이 아닌 유닛의 힘으로 상대를 눌러야 하거든. 이번에는 짜오룽쒀가 심하게 당황해줘서 잘 먹혔지.”
“신의 아들이라고는 해도 애는 애니까.”
“그래, 하지만 다음에는 이렇게 쉽게는 안 될 거야. 이번 대회를 비료 삼아서 다음에는 더 강해져서 우리를 위협하겠지.”
“어리다는 것은 성장할 가능성을 무한대로 품고 있다는 말이지. 정말이지 젊다는 것은 좋은 것이야.”
그의 말이 끝나자 둘은 서로의 시선을 마주쳤고 얼마가지 않아 폭발적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두 명 모두 워3 게이머로서는 은퇴가 아른아른 보이는 노장 이었지만 사회적인 나이로 봤을 때는 아직 솜털도 다 사라지지 않았다고 해도 될 나이인 것이다. 진호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살며시 진정시킨 다음에 살며시 뒷머리로 벽을 눌렀다. 신나게 웃고 나니 머릿속이 좀 시원해진 느낌이 들었다.
“확실히 부러워.”
“젊음이?”
“그런 재능을 지닌 아이가 나타날 수 있는 환경이.”
“......”
“저렇게 나이가 어린 선수가 등장을 한다는 소리는 그만큼 워3라는 게임이 일반인들에게 널리 퍼져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소리지.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다는 말이야. 그리고 이제 막 초등학생 티를 벗어낸 꼬마가 팀에 합류하여 연습을 하고 또 대회에 나갈 수 있다는 것은 부모가 허락하지 않으면 불가능 일. 반대로 해석하면 부모가 어린 자식을 팀에 보낼 수 있을 정도의 인지도를 획득했다는 말이 되겠군. 한국에서 꿈도 못 꿀 일이야.”
진호는 들고 있던 캔을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살짝 던지면서 내뱉듯이 말했다.
“한국 내부에 클랜은 있어도 팀은 없지. 대부분의 실력 있는 선수들은 유럽과 중국으로 흩어져 있고. 차라리 찬밥 신세라도 해줬으면 하는 바람까지 생길 정도라니까. 그러면 못 먹는다고 집어 내버리지는 않을 테니까. 이 상태라면 3대 세력의 균형이 깨지는 것도 시간문제일 걸?”
“그래도 아직 한국의 선수층이 제일 두꺼운 것 같은데. 저번 스타즈 워에서도 우승을 했고.”
“지금이야 그렇지. 하지만 지금 활동하고 있는 이들 중 나이가 적은 사람은 많지 않아. 무엇보다 우리에겐 강제적인 은퇴 시점이라고 할 수 있는 군대까지 있어. 이들이 사라지고 나면? 중국과 유럽에선 새로운 신예들이 나타나고 기반을 바탕으로 성장해 나가며서 교대가 되겠지만 우린 그런 것을 바라긴 힘들어. 정말 미친 녀석들이 무더기로 나타나지 않는 한 신의 아들은커녕 인간의 아들도 나오지 않을 거다.......하다 보니 신세 푸념이 되어버렸군.”
리허는 옆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김진호는 클래식 시절부터 이름을 날렸던 나이트엘프 유저로 인지도가 상당한 남자기도 했지만 동시에 한국의 워3 게이머들의 대표격인 인물로도 유명했다. 워3관련 인터넷을 운영한 경력도 존재하고 선수 간의, 혹은 선수와 대회 운영진 간의 갈등이나 의견차이가 있을 때 조정자 역할을 맡기도 한, 워3에 뼈를 묻을 심정을 지녔다고 해도 무관한 사람. 그런 만큼 답답함도 많이 느끼고 불만도 많이 쌓였을 것이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런 재미없는 이야기만 해서 미안하게 됐네. 가뜩이나 결승이라는 큰 시합을 앞에 두고 있는 사람인데 말이지.”
“뭐, 나름대로 좋은 이야기였는데.”
진호는 무의식적으로 겉옷의 안주머니를 더듬었다. 아차차, 담배 끊은 지 반 년이 넘었는데 이 습관은 없어지지 않은 건가.
“dokkebi의 컨디션은 어때? 좋아보여?”
“성훈이 녀석? 아아, 의욕이 아주 넘쳐흘러. ESWC에서 라이센 신에게 져 3위에 머문 것 때문에 또 다시 외국 언데드에게 무릎을 꿇느니 황하의 넓이를 몸으로 체험하고 싶어 하는 기색이거든.”
“그건 말려야겠네. 황하는 거리도 먼데다가 물이 좋지 못하거든. 가까운 하천 중 괜찮은 곳을 우승 후에 알려줘야겠군.”
“관둬라.......녀석이라면 진짜 할지 모른다. 그나저나 신예 이야기 하니까 생각났는데 네 팀에도 어린 선수가 하나 있지? 아이디가 XuánWu란 아이디였던 것 같은데.”
“조우렌 녀석?”
“아, 맞아 그런 이름이었지. 그 녀석은 어때? 좀 기복은 있었지만.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는데.”
리허는 씩 웃었다. 진호는 그 웃음이 왠지 자기 자식이 학교에서 1등을 했다고 좋아하는 동네 아저씨를 연상한다고 생각했다.
“기대해도 좋아 최근에 그동안 문제였던 집중력 부분이 완전히 해소되면서 정말 무서울 정도로 실력을 키워가고 있다고. 확실한 목표도 생겼고 무엇보다......”
그의 웃음이 살짝 바뀌었다. 이번에는 결혼식에 가서 신랑보고 신부에게 키스하라고 아우성치는 친구를 생각나게 하는 그런 웃음이었다.
“사랑은 남자를 강하게 만드는 법이지.”
1부 : Romance
1. Boy meet Girl
2. Boy meet Guy?
3. 남매
4. 데이트
5. 발을 내밀다
6. 예선 7일전
7. 끝과 시작
8. Log Bridge
9. 그리고
2부 : Daydreamer
prologue
1. new challenger
2. 각자의 이유
3. 한국으로
4. meet again
5. 한여름날 어느 복도
6. 東과 西
7. The Benissant
8. 교점(交點)
9. 파란 하늘
10. collision
아무래도 글을 연재하고선 최단기간으로 다음 화를 올리는게 아닌가 싶군요^^;; 무려 다음다음칸에 전 화가 있다니 이런 쾌거가~ 역시 댓글은 글쓰는 이에게는 힘이 되는 법입니다~!!! 원래 이번 화는 'daydreamer'라는 소설을 구상했을 때부터 구상했던 몇 개의 장면 중 하나라서 빨리 쓴 이유도 있고 말이죠. 물론 다음 화가 언제 올라갈 지는 저도 모릅니다...그리고 여기 나오는 대회가 CEG로 나왔는데 1화를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때는 CIG였습니다;;; 물론 이 두 대회가 같은 대회인지, 다른 대회인지도 모르겠습니다.(중국 쪽은 정보 얻기가 힘들더군요.) 거기에 여기 내용과는 열리는 날짜도 다 틀리고......이번에도 그냥 이해해 주길 바라고 넘어가버리겠습니다~~~(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