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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07/30 22:06:24
Name Frank Lampard
Subject "완벽한 연주를 위하여" - 젊은 피아니스트의 인내의 여정
여기 한 젊은 피아니스트가 있다. 일정 거만하면서도 자만에 빠지지 않고,
모난듯 하면서도 정열적이고, 감정선의 표출이 어색하면서도
강단이 분명한 젊은이가 있다.

나는 한때 세상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천재 피아니스트에 열광했으나 언제부턴가
그의 연주엔 패기가 사라졌고 그는 독창적 '작품해석'이 아닌 타성적 '작품모방'에
안주하기 시작했음을 시인 아니할 수 없다.

그러한 매너리즘에 시달릴 즈음, 이 대기만성형 피아니스트를 발견했다.
시작과 끝이 확실한 젊음, 승리와 패배를 시인하는 열정, 도전과 성취를 향해 반복해
나아가는 패기. 왠지 이 친구라면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은 뒤에 다시 찾아봐도
여전히 집념과 투지를 보여줄것 같은 믿음이 선다.

한 천재에게 비슷한 감상을 했고 기대했으며 좌절했지만,
시샘과 질투가 일기는 커녕, 망각하였던 예전의 열기를 되살려주는 젊은이다.
여타 피아니스트들보다 강렬한 타건은 마디마디가 구별되며,
우울함에 빠지기 쉬운 아르페지오는 선명한 나이테처럼 살아난다.

물론 최고 인기 피아니스트이자 섬세함과 치열함으로 대표되는 '후기 낭만파' 임요환과
파워풀한 연주법을 처음 시연했고 경이적인 손놀림을 보여줬던 '잊혀진 천재' 이윤열의
연주에 열광했었던 이라면, 이 젊은이의 연주는 피아노 선율 자체에 대한 몰입이
그리 강하지않다는 것을 아쉬워할수도 있겠다. 특히나 빠른 템포의 연주에 익숙해진
마니아라면, 이 젊은이의 느긋한 연주는 사뭇 늘어짐으로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건반 앞에 앉아 오로지 작곡가가 남긴 악보에 철두철미 매진하며
연륜에 의지한 연주로, 종종 오케스트라와의 밸런스를 맞추지 못해 괴리를 보이는
노회한 피아니스트들에 비춰볼때, 이 젊은이의 연주가 가지는 최대의 무기는
바로 오케스트라와의 조화로움에 있다고 본다.
결국 이 재능의 느긋함이란 질서있는 연주에서 파생되는 것이다.

비록 아직은 '완벽'이라는 형태로서 발전되지는 않았지만,
이 젊은이의 연주의 핵심은 피아노 협주곡의 '모형' 그 자체에 대한 존중이다.

자칫 대중을 의식한 화려한 손놀림이나 창조적인 악보해석에 심취할만도 하건만,
오케스트라와 자신의 사운드를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며
한 곡의 연주에 있어 기복없는 흐름 자체를 중시하는 것이다.
칭찬할만 한것은 이 젊은이는, 그러한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나름 자신의 의지대로 오케스트라를 리드할 수 있는 재능을 갖췄단 점이다.




피아니스트들에게 최고 난이도곡으로 꼽히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의 경우, 각 피아니스트별 해석비교도 흥미롭다.

임요환의 연주는 독창적이며 절실하게, 무엇보다 기교의 현란함이,
이윤열의 연주는 스탠다드 하면서도 재기넘치던, 플레이의 세련됨이
최연성의 연주는 악보에 대한 스마트한 통찰을 바탕으로한 웅장함이 돋보였다.

그렇다면 이 젊은 재능의 그것은 어떻게 설명이 가능할까.
마치 공들여 명품시계를 만드는 장인 세공사의 그것에 비유될만큼의 인내.
시종일관 유지되는 일정한 템포와 곡에 대한 철저한 해부.
장엄한 오케스트라의 흐름을 위배하지 않으려는 정성스러운 연주.
이것들은 결국 (자칫 결벽으로까지 비춰질 수 있는) '완벽'한 연주에 대한 추구다.

다른 평범한 연주가들의 그것을 들어보면, 피아노가 우수어린 서정적 감정을 담당하고
오케스트라가 기백과 힘을 표현하는 본말전도가 종종 있다.
하지만 근래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을 해석하는 조류 자체가
연주자에게 있어 피아노 특유의 서정성을 바탕으로 깔면서도,
오케스트라를 리드할 수 있는 강단있는 '점진적 승화'를 요구하고 있기에,
전상욱의 연주 스타일은 분명 이러한 시대의 트렌디에 부합된다 할 수 있다.

앞서 말했지만, 청중을 쉽게 몰입하게 만드는 타입의 연주는 아니기에,
취향에 따라서는 아마 다른 대가들의 그것이 더 나아보일 수 있다.
따라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을 가볍게 듣거나 처음 이해하려는,
입문자들에게 있어서는 기꺼이 추천해줄만한 음반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진정으로 음악을 좋아하고 또 나름의 가치를 부여하고자 하나
그 열정을 쏟아부을 그릇을 못찾아 방황했던 나같은 이들에게는
이 젊은 피아니스트는 분명 하나의 대안으로서 다가온다.
아직은 미완성인 그만의 '완벽한 연주'를 조만간 들려주리란 기대감과 함께.




예술의 타락은 대중의 편협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본다.
어떠한 음악이 일정 이상의 대중성을 확보했다 하더라도,
반드시 그 인기에 걸맞는 예술적 성취까지 이뤘으리란 보장이 없는것이다.
음악을 연주하는 이들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예술의 성취란 결국 헤게모니戰이다.
기성 헤게모니에 대한 전상욱의 도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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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30 22:14
수정 아이콘
레드나다는 죽었다.. 약간 가슴 아프군요.
연새비
06/07/30 22:25
수정 아이콘
임요환의 연주는 독창적이며 절실하게, 무엇보다 기교의 현란함이,
이윤열의 연주는 스탠다드 하면서도 재기넘치던, 플레이의 세련됨이
최연성의 연주는 악보에 대한 스마트한 통찰을 바탕으로한 웅장함이 돋보였다.

그렇다면 전상욱의 그것은 어떻게 설명이 가능할까.
마치 정성들여 명품시계를 만드는 장인 세공사의 그것에 비유될만큼의
정성스런 인내와 신중함, 거기에 과감히 오케스트라의 흐름을 리드할 수 있는
결단을 바탕으로 한 (자칫 결벽으로까지 비춰질 수 있는)
'완벽'한 연주에 대한 추구다.
--------------------------------------------------

사람들은 완벽함보다는 뭔가 남들과 다른 독특한 개성으로 기존의 완벽함의 매력까지 집어 삼켜버리는 카리스마를 높이 평가합니다.
그것은 예술에서도 마찬가지지요.
램파드 님의 글처럼이라면 역시 첫번째 임요환 선수가 가장 뇌리에 남고 예술가와 같은 게이머의 모습을 잘 보여준 선수라고 보여집니다.
완전소중류크
06/07/30 22:27
수정 아이콘
멋진 글이네요^^
저도 그 천재 피아니스트에...열광하고 현재의 상황을 인정하지만...그러함 속에서도 저는 그의 연주에 빠져있다고 해야하나요...^^...아직 믿고 있기 때문이죠...또다른 그만의 연주가 나올거라고...

전상욱 선수의 연주는 확실히 스스로 완벽하게 만들어간다고 봅니다...완벽에 대한 추구죠...어느순간부터 꽤 많았던 약점들을 고쳐나가더니...벌써 완벽에 가까워지는 연주를 하고있다니...

모든 선수가 같은 연주를 하지 않는다는게 아직도 스타크가 인기있는 이유겠죠...^^
06/07/30 22:30
수정 아이콘
예전 이윤열 팬으로 유명하신 램파드님이시군요.

여전히 글은 잘쓰시는군요 ^^
팬이야
06/07/30 22:34
수정 아이콘
한때 당대 최고라 불리던 피아니스트가 등장했을 때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 이상의 피아니스트는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더 완벽하고 더욱 더 독창적인 피아니스트는 계속 나옵니다.. 마치 그 한계가 없는 것처럼..

이래서 전 스타를 계속 봅니다..
sungsik-
06/07/30 23:50
수정 아이콘
정말 영화 샤인 덕에 다들 라흐마니노프 협주 3번은 엄청 띄워주는 군요-_-;
요즘 중고생도 쳐내는 게 라흐마니노프 3번인데 ㅡㅡ;;
Go2Universe
06/07/31 00:09
수정 아이콘
중고생도 쳐내는 라흐마니노프라....
라흐마니노프 3번이 바이엘이라는 말 처럼 들리는군요....
06/07/31 00:16
수정 아이콘
좋군요... 제가 한번 써보고 싶었던 주제였는데... 제가 쓰는것 보다는 100배 좋을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레지엔
06/07/31 00:16
수정 아이콘
단지 치기만 하는거면 라흐마니노프 3번을 칠 수 있겠죠... 정확히 치기만 한다고 좋은 평가를 받으면 콩쿨대회같은 거 아무 의미도 없을 겁니다. 제 친구 중에 반 헤일런의 이럽션을 깔끔하게 치는 녀석이 있지만 그렇다고 걔를 반 헤일런만큼 친다고는 못하죠.. 아무리 치는 사람이 많아져도 라흐마니노프의 곡은 분명히 '난곡'입니다.
Caroline
06/07/31 00:20
수정 아이콘
sungsik- 님// 제가 다섯살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서 예중 예고 나오고 음대 들어가서 지금 22살까지 전공을 하고 있는데요, 라흐마니노프 피협 3번 쳐대는 중 고생들 몇몇 봤지만 제대로 치는 사람 아직 단 한명도 못봤는데 혹시 보시면 꼭 제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기성연주자들중에서도 곡 해석 제대로 해 내는 사람 몇 없는데 sungsik-님께서 사시는 동네가 좋은건지 아니면 전공하는 중고생들 음악적 수준이 비정상적으로 굉장히 높던지 둘중 하나겠네요. 그리고 샤인덕에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이 유명한게 아니라 원래 가장 대중적인 곡이었습니다. ( 참고로 악보에 그려져있는대로 치는게 연주라면 전 이미 초등학교 6학년때 피아노 완전 정복이었죠. ) 제가 좀 이상할만큼 흥분했습니다만 그런식으로 쉽게 말씀하시면 전공하는 입장에서 굉장히 섭섭합니다. 어떤 연주자는 60이 넘어서야 이제 겨우 피아노를 조금 알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sungsik-
06/07/31 00:43
수정 아이콘
caroline님.

제가 의미하는 바는 띄워준다는 의미가 단순히 유명하다는 의미가 아닌
샤인에서 악마의 교향곡 운운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난곡이란 식으로 표현했다는 말이었습니다.

물론 라흐마니노프 교향곡이 리스트같이 기교적이기만한 곡도 아니고
중고생들이 당연히 제대로 쳐낼리가 없죠.

하지만 샤인에서 라흐마니노프 협주 3번을 너무 심한 난곡으로 표현해서
아무나 칠 수 있는 곡이 아닌 것 처럼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다는 겁니다.

전 피아노를 쉽게 생각 안 합니다.
동생이 피아노 입시로 엄청난 고통에 빠진 걸 옆에서 항상 지켜봤고
지금은 연대라는 꽤 좋은 학교에 들어갔지만 그 전까지 겪었던
고통을 바로 옆에서 언제나 봐왔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요즘 어린 학생들이 피아노를 잘 쳐도
연륜이란 것을 넘기는 힘들다는 걸 동생에게 꾸준히 교육받아 왔구요.


제가 한 말은 피아노를 쉽게 의미하는 게 아닌
샤인이란 영화로 인해 피아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3번에 대해 굉장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는 걸
지적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오늘
06/07/31 00:54
수정 아이콘
라흐마니노프 치는 피아니스트 영상봤을 때 처음 느낀 점
1. 오케스트라 소리가 안들린다. 피아니스트 손 보느라고
2. 저 여자 건반도 안 보고치냐?
3. 저 손으로 스타하면 키보드 3개도 두들기겠다.
부들부들
06/07/31 00:56
수정 아이콘
본문하고 상관없는걸로 싸우시네요.-_-
체념토스
06/07/31 04:23
수정 아이콘
^^ 재밌게 봤습니다.
흠 나도 재즈의 비교해볼까
세이시로
06/07/31 09:17
수정 아이콘
본문과 상관없는 얘기는 좀 그만! ^^;

최근 이윤열 선수의 양대리거 복귀와 함께 Frank Lampard님의 글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이윤열 선수를 넘어선 또 다른 테란에 주목했군요.
과연 전상욱 선수가 시대를 잡을 테란이 될 수 있을지...흥미진진합니다.
이 글을 보니 더더욱 그 흥미가 배가됩니다.
추천 한방!
Caroline
06/07/31 14:11
수정 아이콘
sungsik- // 죄송합니다만 굉장한 환상을 가질정도로 난곡이 맞습니다. ( 제가 오디션 준비하면서 연습해본 경험이 있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4개월동안 시달리다(!) 결국 다른 곡으로 바꿨습니다. 나는 몇달동안 괴롭힘 당했는데 쉬운듯이 말씀하셔서 제가 흥분했나보네요 ) 오히려 너무 유명해 져서 막 연주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죠. 제가 지금 읽어봐도 먼저 쓰신 댓글은 오해할만한 소지가 있었다고 보여지는데 저만 그런건가요.
( 같은 학군에 다른 학교 시험보느라 연대는 시험 못봤는데 친구들이 많이 다닌답니다, 동생분이 재학생이라면 아는 분일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서로 이런 댓글로 감정 상할 필요 없을거 같죠? 먼저 울컥해서 죄송해요; )
베리타스
06/07/31 14:18
수정 아이콘
Caroline//흠.. 그렇게 오버할만큼 어렵지는 않습니다. 님의 재능을 점검해보심이..
06/08/01 18:14
수정 아이콘
중고생들의(중학생은 한번도 못봤군요..-_-;) 3번 완주는 그닥 보지 못했지만 카덴차는 꽤나 올라오던데, 글쎄요? 제대로 치는사람은 한번도 본적이 없네요...
(뭐 제대로 친다의 의미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그런데 베리타스님의 마지막 댓글은 상당히 거시기하군요... 그리고 라흐마니노프 3번곡이 아니라면 뭐가 어렵다고 할런지..
METALLICA
07/05/02 10:31
수정 아이콘
Frank Lampard님 다시 레드나다에게 달려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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