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만다는 미국의 배우입니다. <21 and over> 라는 영화에 출연했고, 가끔은 친구와 찍은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며 놀곤 하죠. 그런데 사만다가 올린 동영상을 보고 누군가가 메시지를 보냅니다. 사만다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다며 확인을 바란다고 하네요. 페이스북을 보니 친구요청을 보낸 사람은 자신과 닮았습니다. 아니스라는 이름의 이 사람은 사만다와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똑같아요. 거기다 아니스는 자신과 똑같은 입양아, 한국 출신, 태어난 날까지 일치합니다. 이 우연의 일치를 설명해주는 가설은 딱 하나뿐입니다. 그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사만다는 아니스와 대화하기 시작합니다. 둘이 가까워지면 질 수록, 호기심은 예감으로, 기대는 확신으로 부풀어오릅니다.
<트윈스터즈>는 사만다 푸터먼이 직접 찍은 다큐멘터리입니다. 이런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볼 때마다 전 인간이 얼마나 서사의 욕망이 강한 존재인지 실감하게 됩니다. 평범하거나 놀라운 순간들을 체험하면서도, 이를 기록하려는 본성이 인간을 움직이는 겁니다. 가장 신기한 경험을 하는 와중에도 한 편으로는 카메라를 돌리며 현재를 차곡차곡 수납하고 있는거죠, 그 덕에 생생한 감정들을 최대한 진짜에 가깝게 만날 수 있으면서도, 이야기의 힘과 그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인간의 저력 자체에 경이를 느낍니다. 감동에 압도되면서도, 그 감동을 보존하고 정리하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현실과 이야기, 인간과 현실, 인간과 이야기의 여러 줄다리기를 목격하는 느낌이에요.
사만다가 아니스를 발견하면서 영화는 첫번째 주제를 꺼냅니다. 나와 닮은 사람의 신비를 알려주는 거죠. 여기에는 나란 사람은 세상에 단 하나뿐이다 - 라는 전제가 깔려있습니다. 그래서 나랑 닮은 사람의 존재는 이상하고 즐거운 사건입니다. 도플갱어랍시고 이 소재를 스릴러로 소비해버리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 나와 닮은 사람을 찾고 만난다는 건 이렇게 신나는 일입니다. 다들 한명밖에 없는 자기 자신을 사만다와 아니스는 한 명씩 더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가 흔히 꿈꾸는 평행우주 속 또 다른 나에 대한 호기심을 영화는 유쾌하게 대답합니다. 이들이 온라인으로 나누는 대화의 내용이나 이를 보여주는 방식 또한 탄산수처럼 청량해요.
친해져가는 이들은 다음 호기심을 풀어갑니다. 이렇게 닮은 사람들이 태어난 날도 같다면, 이들은 쌍둥이일 수 밖에 없죠. 영화는 그 답을 다양한 방법으로 추적합니다. 사만다와 아니스는 화상채팅으로 깔깔대며 개인의 취향과 버릇을 직접 확인합니다. 사만다는 쌍둥이 전문 박사를 찾아가 유전자 검사를 받습니다. (아니스는 영국에 있어서 자신의 세포를 보냅니다) 이들은 입양기관에 자신의 친부모와 입양 과정을 물어봅니다. 개인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사회적으로 자신들의 관계를 찾으려 하죠. 그리고 어떤 답은 이들을 슬프게 하기도 합니다. 입양기관을 통해 쌍둥이 여부를 부모에게 물어볼 수 있었지만, 친모는 쌍둥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부정합니다. 그래도 사만다와 아니스는 쌍둥이일 거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습니다. 관계를 부정하는 누군가의 말보다 더 강력한 증거, 자기 자신들과 둘 사이의 교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닮은 두 존재의 우연은 보다 필연에 가까워집니다. 원래는 함께 했어야 할 이들이 그러지 못했고, 시간이 흐른 후 서로를 찾게 되었죠. 신기했던 일은, 그럴 수 밖에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사만다와 아니스는 “가족”이고 “자매”니까요. 낯선 인연의 이야기를 하던 영화는 재회를 다루기 시작합니다. 사만다와 아니스는 서로를 발견한 사실은 이들이 헤어져있었다는 사실의 방증입니다. 여기서 영화는 핏줄을 가장 강력하고 원초적인 만남의 연결고리로 삼습니다. 세상에 단 한명일 줄 알았던 내가 사실은 또 한명 있었고, 온라인 채팅으만으로도 그렇게 그리워지고, 이 모든 접점이 결국 만남으로 이어져야 하는 이유는 이들이 가족이라서 그렇습니다.
영국에 있는 아니스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사만다가 날아갑니다. 아니스의 친구들이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하고 이들은 자신의 친구와 똑 닮은 사람을 실제로 보며 신기해합니다. 카메라나 모니터의 착시가 아니라 정말로 똑같이 생겼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시간을 보내던 이들에게 메시지가 옵니다. 도착했어. 그리고 온라인으로 그렇게 그리워하던 이들이 눈 앞에 서있는 서로를 마주합니다. 음……어색합니다. 나랑 닮은 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까 정말 이상하기만 합니다. 둘러싼 사람들은 계속 웃습니다. 사만다와 아니스는 반가우면서도 이 상황이 아직은 조금 어려워요. 설렘은 늘 그렇게 머뭇거리는 순간 앞에서 우물쭈물하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친해지기 시작합니다.
거기에는 사만다의 오빠, 아니스의 어머니 등 이들의 가족들도 같이 왔습니다. 내 동생, 내 자식과 똑같이 생긴 사람을 보고 만나면서 각자의 가족이 커집니다. 전혀 몰랐던 사람들이 한 순간에 대가족이 되죠. 사만다와 아니스의 세계는 겹쳐지고, 팽창합니다. 단 두 명의 만남이 많은 사람들의 관계를 바꿔놓습니다. 알아갈 사람, 사랑할 사람이 훨씬 더 많아졌습니다. 핏줄을 근거로 시작된 관계는 피가 섞이지 않은 이들을 자연스레 섞이게 만듭니다. 그동안 함께 해온 이들만으로도 가득찼던 세상은 더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게 됩니다.
사만다와 아니스의 만남은 공통점만을 확인시켜주진 않습니다. 이들은 각자 다른 가정에 입양되어 다른 삶을 살아왔으니까요.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차이점은 입양아로서의 삶입니다. 사만다는 자신이 특이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부모와 남매의 품 속에서 자연스레 그 일원으로 자라왔죠. 아니스의 경우는 좀 달랐습니다. 아니스는 사만다의 오빠들처럼 품어줄 형제나 자매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웃사이더라는 회의를 떨치기 쉽지 않았죠. 입양아라는 다른 뿌리가 그를 외롭게 했고 아니스는 이 감정과 혼자 싸워야 했습니다. 아마 모든 입양아들은 이런 고민에 부딪힐 겁니다. 사랑과 관심만으로 다른 피부색, 다른 핏줄을 설득해줄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사만다와 아니스가 각자의 그늘을 포개어가는 도중 유전자 검사에 대한 결과가 날아옵니다. 이들은 쌍둥이가 맞았습니다. 영화에서 아니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늘 혼자인 것 같았고, 무언가를 잃어버린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그게 뭔지 알겠다고.
둘이었던 이들이 사실은 하나가 맞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아니스는 미국으로 놀러와 사만다의 생활을 공유하죠. 이제 영화는 이 둘이 어디서 왔고 언제 나눠졌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사만다와 아니스는 자신들이 어떻게 입양되었고 생모가 누구인지를 찾기로 해요. 이들에게 친어머니란 더 각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영영 모르고 살았을, 또 다른 나의 어머니이고 쌍둥이의 어머니니까요. 그리고 아니스에게는 입양의 상처를 극복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버려진 자식, 포기된 자식이 이렇게 커서 헤어진 쌍둥이를 찾고 다시 찾으러 올 수 있을만큼 컸다고요. 이는 곧 모든 입양아의 근원을 그리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피부와 생김새가 있고, 이것들이 어디서 왔는지 그 누구나 궁금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동시에 어머니가 포기하지 않은 보통 자식들에게도 부모와 함께 하는 행복을 곱씹게 합니다.
그 동안 사만다와 아니스의 만남은 서로의 삶 속으로 들어가보는 것이었습니다. 친모를 찾기 위한 이들의 여행은 처음으로 이 둘이 같은 목적지, 같은 사람을 만나러 가는 공동의 여행입니다. 서로를 찾았고, 서로가 만났던 여행길은 이 둘의 탄생지를 향합니다. 이들은 입양 기관에 들리고, 한국을 여행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입양기구가 주최한 포럼에도 참석합니다. 한국에서 뉴스로 방영되는 자신들의 사연에 신기해하기도 하구요. 이들은 위탁모를 만나서 얼싸안습니다. 이곳 땅을 떠나기 전 잠시나마 어머니가 되어준 사람들을 만나 감사해합니다. 말은 안통해도, 이제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컸어도 이들은 보살펴준 위탁모들 덕에 그렇게 미국, 프랑스로 떠나 현재의 부모를 만날 수 있었죠. 사만다와 아니스는 그렇게 어머니를 한명씩 더 얻습니다. 그리고 친어머니는 끝내 만나지 못합니다.
가장 만나고 싶었던 사람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사만다와 아니스는 여전히 친어머니를 사랑하고 고마워합니다. 이렇게 세상에 존재할 수 있던 게 친어머니 덕이라는 걸 이 쌍둥이들은 더 곱씹어요. 나를 있게 해준 어머니, 무엇보다도 내 쌍둥이 아니스를, 사만다를 만나게 해 줄 수 있던 어머니. 과거가 늘 응답하진 않아도 어떻게든 현재의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사만다는 아니스에게, 아니스는 사만다에게 소중한 유대를 전송했으니까요. 사랑할 사람들은 훨씬 더 많아졌습니다. 이 전보다 훨씬 덜 외로운 세계가 만들어졌습니다.
생각해보면 이 놀라운 일은 모두 "이별"에서 출발합니다. 어머니와 이별했기에, 쌍둥이와 이별했기에, 그래서 이들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 사랑받고 무럭무럭 자라면서 사만다가 될 수 있었고 아니스가 될 수 있었죠. 어쩌면 무정하기만 했을 이 현실 덕에 이들은 이리도 벅찬 선물을 받을 수 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덕에 쌍둥이 자매는 아픈 과거를 마주하기도 하지만 앞으로 늘 황홀할 현재와 감사할 미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 사는 우리에게도 잊고 있는 진실 하나를 던집니다. 당연해보이는 당신의 그 가족, 부모, 형제, 자매가 모두 엄청나게 놀라운 일이라고요.
다큐멘터리 영화지만 시종일관 발랄함을 잃지 않습니다. 신기방기 활기가 가득찬 가운데 찡하고 뭉클한 영화에요. 이들이 쉴 새 없이 날려대는 메시지와 채팅창으로 small world의 경이를 체험하게 될 겁니다. 소다수 거품처럼 시종일관 pop pop 터지는 이 이야기는 모두 "진짜" 일어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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