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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4/14 17:02:01
Name 王天君
File #1 LESQUATRECEW0003936_BAN1_2424_NEWTV.jpg (30.1 KB), Download : 57
Subject [일반] [스포] 400번의 구타


태어나자마자 힘든 게 사람 인생이다. 말이 안통해서 징징 울고 별의별 신호를 내야 밥이 오고 기저귀를 갈아준다. 가만히 있으면 엄마아빠가 다 해결해주니 신상 편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아무 것도 못해서 도움을 요청하는 갓난아기의 그 심정을 다 큰 우리는 다 헤아리지 못한다. 배고프냐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하고 싶은데, 메슥거리는 아기를 부여잡고 부모라는 사람들이 울룰루 쭈쭈쭈 하며 비행기를 태우며 얼른다. 그게 아닌데, 힘들어 미치겠는데. 기어이 토를 쏟아내고 나서야 엄마아빠는 황급히 뒷수습을 하고 아기는 성질이 나서 울어제끼는 수 밖에 없다. 힘들고, 그 힘든 걸 몰라주는 게 인생의 시작이다. 걸음마를 떼고, 언어를 배운다고 해서 상황이 딱히 나아지지는 않는다. 세상은 하면 안되는 것 천지고 사람들은 하지 말라고만 떠들어댄다. 처음으로 혼자 걸어보는 거리는 나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수천의 사람들이 나를 지나치며 걷고 있다. 내 이야기는 들리지 않고 내 말 안드고 뭐했냐고 남의 이야기만 울려댄다. 우왕좌왕 얼떨결에 휩쓸려다니다 크고 나면 기억 속 흐릿해진 폴라로이드 몇장이 그 시절을 위조한다. 어렸을 때 정말 행복했다고. 찰칵 소리가 박아놓은 미소는 멋도 모르고 활짝 피어있거나, 하나둘셋 신호에 떠밀려 조금은 찌그러져 있다.
  
다들 몇번 부딪히고 치이면서 세상을 배운다. 성숙해지고, 교활해진다. 아무튼 찍히지만 않으면 된다. 어지간한 짓만 안하면 그래도 착한 아이로 남아있을 수 있다. 몇번 눈싸락을 맞으며 학교 교문으로, 교문에서 달리면 이제 다 큰 사람이 된다. 그렇게 자라고 나면 대강이나마 안다. 세상에서 시키는 대로 살아야 신간편하고 모르면 모르는 대로 따라가면 된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그걸 다 잘하는 건 아니다. 자고, 일어나고, 밥먹고, 학교 가고, 하루에 떠내려가면서도 세상의 법칙들은 몸에 배지 않는다. 누가 가르쳐준 적이 없다. 매일 혼만 났을 뿐이다. 모르겠으니까 내키는 대로 할 뿐이다. 큰일이야 나겠어. 정말로 큰 일도 아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큰 일이 났다며 법석을 떤다. 하고 싶은 대로 했는데 글러먹은 아이가 되었다. 하기 싫은 마음 같은 건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해야 되고, 하면 안되는 것들을 떠든다. 들을려고도 하지 않으니 이 쪽도 피곤하게 말 하지 않는다. 어른들의 언성은 점점 커져만 간다. 혼나는 게 일과가 되어간다.

앙트완 드와넬. 화면 속에서 처음 보이는 이 아이의 학교 생활은 "벌"이다. 다른 애들 다 돌려보고 있던 여자사진을 앙트완도 본다. 하필 앙트완이 걸린다. 꼬장거리는 선생은 앙트완을 솎아낸다. 선생은 앙트완을 나무라고 앙트완은 멀뚱한 표정으로 서있다. 고자질은 안한다. 그런 건 비겁하니까. 앙트완한테 그 날 일은 재수없는 사건이다. 다른 아이들도 다 돌려봤는데 자기만 걸렸으니까. 선생한테는 못된 아이 한 명을 적발한 날이다. 일단 눈도장을 박아놓고, 그 다음에도 이를 기준으로 계속 시선을 붙여놓을 것이다. 누군가의 운 없는 날은 다른 이한테는 샛노란 싹수가 잎을 틔운 날이다. 다른 아이들이 어쨌건, 그 아이가 어쨌건, 아이들이 보통 어쩌건,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누가 그런 걸 일일히 신경쓰며 살까. 앙트완은 수업이 끝나고 한방 먹이겠다며 이를 갈지만 그게 먹히기에는 아직 한참 더 자라야한다. 앙트완 자신도 그 분노를 까먹어버린다. 어차피 뭘 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다. 어린 주제에. 선생이 뒷덜미를 움켜쥐면 끌려나가거나 붙들리거나 둘 중 하나다.

집에 돌아오면 아무도 없다. 반겨주는 사람도 없고 오늘 학교 생활 어땠냐고 물어봐주는 사람도 없다. 앙트완은 아무도 없는 집에서 불을 때우고, 밥상을 차린다. 어리지만 집에 오면 일부터 해야 한다. 엄마가 집에 오자마자 앙트완은 바로 야단을 맞는다. 밀가루를 사오는 걸 깜빽했기 때문에. 그러니까 학교 성적이 개판이지. 혼나고 무시당한 다음에는 심부름을 해야 한다. 밀가루 구입의 임무를 수행하는 길에 아빠를 만난다. 아빠는 유머가 넘친다. 엄마한테는 그게 먹히지 않는다. 식탁에서는 숙제 하지 말란 소리를 듣고 생선 수프를 먹는다. 자기 전에는 쓰레기통 비우는 걸 잊으면 안된다. 학교에서 돌아온 집은 아늑하지만은 않다. 앙트완은 이래저래 바쁘고 엄마는 아들이 늘 못마땅하다.자기 전까지도 엄마아빠가 다투는 소리가 들린다. 저 애가 저 모양인건 당신 탓이야. 쓰레기를 비우고 나면 하루가 끝난다.

앙트완은 늦잠을 잤다. 자명종 소리도 못들었냐는 엄마의 핀잔으로 하루가 시작한다. 엄마 아빠는 또 티격태격하고 있다. 앙트완은 슬리핑백이 따뜻하기는 하다고 웃지만 아빠는 학교나 가라고 짜증을 낸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앙트완은 먹을 걸 챙기고 부리나케 뛰어간다. 어차피 늦을 것 같다. 르네는 선생한테 혼날 거 그러지 말고 땡땡이나 치자고 살살 꼬신다. 야단만 맞고 재미도 없는 학교를 목숨 걸고 가느니 그 편이 훨씬 낫다. 영화도 보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기구도 타고. 기구는 재미있다. 구경하는 사람들 얼굴이 엄청 빠르게 돌아간다. 발을 땅에 안대도 벽에 딱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어째 좀 무섭기도 하다. 사람들은 앙트완을 보며 웃고, 앙트완 옆에서는 비명이 시끄럽게 울린다. 기구에서 몸을 뒤집어봤다가 낑낑대며 다시 머리를 하늘 쪽으로 발은 땅 쪽으로 돌린다. 기구가 멈춘다. 신나는 하루는 찜찜하게 끝난다. 앙트완은 하필이면 가는 길에 엄마를 봐버린다. 아니, 엄마가 학교에 가지 않은 앙트완을 봐버렸다. 거짓말 하는 소년은 거짓말 하는 어른을 만났고, 거짓말을 들켰지만 그래도 의기양양하다. 다른 남자랑 키스하던 엄마가 설마 자기를 혼낼려고!

문제는 엉뚱한 데서 터진다. 같은 반 재수없는 모리네가 앙트완의 결석을 꼰질른다. 그래도 어제는 잘 넘어갔다. 엄마가 죽었다고 뻥을 쳤는데 그걸 선생이 곧이 곧대로 믿어서. 거짓말은 크게 칠 수록 잘 넘어간다는 게 맞는 말이긴 하다. 그런데 오래 안간다. 아빠랑 엄마가 교실로 찾아와 앙트완에게 화를 낸다. 안걸릴 줄 알았는데. 아빠가 정말 화가 난 모양이다. 앙트완은 아이들 앞에서 뺨을 세게 얻어맞고 자리로 돌아간다. 재수가 없다. 엄마 아빠는 화나는 게 당연하다. 앙트완은 엄마 아빠한테 미안하다. 그러니까 가출을 결심한다. 르네가 알려준 인쇄소에서 잠을 자기로 한다. 그런데 잠도 못잔다. 어떤 어른들이 인쇄소에 와서 이것저것 둘러본다. 일단 뛰쳐나가야 한다. 잘 데가 없으니 앙트완은 밤거리를 열심히 쏘다닌다. 개를 찾아주라고 하더니 자기는 못찾게 하고. 앙트완은 누가 배달해놓은 우유 한병을 훔쳐 그걸 다 마신다. 공원 호숫가에서 대충 얼굴을 문지르고 학교를 간다. 선생은 엄마아빠한테 크게 혼났지 않았냐고 묻지만 집에 간 적도 없으니 혼난 적도 없지. 앙트완은 다 잘 해결되었다고 대답한다. 거짓말은 아니다. 잠을 좀 못자고 돌아다니느라 살짝 피곤할 뿐.

엄마가 또 학교에 찾아온다. 앙트완을 안고 집으로 데려간다. 샤워를 시키고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안 피곤한데 피곤할 테니 잠을 보채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이건 다 서론이었고 엄마의 본론이 나온다. 어제 그 편지의 그 말은 무슨 내용이었니? 엄마는 앙트완에게 찔릴 만한게 있다. 웬일인가 싶었겠지만, 엄마는 앙트완이 비밀을 지켜주길 바란다. 앙트완이 말 하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었는데. 앙트완은 학교 가기 싫다고 이야기하지만 엄마는 금새 결론을 낸다. 말도 안되는 소리. 그러다 돈도 못벌고 아빠처럼 빌빌거리게 된단다. 앙트완은 지금 학교를 가기가 싫고, 일이나 하고 싶지만 그런 걸 알아주는 어른들이 어디 있나. 다 안다고 하고 참으라고 하고 아직 모를 미래를 이야기한다. 앙트완이 알 리가 없는 그런 것들.

엄마의 속 보이는 다정함에 갑자기 착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야외로 나가는 수업에서 앙트완은 르네와 도망친다. 다른 아이들도 앞장 선 선생님의 등 뒤에서 골목으로 숨고, 가게 안으로 빠지고, 차뒤에서 몸을 숙인 채 이탈한다. 이열 종대의 기다란 꼬랑지는 한 손 안에 들어올만큼의 머릿수밖에 안남았다. 다들 그러는 만큼 앙트완도 뺀질거린다. 그리고 앙트완에게 문학적 계시가 온다. 발자크의 한 구절. Eureka!! 처음으로 마음 속 문장을 새겨준 위대한 이. 그런데 찬양하고자 하던 게 어째 잘 되지 않았다. 발자크의 일러스트를 붙여놓은 상자안에 촛불을 켜둔 게 화근이었다. 타는 냄새가 나고, 아빠랑 엄마는 타오르는 상자를 베개와 요로 미친 듯이 두들기고. 앙트완은 또 혼날 짓을 했다. 이 방화범 자식!! 라이터로 불을 붙여야 아예 집 전체가 다 타지 않겠냐! 아직 모르는 소년은 알았어야 하는 것을 까먹은 것처럼 사정없이 혼난다. 우리 이러지 말고 영화나 보러 갑시다. 엄마는 아들의 편을 들어줘야 할 이유가 있다. 단촐한 세 가족을 불을 끄고 곧바로 극장에 간다. 영화는 재미있었다. 아빠는 계속 농담을 친다. 앙트완은 계속 웃는다. 엄마도 기분이 좋고 아빠도 즐거워보이고 영화 보는 것도 재미있다. 정말이지 간만에 엄마 아빠 앙트완 셋 다 신이 났다. (트뤼포의 영화 사랑!) 이제 엄마랑 약속한 것처럼 작문성적만 잘 받으먼 된다.

평가 시간, 선생은 앙트완의 이름을 제일 먼저 부른다. 제일 못한 순서대로 부르다보니 앙트완의 작문이 제일 빨리 튀어나왔다. 발자크를 표절하다니, 이 파렴치한 녀석. 발자크의 eureka가 멋있어서 그리 넣었고 앙트완에게 표절이 뭔지 가르쳐 준 사람은 없다. 교장실에 가서 야단을 맞았어야 하지만 앙트완은 학교를 뛰쳐나간다. 선생은 진절머리를 낸다. 르네는 선생에게 개기다가 정학을 맞는다. 사람들 눈에 앙트완은 늘 거짓말쟁이 아니면 말 안듣는 놈이다. 잘 해볼려고 한 건데. 앙트완은 이제 끝장이다. 한번만 더 속을 썩이면 엄격한 군인 학교에 보내버린다고 아빠가 으름장을 놨었다. 표절한 앙트완을 엄마아빠가 용서할 리가 없다.

할 수 없다. 앙트완은 르네의 집에 피신해있기로 한다. 르네의 집은 부자고 르네는 엄마가 돈을 어디에 어떻게 숨기는 지도 다 안다. 르네 아빠가 절대 안들어오는 곳에서 앙트완은 비밀 동거를 한다. 르네가 먹을 것도 가져다 주고 담배며 술이며 원없이 즐길 수 있다. 그런데 르네 아빠가 들어왔다. 르네는 크게 혼나진 않는다. 약간의 꾸지람과 함께 담배 핀 만큼 용돈을 깎이는 데 그쳤다. 르네의 아빠에게 걱정되는 건 아들보다는 박제된 말의 상태다. 앙트완까지 걸린 건 아니지만 이 방에서 계속 지내긴 어려워졌다. 앙트완과 르네는 자유를 꿈꾼다. 이들은 바닷가에다 집을 짓고 어른들의 간섭없는 세계를 갈 수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세상 모든 아이들이 생각에서만 멈추는 독립을 결행한다. 악동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앙트완은 아버지 회사에서 타자기를 훔쳐낸다. 우유를 훔칠 때보다 훨씬 더 두근거리는 순간이 지나간다. 일단 훔쳐오기는 했는데 계속 들고 가려니 여간 무겁지 않다. 르네와 번갈아가며 타자기를 들고 간 끝에 공모자를 만난다. 믿을 수 없는 꼬마애들 대신 신용을 팔아줄 믿음직스러운 어른이다. 끽해야 10%밖에 떼주진 않지만 그런 건 대수롭지도 않다. 어찌됐건 타자기를 팔아치울 수 있으면 아이들에게는 그걸로 땡이다. 전당포에 들어갔던 공모자가 아무 말 없이 타자기를 들고 나온다. 아무 신호 없이 다른 길로 가는 공모자를 보고 아이들은 급히 뛰어나간다. 어른은 어른이다. 아이들의 순진한 믿음이야 아무 것도 아니다. 전당포에서 물건을 받아주지 않았다며 잠시 맡아놓을려 했다고 둘러대더니, 이제는 수고비로 300프랑을 요구한다. 멀리서 경찰이 오고 아이들은 어떻게 될 것 같냐고 어른을 협박한다. 그제서야 어른은 타자기를 포기하고 도망간다. 절도로 부푼 원대한 꿈은 거품만 남았고 르네와 앙뜨완은 타자기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한다. 어차피 팔지도 못할 거, 제자리에 돌려놓자는 결론을 내놓는다. 돌아가는 길은 더 멀기만 하고 타자기는 무거워 죽을 지경이다.

앙트완은 낑낑대며 타자기를 제자리에 갖다놓는다. 그 순간 회사의 어른이 앙트완을 붙잡는다. 정말이지 재수가 없다. 훔칠 때 걸렸으면 모르겠는데, 돌려놓을 때 걸린 건 대체 뭔지. 모자를 쓰면 아무도 못알아볼 줄 알았는데 무슈 드와넬의 아들인 게 단박에 들통난다. 훔치려곤 한 건 맞지만, 그래도 훔쳐서 팔아치운 건 아닌데. 그래도 다시 돌려놓았는데. 모자도 쓰고 있었는데. 이런 변명 같은 거 어차피 통할 것도 아니고 훔친 것도 사실은 사실이다. 아빠는 학을 떼고 앙트완을 경찰서에 끌고 간다. 경찰과 짜고 치는 연극인줄 알았는데 아빠는 이런 저런 처리를 논의하더니 경찰서를 떠난다. 조서 작성은 금새 끝난다. 앙트완은 철창 속에 갇힌다. 얼떨떨한 얼굴로, 어떤 아저씨와 같은 철창에 있다가 어떤 여자들이 한꺼번에 철창 안으로 들어온다. 앙트완은 있던 철창 속에서 나와 작은 철창 안에 혼자 갇힌다. 마차가 왔다고 경찰관들은 이야기하고 앙트완은 다른 사람들과 차에 올라탄다. 신나게 쏘다니던 그 도시는 철창 사이사이로 반짝거리고 있다. 철창 없이 볼 때랑 똑같이. 어쩌면 조금은 더 이쁘게. 얼떨떨한 표정으로 앙트완을 야경이 계속 스쳐가고 밀어낸다. 앙트완의 얼굴 위로 눈물이 흐른다.

감화소인가 뭔가에 도착한다. 얼떨떨한 표정에 시무룩함을 얹고서 앙트완은 잔다. 아침이 되고 아침밥 같은 게 온다. 맛태가리도 없다. 입안에 머금은 것도 바로 뱉고 컵에 든 것도 바닥에 뿌려버린다. 호주머니에 든 거 다 꺼내라고 했지만 아직 안에 든 게 있다. 그걸 꺼내 종이에 돌돌 말았다. 연기를 뻐끔뻐끔거린다. 그러나 감화원은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식당에 들어가자마자 배가 고파서 앙트완은 빵쪼가리를 뜯어먹었다. 감독관이 앙트완을 따로 불러낸다. 왼쪽 오른쪽? 영문을 모르고 앙트완은 왼쪽을 택한다. 감독관은 손목시계를 푼다. 앙트완의 뺨위로 번개처럼 따귀가 날아온다. 여기도 다를 것 없다. 조금 더 과묵하고, 조금 더 사납다. 뭔 생각을 하고 있건 하면 안됐었다는 걸 조금 더 아프게 배우는 것 말고는 집에서나 학교에서 하던 생활이랑 비슷하다.

상담시간, 앙트완은 질문에 대답한다. 왜 엄마아빠한테 거짓말을 해대는지, 엄마를 싫어하는지 등등. 사실을 말해도 안믿어주니 거짓말을 하는 게 편하고, 엄마가 자기를 싫어한다고 이래저래 긴 사연을 이야기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앙트완은 다 알고 있지만 앙트완이 알고 있다는 걸 어른들만 모른다. 문 바깥으로 르네를 보지만 르네는 시큰둥하게 아는 척 하고 가버린다. 면회 온 엄마는 왜 다른 남자랑 키스한 사실을 아빠한테 말했냐며 짜증만 낸다. 말 한 적 없는데. 엄마는 앙트완의 말을 믿지 않는다. 이미 엄마 아빠는 화가 났고 작별인사를 고한다. 널 다시 받아주려 했지만 너가 이렇게나 계속 속을 썩이니 더 이상 우리도 어떻게 할 수가 없구나. 어디 작업학교에 가서 실컷 일 해보든가. 엄마 아빠는 앙트완을 포기한다. 안긴 적 없는 자식은 그렇게 놓아진다.

모두가 규칙에 맞춰 걷고 운동한다. 그 틈을 타 앙트완은 탈출한다. 감독관이 쫓아와보지만 앙트완은 그를 따돌리고 혼자서 뛰어간다. 계속, 끝나지 않는 길을 따라 계속해서 뛴다. 밭과 숲을 지나쳐 도착한 곳 너머로 바다가 보인다. 백사장을 계속 뛰어가던 앙트완은 육지와 바다의 경계선에 다다른다.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처벅처벅 걷던 앙트완은 다시 뭍으로 나온다. 바다에는 아무도 없다. 그래서 아무도 간섭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아무도 만나지 못할 것이다. 외롭게 해줄 이가 없는 그 곳. 더 이상 달릴 곳이 없는 그 곳. 궁극의 자유, 궁극의 절망. 계속해서 내려가고 계속해서 어디론가 향하던 앙트완은 되돌아온다. 계속 뛰던 소년은 경계에 부딪히고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어쩌지 못하는 그 얼굴을 하고 앙트완은 화면 너머의 우리를 쳐다본다. 그 얼떨떨한 표정을 하고서, 기쁜 건지 슬픈 건지 알 수 없는 얼굴을 짓고서 앙트완의 세계는 멈춘다. 계속해서 어디론가 움직이던 카메라는 소년기 마지막 순간을 박제하고 영화는 정지한다.

맨날 혼나고 성질머리에 휘둘리던 나날들이다. 그래도 집 밖으로, 학교 밖으로 나서면 신나기만 했다. 그러고 나면 다시 혼나고 성질머리에 긁혔다. 당연했다. 잘못했으니까. 착하지 않으니까. 똑똑하지 못하니까. 그냥 그런 줄 알고 곧이곧대로 삼키며 살았다. 그래서 어린 시절은 무덤덤하게 견디는 시간과 즐거워 웃음 터지는 시간이 늘 뒤섞여있었다. 나 말고도 치사한 놈들이 가득했고 빡빡한 세상은 앙큼한 꾀가 필요한 곳이었다. 안착한 아이는 조용하게 말썽피우던가 걸려서 시끄러워지던가. 어쨌건 단지 웃고 싶었다. 즐거운 인생은 열심히 터득했다.

슬픔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딱 한번이라도 괜찮다고, 믿는다고 말해주는 누가 없어 울 일도 없었다. 슬플 줄 몰라서 슬픈 줄도 모르고 얼떨떨한 얼굴로 누군가의 호통을 기다리기만 했다. 우울과 슬픔의 경계 사이를 아무렇지 않게 뛰어다녔다. 그러다 늘 배어있는 뭔가가 흘러나온 적이 한번 있었다. 밤의 도시가 아름다워서, 그걸 경찰차 철창 너머로 봐야 해서, 다시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이 절로 나왔다. 왜 우는지도 모르고 입을 다문 채 하염없이 울었던 그 날. 울려고 운 것도 아니었다. 그게 슬픔이라는 것도 모르고 참지 못했다. 이제 소년은 슬프게만 하는 세상에서 달리다말고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어떤 얼굴을 해야 하냐고. 울지 못하는 소년에게 누군가는 가르쳐줄까. 지금 힘든 게 맞으니까 힘들어해도 된다고. 혹은 혼자서 깨달을까. 달리고 깨지면서 울어도 되는 그 때를. 우는 법을 모르니 아무렇지 않은 척만 늘어버린 어린 시절은 그렇게 멈춰있다. 차근차근 우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개구지게 튀어다니던 그 시절도 눈물에 젖지 않게끔. 그렇지 않으면 크고 난 다음 슬퍼하지 못했던 그 시절에 더 슬퍼지고 말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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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okieKid
16/04/14 17:04
수정 아이콘
서론 읽고 추천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tannenbaum
16/04/14 17:36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대문과드래곤
16/04/14 19:24
수정 아이콘
이 영화는 오늘 처음 들어보고, 앞으로 볼 일도 없을 것 같지만 그 자체로도 하나의 좋은 글인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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