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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2/14 20:00:46
Name
눈시BBver.2
Subject
[일반] 대몽항쟁 4부 - 완. 무신정권의 끝
1170년 보현원의 난의 여파는 컸습니다. 문신들은 떼죽음 당했고, 난을 이끈 정중부 등 무신들은 의종을 폐하고 명종을 옹립하죠. 이렇게 100년에 달하는 무신정권이 시작됩니다.
이 무신정권은 그 동안 고려가 안고 있던 모순이 터진 결과였습니다. 거란부터 여진까지 고려는 꽤 많은 전쟁을 치렀고, 특히 여진 정벌을 시도한 예종은 무과도 치르면서 무관을 이용해 문관을 견제했습니다. 하지만 문관, 기존의 문벌귀족은 오히려 무신들을 더 강력히 탄압했을 뿐이었죠. 아예 무신들이 꿀 먹을 벙어리 때였으면 모르겠지만, 그들은 여진 정벌을 통해 공을 쌓았고, (이 시기 무신의 녹봉이 꽤나 올라갔다고 합니다) 예종의 지원을 받기도 했죠. 마치 흑인 폭동처럼, 아예 눌려져 있을 때보다 이렇게 조금이라도 희망이 생겼을 때 불만은 터져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을 지나며 기존 문벌귀족들의 힘은 더욱 세집니다. 의종 역시 무신 정변의 주역이 된 무신들을 이용해 견제하려 하지만, 역시 문벌귀족의 반발로 오히려 실패했죠. 이 갈등의 끝이 바로 무신정변입니다.
분명 당연히 받아야 할 대우를 받지 못 한 약자들이 일으킨 이유 있는 정변이었습니다만, 이 시기에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기껏 문관들을 다 죽여버리긴 했지만 그들 중에는 이름 석 자도 쓰지 못 하는 이도 많았고, 나라를 다스린다는 게 어떤 것인지 그들은 몰랐습니다. 그냥 때려죽일 줄만 알았죠. 작은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모르겠는데 정권을 잡은 그들이 다스려야 할 지역은 그 드넓은 고려 전체였습니다. 이렇다 할 치세의 능력도, 왕을 대신할 정통성도 없었던 그들은 왕을 허수아비로 만든 채 자기의 안위를 지키는 데에만 몰두합니다. 모든 국방력을 자기 중심으로만 하니 외국의 침략을 막는 데는 약해질 수밖에 없었고, 힘만으로 다스리니 계속되는 반란에 시달려야 했죠. 그렇다고 그 반란을 제대로 진압할 능력도 없었습니다. 대군을 내보내면 자기 자신을 지킬 병력이 없어지니까요.
그나마 경대승은 문관도 우대하며 어떻게 해 보려 했지만, 그가 만든 도방을 제어하지 못 했고 그게 뒤로 이어졌으며, 최충헌 역시 뭔가 개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려 했지만 그대로 안주해 버립니다. 최충헌이 그나마 능력이 있었다 해도 할 수 있는 건 자기의 안위를 이전보다 더 효율적으로 지키는 것이었을 뿐, 그게 반란을 이겨내고 4대 세습을 하는 기틀은 되었지만, 나라를 발전시키거나 외국의 침략을 막는 데에는 아무 힘도 쓰지 못 했죠.
아무리 약자인들, 아무리 옳은 명분으로 일어났든, 설령 그게 대다수의 지지를 받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통치할 기술과 정통성이 없이 안티에만 머물면 이렇게 되고 마는 것이죠. 그래서인지 이들을 볼수록 현대의 공산주의의 몰락이 생각납니다. 물론 공산주의는 이보다 명분도, 지지도 컸죠. 하지만 역시 그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 했습니다. 오히려 기존 선진국들의 사회주의가 더 나았죠. 전세계에서 혁명을 일으켜 성공한 사람 중에 정치에도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 둘은 꽤나 다르다는 것이죠. 이걸 뛰어넘지 못 하면, 그게 99%의 지지를 받는다 하더라도 기존의 모순을 고치기는커녕 모순을 강화하고 기존의 기득권보다 더 협소한 기득권이 될 뿐입니다. 최소한 기존의 기득권은 정치하는 법은 알았으니까요.
당시의 무신들에게는 어떠한 이상도, 나라를 이끌어갈 명분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과 최측근의 배를 채우는 데만 몰두했고, 고려는 이제껏 겪어보지 못 한 수 많은 민란에 시달립니다. 고려를 병들게 했던 문벌귀족들을 쓰러뜨렸지만 그들은 고려를 치유하기는커녕 더 병들게 했죠. 노비가 군주가 됐다느니 노비가 반란을 일으켰다느니 하지만 그건 그만큼 나라가 혼란스러웠다는 얘기가 될 뿐입니다.
이전의 강조는 그래도 거란이 쳐들어오자 자기가 직접 맞서 싸웠고, 고려의 충신으로 남았습니다. 이들에게는 그럴 용기도 능력도 없었습니다. 아니 강조의 실패를 보고 그들이 더 숨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면, 후대의 이성계는 새로운 세상을 세우려 했던 신진사대부와 손을 잡습니다. 이후의 조선은 신진사대부들의 계획대로 만들어졌고, 변화했습니다. 고려시대의 많은 모순들이 어느 정도 해결된 것이죠. 무신정권이 충신이라서 왕을 없애지 못 한 게 아닙니다. 이성계 정도의 이상과, 정통성과, 능력이 없었던 것이죠.
몽고의 침략이 없이 한 100년 지났으면 또 어떤 걸출한 인물이 새로운 세상을 외치며 새로운 왕이 되어 새로운 나라를 만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건 IF일 뿐, 무신정권의 통치자들 중 그런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몽고에 항복하지 않고 고려인으로 싸우고 죽은 백성들이 대단할 뿐이죠. 어쩌면 이게 300년을 끈 고려의 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무신정권들은 그 동안 고려가 일구어 온 열매들을 동이 날 때까지 먹어치우며 버틴 것일 뿐이겠죠.
여요전쟁과 여진 정벌, 대몽항쟁을 얘기하며 고려가 조선보다 더 자주성이 높았다느니 더 강력했다느니 하는 환상이 있습니다. 하지만 따져보면 고려가 조선보다 잘 싸웠다고 할 건 여요전쟁밖에 없습니다. 여진 정벌은 아무리 배경이 유리했다 해도 조선이 성공했고, 대몽항쟁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막장이었습니다. 애초에 그렇게 전쟁이 많았던 나라에서 무신들을 아예 천대한 것을 생각해야죠. 아무리 조선 자체의 모순이 있었다 한들 신분제나 여러 시스템 문제에서 조선은 고려의 모순을 많이 없애고 시작했고 발전해 왔습니다. 분명 고려에서 조선과는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고, 조선보다 나은 모습도 보이지만 그렇다고 고려를 무턱대고 좋다고 생각하며 조선을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무신정권. 참 격동적인 시대였고 매력적인 인물도 많지만, 결코 좋게 볼 수 없는 시대입니다. 가장 위험한 내우와 외환이 한꺼번에 왔고, 고려가 그걸 끝내 버텨내긴 했지만 그건 상당한 운과 백성들의 항쟁, 원종의 외교 덕에 가능했던 것이죠. 오히려 이런 수십년간의 혼란에도 고려가 끝내 버텨낼 수 있었을 정도로 그 동안 고려가 많은 것들을 쌓아 왔구나라고 생각하야겠죠.
다만, 공산주의니 뭐니 하는 비교를 했지만, 확실한 게 하나 더 있죠. 이렇게 나라를 막장으로 끈 것이 이들이라 해도, 이들이 무신정변을 일으키게 된 원인은 기존의 모순을 일으킨 기득권입니다. 아무리 무신정권이 막장이라 하더라도 이를 절대 무시할 순 없구요. 기존의 기득권이든, 아래에서 새로이 올라온 세력이든 이런 모순을 해결하는 자들이 다음 시대를 이끌어 갑니다. 그들은 또 다른 모순을 만들고 또 다른 세상이 만들어지겠죠. 그것이 고려였고, 그것이 조선이었으며, 그것이 지금이고 앞으로도 그래야죠.
그럼 이제 마무리를 짓겠습니다.
1. 어찌할 것인가
천도, 수도를 옮기는 것에는 큰 비용과 시간이 걸리긴 할 겁니다. 거기다 고려의 재정 상황이 너무 열악했으니 더 했겠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쿠빌라이 칸은 꽤 참아주긴 했을 겁니다. 하지만 원종은 그걸 따를 수 없었죠.
+) 이 과정에 있었던 일본을 치니 마니 하는 얘기는 모두 뒤로 미루겠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그에게 힘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있는 건 딱 하나, 몽고의 후원 뿐이었죠. 원종은 최고급 샌드위치에 쌓여 있었습니다. 밖에서는 몽고가 빨리 환도하고 일본 정벌을 도우라고 난리였고, 안으로는 김준(63년 즈음 이름을 바꿉니다) 등의 무리가 환도에 결사 반대하고 있었죠. 그들은 아직 도방과 삼별초라는 무력을 손에 움켜쥐고 있었습니다.
이 때 원종이 동원한 것은 이신제신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동원된 건 김준의 심복이었던 임연이었죠.
당시 김준은 반대파를 열심히 잡으면서 부패하기 시작했습니다. 집을 지으면서 이웃집들을 멋대로 철거하고, 뜰의 너비만 백 보나 됐는데 그 마누라는 그것도 부족하다고 "사내자슥이 눈구녕이 그리 작수?" 했다고 하죠. 왕을 볼 때도 아래에서 절 하지 않고 올라가서 절 했다고 합니다. 최의를 죽인 지 어느덧 9년, 그의 권세도 어느새 절대권력으로 가고 있었죠.
문제는 심복 인연과의 갈등이었습니다. 김준의 아들이 땅을 두고 그와 다툰 일이 있었고, 임연의 아내가 "자기 손으로" 종을 죽인 일이 있어 그녀를 귀양보내려 하자 임연이 그걸 알고 원망했다고 합니다. 원종은 이 틈을 노렸죠. 환관 강윤소가 그걸 알려줬고, 임연을 부추기니 그는 "왕께서 명하시면 내가 어찌 목숨을 아끼겠는가?" 라며 따릅니다. 그 때 동원된 건 환관이었던 김경과 최은이었습니다.
원종은 자기가 아프다는 핑계를 댔고, 김준이 자길 보러 오지 않자 그 일을 핑계로 부릅니다. 김준의 친척인 (왜 환관만 나오지 -_-) 환관 박문기가 김준에게 달려갔지만 이미 늦었죠. 대궐 안에 김준을 부른 원종, 임연은 그 틈을 노려 삼별초를 동원해 김준을 죽입니다. 이렇게 김준과 그 무리들을 죽이고 귀양보내면서 강화도는 다시 피로 물들죠. 이 때가 1268년 12월이었습니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임연은 김준의 권력을 그대로 이어받았고, 오히려 김준보다 더 나간 모양입니다. 어쩌겠습니까. 다시 이신제신이죠. 원종은 김준을 죽일 때 함께 했던 김경과 최은을 몰래 불러 다시 일을 벌이려 했는데, 이게 임연에게 발각됩니다. 그들을 숙청한 임연은 대담한 결정을 내리죠. 원종을 폐위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왕실을 위하여 권신을 제거하였는데, 왕이 김경의 무리와 함께 나를 죽이려고 꾀하니, 앉아서 죽음을 당할 수 없다. 내가 큰일을 행하고자 하는데 어떠한가?"
때는 1269년 6월, 그는 삼별초와 도방 병력을 이끌고 원종을 폐위한 후 안경공 왕창을 옹립합니다.
지금까지 명시돼 있지 않았을 뿐, 원종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 한 이유도, 개경 환도가 계속 늦어진 이유도 이를 보면 알 수 있죠.
하지만 임연이 예상 못 한 게 있었습니다. 그 전에 세자 왕심이 몽고로 떠난 상태였다는 것이죠. 그는 급히 몽고에 이 사실을 알리고 돌아왔고, 몽고에서도 사신 알탈아불화 이악 등을 보내 이를 따집니다. 이 혼란을 틈타 북계에서는 또 다른 일이 일어나니, 최탄이 관리들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킨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사신으로 온 탈타아가 그들을 진정시키고 학살을 중지시킬 정도였죠 -_-;
이렇게 몽고가 강력하게 따지고 군사 행동까지 벌일 움직임을 보이자, 임연은 술이나 진탕 마신 후 원종을 다시 복위합니다. 원종은 곧바로 최탄의 반란을 어떻게 진정시키려 하지만 몽고에서는 이미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죠. 이렇게 1269년도 끝나고 1270년이 밝습니다.
몽고에서는 몽가독을 보내 서경에 주둔하게 하며 원종을 지원합니다. 그에게는 강력한 지원군이었지만, 대신 그들은 서경 이북을 떼내어 가 버립니다. 이것이 쌍성총관부와 함께 고려 영토 내에 설치된 동녕부입니다. 원종은 반란군노무 자식들을 왜 감싸주냐며 돌려달라고 하지만 쿠빌라이 칸은 매정하게 거절합니다.
이것이 몽고의 마지막 밀당이었습니다. -_- 그것도 참 큰 밀당이었죠. 내가 군사를 보내 너를 확실히 지원하겠다, 하지만 약속 빨리 안 지키면 이번처럼 니네 땅 다 가져갈 것이다.
원종은 다시 몽고로 향합니다. 두 가지 일, 개경 환도와 동녕부에 대한 일이었죠. 하지만 동녕부 문제는 결국 거절당했죠.
2. 마지막 무신 정권
쿠빌라이 칸은 미리 보낸 몽가독을 비롯해 여러 갈래의 군사를 보내 고려를 도우며, 동녕부 귀속을 확고히 합니다. 원종은 아직 고려로 돌아오지 않은 시기, 임연은 이를 듣고 급히 백성들을 독촉해 섬으로 들어가 다시 싸우려 하지만 그것이 병이 돼 등창이 터져 죽습니다. 그 뒤를 이은 건 그의 아들 임유무, 하지만 이미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죠. 임유무 역시 몽고군에 맞서 싸우니 뭐니 했지만, 원종은 돌아오자마자 마지막 한 수를 둡니다. 정말 오랫동안 기다렸을 한 수였죠.
이번에 동원된 것은 홍문계와 송송례, 그들은 임유무를 따르는 척 했지만 역시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차였습니다. 원종은 돌아오자마자 그들에게 임유무를 죽일 것을 사주하니, 그들은 삼별초를 이끌고 임유무를 칩니다.
때는 1270년 5월, 이렇게 무신 정권은 모두 끝 납니다.
이 일련의 일들은 무신 정권의 힘이 얼마나 컸는지, 원종 등 고려왕들의 힘이 얼마나 적었는지를 말 해 줍니다. 쿠빌라이 칸과의 번개에서 알 수 있듯 원종의 능력은 결코 낮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10년 넘게 환도를 하지 못 했고, 김준 등을 죽일 때도 직접 나서는 것이 아닌 불만을 가진 신하를 통해 해야 했죠. 이를 최씨는 이렇게 비판합니다.
"정중부 이래로 권신이 대대로 국명을 잡으매, 임금이 적국처럼 두려워하여 감히 항거하지 못하니 그 누적된 관습이 이미 오래이나, 이제 연이 이미 죽고 유무는 한낱 작은 아이일 뿐인데, 왕이 그 죄를 성토하지 못하고 한두 신하를 시켜 겨우 죽였다. 위복이 이토록 떨치지 못하니, 앞으로 있을 권간의 참란한 마음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때문에 이 무신정권의 잔당을 없애는 데도 이런 내분과 몽고의 힘을 빌려야 가능했죠. 최씨 정권을 욕 하면서도 참... 이걸 잘 했다 해야 되나 싶은 생각이 많이 드는 순간입니다. 그래도 후대의 사람들은 원종, 충경왕을 높이 평가합니다. 애초에 문관 우대의 사회가 계속됐으니 무신 정권에 대한 반감도 있겠지만, 정말 나라가 망할 정도의 상황에도 이 정도를 보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죠. 후에 고려 태조, 현종, 문종 등을 배향하는 자리에 원종도 빠짐 없이 들어갑니다.
문신이 아닌 무신이 정권을 잡고, 왕을 허수아비로 만들 힘이 있었으면서도 새로 나라를 만들지 못 하고 자기 자리를 지키는 데만 안주했던 무신 정권, 그리고 그 타이밍에 들어왔던 한국사 최악의 재앙 몽고, 하지만 엉망이 된 나라를 정상으로 돌리는 데에 힘이 된 것도 이 몽고였습니다. 이런 어지러운 상황, 누가 옳은지 그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마침내 끝난 것이죠. 뒷맛이 개운할 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모순이 모두 터진 것이 바로 삼별초의 봉기였습니다. 대체 누구를 응원해야 할 지, 누가 맞다고 해야 할 지 알 수 없는 상황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대몽항쟁은 모두 끝났습니다. 고려는 마침내 왕이 다시 실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국내의 모순을 외국의 힘을 빌린 후에야 가능했고, 그 어느 때보다 큰 간섭을 받게 되었죠. 그리고 그 모든 일에 관련을 가졌던 삼별초는 이제 끈 떨어진 신세가 되었습니다.
삼별초는 지금까지 모든 일에 동원됐고, 마지막에는 결국 왕, 원종의 편을 들게 됩니다. 하지만 임유무까지 죽은 지금, 원종이 계획한 사냥은 모두 끝났습니다. 이제 남은 건 사냥개가 삶기는 것 뿐이었죠.
이상, 대몽항쟁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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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겠다.
더러운 오랑캐에게 무릎 끓고 그 힘을 빌리는 자가 진정 고려의 왕이라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묻겠다.
왕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국정을 마음대로 농단해 나라를 망친 자들의 잔당이 어찌 그 더러운 입으로 고려를 내세우는가?
최씨 정권이 부패했다 하나 오랑캐에 맞서 고려를 지켰다. 이제 몽고의 요구에 그들에 마지막까지 맞서려는 자들를 죽이면 남는 것은 무엇인가? 고려라는 나라를 아예 몽고에 바칠 것인가?
역적 최가놈들이 살리려 했던 것은 그들 자신일 뿐, 그 최씨의 개로 누릴 거 다 누린 자들이 싸웠다고 할 수 있는가? 그 권력은 모두 왕에게서 뺏은 것이요, 그 재물은 모두 백성들에게 뺏은 것일 뿐, 진정 고려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이 누구인가?
우리 삼별초는 스스로 왕 자격을 저버린 왕전을 대신해 승화후 온을 옹립하여, 단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끝까지 몽고에 맞서 싸우겠다!
폐하, 아니 전하의 어명을 받들어, 역도 삼별초를 토벌한다.
난인가 항쟁인가?
삼 별 초
三 別 抄
그런데 말이야... 아니 다 까놓고 말 해서 우리가 최씨 밑에서 좀 해 먹었긴 했지만 그래도 마지막에는 왕 편 들었잖아? 강화도에 있는 동안 궂은 일 다 한 게 우리 아닌가? 마지막에 임유무까지 죽이면서 왕 앞으로 기었는데 우리한테 이럴 수 있어? 토끼를 잡으면 사냥개는 삶긴다는 건가?
당연하잖아. 자기 마음대로 주인을 바꾸는 개를 믿을 주인이 어딨겠어? 그리고 말이야. 니놈들은 애초부터 우리가 기른 개가 아니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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