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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3/10/16 17:52:26 |
Name |
겨울삼각형 |
Subject |
[일반] 주말에 명량, 한산 뒤늦게 본 후기 (수정됨) |
넷플릭스로 봤습니다.
명량은 전에도 한번 본거 같은데
다시 봐도 그럭저럭 볼만 하더군요.
한산은 넷플릭스에 감독판으로 있습니다.
극장판을 보지않아서 비교는 할 수 없지만,
역시 그럭저럭 볼만 했습니다.
뭐 역사가 스포일러라서 대충다 아는 이야기인데
영화상 수정된 부분들이 있지만 뭐 영화니까..
가장 유명한 두가지는
1. 명량에서 고구마를 담당하는 배설
근데 사실 배설은 탈영에 성공합니다(?)
배설은 그냥 장수도 아니었고
전임 수사가 다 태워버렸다지만, 원래 가장 규모가 큰 경상우수영의 수장이었는데 전시 탈영을 한거죠.
왜란이 마무리 된 이후에 체포되어 참형을 당합니다.
2. 한산의 웅치 전투
권율의 이치전투와 쌍으로 묶이는 전투인데,
웅치 전투는 정말 처절하게 세벽부터 밤까지 이어졌고
결국 최고지휘관인 김제군수까지 전사하면서 웅치를 지키지 못힌고 후퇴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치 전투에서도 아침부터 4시까지 치열하게 싸웠고 여긴 간신히 막아내었는데
전주를 공격하던 고바야카와군의 후방인 금산성에 의병이 공격한다는 소식이 오면서 일본군이 후퇴 하게 됩니다.
(금산을 공격하던 의병들은 대패합니다..)
영화에서는 변요환의 요청으로 고바야카와가 웅치를 넘어 전라좌수영으로 간다고 했지만..
웅치 자체가 금산에서 전주가는 길목이라 영화적 각색이라고 보여지죠.
명량이나 한산이나 전투신은 살짝 불만이 있긴 하지만
뭐 영화니까..
명량의 일본장수인 구루지마 미치후사의 경우는
사실 조선에 파병온 장수들 중에서도 쩌리중에 쩌리 입니다.
시고쿠출신인 소형다이묘인데, 히데요시가 천하인에 오른뒤에 이어졌던 시고쿠 정벌에 히데요시에 합류한 인물입니다.
코에이사의 게임인 신장의 야망에선 미치후사의 아빠는 개근을 하는 캐릭입니다.(미치후사는 나왔다 안나왔다 합니다)
아빠인 무라카미 미치야쓰는 시고쿠의 소규모 다이묘인 고노가문의 부하1로 등장을 하죠.
성이 다른 이유는 히데요시에게 빠른항복을 해서 영지인 구루지마를 받으면서 그걸 성으로 바꾸었기 때문이죠.
뭐 암튼 영화와 같이 형도 본인도 조선에 끌려왔다가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한산의 상대는 와키자카 야스하루인데,
와키자카 본인에게 있어서도 최대패전이 한산도 전투일정도로
본인의 평가가 하락되는 요인이 이 한산 입니다(..)
뭐 그래도 와키자카 본인에게는 다행인지,
명량의 구루지마와 달리 본인은 기적적으로 살고
그 뒤 이어지는 세키가하라에서도 서군에 있다가 동군으로 배반하면서 그래도 영지를 지키게 됩니다.
세키가하라 이야기를 들으면 배반자1 로 보이지만..
약간의 변을 하자면 원래 히데요시의 무장들은 대부분 도쿠가와 라인이긴 했습니다. 문제는 영지가 서쪽이라서
나 동군갈건데~ 하면 다구리 당하는 입장이라 거의 반 강제적으로 서군에 들어간거고, 기회를 보다가 동군에 함류한것이지요.
(물론 그 타이밍도 적절했고..)
마지막 3부작의 상대역은
이미 쿠키영상에 나오는데로
시마즈 요시히로 입니다.
네임벨류로 보면 일본쪽 최고장수죠.
요시히로 본인은 나중에 세키가하라때 활약도 있고,
시마즈 가문 자체가 막부 마지막까지 버틴 대가문이고,
막부에 칼을 꼽은 메이지 유신의 주역이기도 하고..
노량의 조선-명 연합군의 목표는 고니시 유키나가 입니다.
육상으로의 왜성에대한 몇차례 공략은 모두 실패했습니다.
사천왜성의 시마즈요시히로
순천왜성의 고니시유키나가
울산왜성의 가토기요마사
결국 포위하기로 했는데
그게 순천왜성의 고니시 유키나가 였죠.
이 고니시를 구하기 위해서
사천의 시마즈 요시히로
고성의 다치바나 무너시게 등이 출진을 합니다.
노량해전의 시작이었죠.
그리고 고니시는 자신을 구하기 위해 온 일본군을 잡기위해 조-명연합군이 빠지자
그틈을 타서 런 해버립니다.(...)
노량해전은 지휘관급 전사자가 아주많은 전투입니다.
아무튼 전투 자체는 일본군의 압도적 패배였습니다.
특히 시마즈군 피해가 막심했다고 여겨집니다.
시마즈군은 애초에 임진왜란 시작할때도 상황이 좋지 않아서
히데요시가 정해준 병력이 만명이었는데 만명은커녕 수백명도 동원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다만 정유재란때는 어느정도 수습해서 넘어온것이었는데
그마저 노량해전을 통해 다 날려버렀으니..
이후 일본에 돌아가 벌어진 세키가하라에 참여할때는
1500명정도만 참여했다고 하죠.
(세키가하라의 결정타로 고바야카와의 배반을 꼽는데, 규슈북쪽 30만석의 영주였던 고바야카와가 동원한게 15000 명입니다)
암튼 영화가 개봉하기 약 2달이 남았네요.
그리고 오늘 월급루팡도 알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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